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Thomas Mann]
〈부덴브로크가(家) Die Buddenbrooks〉(1900)·〈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1912)·〈마의 산 Der Zauberberg〉(1924)과 같은 초기소설로 192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초기 문학수업
1891년 아버지가 죽자, 예술과 문학의 중심지 뮌헨으로 가서 1933년까지 살았다. 한때 보험회사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풍자 주간지 〈짐플리치시무스 Simplicissimus〉의 편집을 맡기도 했으나, 얼마 안 가 형 하인리히처럼 글쓰는 데만 전념했다. 초기 단편집 〈꼬마 프리데만 씨 Der kleine Herr Friedemann〉(1898)에 들어 있는 소설들은 1890년대의 유미주의를 반영하고 있으나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 작곡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깊이 있는 작품들이다. 만은 정신적으로 그들 모두에게 모호하지만 깊은 신세를 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초기소설들은 주로 창조적 예술가의 문제를 다루었다. 그들은 예술의 형상화에 전념하면서 존재의 무의미함에 대결하고자 하는데, 이러한 대립을 만은 정신(Geist)과 삶(Leben)의 대립으로 확대한다. 그러나 현실에 적응하기 어려운 예술적인 성향에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상상의 세계가 허구의 세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예술가가 사기꾼에 가깝다는 주제가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작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삶에 대한 어떤 향수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상반되는 감정은 첫 장편소설 〈부덴브로크가〉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처음에는 한 시민계급 가정의 소년이 바그너 음악을 들으면서 초월적인 현실이 있음을 경험하고 삶의 의지를 상실해간다는 내용의 중편소설로 쓸 계획이었으나, 집필을 시작하면서 가정과 이 가정의 3대에 걸친 가업을 다루는 이야기로 확대되었다. 여기서는 예술적인 성향이 사업의 실제성을 추구하는 후세대의 가족구성원들과 어떻게 상충되고 있으며, 그들의 삶의 활력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설은 작가의 의지와는 거의 반대로 옛 부르주아 계급의 미덕을 기리는 부드러운 비가가 되고 말았다.
1905년에는 카차 프링스하임과 결혼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6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 시기에 씌어진 장편소설 〈대공전하 Königliche Hoheit〉는 '형식'과 '삶'을 화해시키면서, 쇠퇴해가는 봉건적 권위와 활기찬 근대 미국 자본주의를 조화시킨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1912년 어두운 분위기의 걸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는 다시 예술가의 비극적인 딜레마라는 주제로 돌아갔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문체와 구성을 통해 자신의 신경질적이고 '퇴폐적'인 감수성을 통제하는 어느 유명한 작가로서, 그는 과로에서 벗어나 쉬기 위해 베네치아를 찾는데 당시 이 도시에 콜레라가 퍼지자 자신도 죽음에 매혹되어 죽기를 갈망한다. 에로스와 죽음의 상징들이 미묘하게 짜여져 풍부한 감각적인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이 소설은 만의 작품 세계에서 한 시대를 마감한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만에게 열렬한 애국심과 예술가의 사회참여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형 하인리히는 몇 명 안 되는 독일작가들과 함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독일의 독재에 대해 비판을 했는데, 이에 대해 만은 세계주의 문학가들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정치적 대(大)논문 〈어느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Betrachtungen eines Unpolitischen〉(1918)에서 자신의 창의력을 총동원하여 민주주의에 반대하여 독재주의 국가를, '평범한' 합리주의에 반대하여 창조적인 비합리주의를, 도덕주의 문명에 반대해서 내적 문화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 논문은 19세기 독일의 민족주의적이고 반(反)민주주의적인 사상가 폴 앙통 드 라가르드와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창한 H. S. 체임벌린으로부터 국가사회주의(나치즘)로 나아간 '혁명적 보수주의'의 전통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만은 나중에 이러한 생각들을 거부하게 된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만은 서서히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평론 〈괴테와 톨스토이 Goethe und Tolstoi〉·〈독일 공화국에 대하여 Von deutscher Republik〉에서는 다소 주저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새로운 입장이 명확해진 것은 장편소설 〈마의 산〉이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초기 작품의 모티프에서 나왔으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젊은 엔지니어 한스 카스토르프는 다보스의 요양소에 있는 사촌을 방문하는데, 거기서 병·내면세계·죽음에 대한 강한 유혹에 이끌려 현실의 삶을 포기한다. 그러나 이 요양소는 바깥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과 여러 위기상황을 정신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곳이며, 결국 카스토르프는 다소 회의적이긴 하나 인간적으로 현실의 삶으로 돌아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기로 한다".
만은 이 마지막 결정을 "유럽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수많은 위험한 동정·매혹·유혹 등으로부터의 결별"이라 일컫고 있다. 또한 이 대작에는 유럽이 직면한 숙명적인 선택이 뛰어난 통찰력으로 그려져 있다.
