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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

Bawoo 2014. 12. 23. 22:22

독일문학

유럽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쓴 문학작품의 총체.

최초의 기록은 고트어로 된, 주교 울필라스가 번역한 성서의 단편(369경)이다. 서게르만족의 기록은 8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나타났고, 중고 독일어 시대에는 기사계급이 시인으로 등장했다. 이때의 문학은 대부분 연가와 서사시였다. 15세기는 궁정문학의 시대라 할 수 있고, 1450년 이후에는 인문주의 운동이 등장했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이후 독일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7세기 독일의 바로크 문학은 소재나 형식에서 양극성을 나타내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는 영국문학의 영향이 강했고, 합리주의를 벗어나려는 질풍노도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로부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가 독일 문학에 있어서는 전성기라 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시적 사실주의'가 등장했다. 20세기의 문학경향 가운데 독일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표현주의 운동이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등장했다.

 

18세기 괴테 시대 독일문학

개요

독일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시기인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살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대는 계몽주의의 이성 만능적 태도에 한계를 느끼고 감정의 가치를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충동·본능·감정·상상·직관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수단으로 여겼다.

질풍노도(Sturm und Drang)

괴테는 질풍노도운동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합리주의를 벗어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이 운동의 핵심사상은 이미 클롭슈토크를 비롯한 경건주의에서 찾을 수 있으며, 영국의 에드워드 영과 셰익스피어, 프랑스의 루소에게서 큰 자극을 받아 자연성·천재성·독창성이 이 운동의 표어가 되었다. 이른바 문명화된 세계에 실망한 이 새로운 세대는 세계고(世界苦 Weltschmerz)라는 염세적 세계관 아래 자연을 신격화시켰고 개인의 양심 이상의 어떠한 법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곳곳에서 긴장·저항·반항·열망·환멸의 태도를 드러냈다. 문학과 사상에서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주된 특징으로 나타났다.

비평계에서는 하인리히 빌헬름 폰 게르스텐베르크가 취미 문제에서 개인의 감정을 강조했고, 요한 게오르크 하만은 언어가 지닌 영감과 상징의 기능을 역설했다. 그는 시를 인류의 모어(母語)라고 하며 인간 내면의 영혼 세계를 언제나 새로운 표상 속에 표현하는데 문학의 과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제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는 진화의 개념을 역사에 도입하여, 문학에서 역사적 연속성의 중요성을 갈파하고 민요·발라드와 중세 로망스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의 비평은 질풍노도 운동의 기본방향이 되었으며 특히 헤르더와 괴테의 논문이 수록된 〈독일 예술과 미술에 관하여 Von deutscher Art und Kunst〉(1773)는 이 운동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었다.

 

괴테는 질풍노도 운동 최초의 중요한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 Götz von Berlichingen〉(1773)을 썼고 최초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1774)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쓴 여러 형식의 문학은 시대적 유행이 되어 야코프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 프리드리히 막시밀리안 폰 클링거, 요한 안톤 라이제비츠, 하인리히 레오폴트 바그너, 프리드리히 뮐러 등 많은 극작가들이 그의 〈괴츠 폰 베를리힝겐〉을 모방한 작품을 썼다. 극문학은 질풍노도 운동에서 가장 특색있는 성과로 실제 이 운동의 명칭은 클링거의 동명 희곡에서 따온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주목할 만한 소설가로는 요한 야코프 빌헬름 하인제와 카를 필리프 모리츠가 있는데, 모리츠의 〈안톤 라이저 Anton Reiser〉(4권, 1785~90)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를 예고하는 작품이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군도 Die Räuber〉(1781)와 더불어 이 시대의 희곡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무대에 올려질 수 있기 위해서는 보다 기술적으로 각색되어야 했던 실러의 비극은 그밖에도 〈제노바에서 일어난 피에스코의 모반 Die Verschwörung des Fiesko zu Genua〉(1784)·〈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1783), 그리고 고전주의를 예고하는 무운시의 형식을 사용한 〈돈 카를로스 Don Carlos〉(1787) 같은 걸작이 있다. 이 질풍노도시대에 독일 여러 곳에서 국민극장이 설립된 것은 특기할 사항이다.

