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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리 [Nikolay (Vasilyevich) Gogol]

Bawoo 2014. 12. 9. 22:24

고골리 [Nikolay (Vasilyevich) Gogol]

 

1809. 3. 31(구력 3. 19)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타바 근처 소로친치~ 1852. 3. 4(구력 2. 21) 모스크바.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소설가·유머작가·극작가.

개요

장편 〈죽은 혼 Myortvye dushi〉과 단편〈외투 Shinel〉로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전통의 토대를

이루었다.

초기생애와 작품

고골리는 다채로운 농민생활과 카자흐 전통, 풍부한 민속문화가 전래되어오던 우크라이나의 시골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 네진의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이때부터 이미 풍자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시와 산문을 써서 잡지에 보내기도 하고 학교 연극에서 우스꽝스러운 노인이나 여자 역을 훌륭히 연기하기도 했다. 1828년 관리가 되려는 꿈을 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으나 돈과 연줄 없이는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되었다.

 

배우가 되려고도 했으나 채용심사에서 떨어졌다. 이처럼 궁지에 몰리자 이번에는 시인으로 이름을 빛내겠다는 야망으로 고등학교시절에 썼던 평범한 감상적 전원시를 자신의 비용으로 출판했다. 그러나 그 또한 실패하자 시집을 모두 사서 태워버린 뒤 미국으로 건너가려고 생각했다. 그는 농장을 저당잡혀서 어머니가 보낸 돈을 갖고 독일의 항구 뤼베크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나 미국에 가지는 못하고 독일을 여행했을 뿐이었고 곧 돈이 떨어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거기서 형편없는 봉급을 받고 관리로 일하다가 3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에서 보낸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도피삼아 가끔씩 글을 써서 신문과 잡지에 보냈다. 기억 속의 화창한 전원풍경과 농부들, 떠들썩한 마을 아이들, 우크라이나 민속에 등장하는 도깨비와 마녀들 및 환상적이고 마력을 지닌 정령(精靈)들을 다룬 이야기를 썼다. 지난날의 낭만적 이야기가 현재 벌어지는 실제 사건들과 한데 어우러지고, 장난스럽고 때로는 악마적인 고골리의 기질이 나타나 있는 8편의 이야기는 1831~32년에 〈디칸카 근교 야화(夜話) Vechera na khutore bliz Dikanki〉라는 제목의 2권짜리 단편집으로 나왔다. 간간이 구어체를 섞어 쓴 생생한 이야기는 러시아 문학에 신선함과 새로움을 더해주었다. 우크라이나 토속어에서 배어나는 풍부한 민속적 정취는 저자의 변덕스러운 억양변화와 더불어 러시아 문단을 사로잡았다.

원숙기 활동

고골리는 젊은 작가로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이미 만났던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과 바실리 주코프스키에게 찬사를 받기 시작했고, 이어 작가 세르게이 악사코프와 비평가 비사리온 벨린스키에게도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1년 남짓한 관리생활을 마감하고 여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834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의 중세사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자신이 그 직위에 알맞지 않다고 판단, 1년 뒤 그만두었다. 한편 열심히 다음 작품을 준비하여 1835년에는 〈미르고로트 Mirgorod〉·〈아라베스키 Arabeski〉를 출판했다.

 

〈미르고로트〉에 실린 이야기 4편은 〈디칸카 근교 야화〉의 후편으로 썼으나 거기에서 드러난 낭만적 도피주의는 고골리의 인생관과 큰 대조를 이룬다. 카자흐의 과거를 그린 훌륭한 작품 〈타라스 불바 Taras Bulba〉는 현재로부터의 도피를 뚜렷이 나타내는 반면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싸운 이야기 Povest o tom, kak possorilsya Ivan Ivanovich s Ivanom Nikiforovichem〉는 풍부한 유머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비천함과 보잘것 없음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가득 차 있다. 〈옛 세계의 지주들 Starosvetskiye pomeshchiki〉처럼 목가적인 모티프의 작품에서도 먹을 것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으로 결국 서로 미워하게 되는 노부부에 대한 풍자 때문에 목가성은 희미해진다.

 

세상에 적응할 수도, 도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속됨과 악을 들추어내려고 더욱 애쓰게 된 한 낭만주의자의 공격적인 사실주의는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와 수필 몇 편이 함께 실린 2번째 작품 〈아라베스키〉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전체에 걸쳐 두드러진다. 여기에 실린 〈광인일기 Zapiski sumasshedshego〉에서는 철저하게 좌절한 나머지 과대망상 속에서 좌절을 보상받으려 애쓰다가 마침내 정신병원에 보내지는 한 관리를 주인공으로 제시하고 있다. 〈네프스키 거리 Nevsky prospekt〉에는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몽상가와 모험을 좋아하는 속물이 대조를 이루며, 개정판 〈초상화 Portret〉의 끝부분에서는 이 세상에서 악은 제거될 수 없다는 작가의 신념이 강조되어 있다.

