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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특강 - "정도전과 그의 시대"

Bawoo 2014. 6. 16. 21:27

요즘 '정도전'이란 사극이 인기라고 하는데 이 책은 그 드라마 제작팀, 연기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장이 쉽게 잘 넘어갔다. 책 분량도 220쪽 정도라 읽기에 벅차지 않았다. 내용의 핵심은 고려가 무너지는 이유는 일부 귀족에게 부가

집중되는 토지제도의 문란으로  평민들은 송곳 꽂을 땅 한뙈기 없을 정도로 양극화가 심화된데서 찾고 있는데 요즘도 그런 것 아니냐는

저자의 시사는 한번은 되새겨 봄직하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 보다는 얼마나 더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으니 고려, 조선의 왕조시대와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아무튼 정도전이란 인물과 그가 살아냈던 시대 배경, 한 일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알기에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책 중간에 중국과 연관된 여러 이야기-성리학, 유학 등등-가 나오는데 한편 우리가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내용을 간편하게 정리해놓아

그야말로 새로운 지식에 눈을 뜨게 해주는 입문서로 딱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래는 알라딘과 경향신문의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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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에서 역사저술가 이덕일은 ‘반성의 도구’라고 말한다. 새로운 말은 아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잘 살피기 위함이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판이하게 다르다면 과거를 거울로 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란 반문도 가능하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새로운 문제를 사고하거나 해결하는 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역사는 언제, 어떻게 소용이 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새롭고도 새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시간이고 새로운 날들이지만, 또 한편으론 어제와 같은 일상의 반복이기도 하다. 반복은 교훈을 낳는다. 앞서 간 수레바퀴 자국을 가리키는 전철(前轍)은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된다. 잘못된 길을 가다 엎어진 수레의 흔적은 우리에게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반복적인 경험과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현명함이다. 반대로 똑같이 잘못된 길을 가다가 또다시 엎어짐으로써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이런 현

명함과 어리석음도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던가.


이솝 우화에 전하는 얘기가 떠오른다. 전갈과 개구리 얘기다. 어느 날 전갈이 개구리에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개구리는

전갈이 독침으로 자기를 찌를까봐 두려워하는데, 전갈은 만약 내가 널 찌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킨다. 설마 자살과 같은 행위를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 말을 믿고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운다. 하지만 강을 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찌르고 결국 둘 다 죽게 된다. 죽어가던 개구리가 왜 찔렀느냐고 묻자 전갈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갈이야. 그게 내 본성이라고.”


이 우화의 교훈은 무엇인가. ‘타고난 본성은 어쩔 수 없다’ 정도로 정리될 수 있겠지만, 전갈의 ‘인지 부조화’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분명 전갈의 이성은 개구리를 찌르는 행위가 자신의 죽음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의 이성이 본성을 통제할 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구리뿐만 아니라 전갈 자신도 죽음에 이르게 했으므로 이 부조화는 극복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방향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성의 힘을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이다.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본성의 힘을 직시했다면 애초에 전갈은 개구리에게 강을 건너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성의 힘을 더 키우는 것이다. 가령 본성을 제어하기 어렵다면 필요한 경우 독침에 보호대라도 씌워서 파국을 막는 것도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전갈과 개구리의 우화를 우리의 역사인식과 성찰에도 적용해봄직하다. 과거에 대한 인식과 성찰로서의 역사의식은 과연 우리의 타성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아니면 그와는 반대로 역사의식조차도 결국 반복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아야

할까.

 

