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Bawoo 2014. 10. 8. 21:24

 

생은 길을 따라 이어지고

 

 

1.

 

죽도록 가고 싶은 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 수 없었습니다.

냉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란 놈은

'너는 이 길을 절대 갈 수가 없어

다른 길을 찾아봐'라며

두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양팔을 벌려 가로막고 있었고

나는 그 현실이란 놈에게 굴복하여

가슴에 피눈물을 뿌리며

발걸음을 되돌려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했었습니다.

 

2.

 

그래서 찾은 길,

4년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찾은 길.

비록 내가 원했던 길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남이 보기에 

썩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을 그런 길. 

그 길을 20여년간

언제인지도 모르게

힘들고 숨가쁘게 달려왔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감사한 마음보다는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는데' 하는

 한 맺힌 응어리를  마음  속에 가득 담은 채로 말이지요.

 

벗어 날 수 없는 길이라면 그 길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걸어야 하는 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벗어날 능력도 힘도 없으면서

그저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하며 

나날을 즐겁지 않게

보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래도

썩 괜찮아 보이는

그런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3.

그러다가

그 길을 벗어날 기회를 잡았습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또래들 그 누구도

벗어날 생각을 안하고 있는 그 길을,

그 길로 들어선지 20년만에

잡았습니다.

또래들보다 일찍 벗어나는 길이기에

갈등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가고 싶은 길은

늘 따로 내 마음 속에 있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을 더 가면 갈수록

나의 마음은 더 고통스러울 것임을 잘 알기에

힘들고 어렵게 

그 길을 벗어나기로 결정을 했었습니다.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이 결정되고

비록 젊은 시절 가고 싶었던 길과

똑같은  길은 아니지만

설사 그 길을 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같이 갔어야 할 또 다른 나만의 길

그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 그 순간

그 때는  얼마나 기쁘고 좋던지,

마치 하늘을 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었습니다.

 

4.

그로부터 어언 17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젊은 시절 가고 싶었던 길을 갔어도 될 것을

가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다른 길만 생각하는,

지금 생각하니 땅을 치며 후회할 수도 있는

그런 생각만 한 것을

뒤 늦게서야 알았지만 이미 늦은 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할 때라는 말도 있다지만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지금 시작하기엔 여건이 모두,

처음  원하지 않았던 길을

벗어날 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어

지금 그냥 이대로

아쉬운대로  그냥 이대로

건강하게 오래오래만 이대로

그리 지낼 수 있어도

참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5.

앞으로 남은 세월이 얼마이고

그 세월을 얼마나 건강하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저 바라건데,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약간의 아쉬움은 남아 있는 이 길

그러나 그토록 가고 싶었던

또 다른 나만의 길,

 

이 길을

잘 걸어가고 싶습니다.

 

마음에 쏙드는 한 폭의 그림,

가슴에 와 닿는  한 줄의 글,

그리고 나날이 새로이 알게 되는

자그마한 지식들,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하여 들이는

모든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움을 느끼는 나날들,

 

돈 한푼 되지도 않는 일이기에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닌 것 일수도 있는 일에

그토록 집착을 하고 매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참 별스러운 사람이라고

말 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들이는

나만의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

이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아

될수만  있다면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남들이 인정해주는

객관적인 자격을 갖추려고 가는 길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할 수 있고

그 가운데서 나만의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게 가고 있는  길이기에

젊은 시절 가고 싶었던 길보다

오히려 더 기쁜 마음으로

가고 있는 이 길.

 

이 길을 좀 더 오래오래 길게

그리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가고 싶었으나 못 간 길

뒤늦게나마라도  갈 수 있게 되어 너무너무 행복한 길, 

 이 길을 못가고 놓쳐야 했던 그 시간 만큼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라도

말이지요.^*^

 

 

2014.10. 8일 밤 8시~9시 / 9일 03시~04시

 

 

Augusta Mary Anne Holmes - Poeme Symphonique ''Pologne'' 을 들으며 쓰고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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