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잠자리
1.
어린 시절
단 한번도 잡아보질
못했었다.
그토록 잡고 싶었는데도
녀석은 늘,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날아 다니거나 앉아 있었다.
동네 작은 연못이나 방죽 물위 하늘을
유유히 날거나 물가 풀들 위에.
맨손만으론 절대 잡을 수 없었고
나 혼자 힘으로는
거의 넘어 갈 수 없는
물이라는
어마어마한 장애물도 있었다.
2.
날아다닐 때의
자태는 얼마나 멋있었는지,
한 여름이면
시골 할아버지 댁 마당에
늘상 널려 있던 보릿단 위에 앉아 있다,
내 손에 들려있는 댑싸리 빗자루 밑에 깔려
손쉽게 잡히던
쌀잠자리, 보리잠자리들과는
비교도 안되었다.
너무 쉽게 많이도 잡혀
가둬 둘 마땅한 곳이 없어
별수 없이 내 양입술 사이로
날개를 물어 포로로 만들어버린
쌀잠자리, 보리 잠자리들.
녀석들은 내게는 이미 큰 매력이 없는 존재였었다.
도저히 잡을 수 없었던 왕잠자리를 잡는 것이
어릴 적 내 꿈이었었다.
이룰 수 없는 커다란 꿈
3.
내가 그토록 잡고 싶었던
그 왕잠자리를 잡아들고
뽐내는 모습으로 의기양양해 하던
동네 또래 아이를 어쩌다 볼 때면
그 애가 얼마나 부럽고 대단해 보이던지.
그 동네 아이 손에는
잠자리채가 들려 있었다.
쉽지는 않지만
물위를 날아 다니거나
물가 풀 위에 앉아 있는 왕잠자리를
눈치 안 채게 잡을 수 있는 잠자리 채.
필경 엄마나 아버지가 사주었을
그 잠자리채
4.
나는 잠자리 채가 없었다.
가질 수도 없었다.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고
엄마도 사주지 않았다.
사주고 싶어도 사줄 돈도 없었을테고
설사 있었어도
사줄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늘 곁에 없었다.
살아 계셨으나
늘 다른 곳에서 사셨다.
엄마는 사 줄 생각도 능력도 없었고
아버지는 아예 내 곁에 늘 없었다
나는 잠자리채를 든 아이가
마냥 부럽기만 했었다.
잠자리 채를 사준 엄마, 아빠가 있는 것이 부러웠고
'나도 잠자리채만 있으면,
얼마던지 잡을 수 있을텐데' 하고
생각하며 또 부러워했다.
5.
그 왕잠자리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본 이후로는 처음.
이젠 나이가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 못나간다고
더 쌀쌀해지기 전에
따스한 가을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쏘이자고
아내와 함께 나들이 나선
살고 있는 도시 작은 공원 연못에서
아주 우연히.
6.
내 눈에 들어 온
왕잠자리
이젠 더 이상 커 보이지 않는다.
어릴 적 그토록 크고 멋있어 보이던
시골 고향에서 유일하게 기와집이던
종가집이
커서 고향에 들렀을 때
별로 커보이지 않았듯이,
녀석 모습은 여전히 멋있기는 하지만
어릴 적 보았던 만큼 멋있는 모습은 아니다.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연못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여전하지만
잡고 싶은 마음도 잡을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저 녀석
내 어릴 적에는
그토록 잡고 싶었었는데'하고
바라보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해본다.
7.
그런 내 곁에는
어느 새 귀밑머리가 새하얘진 아내가,
같이 살아오면서 별로 해 준 것도 없는 나를,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든든한 반려자로 생각한다는 듯이
내 팔장을 꼬옥끼고
같이
왕잠자리를 바라다보고 있다.
8.
그런 우리 노부부 뒤로
'아빠 나 저 잠자리 잡아 줘'하며
그토록
왕잠자리를 잡고 싶어했던
내 어릴 적
딱 그만한 나이로 보이는 아이가,
한 손은 아빠로 보이는
젊은 남자의 손을 꼬옥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우리 부부가 바라보고 있는
왕잠자리를 가르키고 있다.
아빠는 틀림없이 잡아주실꺼야 하는
믿음이 가득한 찬 눈빛으로
아빠일 젊은이를 바라보며,
그 둘의 모습을
분명 엄마이자 아내일 젊은 여인이
그 둘 곁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품안엔 또 다른 자식으로 보이는
갓난 아기를
꼬옥 보듬어 안고서.
2014. 10. 6 아침에
전날 아내와 함께 월미도 공원에 가서 우연히 본 왕잠자리를 생각하며 써보다.
<시인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