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여행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장장 120㎞를 달려 사냥터에 도달한 하이에나들은 서너 차례 사냥으로 배를 불린다.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동안 어미들의 배는 젖으로 가득 찬다.
이렇게 왕복하는 데 꼬박 닷새가 걸린다. 새끼들을 배불리 먹인 하이에나들은 하루를 쉬고 다시 여행을 떠난다. 연간 몇 달씩 반복되는
생활이다. 그러다 보면 우기가 되고 누 떼들이 다시 돌아와 여행이 필요 없게 된다. 삶의 터전과 새끼들을 모두 지킬 수 있는 하이에나의
지혜다.
이런 지극정성 하이에나도 이 땅의 부모들에 비하면 고단한 삶이 아니다. 어지간한 능력자가 아니면 대한민국 부모로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무너진 공교육에 살인적인 사교육비를 감내해야 하고, 대책 없는 청년실업에 일자리까지 찾아줘야 한다. 여기저기 전화 돌려 격에
맞는 배필을 찾아줘야 하고, 빚을 내서라도 꿀리지 않는 혼수와 결혼식을 치러줘야 한다. 자식이 둥지를 틀 집도 마련해줘야 하고, 맞벌이
자식들 대신 힘 빠진 손으로 손자·손녀 기저귀도 갈아야 한다.
그러고 남은 재산이 있어도 자식들의 눈독을 이겨내지 못한다. 모두 물려주고 부양을 기대하지만 팔자 좋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다.
그렇게 ‘올인’해 키운 자식 또한 올인할 자식이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여력이 없는 아들 집 딸 집 사이를 한물간 ‘티키타카’ 축구처럼 내질러지다 끝내 거리에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엊그제 중앙일보가 심층 보도했던 ‘상속빈곤층’ 기사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7년 전 ‘부모들이여,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2007년 5월 1일자 ‘시시각각’). 자식을 위해 살거나 자식에게 기대 살지 말고, 자식에게 잘사는 본보기를 보여주라고 했다. 그러려면 자식에게 올인하는 대신 남은 인생을 위해 경제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썼다.
그때의 결론이 지금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어미 하이에나의 희생은 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새끼들이 사냥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클 때까지만이다. 재벌이 아닌 이상 우리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7년 전에 썼던 그 말이다. “아들아 딸아, 나는 할 만큼 했노라. 이제 네 삶은 네가 알아서 살아라.”
<중앙일보 이훈범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