<정도전과 그의 시대>를 읽으며 줄곧 머릿속으로 헤아려보았다. 저자가 보기에 ‘왕도정치를 꿈꾼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과 그가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렇다. 외적으로 고려말은 대륙의 주인이 원에서 명으로 교체되던 시기였고, 내적으로 고려사회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적 양극화로 백성의 삶이 파탄에 이르고 있었다. 소수의 권문세족이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토지개혁 상소문에서 조준은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고 적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고려왕들의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선왕과 충숙왕이 시도한 개혁정치가 실패하자 사정은 더 악화된다. 그리고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공민왕이 등장해 망해가는 고려를 되살리기 위한 최후의 시도를 모색한다. 그는 ‘농토문제와 백성들의 억울함을 분별해 잘못을 바로잡는 기관’이라는 뜻의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강력한 개혁을 추진하지만, 개혁대상인 친원파의 반발로 실패한다. 이후 공민왕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신돈을 앞세우게 되는데, 신돈은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주도록 하는 혁신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민심을 얻는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민심이 오히려 신돈의 앞을 가로막는다. 신돈은 권문세족과 신흥사대부,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았고, 그가 백성들로부터 ‘성인’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자 기분이 틀어진 공민왕은 신돈을 내친다. 저자는 공민왕이 신돈을 제거한 것이 가장 큰 과오이며, 이로써 고려는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고 평한다. 신돈의 실패는 고려왕들이 중심이 돼 시도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끝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개혁이 실패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혁명이다. 신흥사대부는 고려 왕실의 처리와 토지개혁 방법론을 두고 온건개혁파와 역성혁명파로 나뉘게 되는데, 온건개혁파의 거두가 이색이었다면 정도전과 조준이 역성혁명파의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건국 과정은 혁명적인 개혁사상을 품고 있던 정도전이 변방의 무장 이성계를 찾아가 의기투합함으로써 첫발을 내딛게 된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결합, 그것을 저자는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던 고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진 지식인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무장의 만남”으로 규정한다. 정도전의 혁명사상이 이성계의 군사력과 만나게 된 셈인데, 이때가 1383년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뒤 고려는 패망하고 조선이 들어선다.


고려말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극심한 양극화는 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있어서 빚어진다. 고려말의 권문세족은 정치권력을 독점하면서 이를 등에 업고 사익 추구에 몰입하여 경제권력 또한 장악한다. 소수의 권문세족이 정치, 경제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이에 따라 자영농의 대부분이 몰락해간 것이 고려사회를 붕괴로 내몬 당시 상황이었다. 저자는 “한 사회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정도전의 일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전철이다. 우리는 우리가 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잘못된 길에서 제때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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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이 활동했던 고려 말의 정치적 상황은 중국대륙에서는 원과 명의 정권교체시기였고 일본 왜구들의 침략으로 시끄러웠으며 내부적으로는 빈부격차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백성들의 삶을 뿌리채 흔들리며 있었다. 이러한 안팎의 혼란스러운 상황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개혁해야할 정치세력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켜내는데 몰두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듯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오랜 유배로 중앙에 정치적 배경도 미약한 정도전이 변방출신으로 전쟁을 통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군권의 강자 이성계를 만나 망해가는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개창하고자 하는 배경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도전의 혁명사상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저자 이덕일은 정도전의토지제도의 개혁에 주목한다. 토지제도는 당시 백성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했던 핵심적인 문제로 이를 올바로 해결하여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권문세족들의 물적 기반을 허물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혁명세력들의 물적 기반으로 삼았다는 것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정도전의 주장인과전법국가에서 과전을 받은 벼슬아치는 관직 수행의 대가로 해당 과전 소출량의 10분의 1을 조로 걷고, 그렇게 받은 곡식 중 10분의 1을 국가에 세로 내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토지제도를 말한다. 또한 정도전이 이러한 과전법을 주장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으로 성리학을 들고 있다. 혁명의 추진세력들은 중소지주인 사대부들로써 대토지 소유자인 형세호에 맞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자신들이라는 성리학을 받아들여 세상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의 개국과정에서 정도전을 비롯한 혁명세력들이 처음 출발할 때의 주장과는 달리 타협한 토지제도로 물러서긴 했으나 이것의 실행으로 백성들의 삶은 한결 나아졌다는 점이 혁명성공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혁명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백성들의 위한정치에 있다. 백성의 삶과 동떨어진 정치란 결국 정치세력들의 이해요구를 실현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오늘날 한국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에는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 현상을 빼놓지 않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현실의 혼란스러움에 좌절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한다.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정치 역시 그 앞날을 보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는 분명한 역사의 교훈이다.


