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심사평
시조작품의 뿌리는 율격이며, 탁월한 상상력은 그 꽃이다. 3장6구 12음보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엄격한 리듬규칙이 현대시조의 근간이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외적 세계를 받아들이고 작품 내에서 그 변용된 체험을 질서화하여 재창조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이 바로 현대시조의 생명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달의 응모작품들은 질과 양 모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기계적인 자수 맞춤에 급급하거나, 자의적인 율격파괴나 변형으로 벗어나 버린 작품, 개성적인 심안이 아닌 지나친 관념이나 감상으로 채워진 대다수 작품들에서는 시조에 대한 보다 간절하고 진정성 있는 사랑과 이해가 요구된다.
먼저, 균형과 절제라는 함축미학의 전형을 보여주는 단시조 작품인 이종현의 ‘아내, 활을 쏘다’를 장원으로 뽑았다.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정형의 틀 속에 열린 진폭의 감동을 담보해내는 솜씨가 단연 돋보였다. 반려로 살아온 아내의 잔소리를 “자음모음 날이 선” 화살의 시위를 당긴다고 따뜻한 미소가 번져나게 하는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낸 점도 호평을 받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형의 틀이 구속이 아니라 탄력 넘치는 긴장과 여백의 장치로 작용하고 있음이 경이롭다.
차상으로 뽑은 이상구의 ‘월곡리 청보리’는 “비탈밭 시린 세월 온몸으로 견디”는 겨울 청보리의 “푸른 꿈 붙안는” 강인한 생명의지를 형상화하여 그에 투영된 생의 의미를 성찰해낸다. 차하에 오른 정춘희의 ‘생강나무 꽃’ 역시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과정을 여성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덧붙여 동일인이 여러 이름으로 투고하거나, 맞춤법 등이 잘못된 작품은 선외로 함을 밝혀두는 바이다.
심사위원 : 권갑하, 박권숙 (대표집필 박권숙)
책상 위 어질러진 서류가 다 정리되지 않은 것은 아직 시인의 하루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래서 창가 놀도 머뭇머뭇 어둠에 자신을 내어주지 못한다. 하지만 귀가 길, 일상의 피로는 따뜻한 녹차 한잔이면 그만이다.
자연스러워서 좋고 괜히 교훈적이거나 음풍농월 하지 않아 더 좋다. 고단한 삶에서 시작하여 차츰 긴장의 끈을 풀고 느긋이 행간을 읽게 된다. 그것은 표내지 않고 갈무리 해 둔 시적장치에 있다. 첫 수 놀빛 붉음은 둘째 수에선 녹차의 연둣빛으로 치환된다. 그 시각적 변화는 마지막 수에선 깨소금 맛의 미각으로 마감된다.
통영 사량도 출신의 시인은 진주에서 삶을 마감했다. 시인과 가끔 만났던 곳, 녹향다원. 시인이 가시고 오래 잊고 있었는데, 새삼 문을 닫았는지 어쩐지 안부를 묻는다. 녹차 한 잔 놓고 “요즘 시 열심히 쓰느냐”고 물으시던 눈빛이 그립다.
이달균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