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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정치>노태우, 김영삼 그리고 박근혜

Bawoo 2015. 1. 21. 18:56

역대 대통령 중 누가 가장 훌륭했나를 묻는 여론조사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높게 나오고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대체로 2, 3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은 순위에 넣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이렇게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은 비자금 사건과 1997년 외환위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기간이 15년이 넘고 5·16 후 최고회의 의장 시절을 합치면 무려 19년에 달하기 때문에 다른 대통령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1987년 민주개헌 후에 대통령이 된 경우에 국한해서 평가를 한다면 이른바 보수 대통령은 성공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후평가도 좋지 않을 것이니, 그 같은 결론은 불가피하다.

나는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선 보다 균형있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과제를 대체로 잘 해냈고, 또한 임기 5년을 이끌어 가기 위해 가용한 인적 자원을 최대한 동원했으며 국민과의 소통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고 본다. 다만 비자금과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민주화와 사회개혁 욕구가 화산처럼 분출하던 시기에 대통령이 됐다. 국회는 3김이 지배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의 행동반경은 크지 못했다. 그런 노 정권은 인물로써 정국을 돌파했다. 신망이 높은 강영훈 총리가 있었고, 청와대에는 노재봉, 김종인, 김종휘, 김학준 등 쟁쟁한 학자들이 포진했다. 나중에 총리가 된 이홍구 교수는 통일원 장관으로 한반도 통일에 관한 기본 구상을 완성했다. 5공 청문회, 노사분규, 학생시위 등으로 편안할 날이 없던 5년이었지만 그런 중에도 북방외교를 트고 변화하는 대외통상환경에 대응해서 경제체질을 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을 아는 정치인이었고, 그렇기에 정치인을 정부와 청와대에 대거 기용했다. 첫 비서실장은 나중에 국회의장을 지낸 박관용 의원을 발탁했고, 손학규 의원과 이인제 의원을 장관으로 기용했다. 청와대는 서울대 교수 출신인 박세일, 이각범 등이 수석비서관으로 개혁과제를 추진했다. 김 대통령은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실시, 불법 정치자금 관행 근절 등 자신이 생각하던 개혁을 밀고 나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민심을 존중했지만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는 소통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당시 여당의 사무총장이던 강삼재 의원은 수시로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했다는데, 그러면 김 대통령은 “네가 대통령인 나한테 이렇게 말할 수 있나?”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후에는 강 총장이 전한 민심이 그대로 대통령의 발언과 청와대의 조치로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차남 김현철씨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윤여준 공보수석 등 가신 그룹이 아닌 참모들의 진언을 받아들여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경제참모 중에는 쓴소리를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1996년 하반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경제상황에 대해 경제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진솔한 보고를 하지 않았고 결국 한보사태와 기아사태를 거쳐 외환위기를 맞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의 성공과 실패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어야 한다. 두 대통령이 인력 풀을 최대한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임기 5년을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았음에 주목했어야 한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그 시절에 대해 잘 이해하는지도 의문이다. 1988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보수정권 10년 동안 박 대통령은 칩거 중이었기 때문에 감각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그 시절 정권과 부침을 같이했던 남재희 전 장관, 김종인 전 수석, 윤여준 전 장관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원로 그룹의 지혜를 빌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기를 거부했다. 지금 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라고 불리는 비서관과 행정관들이다.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내면서 그렇고 그런 권력투쟁이나 보아왔던 이들이 별안간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셈인데, 김무성 대표 수첩사건으로 이들의 민낯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다. 대통령이 장관과 수석비서를 만나지도 않으니 이들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국정놀이’라는 철없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출처: 경향신문 -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