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 두 무덤
1.
걷기 운동하러 늘상 다니는 앞산 너머,
옛부터 자리잡고 있던 동네로 내려가는 산자락 양지 바른 곳에
아담하게도 생긴 무덤 두개가 새로 나란히 자리잡고 들어서 있다.
봉분외엔 상석 같은 장식물 하나도 없어,
무덤을 쓴 , 필경 자식일 후손의 삶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아 보이는 무덤.
그러나
한 눈에 보아도 기가 막히게 자리 좋은 곳
앞이 훤히 툭트여 바라다 보이고
하루 종일 따스한 햇볕이 비추이는 곳에
참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집을 짓고 들어 앉아도
너무 좋아 보일 그런 곳
이제 고단한 삶의 여정을 끝내고 휴식 중인
이름모를 어느 두 분이 자리잡고 계시다.
어떤 삶을 어떻게 얼마나 살았는지는
들려주는 아무 말이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는
당신들 자식들의 부모 생각하는 마음은
'눈으로 알아서 봐라'고 말없이 말하면서.
2.
누구일까 이리도 좋은 자리에 무덤을 쓴 사람은,
무덤의 주인은 필경 부모님일테고
이 동네에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살아 온
어느 집안의 후손일텐데.
동네, 옛적엔 그리 풍족한 삶을 살 수 없었을 듯 싶다.
지금이야 도시화 되어 현대식 공동, 단독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큰 땅을 가지고 있던 집안이라면 제법 큰 돈을 손에 쥐기도 했겠지만
예전엔 농경지였을 면적을 어림잡아 짐작해 보아도
동네 사람들의 전부의 삶이 그리 풍족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무덤을 쓴 주인은 풍족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필경 아닐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법 풍족스러워 보이는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집들이 아니라
무덤 바로 아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볼품없고 낡은 시골집 몇 채이다.
모르긴 몰라도 필경 이 낡은 어느 집에 사는 어느 누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이리도 좋은 자리에 무덤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3.
그랬을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 살림 탓에,
상급학교를 가기는 커녕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발 공장, 봉제공장, 노동판으로 내몰렸던
그런 힘든 삶을 살았을 사람들 중 누가
그래도 낳아 준 부모라고
살아서라도 잊지 않기 위해
저리도 좋은 자리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리잡아도 될 좋은 자리에
돌아가신 부모님 안식처를 만들어 드렸을 것이다.
4.
국민학교만 겨우 마치고 공사판을 떠돌며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 부양하고 동생들 뒷바라지하며
버겁게 살아온 삶이 너무 힘이 들었었던지
이제 제법 먹고 살만해졌다 싶은 60이 채 안 된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덜컥 세상을 떠버린
가까운 친척 아저씨,
낳아 준 것 외엔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는
나에겐 할아버지뻘인 아저씨의 아버지
그리고 길러만 준 계모를 위해
고향에 무덤 자리를 미리 마련해 모시고는
이제는 자신도 그 곳에 누워있는 그 아저씨가,
운동 길에 본 새로 생긴 무덤을 보면서
불현듯 생각이 난 건 아마도
자식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웠다고
다 효도하는 세태는 아닌, 오히려 그 반대인 세태를
요즘 새삼 듣고 보았기 때문일까?
내 삶이 고달프다는 핑계로 조문도 못 가보고
아직 산소에도 못 가봐 늘상 미안한 마음인데
돌아오는 연휴엔 꼭 한번 가봐야겠다.
이젠 가까운 친척이라곤 아무도 없어
내 삶의 마지막 고향길일 수도 있는 길이니
살아 생전 그토록 좋아했던
담배 한가치, 소주 한잔 무덤에 놓아 드리고
편히 잘 쉬시라고 이제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2014. 9.21 일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