신고전주의

조화된 인간성과 자기규율을 등한시한 질풍노도운동은 곧 쇠잔해졌고,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주장한 헤르더의 '인간성' 사상을 기초로 신고전주의가 시작되었다. 독일 고전주의는 계몽주의와 그 후속인 질풍노도, 그리고 경건주의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즉 계몽주의에서는 지성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요소를, 질풍노도와 경건주의에서는 정감적이며 비합리주의적인 요소를 계승했다. 하나의 유기적인 자연관, 일종의 관념론이라 요약할 수 있는 고전주의는 문학에서도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 내면생활의 표현으로 나타나며 조화와 통일, 내용과 형식의 일치를 미적 이상으로 했다.

이 시대의 독일 사상과 문학의 토대는 이마누엘 칸트의 비판철학이었다. 실러는 칸트의 영향을 받아 미학 연구에 몰두했고, 그의 미학이론은 독일 고전주의의 절정기인 1794~1805년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괴테는 〈파우스트 Faust〉(1부 1808, 2부 1832)로 세계문학에 최대의 공헌을 했다. 그는 노년에 들어와서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1821~29)를 비롯하여 체념을 주제로 한 〈친화력 Wahlverwandtschaften〉(1809) 같은 소설과 숱한 서정시, 자서전적인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1811~33),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20세기 독일문학

인상주의

전통적인 문학형식으로는 복잡해진 이념이나 사회상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 20세기 작가들은 수많은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최초의 시도는 사물을 보고 받은 인상을 강조하여 마음의 상태를 환기시키려는 인상주의였다.

데틀레프 폰 릴리에크론, 리하르트 데멜 등이 이런 경향의 서정시를 썼다. 상징주의에 영향을 받은 시인들도 인상주의적 요소를 내보이는데, 프랑스 상징주의의 계승자인 슈테판 게오르게가 대표적이다. 그는 엄격한 형식을 중시하고 일상적인 것이나 평범한 것들을 멀리하며 품위 있는 언어를 골라 썼다. 그를 중심으로 한 시파(詩派)가 형성되었고, 게오르게는 1892년 〈예술 회보 Blätter für die Kunst〉를 창간하여 추종자들이 시를 발표할 수 있게 했다.

 

오스트리아의 후고 폰 호프만스탈은 낭만주의에 뿌리를 둔 예술지상주의자로서 극히 음악적인 언어로 섬세한 감수성을 분석해냈고, 아르투르 슈니츨러는 세기말 문화 중심지였던 빈의 분위기를 인상주의적인 수법으로 포착했다. 카를 크라우스가 단독으로 풍자지 〈횃불 Die Fackel〉(1899 1936)을 발행하여 부르주아 언론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동안, 로베르트 무질은 〈특성 없는 사나이 Der Mann Ohne Eige nschaft〉(1930~43)에서, 헤르만 브로흐는 〈몽유병자들 Die Schlafwandler〉(1931~32)에서 더욱 냉정하고 깊은 시대분석을 보여주었고, 같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와 역사소설 분야에 업적을 남겼다.

상징주의

새로운 문학의 실험적인 유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징주의였다. 예술이란 대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진상을 알리거나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상징의 힘을 통해 보다 심오한 현실을 밝혀야 한다고 본 상징주의자들의 작품은 강한 주관성과 신비성이 깃들어 있다.

 

하이네 이후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이자 프란츠 카프카와 더불어 오스트리아·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시 상징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시도시집 Das Stunden-Buch〉(1905)에서 〈말테 라우리츠 브리게의 수기 Die Aufzeich 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1910)· 〈두이노의 비가 Duineser Elegien〉(1923)에 이르는 그의 작품세계는 신과 인간, 자연, 시인의 소명에 관한 내적 성찰로 가득하다.

 

상징주의는 산문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독일 최대의 소설가 중 하나인 토마스 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덴브로크가 Die Buddenbrooks〉(1900)· 〈마의 산 Der Zauberberg〉(1924)·〈요셉과 그의 형제들 Josef und seine Bruder〉(1933~43)·〈파우스투스 박사 Dr. Faustus〉(1947) 등의 대작과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1903)·〈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1912) 등의 중단편에 이르기까지 상징과 신화를 이용하여 현대 인간의 정신상태를 조명하고 현대 서구문명을 상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의 형 하인리히 도 탁월한 소설가로서 〈운라트 교수 Professor Unrat〉(1905)와 〈충복 Der Untertan〉(1918)같은 독일의 정치와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작품들을 남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또 한 사람의 거장 헤르만 헤세는 신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간내면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추적하여, 〈데미안 Demian〉(1919)·〈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1927)·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1943) 등에서 서구문명에 의문을 던지고 인간의 육체와 정신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다.

