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2.과연 잘 하고 있는걸 까?

Bawoo 2013. 2. 21. 11:47

오늘 오후, 전에 살던 아파트 테니스 모임에서 운동하러 올테냐는 연락이 왔다. 몸에 무리가 가는 걸 느낀 작년 봄 부터 테니스를 확 줄인데다 어제 모처럼 테니스를 친 까닭에  원래 이번 주는  테니스 칠 계획이 없었다.그런데도 공을 치러 가기로 결정하고 실천에 옮긴 것은  도저히 상종 못 할 인간이라고 단정지은 경우이거나 어쩔 수 없는 미리 정해진 약속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청을 절대 거절 못하는 내 유별난(?) 성격 탓 일 게다.

 

몇 달 만에 찾은 테니스 장엔 모두 다 낯익은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40이 다 된 나이에 만나 결혼한 지금의 아내와 인천 지역에 거주지를 정하기로 하고  처음 둥지를 틀고 10여 년이 넘는 기간을 살았던  이 아파트 단지는 내게 유독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 난 하나 뿐인 늦동이 외아들은 어느덧 스물 다섯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을 했고 나와 아내 그리고 지인들은 다들 노년을 을 바라 보는 나이들이 되어 버렸다. 내가 하고 싶어하던 지금의 생활을 하겠다고 괜찮은 직장이라는 평을 듣는 은행 생활을 또래들 보다 일찍 접은 것도 이 곳에서이고, 지금은 다른 세상에 가 있는 태어나서 처음 온 마음을 다 해 좋아 했던 동갑내기 친구를 만난  곳도 이곳이다.

 

친구는 가끔 술자리를 할 때 마다 꼭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자기 떠나고 난 뒤에 홀로 남을 아내를 걱정하는 얘기를 했었고 나는 "앞으로도 살 날이 창창한데 재수없게 죽는 얘기를 하느냐"고  타박을 하곤 했었다.

 그런 친구의 돌연스러운 사고사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의 충격은  많지 않은 재산을 관리 실수로 잃고 개인적으로 힘든 나날이었던 때였음에도  너무나 엄청나서 내 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정도였었다. 꼬박 이틀을 장례식장에서 보내고 장지까지 가서 마지막 작별을 하고 난 뒤에도 5년여의 세월은 시도 때도 없이 무덤에 찾아가고 그랬던 기억이 불과 엊그제 일 같이 또렷이 생각난다. 그리고  "이젠 그만 떠나 보내자"마음 먹고 무심하게 보내기로 한 게 불과 2~3년 전 부터 인 것 같다.

 

낯 익은 얼굴들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게 되는 건 아무래도 이제는 멀리 가버리고  없는  친구의 미망인이다. 젊은 시절 한 미모했을 그녀는 내일 모레 60을 바라 보는 나이임에도 아직 젊은 시절의 모습을 많이 연상케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친구가 살아 있을 때는 스스럼없이 웃고 장난치며 지내던 사이였지만 친구를 보내고 난 뒤 몇 년은 말을 건네기는 커녕그 얼굴을 마주하는 자체가 너무 힘들었었던 때도 있었다.

 

그녀 옆에서 파트너가 되어 같이 운동하는 작년이 환갑이었던 팔등신 김여사도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코트를 누비고 있다. 상대편 코트엔 젊은 시절 부부가 참 멋있는 커플이었을 거라고 절로 연상될 정도로 잘 생긴 나하고 동갑내기인 그녀의 남편 모습도 보인다. 몇 년 전 큰 수술을 한 데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얼굴에 담고는 있지만 40초반 처음 봤을 때는 참 조각같이 잘  생긴 얼굴이라고 감탄을 하곤 했었다.

 

라커룸에 들어서니 나를 초대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나하고 같은 터울이라고만 알고 있는 이 친구는 모 유명 전력회사 출신인 데 키가 180이 넘는 거한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 얼마전에 이사를 온 친구여서 교유할 기회가가 없다가 최근에야 교유하게 됐는데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뭐랄까 동심을 갖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는 친구다.

 

이 친구와 테니스에 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게시판에 그림이 보이는 팜프렛 같은 게 눈에 들어 온다.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나도 잘 알고 있는 수채화를 그리는 여성 회원의 개인전을 알리는 팜프렛이었다. 그러고 보니 테이블 위에 도록도 한 권 놓여 있었다. 도록을 펼쳐 보니 소품들 이기는 하지만 꽤 잘 그렸다는느낌이 드는 그림들이 여러 점  눈에 들어 온다. 거기에다 초대전 형식이었다. 

