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이 책, 본문만 500여 쪽에 이르는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책 제목은 군인이지만 우리 인류사에 있었던 전쟁을 저자가 글 쓰고자 하는 뜻대로 종합해 놓은 책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으면서.
전쟁하면 떠오르는 게 그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니까. 덕분에 모르고 있었던 전쟁, 인물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는데 기억 속에 남겨 놓기는 쉽지 않은 일. 책 제목하고 한번 읽어봤다는 정도만 남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프게 와닿은 것은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예를 들면 나폴레옹, 알렉산더, 뭐 히틀러는 그리 안 부르겠지만-인간들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인간들을 영웅으로 기리는 후대인들은 또 뭔지. 아마도 그리 되고 싶은 데 능력이 안 돼서이거나 아니면 인간사회에 꼭 있게 마련인 상층부에 있는 소수 인간들의 작품(?). 자기들도 언젠가는 그런 행위를 하는 그룹에 낄지도 모른다는 계산을 깔고(?). 아무튼 이런 인간들은 영웅이 아니라 평범하게 살다 떠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라고 후대인들은 그래야 되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전쟁터에 나가 비참하게 죽어야 했던 한 명 한 명이 다 어느 집의 소중한 아들, 남편이었을 사람들이 위로를 받지 않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상대방을 이겨내기 위하여 자꾸만 발전된 무기들이 이제는 공멸할 수 있는 핵무기, 총을 들고 직접 싸우지 않아도 되는 전자무기 시대까지 와 있어 이런 대규모 인명 살상이 일어나는 전쟁은 불가능해져 군인이란 이름으로 전쟁터에 나가 개죽음당하는 일은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승자박이라고 그래야 되나? 뭐 그렇다고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한 전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때문에 군인이란 이름의 전쟁 수행하는 사람들도 없어지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단지 점점 줄어들 뿐.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문학, 역사, 음악까지 아우르는 분야-그림도 있었던가 벌써 기억이 안 난다 ㅠㅠ-의 해박한 지식에 경탄을 많이 했다. 새삼 학자들이 자신이 연구하는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을 세상에 내놓는 덕분에 편하게 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인물, 사건들이 검색을 해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인데 영문표기를 해줬으면 영어위키에서라도 찾아 봤을 텐데 하는 점이었다.
책에 대한 안내, 해설은 아래 출판사, 언론사의 글이 훨씬 더 잘 쓰여 있어 이것으로 갈음한다. 능력, 힘에 부치기도 하고. ㅠㅠ>
< 이 책에 대한 소개 글들>
여러 시대와 대륙, 문화에 걸친 3,000년 군인의 역사!
‘독일어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위대한 패배자》 《만들어진 승리자들》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볼프 슈나이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징집되어 무너져가는 나치 정권을 위해 싸워야 했다. 그곳에서 군인은 영웅이자 희생자였으며, 괴물이었다. 슈나이더 역시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군인에 대해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군인』은 슈나이더가 그때부터 군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숙고해온 오랜 천착의 결과물이자, 지난 3천 년간 세계사의 중심에 있었으나 이제는 존재가 희미해진 군인들에게 바치는 추도사이다. 시대와 대륙, 문화를 뛰어넘어 지난 3천 년을 아우르는 군인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군인이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피 비린내 나는 전장들과 병영 안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렇다면 슈나이더는 왜 이 시점에 군인을, 그 역사를 돌아보기를 제안하는가? 군인의 역사가 바로 전리품과 명예, 피와 쾌락을 좇는 욕망의 역사였고, 동시에 규율과 복종, 신앙과 이데올로기로 통제된 희생과 억압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슈나이더의 말은, 종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위대한 패배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볼프 슈나이더는 ‘독일어의 교황’으로 불리는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언론인이다. 