표현주의

독일에서 핵심이 되는 문학운동은 표현주의 운동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간과 그 직후에 일어난 이 운동은 본질적으로는 전통적인 여러 가치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물의 외적 형식보다는 내적 의미를 강조했다.

 

표현주의 희곡의 선구자는 프랑크 베데킨트였지만 최초의 완전한 표현주의 극작품은 요하네스 라인하르트 조르게의 〈걸인 Der Bettler〉(1912)을 꼽는다. 이 작품은 발터 하젠클레버, 파울 코른펠트, 프리츠 폰 운루, 에른스트 바를라흐, 오스카 코코슈카 등의 작품과 더불어 사물의 본질, 개인의 배후 이념, 삶의 정신적 의미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에른스트 톨러는 표현주의 기법을 써서 정치극 〈기계 파괴자 Die Maschinenstürmer〉(1922)를 썼고, 주도적인 표현주의 극작가 게오르크 카이저는 후에 성숙한 전통적 양식으로까지 발전했으며 카를 슈테른하임은 날카로운 풍자로 부르주아의 위선을 폭로했다. 표현주의 시인으로는 아인스트 슈타들러, 게오르크 하임, 게오르크 트라클, 아우구스트 슈트람, 고트프리트 , 엘제 라스커 쉴러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로 현대 도시생활과 기계문명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서 출발하여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을 드러내는 이들의 관점은 나중에는 다다주의로 확대되었다.

 

프란츠 카프카 역시 그런 부정적 관점으로 현대 사회를 본 작가로서, 〈심판 Der Prozess〉(1925)· 〈성 Das Schloss〉(1926)을 비롯한 여러 장·단편, 우화들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불확실성을 그로테스크한 방법으로 그려주고 있다.

 

그밖에 알프레트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Berlin Alexanderplatz〉(1929)이 표현주의 소설의 훌륭한 예로 꼽힌다.

표현주의 이후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제1차 세계대전 후 표현주의는 이른바 객관성을 획득하려는 신즉물주의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길을 양보했다. 아르놀트 츠바이크(〈그리샤 상사에 관한 논쟁 Streit um den Sergeanten Grischa〉, 192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 1929)가 한스 팔라다, 에리히 케스트너와 함께 전쟁을 소재로 한 즉물적인 고발문학의 대표자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객관성은 안나 제거스, 카를 추크마이어, 에른스트 윙거 등의 작품에도 계속되어 나타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주창자이자 서구 희곡계의 거장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른바 ' 서사극' 형식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 비판을 시도했다. 그의 사회 개혁을 위한 교육의지는 〈서푼짜리 오페라 Die Dreigroschenoper〉(1928)·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Mutter Courage und ihre Kinder〉(1941)·〈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1943)·〈코카사스의 백묵원 Der kaukasische Kreidekreis〉(1948) 같은 많은 서사극과 교훈극을 낳았다.

제3제국

나치 정권은 문학활동의 연속성을 파괴시켰다. 그 결과 많은 재능있는 작가들이 추방되거나 스스로 망명했으며 독일에 남아 있던 작가들 중에도 출판금지 처분을 받은 사람이 허다했다. 나치 작가로는 에르빈 구이도 콜벤하이어나 한스 그림 등이 있고, 나치 이념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있던 작가 가운데 한스 카로사 등이 나치시대의 정신적 공백을 메꾸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문학