 

이 여성회원 내가 알기론 나보다 늦게 그림 공부를 시작했는 데 벌써 초대전을 여는 중견 작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기사 테니스를 칠 때의 모습을 떠 올리면 전혀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다. 수준급의 실력을 보유한 남자 동호인들 한테 절대 안 밀릴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그 노력도 상당했을 터 인데 거기다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승부 근성까지 이 여성 회원은 가지고 있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테니스를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로 생각하고 승패에는 별 신경을 안쓰는 성격이었던 나는 그녀와의 시합에서 거의 백전백패였는데 그날 정기 월례대회에서만은  뜻밖에 5대0으로 우리편이 앞서고 있었다. 그때 페이스 그대로면  틀림없이 6대0으로 끝날 게임이었는데 대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 선수에게 제로 게임으로 이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나의 속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져 게임을 좀 느슨하게 풀기 시작하자 그녀의 예의 승부 근성에  슬슬 따라 잡히가 시작한 게임은 급기야는 7대5로 뒤집혀 오히려 우리 팀이 지고마는 이변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때 내가 느낀 황당함이란 .

아무튼 그때 부터 "테니스는 끝나봐야 알고 고스톱은 자리 털고 일어 날 때 봐야 된다"는 웃지 못 할 얘기가 생겼다나 뭐라나, 참!

 

각설, 이런 그녀의 집념 강한 성격을 잘 아는 나인지라 나보다 그림 공부를 늦게 시작한 그녀가 벌써 중견 화가로서의 위치에 자리잡은 것은 전혀 놀랍지를 않다. 그렇지만 그림 입문 15년차인 지금도 무명으로 남아 있는 나로선 상대적으로 "나는 뭐하고 있는가?"라는 자책성 반문을 해보면서도 나 나름대로의 변명을 굳이 늘어 놓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학문과 예술의 길은 자기와의 싸움이다"라는 내 나름대로의 학문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가짐에 대한 정의가 현실에서는 너무도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환멸을 느낀 것이 그 첫째 이유다.

 

15년전 퇴직 처리도 안 된 상태에서 모 화실로 매일 나가며 그림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당시 5명 정도의 여성 그룹이 일주일에 두번 정도 나와 지도를 받으며 공모전 작품을 하고 있었는 데 놀랍게도 지도 선생이 그림을 직접 손을 대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공모전 응모 작품이 순수한 응모자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그랗게 7번-7년-을 입선을 하면 추천작가인지 초대작가인지 암튼 객관적인 타이틀이 붙는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 지도 선생은 나에게도 공모전 준비를 하면 어떠냐는 의사 타진을 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었다.

내 실력으로 내가 그린 그림을 공모전에 출품하여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그야 뭐 나쁘달 것 없겠으나 당시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내 실력을 내가 뻔히 아는 데 공모전에 응모한다는 게 말이 될 법이나 한 일이냐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내가 만족 못하는 그림을 남에게 인정 받아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게  평소의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혼자 공부하기로 작심을 하고 1년여 만에 화실을 그만 둔 뒤 몇 년 있다가 우연히 만난 화실 선생은 내가 알 던 모든 문하생들이 지금은  초대작가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경력을 만들어 가면서 그림 실력을 늘리면 되지 않았었느냐?"는 말에" 아차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하고 잠시 후회(?)한 적이 있기는 했었다.

 

객관적인 타이틀-요즘 말하는 소위 스펙이라는 건 그 사람을 가장 빨리 알기 위한 가장 좋은 척도인 건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그러나 자기와의 싸움이 먼저인 창작이라는 고된 작업은 그 결과물이 "아! 이젠 되었다"라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 먼저이지 그림 한 점 몇개월에 걸쳐 그려 공모전에 입선했다고 "나 이젠 무슨무슨 입선 작가야"가 하며 으스댈 일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이런 나도 몇년전에 모 공모전에 한번 응모해서 입선을 해 본 적이 있다.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하면서 나름 이 정도면 하는 자신감이 있어 응모는 했지만 내심 불안하기는 했었다.

 

만약에 낙선을 할 경우에 원인을 나의 실력 부족으로 돌려야 하는 지 세간에 알려진 미술 공모전에 만연된 부정의 탓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은 내 작품이 입선을 하여 이 공모전만은 부정이 없나 보다 생각했지만 나중에  "입선은 몰라도 특선 이상은 어렵다"는 말을 듣게 되어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공모전을 생각한다. 다만 스펙 쌓기가 아닌 부정의 소지가 전혀 끼어들 수 없는 명실상부한 대상 받을 수 있는 명작이 나올 때를  학수고대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나의 실력으로 볼  때 이런 희망은 꿈으로 끝날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고 그 좋다는 직장도 조기에 그만두고 그림 공부를 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의 마음 가짐이 나를 만족 시키지 못하는 작품으로 허명을 쫒아 내 이름을 남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기에 아무런 후회도 없다. 단지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이, 의욕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이 그리고 재능의 부족함만이 너무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2013.2..22 내가 아는 모 여성작가의 개인전소식을 접하고 느낀 소회를 적어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