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서의 테러 후 한 무슬림 지인이 던진 질문입니다. “모두 몇 명이 숨졌나.”
어렵지 않았습니다. 샤를리 에브도에서 10명, 경찰 3명,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4명이 희생된 걸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17명”이라고 했더니 그가 또 물었습니다. 범인들은 어떻게 됐느냐고.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습니다. “다들 20명이 숨졌는데 17명이라고만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곤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기묘한 건 “20명이다”란 말에 마음이 아렸다는 겁니다. 그저 ‘가해자도 사람이긴 하지’라고 넘기기엔요. 동남아시아계 무슬림인 그는 노모를 부양하는 성실한 가장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괴물’이 되어버렸지만 좌절과 증오 속에 자라났을 가해자의 처지를 연민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종교를 조롱한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다 숨진 희생자로 추앙받는 현실이 못마땅했는지, 또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는 이들이 경원시된다는 분노 때문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테러 희생자의 절대다수는 무슬림이란 현실의 통렬함에서였는지도요. 어쩌면 그 모든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떠오른 인물들이 있습니다. 테러 당일 파리에서 만난 택시 기사입니다. “종교는 다 사랑을 말한다. 이슬람교만 예외다. 코란은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 무슬림은 자기 종교를 강권한다. 불교 신자들은 안 그러더라. 기독교 신자에게 ‘노’라고 말한다고 나를 죽이진 않는다.”
사실이 아닌 얘기를 어찌나 확신에 차서 주장하던지, 서구의 이슬람 반감이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오래전의 책 구절이 절로 이해될 정도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든 신의 이름으로 살인을 해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건 예상 가능한 발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지금 벌어진 일에 누구나 놀란다. 그러나 우리 교회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많은 종교전쟁이 있었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을 생각하라. 우리 또한 죄인이다.” 1572년 8월 가톨릭 추종자에 의해 개신교 신자 수만 명이 학살당한, 가톨릭으로선 부끄러운 사건을 입에 올린 겁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을 이슬람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주문으로 이해했습니다.
한 영국의 칼럼니스트가 “만일 테러리스트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란 질문을 던졌습니다. 고심 중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실제로 테러리스트가 기독교인이었다면 이런 유의 질문을 하진 않았을 것이란 점입니다. 또 기독교 대표들이 “기독교인 전체를 비난하는 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일도요. 우리는 인정하든 안 하든 부지불식 간에 어느덧 어느 정도 ‘택시 기사’와 같은 상태가 됐는지도 모릅니다.
* 출처: 중앙일보-고정애 런던특파원
<참고> 성바르톨레모오 학살 내용 보기: http://blog.daum.net/wwg1950/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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