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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 25시

Bawoo 2014. 11. 13. 22:09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기우(루마니아어: Constantin Virgil Gheorghiu, 1916년 9월 15일 ~ 1992년 6월 22일)은 루마니아작가다.

루마니아 북동부 네암츠 주의 러즈보이에니(Războieni)에서 출생하여 부쿠레슈티 대학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운 후, 루마니아 외무성 특파 문화 사절의 수행 등을 하는 한편, 창작에 주력하여 시집 〈눈 위의 낙서〉를 발표하여 루마니아 왕국상을 받았다. 1949년 전쟁 소설 〈25시〉를 발표하여(파리에서 간행)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 밖의 저서로 〈제2의 찬스〉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로 망명하였으며, 1974년  이후 다섯 번이나 우리나라를 다녀갔고 ‘한국찬가’(1984)라는 책도 썼다.

 

소설 <25시(La Vingt Cinguie me Heure)>

 

 25시 상(양장)

해설】

  루마니아의 작가 C.V.게오르규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1949년 발표. 미ㆍ소 양 진영의 틈바구니에 끼인 약소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묘사한 이 작품으로 작자는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국에도 소설과 영화로 소개되었다.

 

【줄거리】

  『선량한 농부 모리츠는 유대인으로 오인(誤認)되자 헝가리로 탈출했으나, '적성(敵性) 루마니아인'으로 체포되어 나치스의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진다. 그 곳에서 게르만 민족 연구가인 한 독일군 장교에 의해 그는 게르만 영웅족(英雄族)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후예로 인정되어 강제노동의 감시병이 되었으나 다시 연합군 지역으로 탈주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국 병사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어, 이를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 전쟁이 끝나 간신히 석방되어 처자를 만났으나 18시간 뒤에는 다시 감금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서유럽에 사는 동유럽인들이 갇히게 된 때문이었다.』


  『요한 모리쓰는 그토록 바라고 있던 미국행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미국으로 출발하기 바로 전날 밤, 사랑하는 수잔나와의 밀회를 완고한 그녀의 아버지에게 들켜 그녀가 집에서 쫓겨나게 된 때문이다. 그는 자기 때문에 갈 곳이 없어진 수잔나를 위해 그녀와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잔나의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누구 한 사람도 두 사람을 숨겨 주지 않았으나 사제(司祭) 부자(父子)의 도움을 받아 토지와 집도 얻었고, 아이도 생겨 두 사람은 밤낮으로 일을 하며 행복한 날을 보냈다.

   어느 날 수잔나가 일하고 있는데 헌병이 와서,

  “당신의 주인이 없어지면 나에게 문을 열겠나?”

  이렇게 말하며 여자의 하얗게 드러난 종아리나 허리께를 훑어보았다. 수잔나는 화를 내고 그를 쫓아 버렸다. 남편인 모리쓰에게 징집 명령이 온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교활한 헌병은 모리쓰가 없어지면 수잔나가 자기의 것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순수한 루마니아인 인 그를 유태인이라고 꾸며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 보냈던 것이다.

   이것이 모리쓰를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뜨리는 발단이 되었다. 유태인이 아니라고 수없이 외친 그의 항변도 소용없이 그는 매일 참호를 파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는 석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구덩이를 계속 팠다. 그렇게 반 년이 지난 어느 날 수잔나가 이혼 신청을 해 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에 서명한다.

   혹독한 작업은 계속되고 유태인들은 파리 목숨과도 같이 쓰러져 갔다. 그는 유태인 의사에게 유인되어 유태인에 대한 억압이 없는 헝가리로 탈출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모리쓰만은 루마니아인 이라는 이유로 체포되고, 적국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투옥된다. 그리고 매일같이 심한 고문을 당한다. 그는 잔학한 고문에 실신하고, 자살까지 하려고 생각했다. 4주간의 고생 끝에 그는 다시 헝가리의 적국인 수용소에 보내지고 그곳에서도 역시 참호를 파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헝가리 정부의 손에 의해서 헝가리 노무자로서 독일에 팔려 간다.