1925년 에어푸르트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자란 슈나이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징집되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7년부터 뮌헨의 『노이에 차이퉁』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여, AP 통신사 기자를 거쳐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워싱턴 특파원이 되었다. 1966년 『슈테른』으로 옮겨 편집장과 사장을 역임했다. 1971년부터는 함부르크 『디 벨트』의 편집국장이 되었다. NDR 방송의 토크쇼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9년에 설립된 ‘함부르크 언론인 학교’에서 1995년까지 교장을 지냈다. 1994년에는 독일 언어학회가 수여하는 ‘언어문화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슈나이더는 20여 권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다. 그의 주요 저술 분야는 ‘언어’와 ‘문화사’이다. 지은 책으로 『위대한 패배자』, 『진정한 행복』, 『바빌론에 대해서: 주변 도시들의 역사』, 『네안데르탈인: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진화』, 『저널리즘 교본』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사람이건 사건이건 늘 표층보다 이면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자기를 위하는 길인지 고민하는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가 꿈이다. 지금껏 『미의 기원』,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나폴레옹 놀이』, 『유랑극단』, 『목매달린 여우의 숲』, 『늦여름』, 『토마스 만 단편선』, 『위대한 패배자』, 『주말』, 『귀향』 등 9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목차>
1. 추도사
1부 이제 전쟁에는 군인이 필요 없다 2. 무인 전투기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3. 핵미사일이 대기하고 있다 4. 자살 폭탄 테러범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5. 유격대가 승리한다 6. 컴퓨터가 떠맡는다
2부 모든 것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7. 인간 사냥 8. 일대일 결투 9. 전쟁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10. 군인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11. 카르노의 군인 공장
3부 어떤 무기로 싸웠을까? 12. 칼과 화살 13. 말 14. 보병과 수레 15. 불 16. 강철과 가스
4부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 17. 이유, 핑계, 착각, 그리고 거짓말 18. 영토와 전리품을 위해 19. 조국을 위해 20. 개선장군을 위해 21. 명성과 복수를 위해 22. 종교를 위해 23. 약탈과 전승 기념품을 위해 24. 게으름과 만족을 위해 25. 모험을 위해 26. 피의 도취 27. 폭력 28. 그리고 대체 용기란 무엇일까?
6부 어떤 꼴로 죽었을까? 36. 불쌍하고 초라하게 37. 경악스러울 정도로 끔찍하게 38.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위해 39. 그중에 영웅도 있었을까?
7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40. 군인: 거부를 통해? 41. 우리 모두: 블루헬멧을 통해? 42. 평화주의를 통해? 43. 혜안을 통해?
저자 후기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옮긴이의 말
<교보문고>
<출판서 서평>
지난 3,000년간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으나 이제는 그 존재가 희미해진 자들에게 바치는 기념비!
여러 시대와 대륙, 문화에 걸친 3천 년 군인의 역사
군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군인은 어떤 무기로,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그들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에 맞서 전장으로 나아가게 한 힘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가? 인류가 서로 싸우지 않고 공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가? 간결한 산문의 힘으로 [독일어의 교황]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대표적인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는 이 책 『군인』에서 이러한 질문에 답한다. ?위대한 패배자?, ?만들어진 승리자들?의 저자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슈나이더는 이 책에서 시대와 대륙, 문화를 뛰어넘어 지난 3천 년을 아우르는 군인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군인이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고찰한다.
