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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영화 '명량' 충무공 거처 병풍 … 불경 '반야심경'이 쓰여진 까닭은

Bawoo 2014. 8. 30. 20:01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산물이지만 역사소설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는 실제 역사에 바탕을 두는 만큼 사실과 허구가 미묘하게 교차한다. 그래서 역사소설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얼마나 줄다리기를 잘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가령 ‘대장금’은 거의 100% 허구여도 문제가 없었다. 역사적 사실이 실록의 한 두 줄 기록(장금이라는 의녀가 중종의 병세를 잘 알았다는 정도)에 불과하여 그녀 일생의 거의 전부를 허구로 채워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충무공 이순신처럼 절대적으로 추앙받는 애국영웅인데다 『난중일기』와 실록 등에 개인사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경우 허구화가 쉽지 않다. 영화 ‘명량’은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고 대성공을 거뒀다. 대성공의 배경 요인으로 어수선한 시국에서의 리더십에 대한 갈증, 아베를 위시한 일본 우익의 망동에 대한 징치(懲治) 욕구,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을 들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감독이 어떻게 충무공을 재해석했느냐다.

 충무공은 『난중일기』나 실록에 의거하면 충효의 화신으로 조선의 국시인 유교 윤리에 충실했던 분이다. 그러나 감독은 이러한 충무공 정신의 근거를 다른 데에 두고 있다. 그것은 곳곳에 병치(juxtaposition)된 이미지들로부터 읽힌다. 우선 충무공 거처에 모신 어머니 위패의 뒷벽에 걸린 편액을 보자. 오른쪽에 ‘환(桓)’이라는 큰 글자가 적혀 있고 왼쪽 옆에 “천산백양(天山白陽) 홍익이화(弘益理化)”라는 글귀가 보인다. ‘환’은 환인, 환웅 등과 관련해 우리 고대의 시원(始原) 사상을 암시하고 옆의 글귀는 대종교 창시자 나철(羅喆) 선생의 시구다. 아울러 모든 전선의 뱃전에 장식된 귀면(鬼面) 도상은 동이(東夷)의 영웅 치우(蚩尤)의 형상이다.

 다시 충무공 좌석 뒷면의 병풍을 보면 성현의 말씀이나 시구 대신 뜻밖에도 불경인 ‘반야심경’이 쓰여 있다.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를 보면 “나라에 오묘한 도가 있으니 (…) 실로 유불도 3교를 다 포괄하고 있다(國有玄妙之道 (…) 實乃包含三敎)”고 하였는데 이 민족 고유의 도는 조선 전기의 주체적·회통(會通)적 지식인들로 계승된다. 후일 국난을 당했을 때 일어난 의병과 승병 중에 이들이 많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 영화에서 왜 가끔 승병들을 클로즈업시켰는지 알게 된다.

 다시 말해 감독은 충무공의 애국심을 고유한 민족정신의 발로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량’은 서사적, 예술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지적할 점이 많다. 스토리텔링의 측면에서 요행에 기댄 해전, 작위적 설정, 유교 관료의 집무실에 불경이 등장하는 문화적 비상식, 거제 현령의 고을 ‘현(縣)’자가 매달릴 ‘현(懸)’자로 잘못 쓰인 것 등은 이 영화가 디테일에 그다지 충실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러한 지적들과는 별개로 ‘명량’은 팩션, 패러디, 코믹 사극이 유행하는 이 시점에서 정통 사극으로 당당히 승부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상찬할 만하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압도적 인기 때문에 비평이 숨을 죽이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그런 파시스트적인 분위기는 문제다. 비평은 인기없는 일이긴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후속작들이 대중에게 줄 더 큰 감동을 위해 ‘명량’은 본격적인 비평을 필요로 한다.

* 출처: 중앙일보-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