 

1836년 고골리는 푸슈킨이 주간하는 문학잡지 〈소브레멘니크 Sovreemennik〉에 해학이 넘치는 풍자적인 단편 〈사륜마차 Kolyaska〉를 실었다. 흥미진진하면서 신랄한 초현실적 단편인 〈코 Nos〉도 이 잡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그와 푸슈킨은 매우 소중한 친교를 유지하여 고골리는 항상 푸슈킨의 심미안과 비평을 신뢰했고 그에게서 러시아 문학과 자신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작품 〈검찰관 Revizor〉·〈죽은 혼〉의 테마를 얻었다.

 

위대한 희극 〈검찰관〉은 니콜라이 1세 때의 부패한 관료제도를 무자비하게 풍자하고 있다. 어느 지방도시의 관리들이 잘 차려입은 건달을 암행검찰관으로 잘못 알고 심한 행정폐해를 감추기 위해 뇌물과 연회를 베풀어 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 애쓴다. 가짜 검찰관이 떠나고 성공했다고 좋아하는 사이에 그들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진짜 검찰관의 도착소식이 알려진다. 이처럼 고발성을 띤, 이른바 '눈물을 통한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은 황제의 특별명령으로 1836년 4월 19일 초연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보수적인 언론과 관리들에게 크게 비난받았고 고골리는 로마로 피신, 1842년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이탈리아는 어느 정도 가부장적인 엄격한 기질과 성향을 가진 그에게 매우 매력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곧 로마에서 작업하고 있던 종교화가 알렉산드르 이바노프와 친해졌다. 여행중인 러시아 귀족들도 만났으며 가톨릭으로 개종한 망명귀족 지나이다 볼콘스키와도 자주 만나 그녀의 모임에서 종교적 주제로 많은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의 최대 걸작 〈죽은 혼〉도 이곳에서 썼다.

 

작가가 '서사시'라고 부르는 이 소설은 봉건 러시아의 농노제와 관료적 부패를 반영하고 있다. 주인공 치치코프는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은 뒤 벼락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세련된 사기꾼이다. 그는 여러 지주들에게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자 명부에 등록되지 않은 채 살아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농노(러시아어로는 '영혼'을 뜻하기도 함)들을 사들일 영악한 계획을 세운다. 지주들은 다음 인구조사 때까지 죽은 농노 몫으로 부담해야 할 재산세가 줄어들게 되어 매우 좋아한다. 치치코프는 죽은 '영혼'들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마련한 뒤 먼 곳으로 가서 존중받는 귀족으로 살 작정이었다. 그가 처음 들른 지방 사람들은 그의 정중한 몸가짐에 반하고, 지주들은 부정한 거래인줄 알면서도 기꺼이 죽은 농노를 팔려 한다.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해학적인 거래를 통해 농노들이 가축처럼 팔리는 러시아의 슬픈 현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업의 비밀이 드러나자 치치코프는 서둘러 그 마을을 떠난다.

〈죽은 혼〉은 1842년에 출판되었다. 같은 해에 그의 선집 초판이 나왔으며 거기에는 쾌활한 희극 〈결혼 Zhenitba〉과 단편 〈외투〉가 포함되어 있다. 〈외투〉는 엄청난 희생을 치른 끝에 멋진 외투를 마련한 어느 가련한 관청서기의 이야기로 그는 외투를 도둑맞자 너무도 상심한 나머지 죽어버린다. 이 보잘것 없는 남자의 비극은 아주 의미심장한 여러 사건을 통해 전개되고 있는데, 훗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를 두고 모든 러시아 사실주의 작가는 '고골리의 외투자락 속에서' 나왔다고 선언했다. 고골리의 명성은 〈죽은 혼〉을 계기로 최고에 달했다.

 

벨린스키류(類)의 민주적 지식인들은 이 소설이 자신들의 자유주의 열망과 같은 정신을 가득 담고 있음을 발견했다. 푸슈킨이 비극적으로 죽은 뒤 고골리의 인기는 한층 높아졌다. 그는 이제 러시아 문학의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고골리는 나름대로 자신의 지도적 역할을 독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회고발이 낳은 웃음의 긍정적인 결과를 확인한 그는 신이 그에게 위대한 문학적 재능을 주신 목적은 웃음을 통해 사회악을 응징하고 악한 세상 속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밝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은 혼〉 후속편 집필에 착수하였다. 이는 〈신곡〉과 같이 이미 발표된 부분을 러시아 생활의 '지옥편'으로, 제2부 및 치치코프가 도덕적으로 거듭나는 제3부를 '연옥편'과 '천국편'으로 쓸 계획이었다.