   독일에 끌려가서는 단추 공장에서 기계와 같이 혹사당했다. 지독하게 단조로운 일을 기계가 원하는 대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될 노예였다. 그는 전혀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캠프에 인류학을 연구하고 있는 독일 국방군 사령부의 대령이 있었는데 모리쓰를 영웅족이라 칭해지는 우수한 일 종족이라 생각하여 그를 귀중한 표본으로 보호하도록 명령한다. 모리쓰는 군인이 되었으며 병이 들자 힐더라는 여자와 강제 결혼을 당했으며 이윽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그리고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캠프의 프랑스인 포로가 “연합군의 승리가 가까워져 프랑스가 이긴다.”고 모리쓰에게 말하고는 프랑스를 도우면 처와 자식이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프랑스인을 도와 탈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무사히 URA(국제 연합 구제 협회)에서 보호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모리쓰는 적국 루마니아인이라는 것이 탄로되어 올드루프의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다.

  “내가 왜 붙잡혀 무엇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받은 것 같은 괴로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를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농부는 기다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봄이나 겨울에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아무런 나쁜 일도 하지 않은 이상 누구도 나를 가두어 놓고, 나를 괴롭힐 권리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일생의 소망은 극히 작은 것이었습니다. 다만 일할 수 있는 것, 처자식과 함께 비와 이슬을 가리고, 먹기에 족할 만큼의 음식을 손에 넣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내가 잡힌 이유는 이런 것이겠습니까?”

  모리쓰는 탄원서에 이와 같은 애절한 호소를 했으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내인 힐더의 모친으로부터 독일이 패하여 모리쓰와 힐더의 집은 불타고 아이를 안은 힐더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편지가 왔다. 그리고 15번째의 수용소에서 그는 고향의 신부님을 만났다. 그 신부님의 이야기로는 수잔나가 그 헌병으로부터 집을 몰수하겠다는 협박을 받아 하는 수 없이 이혼 신청서에 서명하였다는 것이다.

  “수잔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힐더와 결혼했다. 이 죄를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라고 모리쓰가 말하자,

  “이 죄는 대단히 중대하다. 그렇지만 너에게도 수잔나에게도 죄는 없다. 오직 국가와 법률이 그 책임자다. 신은 국가를 용서치는 않을 것이다.”

라고 신부님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모리쓰는 드디어 캠프를 나왔다. 그는 13년간 고국을 떠나 있었다. 백 개가 넘는 캠프를 전전한 후, 겨우 처자를 만났으나 그곳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아이 하나가 더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옛날과 같이 아내의 몸을 끌어안고 숨이 막힐 정도로 키스했다. 두 사람의 젊은 연인과 같은 풍성한 포옹이 끝난 후, 13년 동안에 일어났던 모든 고통이 홀연히 사라져 갔다. 수잔나는 역시 모리쓰의 태양이었다.

  그러나 모리쓰의 자유는 불과 18시간밖에 없었다. 동유럽의 모든 외국인은 수용소에 감금한다는 명령이 내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도망할 용기도 없었다. 그는 가족을 돕기 위해 미군의 외인 의용병으로서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면 가족이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늙었으며, 아이는 너무 어려 의용병의 자격이 없었다.

  “1938년에 나는 루마니아인으로서 유태인 캠프에 있었습니다. 1940년에는 헝가리인으로 루마니아인 캠프에 1941년에는 독일인으로서 헝가리인 캠프에, 1945년에는 미국인 캠프에 있었습니다.”

  그는 외인 의용병의 징모 사무소에 호소하면서 그가 보아온 수백 킬로의 철조망이 칭칭 몸에 감겨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에 서 있는 아내와 막내아들을 보니 우울과 절망으로 왈칵 울고 싶었다.

