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저녁 1
유하
여의도로 밀려가는 강변도로
막막한 앞길을 버리고 문득 강물에 투항하고 싶다
한때 만발했던 꿈들이 허기진 하이에나 울음처럼
스쳐간다 오후 5시반
에프엠에서 흘러나오는 어니언스의 사랑과 진실
추억은 먼지 낀 유행가의 몸을 빌려서라도
기어코 그 먼길을 달려오고야 만다
기억의 황사바람이여, 트랜지스터의 라디오 잡음같이 쏟아지던
태양빛, 미소를 뒤로 모으고 나무에 기대 선 소녀
파르르 성냥불처럼 점화되던 첫 설레임의 비릿함, 몇 번의 사랑
그리고 마음의 서툰 저녁을 불러 모아 별빛을 치유하던 날들
나는 눈물처럼 와해된다
단 하나의 무너짐을 위해 생의 날개를 그토록 퍼덕였던가
저만치, 존재의 무게를 버리고 곤두박질치는 물새떼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에
오래 견디어낸 상처의 불빛은
그다지도 환하게 삶의 노을을 읽어 버린다.
소멸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낸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쓸쓸하게 허물어진다는 것,
그렇게 이 세상 모든 저녁이 나를 알아보리라
세상의 모든 저녁을 걸으며 사랑 또한 자욱하게 늙어 가리라
하지만 끝내 머물지 않는 마음이여, 이 추억 그치면
세월은 다시 흔적 없는 타오름에 몸을 싣고
이마 하나로 허공을 들어 올리는 물새처럼 나 지금,
다만 견디기 위해 꿈꾸러 간다.
* 출처: 시 정보- '2014 올해의 문제 소설'이란 책 중 임철우님의 '세상의 모든 저녁이란
중편 소설' 해설 편.
이 소설은 유하님의 동명 위 를 소설화한 작품이라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뛰어난 작품이다.
"옹기장이로 평생을 살아온 한 가난한 노인이 생애 마지막 날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쪽방촌에서 냄비에 머리를 쳐박고 생을 마감하는 이 노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 '노을처럼 쓸슬하게 허물어진다'는 위 시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가난을 숙명처럼 달고 살다 쪽방촌에서 지켜주는 아무도 없이 쓸쓸하게 죽어간 노인의 이야기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을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실패한 삶을 살아온 노인들을 모델로 하고 있어 우울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작품성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판단되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본다.
중편소설-임철우님의 "세상의 모든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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