창조력의 쇠퇴

그러나 이 영혼구제사업을 시작한 그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창조적 재능이 사라져버렸음을 발견했다. 10년도 넘게 제2부를 썼으나 결과는 빈약했다. 제4장까지와 제5장의 일부분이 그의 서류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부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은 강도있게 묘사되었으나 그가 그토록 찬양하고자 열망했던 도덕적 인물들은 생명력이 없고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고골리는 이것을 신이 자신에게서 동족구원의 목소리를 거두어간 증거라고 해석하고 이제 작가로서가 아니라 교사나 설교자로서 러시아 국민들의 도덕과 생활의 향상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애썼다. 이렇게 해서 쓴 것이 그의 불운한 작품 〈친구와의 왕복서한 발췌문 Bybrannyye mesta iz perepiski s druzyami〉(1847)이다.

 

이 32편의 담화모음집은 보수적인 러시아 교회와 바로 몇 해 전 그가 그토록 무자비하게 비판했던 지배권력을 찬양하고 있다. 한때 그에게 찬사를 보냈던 사람들에게서 격렬한 비판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특히 비평가 벨린스키는 분개하여 쓴 편지에서 고골리를 '채찍의 설교자이자 반계몽주의와 사악한 탄압의 옹호자'라고 비난했다. 이 모든 상황으로 말미암아 극도로 낙심한 고골리는 신의 총애를 영영 잃어버렸다고 더욱 믿게 되었다.

기도와 금욕생활을 더 열심히 했으며 1848년엔 팔레스타인 순례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마치 저주받은 영혼처럼 여기저기 떠돌다가 마침내 모스크바에 발을 붙였다. 그곳에서 마트메이 콘스탄티노비치라는 광신적 사제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명령에 따라 1852년 2월 24일(구력 2. 11)에 〈죽은 혼〉 제2부를 태워버렸다. 그리고 10일 뒤 고골리는 반미치광이 상태에서 죽었다.( 정신적 고뇌와 사상적 동요로 인해 정신 착란에 빠져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10일간의 단식으로 자살하였다)

영향과 평가

고골리의 생각이나 삶은 기이했지만 그가 러시아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다. 무엇보다 벨린스키가 '수사학파' 또는 '낭만주의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앞으로 러시아 소설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줄 '자연주의 학파'의 강령을 이끌어 낸 것은 바로 고골리의 〈검찰관〉·〈죽은 혼〉·〈외투〉 같은 작품에서이다. 고골리는 처음으로 러시아의 참모습을 그려낸 작가였으며 보잘것 없는 소인(小人)을 문학의 주인공으로 형상화시킨 작가였다. 레프 톨스토이와 이반 곤차로프, 이반 투르게네프로 이어진 푸슈킨의 고전적·사실주의적 산문과는 대조적으로, 고골리의 화려하고 격앙된 문체는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를 거쳐 상징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안드레이 벨리에게 이어졌으며 혁명 이후의 몇몇 소비에트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고골리의 고발성 사실주의가 낳은 많은 추종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풍자작가는 살티코프 시체드린이다. 그 역시 문학의 영웅으로서 보잘것 없는 사람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단순한 문학'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에서 그가 겪은 정신적 고통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어받아 한층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켰다.

 

* 출처- 다음백과/J. Lavrin 글

 

주요 작품

그는 작품 속에 당시의 러시아의 현실, 특히 지주 사회의 도덕적 퇴폐와 관료 세계의 모순과 부정 등을 예리한 풍자의 필봉으로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고골의 사실주의 정신이 훗날의 러시아 문학과 연극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 《간스 꾸헬가르쩬》(1829)
  • 《지간까 부근 농가에서의 밤》(1부 1831, 2부 1832)
  • 《미르고로드》(1835)
  • 《아라베스끄》(1835)
  • 《코》(1836)
  • 《마차》(1836)
  • 감찰관》(1836)
  • 《죽은 혼》 (1부 1842, 2부 일부 1855)
  • 《외투》, 《결혼》, 《도박사》 (『작품집』에 묶어서 출간 1842)
  • 《‘감찰관’의 이해를 위한 열쇠》(1846)
  • 《친구와의 편지교환선》(1847)
  • 《작가의 고백》(1847)
  • 《종교 전례에 관한 고찰》(1852)
  • 《전작 전집》(총 14권, 1937~1952)

그 외 작품으로는 《네프스키 가로》, 《옛 기질의 지주들》, 《타라스 부리바》, 《광인일기》 등이 있다.

 

*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