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이제는 어깨 위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

Bawoo 2013. 3. 10. 10:30

며칠전 모 대학 교수로 있는 동기로 부터 저녁 시간에 연락이 왔다.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 동기 중 유독 자주 만나는 편이긴 하지만 만난지 며칠 되지 않은 터라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소개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거 였다. 마침 모처럼 테니스를 치고 같이 운동한 사람들 하고 식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다 약속 장소가 근처여서 만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잘 됐다 싶었고 약속 장소로 나갔었다.

 

동기와 같이 나타난 사람들은 예상했던 대로 전부터 수도 없이 얘기를 들어 온 동기의 고교 동창인 홍대 출신 조각가와 우리와 같은 대학 생물학과 출신 5년 선배인, 지금은 숲 관리사를 하고 있다는 분이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편인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동기도 이 두 사람 만큼은 꼭 소개를 하고 싶어 했었기 때문에 응당 두사람일 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첫 대면이 영 내가 기대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도대체 분위기가 "대학 선후배 사이,같이 예술을 하는 사이인 사람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그런 화기애애한 것이 아닌 뭔가 축 가라앉아 있는 영 재미없는 만남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였다.

 

"이유가 뭘까?"하고 곰곰히 생각해 봤는 데 내 또래인 조각하는 친구야  대부분의 전업 예술가가 그렇듯이 작품 판로가 여의치 않아 생활고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동기로 부터 들어왔던 터라 "내가 안정적안 작장이였던 은행 다녔다는 것을 부러워 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대학 선배는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공무원 신분으로 사회 생활 잘 하고 70이 다 된 나이인 지금도 숲 해설사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 데 "도대체 왜 한참 후배인 내 앞에서..." 하도 답답해 "선배님!제가 한참 후배인데 편하게 말 놓으셔야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자꾸 이러시면 제가 자리가 가시방석입니다."해 봤지만 막무가내로 존대하고 그래야 되는 거라고 그러니 "내 원 참!"

 

그래도 밤12시가 다 되어서야 헤어지고 동기와 따로 택시를 타고 오면서 "저 선배 도대체 왜 그러시냐?"라고 물었더니 "글쎄,나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나도 좀 민망하다야.자네한테 미안하고.."라고 대답.참내!

 

집에 돌아와 이유를 곰곰 생각해 봤다.

 

결론은 "그 선배 "자기의 삶에서 뭔가 만족 못하고  산 부분이 있어 그 부분을 통해 나를 본 것이 아닐까?"였다.나름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했다고 들었는 데 내가 은행 생활을 하기 싫었으면서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녔던 것 처럼 그 선배도 다른 꿈이 있었는 데 생활 때문에 마지못해 다녔던 건 아닐까?혹 은행에 다니고 싶었는 데 전공이 전혀 달라 본인은 엄두도 못 냈었었는 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대학 후배라는 친구가 은행을, 더구나 상경계도 아닌 문과 출신이면서  다녔다니 대단했다는 생각에 그런 것 일까? 오만 잡 생각에 잠을 설쳤다.

 

해답의 열쇠는 그 선배가 쥐고 있으니 나로서야 짐작만 할 뿐이지만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이 선배 "자기가 살아 온 삶을 너무  과소 평가하는 실수를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게 되는  우리 나이-제 기준은 60 이후 입니다^^-가 되면 설사 지난 날의 삶에 아쉬움이 있더라도 훌훌 털어 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되돌아 봐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활에 문제가 없다면 "사회 생활을 은퇴한 지금 나이에 뭐 아쉬울 것, 부러울 것이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이다.만약 있다면 있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왜냐하면 살 날이 많이 남은 젊은 시절에야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시도해보고 또 당연이 그래야 되지만 이미 사회에서 은퇴한 살 날이 더 적은 나이에는 시도한 다는 자체가 사회에서 수용이 안되는 법이니 한발 물러서서  유유자적 세상을 관조하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대후 한창 사회진출 준비를 하던 20중반 시절에 읽은 영어 공부용 영한대역 책 중에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원제가 the conqest of happiness로 기억합니다.영어 써 본지가 오래되서 스펠링이 헷갈리네요^^-이란 책이 있었다.내용은 다 잊어 먹었지만 요것 "이길 수 없으면 피하라.즉 체념하라"하나만은 지금도 똑똑이 기억이 난다.이솝 우화중의 "sour grape-여우가 나무가 너무 높아 열매를 따먹을 수가 없자 "저 포도는 셔서 맛이 없을꺼야"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인 데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 중의 하나에 "체념"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져 '옳타꾸나.바로 이거야."하며 많이 좋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무런 걱정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여유롭게 캠퍼스를 오가는 것으로 보이는 내 주위 학생들을 보며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기 위해  나름 터득한 방법이기도 했다.

"뭐,현실적으로 내가 해결해 낼 수 있는 아무 것도 없는 데 그들을 부러워 하며 속상해 봐야 상처입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세상을 살다 보면 객관적으로 볼 때  나보다 우월한 삶을 살고 있는 인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은 100% 거짓이다.실제 인간의 삶은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네 삶은 태어 날 때 이미 어느 정도 승부가 나 있다.좋은 부모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서 이미 승패가 한참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이런 본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차이를  받아 들이고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았다면 난 그것으로 됐다고 본다.노력했는 데 사회에서 받아 들이는 시스템이 안돼 있다고? 그건 한 나라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의 할 일 이라고 본다.그중에도 특히 최고의 자리에 있는 지도자가 중요하다.우리나라는 다행이  그런 지도자가 있었고 덕분에 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선배가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 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 보다는 평탄한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생각한다.또 좋은 학벌에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했으니 적어도 내 생각엔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고 그래서 남들 앞에서 항상 당당할 것이라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니 60이 넘어 처음 만난 사이지만 그래도 몇년 후배인 나에게 "오!후배님 만나서 반가워요"하면서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하대로 대화를 풀어 나가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모양이 좋지 않았을까?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했을 테고...

