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공(空)

Bawoo 2014. 11. 3. 09:26


공(空)

 

1.

평생을 좋아한 운동,

양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즐겨하는 운동 - 테니스,

그 테니스를 인연으로 알게 된

70중반의 퇴직 교장 출신

인생 대 선배.

 

그래도 다른 분야보다는 상대적으로

때를 덜 묻히고 살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여

교육계 출신 사람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분에게 적극적으로 접근,

 몇 번 만나 대화를 나누어보니

무척 소탈하고 겸손하다.

 

평생 남에게가르치는 일만 해 온 탓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일 없이 살아온 탓에

유난히 자만심이 강할 수도 있는 분야 교육계.

그래서 수양이 덜 된 사람은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며

다른 차고도 넘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그런 오만한 행동을 하기가 십상인 데

이 분 전혀 그렇지를 않고

소탈, 털털하다.

 

그게 마음이 들어,

가끔식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다 보니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

대화의 간극을 약간 느끼기는 했으나

어차피 남과의 만남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백프로 충족시킬 수는 없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필요한 부분만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에

지금까지도 만남을 잘 이어 오고 있다.

 

나나 내 인생 선배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젊은 시절을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더 많은 터라

이 분도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주경야독식 생활을 하며 노력하여

교육계의 꽃인 교장 생활까지 하면서 한 세상 잘 살아왔고

자식 농사도 잘 지어  다들 좋은 직장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하고

연금에 모아논 재산까지 있어 그야말로 남 부러울 것 하나도 없는 삶.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 명문 고등학교를 나온 덕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도 모두다 이 지역 유지들,

 

관심이 없는 탓이기는 했지만

거의 30여년을 이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거나

대단한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들이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테니스 시합을 한다기에

과연 어떤 이들일까 궁금하여

음료수를 사들고 가보기로 했다.

이 분에게는 사전에 미리 귀띔을 하지 않고.

 

2.

 

테니스장에는 70대 노인들

10여분 정도가 모여 공을 치고 있었다.

코트 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인원,

2면이면 차고도 넘칠텐데

4면짜리 코트라 너무 크고 넓어서 그런지

뭔가 휑하고 쓸쓸하다.

운동하는 분들 모두

한평생 내로라하는 삶을 살아왔을 분들인데

분위기가 너무 쓸쓸하고 황량하다.

 

인원이 너무 적다는  나의 말에

오늘은 반 정도만 나온 것이라고

날이 갈수록 참여율이 떨어진다고...

 

다들 대단하신 분들이라는데

 테니스를 특별히 잘 치는 분들도 눈에 안뜨이지만

무엇보다도 몸 움직임이 확연하게 느리다.

 

다들 70 중반의 나이,

내 할아버지 세대 때엔

장수하고 있다고 부러워 할 나이

평균 수명이 80이 넘은 시대여서 그런지

아직은 죽음을 눈 앞에 두고는 있어 보이지 않는 나이.

 

그렇지만 뭔가 쓸쓸하다.

내 눈에 들어 온 나보다는 10여년 정도 더 사신 이 분들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내 눈에 보이는 건 그냥 공(空)이다.

 

한 세상 열심히 잘 살아와

남 부럽지 않은 사회적 지위,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넉넉한 재산,

잘 키워놔 그 누구 앞에 내놔도 당당할 수 있는 자식들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이들인데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저 공(空)이다.

 

언제가 될지는 아직은 모르지만

길어봐야 10여년 이내

건강 관리를 잘 하면

그 보다는 더 오래 사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또 10여년 이내

결국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한 분 두 분 이 세상을 등지고 말겠구나'만 보인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원하는 곳 어디던지 갈 수 있는 재력이 있으나

하루 세끼 이상을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이 곳 저 곳 다니고 싶어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일

하루 세끼 먹는 것을 매일 걱정해야 하는

죽지못해 살 수밖에 없는

가난한 노인들보다야 천만번 나은 삶이지만

차이는

쓸 돈이 많고 적고, 있고 없고 뿐

다들 늙었고

그래서 이 세상을 등지고 떠날 날이

그리 머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똑 같다.

 

삶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나는 자리에

자식,손자,손녀,친지, 지인들 시끌벅적 붐비고

화려한 공원묘지, 선산에 상석 갖춘 무덤 만들어 놓고

당신들 추억하는 후손들 때 되면 찾아와

술 한잔 따라놓고 엎드려 절하겠지만

그것이 이미 죽은 이에게 다 무슨 소용,


역사를 이어 누구나 추모해주는

그런 삶을 산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이들에게나 의미있는 일이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들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저 살아있는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일일 뿐.

 

이미 죽어진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

 

설사 ,

'나 죽은 뒤에라도

내 자손들 그리고 나의 업적을 기리는 사람들이 분명히

내 무덤에 찾아와 한잔 술을 올리며 큰 절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꽃다발을 바치며

고개를  숙일꺼라는 걸 알고 떠난다 해도

그래서 나름대로 위안을 삼으며 떠난다해도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삶으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니

다 소용없는 일이다.

모두가 공(空)이다.

죽고 나면...

 

나도 이미 그 길에 들어서 있는데

그래도 아직은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았는데

그래서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싶은데

그래봤자 죽음을 향해 한발짝 두발짝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또 도저히 피할 수도 없으니

나보다 한참 젊은

그래서 아직은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지도 않고 있을 젊은이들에겐

나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그저 한 노인으로 보일테니

이도 또한

공(空)이다.

 

삶이란 주어진 한 세상

열심히 능력껏 살다가

때가 되면 아무 미련없이

다 내려놓고 가야 되는

그래서 떠날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그냥 공(空)이다.

터엉 빈....

 

 

2014.11.3 아침에 ....

 

* 참고 *

 

[Sunyata, 空]불교 철학 |

일상적인 어감에서 "모든 것은 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 온갖 경험적인 사물이나 사건이 공허하여 덧없음을 뜻하며,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는 모든 술어나 속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 입장에서 이 부정은 단순히 소극적인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술어나 속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절대적인 존재방식을 적극적으로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자로 공이라는 말이 이렇게 철학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은, 인도불교에서 사용되고 있던 '슌야'(śūnya)라는 말이 중국에서 공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난 뒤의 일이다.

 

 

 

 

 

'[斷想, 閑談] > <단상, 한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에게  (0) 2014.11.16
자화상  (0) 2014.11.09
'바램'(所望)  (0) 2014.10.31
그대에게  (0) 2014.10.23
  (0) 201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