  징집소장은 의용병의 신청이 왔으므로 기분이 좋아 모리쓰의 사진을 찍어 신문에 낼 생각으로 그에게 “웃어라.”고 명했다. 웃으라고 해도 그는 웃을 수가 없었다. 다시 죽음의 전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웃어!” 중위는 재차 명령하였다.

  “웃어요! 웃어!”』

 

【감상】

  게오르규(Cheorghiu, Constantin Virgil.1916∼1992.6.22)는 철위(鐵衛)단의 일원이었던 보수주의자이다. 그는 반커뮤니즘의 입장에 서서, 당시는 공산주의인 조국을 떠나 파리의 교외에서 문필 생활을 하면서 1950년에는 루마니아 왕국의 시인상을 받은 바 있으며 여기에 소개된 그의 대표작인 <25시>란 최후의 시간, 즉 24시 뒤에 오는 시간으로 결국 새로운 날의 첫 발이 시작되는 오전 한 시가 오지 않고 영원히 밤이 밝지 않는 암흑이 계속되고,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는 절망의 시간이라는 의미로서 현재라는 의미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은 1949년이며, 그 당시의 세계는 철의 장막을 경계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매일 냉전의 위협이 증대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의 잔혹함을 겪은 작은 나라에서는 과거에 맛본 슬픔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공포에 떨었다.

  이러한 비극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이 이 <25시>로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25시’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이제는 일반적으로 불안, 절망, 허무 등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출처 :김영관의 국어방 원문보기   글쓴이 : 김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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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25시' (The 25th Hour)

Last Scene Of The 25th Hour - Main Theme....인간 세상을 벗어난 시간 '25시'....프랑스 앙리 베르누이 감독,1967

 

앤터니 퀸(Anthony Quinn) , 비르나 리지 주연.... 무고한 시골농부가 유태인으로, 때로는 첩자로 몰리면서 나치전범으로 법정에 서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렸다....여기서 유래된 '25시' 는 24시간을 넘은  이미 인간 세계의 시간이 아닌 세계의 시간이며 구원자인 메시아(Messiah)가 재림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절망의 시간이자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화된 시간으로 해석되고있다....루마니아 출신  C. 버질 게오르규의 베스트셀러 소설로 널리 알려진 작품...

 

루마니아의 산골 폰타나의 농부 요한(Johann Moritz: 안소니 퀸 분)은 아내 스잔나(Suzanna Moritz: 비르나 리지 분)의 미모를 탐낸 경찰서장 도브레스코(Dobresco: 그레고리 아슬런 분)의 계략으로, 유태인이라고 상부에 거짓 보고되어 강제 노동에 보내진다. 스잔나는 서장의 꼬임에 넘어가 남편과의 이혼서에 강제 서명을 한다.수용소를 탈출한 요한은, 스파이 혐의로 검거되어 독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 친위대 대령에게 아리안족의 순혈통을 가진 영웅의 일원으로 인정받아, 수용소장에 임명된다. 1944년 4월, 소련이 루마니아를 침공했을 때, 요한은 미국포로가 되어 전범자로서 뉘른베르크의 재판을 받게 된다. 이때 변호인은, 재판정에서 아내 스잔나가 요한에게 보내는 8년 동안의 기록을 법정에서 낭독한다. 석방된 요한은 아내와, 그리고 소련군의 능욕에 의해 태어난 아이를 포함한 세 자식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한다.....*naver영화

 

[출처] 영화 '25시' (The 25th Hour) Main Theme - 테렌스 블랜차드 |작성자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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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 속으로^^>

이 작품은 소설, 영화로 다 봤는데 소설책 구입은 역시 71년도에 청계처6가 헌책방에서 했습니다.

읽은 시기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도 74년 9월 제대후가 아닌 가 싶습니다. 읽었을 때의

소감은 '일개인의 삶이 공권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망가지는 모습'에서 받은 엄청난 충격"으로

요약되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강간에 의해 낳은 자식을 포함하여 아내와 함께 가족 사진을 찍을

때의 '안소니 퀸'의 얼굴 표정-이 압권입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