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놀로 브론치노(Agnolo Bronzino)(1503∼1572이탈리아)
1503년 이탈리아의 피렌체 근교 몬티첼리에서 태어났다.
라파엘로 델 가르보(Raffaellino del Garbo)에게 배우고,
이후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양식의 대표 화가인 폰토르모(Pontormo)의 공방에 들어갔다.
브론치노는 활동 초기에 피렌체에 있는 여러 성당을 위해 종교화를 그렸는데
주로 폰토르모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의 양식을 모방했다.
1530년 페사로로 가서 우르비노의 귀도발도 궁정에서 초상화를 그렸으며,
이때부터 스승의 양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홍해의 기적'.
모세가 기도한후 홍해가 닫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이스라엘인들
모세와 떨기나무
아기 모세
Madonna And Child With Saint John, 1526-29
The Holy Family, 1527-28
Portrait Of A Lady In Green, 1528-32
Pygmalion And Galatea, 1529-32
1530년 페사로로 가서 우르비노의 귀도발도 궁정에서 초상화를 그렸으며,
이때부터 스승의 양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브론치노는 1532년 피렌체로 돌아와
1535년부터 폰토르모와 함께 카스텔로와 카레지 저택의 프레스코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것이 메디치가(家)를 위한 브론치노의 첫 작품이다.
Allegorical Portrait Of Dante, 1530
Madonna And Child With Saint John, 1530
Pieta, 1530
Guidobaldo Della Rovere, 1531-32
Lorenzo Lenzi, 1532
Noli Me Tangere, 1532
Young Man With A Lute, 1532-34
Holy Family, 1534-40
Ugolino Martelli, 1535
Saint Bartholomew, 1536
Cosimo I De' Medici As Orpheus, 1537-39
1539년부터 그는 메디치가의 코시모 1세(Cosimo Ⅰ)의 궁정 화가가 되어
공작과 그의 가족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시인이기도 했던 브론치노는 다른 문인들의 초상화와
음악가, 학자들의 모습을 담은 방대한 양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Adoration Of The Shepherds, 1540
Holy Family, 1540
The Madonna And Child With Saint John The Baptist And Saint Elizabeth, 1540
Portrait Of Andrea Doria as Neptune, 1540
Portrait Of A Young Man, 1540
Portrait Of Bartolomeo Panciatichi, 1540
Portrait Of Lucrezia Panciatichi, 1540
A Young Woman And Her Little Boy, 1540
Venus, Cupid And Time, 1540-45
그는 종교화보다는 초상화 분야에서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소 냉담하고 오만하게 느껴지는 그의 초상화는 새로운 초상화의 유형이 되었고,
이것은 그의 도도한 귀족 계층의 후원자들과 잘 어울렸다.
그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참고했고,
우아한 긴 목과 긴 손가락을 가진 인물들을 불가능한 자세로 왜곡시켰다.
때로 그의 초상화를 두고 거만함을 발산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은 브론치노의 탁월한 기법을 높이 평가했다.
브론치노는 메디치 궁정의 분위기를 가장 잘 포착하고 해석한 화가였다.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복잡한 도덕적 상징들은
지적인 궁정 문화를 위한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전형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1560년대 이후 그의 양식은 이미 약간 진부하게 여겨졌고,
후원자들은 역동적인 움직임과 극적이고 정교한 효과에 중점을 둔 바로크 양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화려한 시대도 저물어갔다. 그는 1572년 피렌체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에는 '성 가족(Holy Family)', '젊은 남자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Man)',
'코시모 1세의 초상(Portrait of Cosimo I de' Medici)'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Venus, Cupid, Folly, and Time)',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와 그녀의 아들 조반니(Eleanora of Toledo with Her Son Giovanni)' 등이 있다.
Noli me tangere
1561
Oil on canvas, 291 x 195 cm
Musée du Louvre, Paris
1540-45
Oil on wood, 147 x 117 cm
National Gallery, London
패널에 그린 유화이며 크기는 146x116㎝이다.
런던 내셔널갤러리(National Gallery)에 소장되었다.
큐피드는 붉은 쿠션에 무릎을 꿇고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향해 입맞춤을 한다.
관능적인 몸매의 비너스는 큐피드인 화살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무르익은 황금사과를 들고 있다.
비너스 옆에는 '쾌락'이라는 아이가
장미꽃을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비너스의 뒤에는 '시간'을 상징하는
모래시계를 어깨에 얹은 남신 그뤼피스가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뤼피스는 '진실'의 신인 딸이 숨어 있던
푸른 장막을 거두고 있다.
비너스의 왼발 끝에 있는 가면 2개는
그뤼피스의 것으로 쾌락과 고통을 상징하는
꿀과 송곳의 가면이다. 큐피드의 등 위에서
고통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쥐고 있는
사람은 '질투'의 신이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ㄴ'자 구도이며 화면의
한가운데는 큐피드의 애무를 받아들이고 있는
비너스가 있다. 이 그림은 비너스보다도
오히려 배경이 되고 있는 인물의 우의에 관심을
두어야 할 듯하다.
그 때문에 이 그림의 제목을
《알레고리 an allegory》라고도 부른다.
브론치노는 이 그림 속에 인간의 특성과 사상적
개념을 의인화하여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는 그림을 하나의 지적인 영역 위에
올려놓으려 한 것이다. 정밀한 묘사와 색채는
20세기의 초현실주의의 기법과도 통한다.
브론치노는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에서 태어났다.
매너리즘 회화를 확립한
야코포 다 폰토르모(Jacopo da Pontormo)에게서
배우고 재능을 인정받았다.
메디치가 코시모 1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하면서
메디치가의 많은 초상화를 그렸다.
《아들 조반니와 함께 있는 톨레도의
예리아노르의 초상 Eleonora of Toledo with her
son Giovanni de’Medici》(1550)은
마니에리스모 초상화의 걸작이다.
1535-40
Oil on wood, 65,3 x 46,7 cm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1535-40
Oil on wood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1535-40
Oil on wood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1564
Oil on copper, 40 x 30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c. 1542
Oil on wood, 63 x 48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545
Oil on wood, 74 x 58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555-60
Tempera. on wood, 117 x 99 cm
Pushkin Museum, Moscow
1551
Tempera on wood, 58,5 x 41,5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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