             * 위 자료는 알라딘 'http://blog.aladin.co.kr/mramor/6885799'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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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삶을 꿈꿨던 정도전,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되다 [경향신문] 2014.01.10

▲ 정도전과 그의 시대…이덕일 지음 | 옥당 | 224쪽 | 1만2000원

최근 TV에서 대하사극 < 정도전 > 이 방영을 시작해 주목받고 있다. 조선 개창의 역사를 담은 이전 사극 < 용의 눈물 > 의 인기에 비견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화제다. 전작이 이성계와 그의 아들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방영작은 정도전에 집중한다는 취지다. 방송 제작진은 1년 전부터 이 드라마를 준비하며 정도전에 파고들었고, 역사학자 이덕일은 이들에게 집중 세미나와 강연을 했다. < 정도전과 그의 시대 > 는 이때 강연을 바탕으로 한 역사서이다. 저자는 쉽게 풀어낼 수 있는 강연의 장점은 살리고 깊이 들어가기 힘든 단점은 보완해 '혁명적 지식인' '조선의 설계자'로 불리는 정도전의 시대정신을 전한다고 밝혔다.

오늘날 정도전 같은 인물이 자꾸 회자되는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그런 지식인이 필요한 시대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정도전은 < 조선경국전 > 에서 벼슬아치가 백성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벼슬아치를 기른다, 곧 먹여 살린다고 했다. 벼슬아치가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때 벼슬아치를 기르는 존재가 백성이라고 말한 이가 정도전이다. 이는 사람들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약을 맺고 정부를 세운다는 존 로크(1632~1704)의 사회계약설보다 무려 300여년이나 앞선 것이다.

정도전은 고려 말의 혼란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을 토지제도로 봤다. 힘 있고 강한 자는 남의 토지를 빼앗아 더 부농이 되고, 가난한 자는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었다. 그나마도 소출의 8~9할을 세금으로 내고 나면 먹고살 방법이 없었다. 정도전은 그 폐해를 없애는 것을 새 왕조 개창의 명분으로 삼았고, 과전법은 조선 왕조 개창의 정당성을 설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당시 정도전이 구상한 토지개혁은 획기적이다. 모든 토지를 국가가 몰수하여 공전(公田)으로 만든 다음, 이를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를 백성의 입을 계산해서 나누어 준다는 뜻에서 '계구수전' 또는 백성의 숫자를 계산해서 밭을 나누어 준다는 뜻에서 '계민수전'이라고도 한다.

정도전의 개혁가 기질은 타고난 것이지만 처음부터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의 삶을 바꾸어놓은 것은 유배 생활이 큰 바탕이 됐다. 그가 고려 우왕 1년 때 유배를 간 곳은 전라도 나주 지역인 회진현 거평부곡이다. 부곡은 농민과 천민이 섞여 사는 마을로, 양인 농민보다 무거운 역을 졌던 마을이다. 당시 부곡민들의 피폐한 삶을 지켜본 정도전은 토지개혁만이 민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마음을 굳히게 된다.

저자는 이 시점에서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하방운동을 꺼낸다. 책에 따르면 중국 총서기 시진핑도 하방운동으로 농촌에 내려가 7년을 보냈다. 사진핑은 하방 시절을 떠올리면서 정부가 아닌 인민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시간이었으며, 이후 자기 삶의 기초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한국 사회도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의 CEO, 임원들이 농촌이나 공장에 가서 시진핑처럼 몇 년, 몇 개월은 고사하고 일주일 만이라도 살아봐야 한다고 은근슬쩍 꼬집는다.

하지만 정도전의 사상이 단순히 피지배층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세상을 뒤엎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의 사상의 줄기를 걷어올리면 모두 동양 고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한 예로 < 예기 > (여운)편을 들 수 있다. < 예기 > 는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대동사회' '소강사회' 개념이 담겨 있다.

공자가 말한 대동사회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 사회'다. 세상은 한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이 모든 돈과 권력을 가진 양극화 사회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을 최선의 가치로 삼고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쌓지 않으며 자신의 생산물을 남과 나누고 어린이와 노인을 함께 돌보며 책임지는 사회다. 대동사회가 이상적이라면 소강사회는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실현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대동사회까지는 아니지만 소강사회에 이르려고 애썼다.

저자는 이성계도 정도전 못지않게 대단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이성계 자신이 대토지 소유자였지만 소수가 다수의 토지를 강탈해서 문란해진 토지제도의 폐단을 알기에 사전 혁파에 나설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합은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던 고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방안을 가진 지식인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무장의 만남이라고 봤다.

고려는 토지개혁이라는 시대의 요구를 외면했기에 무너졌다. 우리 시대의 요구는 무엇일까. 소수의 갑과 다수의 을로 나뉜 극심한 양극화, 1%의 자본시스템에 99%가 희생당하며 분노하고 있는 세계 상황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도전의 인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는 간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