정치적 위기와 제2차 세계대전 때
이 시기부터는 장편소설에 주력했으며, 그 외에는 깔끔한 개인소설 〈어린시절의 고뇌 Frühes Leid〉와 파시즘을 상징하는 어느 불쾌한 마술사를 주인공으로 한 중편소설 〈마리오와 마술사 Mario und der Zauberer〉 정도가 고작이다. 이 시기에 발표된 문학 및 문화에 대한 평론들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인간성·관용·이성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에 대한 깨달음을 해명하고 전달하는 지속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프로이트(1929)·바그너(1933)·괴테(1932)에 관한 평론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괴테의 지혜와 균형은 점점 더 확실하게 만의 본보기가 되어갔다. 또한 니체에 대한 여러 평론에서는 한때 자신이 취했던 입장에서 벗어나려는 통절한 노력이 드러난다.
1930년에는 베를린에서 〈이성에의 호소 Ein Appell an die Vernunft〉라는 제목으로 대담한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그는 국가사회주의자들의 비인도적인 광신에 맞서 교양있는 시민계급과 사회주의 노동계급이 함께 공동전선을 펼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독일·파리·빈·바르샤바·암스테르담 등 여러 곳에서 강연을 하고 많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나치 정책을 끊임없이 비판했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이 휴머니즘과 자유를 보증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주 그들의 견해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1933년초 히틀러가 총리가 되자, 스위스에서 휴일을 보내던 만 부부는 뮌헨에 있던 자녀들로부터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몇 년 동안은 스위스의 취리히 근처에서 거주했으나, 그후 강연 여행차 미국을 방문했다가 1938년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프린스턴에서 살았고 1941~52년에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살았다. 1936년에 독일 시민권이 박탈되었으며, 같은 해에 본대학도 1919년에 수여했던 명예박사학위를 취소했다(그후 1949년에 다시 명예회복되었음). 1944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전후에 동독과 서독을 여러 번 방문했고 많은 공적인 예우를 받았으나, 독일로 돌아가 사는 것은 거부했다. 1952년 다시 취리히 근처에 거처를 정했다. 괴테(1949)·체호프(1954)·실러(1955)에 관한 그의 후기 논문들은 주로 작가의 도덕적·사회적인 책임을 감명 깊게 일깨우고 있다.
후기 소설
이 시기에 쓴 소설은 주로 당대의 문화적 위기를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성서의 인물 요셉에 관한 4부작 소설 중 첫번째 권인 〈야곱의 이야기 Die Geschichten Jaakobs〉가 1933년에 발표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젊은 요셉 Der junge Joseph〉이, 2년 뒤에는 〈이집트에서의 요셉 Joseph in Ägypten〉이 나왔으며, 오랜 세월이 걸려서 탈고한 마지막 4번째 권 〈양육자로서의 요셉 Joseph der Ernährer〉이 1943년에 발표되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ph und seine Brüder〉로 출판된 이 완성작에서 만은 성서 이야기를 재해석하여, 한 부족 공동체에서 활동적이고 책임감있는 개인이 나타나고 신화에서 역사가, 불가지(不可知)한 존재에서 인격신이 나타나는 이야기로 그렸다.
첫번째 권에서는 영원한 신화가 히브리인들의 삶에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삶 역시 신화를 다시 만드는 일이라고 계속 믿고 있음에도 '영원한 공동체'로부터 변화와 역사의 세계인 이집트로 내던져지고 거기서 사건과 관념과 자신을 다루는 법을 익히게 된다. 이 장편소설은 역사에 대한 해박하고 깊이있는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단순한 역사소설은 아니다. 여기서 '역사'는 반어와 해학, 의식적인 현대화로 가득하다. 만의 관심은 자신의 세대를 지탱하고 인도할 수 있으며 인간의 이성의 힘에 대한 믿음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자신의 시대를 위한 신화를 창조하는 데에 있었다.
또한 만은 이 작품과 비슷한 정신세계를 다룬 〈바이마르의 로테 Lotte in Weimar〉를 쓰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다. 일방적인 사랑과 낭만적인 절망을 다룬 괴테의 반(半)자서전적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의 여주인공이었던 로테 케스트너는 노부인이 되어 이제는 유명해진 옛 연인 괴테를 다시 만나, 그에게서 고백을 얻어내기 위해 바이마르를 방문한다. 그러나 괴테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하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로테는 괴테로부터, 인간에 대한 진정한 존경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지적 행동을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이 작품은 소설 〈요셉〉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와 거리를 두면서 인류 문명의 본질적인 원리가 무엇인지 정의해보려 한다. 또한 유머가 섞인 고매하고 평온한 어조로 나치의 비인간적인 비합리주의를 넌지시 공격하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1943년에 쓰기 시작한 〈파우스투스 박사 Doktor Faustus〉는 만의 소설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띤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1885년에 태어나 10년간의 정신착란 끝에 1940년에 죽은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를 다루었는데, 고독하고 소외된 인물인 그가 당대 음악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레버퀸의 작곡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1930년 이전 20년간의 독일 문화의 이야기로서, 특히 전통적인 휴머니즘이 붕괴하고 그것을 잠식하는 현학적인 허무주의와 야만적인 원시주의가 성공적으로 혼합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만은 상상력이 풍부한 통찰력을 가지고 레버퀸의 새로운 음악 형식과 주제를 해석해나갔다.
