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
이시영 시인
'서시'하면 윤동주를 떠올리지만, 팍팍한 생각에 철썩, 죽비를 치는 건 이 시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이 여섯 줄의 처음과 끝에 '어서'라는 말이 앞장서고 있다. 그 어서의 조급함은 청자(聽者)인 '나'를 기다리는 세월의 길이가 만들어낸 심정적인 가속도이다. 누가 그렇게 나를 기다렸는가. 어머니다. 고향 전체, 조국 전체, 아니 고향 전부, 그리고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너는 왜 갔는가. 그저 발 디디러 갔다.
거기엔 고향이 싫어서 아니라, 어머니의 품이 좋은 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저 발 디디러 갔다. 아니 뭔가를 꿈꾸고 뭔가를 욕망하며 갔지만, 뒤에서 살피는 사람의 눈엔, 그저 간 것으로 보였을 지 모른다.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대목은 마음의 액자에 걸어두고 아침마다 저녁마다 떠올리고 싶은 귀절이다. 귀소(歸巢). 아아, 전화도 자주 못드리는 내 어머니!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 시정보- 김성동 단편 소설 "오막살이 집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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