 

최근 직장 생활 20년을 되돌아 보면서 후회스러운  점이 있는 데 무엇인가 하면 "인간 관계에 최선을 다 하지 못했다는 거" 였다.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표를 낼 것도 아니면서 하루하루를 마지못해 다니는 식으로 생활하다 보니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상사,선배들이 많았음에도 오히려 그들을 멀리 하는 실수를 저질렀었다. 결과는 나의 직장 생활에 마이너스로 작용했고...

 

작년에는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 "대학 교수"의 길을 모교에서 걷고 있는 동기를 연구실에 가서 만났던 적이 있었다.

이 동기 여러 우여 곡절이 많았지만 모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내 기준으론 동기들 중 "최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러워 했었는 데 막상 연구실을 가보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동기한테 실망한 것이 아니라 근무 환경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 연구실이라고 배정해 준게 들어가니 숨이 콱 막힐 정도로 비좁아 정말 오랜만에 만난 동기에게 "이렇게 비좁은 데서 어떻게 지내냐?"는 말 부터 꺼낼 정도였으니...

그때  같이 간 교수인 동기와 모교에 있는 동기가 똑같이 나에게 하는 말이 "오히려 모 국립대학보다 낫다"였는데  내가 꿈꾸었던 교수란 직업이 갖고 있는 "현실적 여건은 이렇구나"하는 실망감에 교수란 직업에 대한  환상이 확 깨고 만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내가 마음속으로 꿈꾸었던 현실과 실제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60이 넘어 중반이 된 지금에 와서야 깨닫고 있으니 나도 꽤나 어리석은  편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꿈은 꿈일 때 아름답고 그 꿈이 현실로 닥아 왔을 때는 오히려 실망감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깨달음으로  "젊은 시절 내가 도전도 못해 보고 마음 아프게 지켜 보고 흘려 보내야 했던 많은 것들이 그래서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까지도 들게 한다.

만약에   당시 내가 원하고 꿈꾸었던 그런 모든 것 들에 대해 모두 도전이 가능한 여건이어서 도전했을 경우 꼭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금와서 생각하니 "결코 아니었을 꺼"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걸 보면 내가 세상을 너무 환상속에서만 생각하던  사춘기 시절 소년의 마음에서 많이 벗어난 듯 싶기도 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보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은 남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자기 자신만의  문제를 따로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지키면서 필요에 따라 상대방을  바라보는 마음 가짐"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보다 훨씬 여건이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하나,둘인가?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할  일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그들은 그들대로 뭔가 아쉽고 부족한 것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그들이 갖지 못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 그들이 나를 적어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으면 되는 것 아닐까?

사회 생활을 해보니 높은 학력,좋은 학벌이 성공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좋은 스펙을 갖춘 경우, 가능성이 좀 더 많이 열려 있다는 정도였지 그것만으로 성공적인 사회 생활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을 내가 다닌 직장에서 직접 많이 목격했었다.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학력,학식은 높지 않으나 업무 능력,친화력등을 선배 상사로 부터 인정받아 임원급이 되는 직장 후배들을 여러명 봐 왔다.

 

20대 힘든 시절 철학가 볼테르의 "깡디드"라는 철학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내용이 어려워 다 소화도 못 시켰었지만 이 귀절 하나만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현재 존재하는 것이 최선이다.내일은 내일을 위한 밭은 갈자"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 데 당시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이 당시 내가 처한 당장 개선이 불가능한 환경을 최선으로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을 역사 속의 유명한 인물의 이야기로 합리화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서 만든 좌우명 "내가 가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했으면 됐다.나머지는 내 몫이 아니다.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어디 한두가진가?결코 부러워하지도,시샘하지도 말고 항상 당당하게 살자"였다.

 

젊은 시절부터 이 좌우명을 기준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별 것도 아닌 것이"라는 눈총을 받아 본 적은 없다.내가 다닌 직장이 명문 학벌 출신이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큰 것에서 인정을 받았던 것 같고 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직 다 못보여 주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생활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지나쳐 조직의 인화를 깨뜨리는 실수도 많이 저질렀지만 남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온  내 삶의 방식이  옳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자신감 이것은 결코 남과 우열을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실력과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이다.이러한 삶을 살았는데도 남을 대할 때 위축이 된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처신이라고 생각된다.특히나 이제 삶을 여유롭게 관조하면서 살아갈 나이에 이르렀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지난 년말  고교 동창 모임에서 "모 동창이 사업에 성공하여 백억대 재산을 모았다"는 얘기를 듣고  한 녀석이 한 말이  "뭐 내 밥 내가 벌어 먹고 사는 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였다.

 

이 친구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 요순 시대인 줄 아는 감? 하기사 우리는 전쟁의 참화를 아직은 안 겪고 살고 있는 세대이니 그런 소리도 할 수 있겠지.^^

 

"열심히 노력하여 내 밥 내가 벌어 먹고 살 수 있으면 지금이 태평성대여.자꾸 남하고 비교하고 그러지들 말고 자신의 삶에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살~어."

 

태평성대 요순시대에 순행하던 임금에게 대차게 말한 늙은 농부가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헐~^^

 

 

            2013.3.15  나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살아 왔을 학교 선배를 만나 보면서 느낀 소회를 적어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