1945년의 패전으로 독일은 완전히 황폐해졌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문밖에서 Draussen vor der Tür〉(1947)에 잘 포착되어 있듯이, 이 피폐한 분위기 속에서 문학 역시 다시 힘을 가다듬어야 했다. 서독에서는 47그룹이 결성되어 하인리히 뵐에서 귄터 그라스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작가들을 망라하여 향후 20년간 문학 기후대를 조성했고, 동독에서는 시인이며 문화상이었던 요하네스 베허의 주도하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동독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은 브레히트를 비롯하여 제거스, 아르놀트 츠바이크, 헤르만 칸트, 하이너 뮐러 등을 들수 있으며, 크리스타 볼프는 독일 통일 이후에도 각광을 받고 있다. 전후 독일시는 아주 풍부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19세기 전통과 관련되어 인간 정신의 평화와 조화를 추구하는 시를 쓴 베르너 베르겐그루엔, 루돌프 알렉산더 슈뢰더 등이 있는가 하면, 시어를 전통에서 해방시키고 형식실험을 통해 자신들이 겪은 혼돈의 체험을 표현하려는 잉게보르크 바흐만, 귄터 아이히,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카를 크롤로브, 하인츠 피온테크 등이 있었다. 특히 파울 첼란은 환상적인 언어로 미적·도덕적 가치를 독특하게 잡아냈고 넬리 작스는 난해한 언어로 유대 민족의 운명을 그렸다.

희곡에서는 막스 프리슈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등 스위스 작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Besuch der alten Dame〉(1955)·〈물리학자들 Die Physiker〉(1961), 프리슈의 〈이제 그들이 다시 노래하니 Nun singen sie wieder〉(1961)는 현대의 도덕극이다. 프리슈는 희곡뿐만 아니라 〈슈틸러 Stiller〉(1954)·〈호모 파버 Homo Faber〉(1954) 등의 소설을 써서 현대 지식인의 위상을 탐색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정치극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롤프 호흐후트의 〈대리인 Der Stellvertreter〉(1963)·〈병정들 Die Soldaten〉(1967), 페터 바이스의 〈수사(搜査) Die Ermittlung〉(1965)·〈사드 후작의 연출 지도 아래 샤랑통 정신병원의 극단에 의해 상연된 장 폴 마라의 박해와 암살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 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1964, 흔히 〈마라/사드 Marat/Sade〉로 약칭)은 이른바 기록극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 색인 : 사실극). 오스트리아의 극문학은 볼프강 바우어와 페터 한트케로 대표되는데, 특히 한트케의 〈관객모독 Publikumsbeschimpfung〉(1966)·〈카스파어 Kaspar〉(1968)는 극단적인 언어실험극이다. 그밖에 특기할 현상은 귄터 아이히, 바흐만, 뵐, 뒤렌마트 등 많은 작가들이 방송극이라는 새 장르가 형성될 정도로 라디오를 통한 드라마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전후 소설가로서 가장 명성을 떨친 작가로는 과 귄터 그라스를 들 수 있다. 그라스는 특히 단치히 3부작인 〈양철북 Die Blechtrommel〉(1959)·〈고양이와 쥐 Katz und Maus〉(1961)·〈개 같은 시절 Hundejahre〉(1963)에서 활력이 넘치는 문장과 풍부하고 그로테스크한 풍자로써 독일 역사를 그려냈고,

 

현대 부르주아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전후 독일의 대표적 소설가 뵐은 〈지키는 사람 없는 집 Haus ohne Huter〉(1954)·〈아홉시 반의 당구 Billiard um halb zehn〉(1959)·〈어느 어릿광대의 견해 Ansichten eines Clowns〉(1963) 등의 작품으로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밖에 주목할 만한 소설가로는 볼프강 쾨펜, 알프레트 안더슈, 지크프리트 렌츠, 마르틴 발저, 페터 바이스, 크리스타 볼프를 들 수 있다.

 

20세기 독일 문예학에서는 19세기 실증주의를 대신하여 사상사의 측면에서 문학을 조명해보려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나타난다 (→ 색인 : 문학비평). 빌헬름 딜타이, 프리츠 슈트리히, 헤르만 아우구스트 코르프로 대표되는 이 방법론은 이른바 독일정신을 강조하는 나치 시대의 경험과 신비평의 영향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에밀 슈타이거를 대표로 하는 작품 내재분석 방법에 길을 양보하고 만다. 그러나 이 방법론은 1960년대 발터 벤야민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 비평이 재발견되면서 힘이 약화되었고, 이후 독일 문예학은 크게 보다 사회정치적 시각과 보다 형식적·이론적인 시각으로 나뉘지만, 현재 문학 연구방법의 상호보완성·다원성에 미루어 볼 때 그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문예학이 과학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발전해 나온 독일 현대 문예비평은 한마디로 문학에 대한 합리적 접근방법을 찾으려는 노력과 시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출처: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