레버퀸의 마지막 작곡은 한때 희망을 갖고 악마와 계약을 했으나 결국은 절망에 빠지는 16세기 파우스트 전설을 소재로 한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탄이란 곡이었다. 그러나 레버퀸의 개인적 비극이 작중 서술자인 차이트블롬의 논평을 통해 전쟁에서의 독일의 파멸과 기묘하게 관련되면서, 이 우울한 작품은 일말의 희망의 빛이 바로 그 비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만큼 독일의 비극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학작품은 없다.
1949년에는 이 소설의 성립과정을 설명하는 〈소설의 발생 Die Entstehung des Romans〉이 씌어졌다. 이 〈파우스투스 박사〉처럼 그렇게 세인의 오해와 비난으로 만을 지치게 한 작품도 일찍이 없었다.
또한 1951년과 1953년에 각각 출간된 〈거룩한 죄인 Der Erwählte〉·〈검은 백조 Der Schwarze Schwan〉에서는 거장다운 능숙한 양식에도 불구하고 강렬함이나 긴장감이 다소 느슨해진다.
1954년에는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Bekenntnisse des Hochataplers Felix Krull〉을 완성했는데, 이 소설은 남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역할을 떠맡음으로써 그들에게서 총애와 사랑을 얻는 한 사기꾼의 경쾌하고, 때로는 시끌벅적하고 익살스러운 이야기이다.
만의 문체는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고 기지에 넘치며 해학과 반어, 패러디가 풍부하다. 또한 섬세하고 다층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편으로는 뛰어난 사실주의적 수법과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깊은 상징주의 수법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단순성이 결여되어 있고, 작가 특유의 반어적인 관점에서 작중 인물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인간적인 감정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만은 이 단순성과 감상주의가 언제든지 이념적·정치적인 세력들에 의해 조종될 수 있는 위험성을 의식하고 있었다. 통찰력있는 독자라면, 작품에 보이는 정교한 현학성 뒤에 인류에 대한 열렬하고 애정어린 열망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
만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독일의 소설가였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그의 작품은 국내외에서 고전으로 평가되었다. 정교하게 구성된 장편과 단편들은 서구 부르주아지 문화의 본질에 대해 상상력이 풍부한 질문을 줄기차게 제기하는데, 여기서 이 서유럽 문화의 불안정성과 붕괴의 위협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은 그 문화의 정신적 업적에 대한 인정과 세심한 관심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중심주제는 현실과 사고와의 관계, 사회와 예술가와의 관계, 현실과 시대의 복잡성, 정신성의 유혹, 에로스, 죽음 등 그와 관련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계속 다른 형식으로 반복된다. 만이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파국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여 얻은 신선한 통찰력은 작품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훌륭한 평론들, 특히 톨스토이·괴테·프로이트·니체 등에 관한 평론에는 작가 자신의 끊임없는 지적 투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런 투쟁을 통해 그는 주요작품들을 형성하는 윤리적 책임이라는 문제에 도달했다.
<출처- 다음백과/Ro. Pascal 글 >
주요 작품
- 《꼬마 프리데만 씨 (Der kleine Herr Friedmann)》 (1898년)
- 《부덴브로크가(家)》(Buddenbrooks) (1901년): 토마스 만과 그의 형인 소설가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의 출생지인 북독일 뤼벡의 한 상인 가문의 가족사이다.[2]
-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 (1903년)
- 《대공전하 (Königliche Hoheit)》 (1909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 (1912년)
- 《마의 산 (Der Zauberberg)》 (1924년)
- 《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ph und seine Brüder)》 (1933년-43년)
- 《Das Problem der Freiheit》 (1937년)
- 《바이마르의 로테 (Lotte in Weimar)》 (1939년)
- 《Die vertauschten Köpfe - Eine indische Legende》 (1940년)
- 《파우스투스 박사 (Doktor Faustus)》 (1947년)
- 《거룩한 죄인 (Der Erwählte)》 (1951년)
-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 Der Memoiren erster Teil)》 (1922년/1954년)
*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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