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네
정현종(1939~ )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덧없이 가는 세월도, 변화와 아픔들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있다가 없는 것도 견디기 어렵고, 보이다 안 보이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이룬 것 없이 세월은 흘러가고, 세월은 안팎에 흔적들만 남긴다. 모든 흔적은 흠이고, 흠들은 다 상흔(傷痕)이니! 아침 나절 태평양 건너 먼 곳의 딸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문득 주역 점을 뽑아보니, 둔괘(遯卦)다. 난세에는 뒤로 물러나 고요히 있으라는 소리! 몸은 물러나도 도(道)마저 양보할 수는 없다. 옳거니, 물러나 피함에 처하더라도 정도를 지켜야 형통할 터! 물러나 웅크려라. 웅크려 견디다가 기운을 비축한 뒤 힘찬 기세로 강물 헤치고 삼천리를 나아가라!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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