지난 3천 년간 군인은 영웅이자 희생자였으며, 괴물이었다.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군인들은 지구 상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의 들판에서, 러시아의 동토에서, 타오르는 사막에서, 숨 막히는 바다 속에서 죽어 갔다. 고통과 승리, 탐욕과 경건함, 비열함과 위대함 사이를 오가는 군인들은 우리에게 숭배와 증오, 경탄과 공포라는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혼란스러운 존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징집되어 무너져 가는 나치 정권을 위해 싸워야 했던 저자 슈나이더가 전후 에 군인에 대해 느낀 감정 또한 바로 이러한 혼란스러움이었다. 슈나이더는 이때부터 군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책은 그 오랜 천착의 결과물이다. 타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 사람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피 비린내 나는 전장들과 살벌한 병영 안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종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한때 세계사의 주역이었으나 이제 그 존재가 희미해진 존재들에게 바치는 기념비
슈나이더는 [우리가 아는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 아무도 참가하지 않는 전쟁, 즉 군인 없는 전쟁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무인 전투기이다.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 전투기는 로켓포 14발과 고해상도 비디오카메라에다 야간 활동용 적외선 센서와 레이더를 장착한 채로 목표 지점 9∼15킬로미터 상공에서 한가하게 웅웅거리며 선회하며 최대 40시간까지 비행할 수 있다. 지상에서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죽이라는 결정은 미국 본토에서 내려진다. 적을 발견했다고 판단하면 파일럿은 조이스틱을 이용해 위성 신호로 사격 신호를 전달하고, 15초 뒤 목표물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본다. 이제 전쟁이 일어나도 참여하지 말라는 평화주의자들의 구호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방어자 입장에서 보면, 이제 인간 적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전쟁의 승패가 군인 없이 결정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을 때부터 전쟁의 역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최소 민간인 6만 6천 명이 숨지고 피폭 여파로 죽은 사람들까지 합치면 무려 20만 명을 죽게 만든 이 원폭 투하에 동원된 군인은 단 세 명이었다. 이제 대규모의 군인은 필요가 없어졌다. 무인 폭격기 파일럿과 미사일 발사대, 용병과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하기 위한 특별한 인간 전투 기계들만으로도 전쟁은 가능해졌다.
오늘날 무력행사의 주권은 전통적인 군인에서 핵폭탄, 무인 공격기, 테러리스트, 특수 부대, 해커에게 넘어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폭력을 일으킬지 예측할 수 없으며, 예측하더라도 막기 어려운 수단들 앞에서 전통적인 군인들은 무력해졌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군인에게 거대한 전환점이 다가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슈나이더는 군인을, 그 역사를 돌아보기를 제안한다. 군인의 역사는 전리품과 명예, 피와 쾌락을 좇는 욕망의 역사였고, 동시에 규율과 복종, 신앙과 이데올로기로 통제된 희생과 억압의 역사였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고통을 준 가해자이자 또한 가장 고통을 받은 피해자였던 이들 군인을 위한 기념비로 이 책을 쓰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지난 3천 년간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으나 이제는 그 존재가 희미해진 군인들에게 바치는 기념비이자 추도사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절반의 진실
슈나이더는 평화란 인간의 자연 상태이고 인간은 원래 선한데 소유와 거주, 진보 때문에 타락했을 뿐이라는 루소의 주장이 [가소로울 정도로]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원숭이에서 분리된 이후 인간과 줄곧 동행해 온 것은 싸움과 살인,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사에서 다수의 인간이 다른 부족이나 민족, 인종을 자신들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존재로 보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증거는 무수히 많다.
원시 부족 얘기가 아니다. 그리스 문화에서도 [야만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 세계를 외부 세계와 엄격히 구분했는데, 야만족barbarian이란 그리스어를 잘 못하고, 그래서 교양이 없고 거칠고 잔인한 모든 족속, 이방인, 적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인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인디언을 인간으로 간주해야 할지를 두고 학문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인디언들은 좀 달랐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아메리카의 흑인 노예들을 [검은 원숭이]라고 불렀다. 다른 인간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인간은 사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인간 사냥은 아메리카 노예 시장을 위한 흑인 생포였다. 16세기에서부터 19세기까지 아프리카에서 배로 수송된 흑인의 수는 1000만에서 1500만 명에 이른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인간 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1904년 독일령 아프리카 남서부에서 유목 민족인 헤레로족이 식민 압제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키자 황제의 명령을 받은 독일군은 헤레로 전사 6천 명을 사살하고 남은 구성원들을 황야로 내쫓은 뒤 보초선을 구축해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차단했다. 이렇게 해서 갈증과 굶주림으로 8만여 명의 헤레로 족 가운데 6만 명 이상이 죽음에 이르렀다. 최초의 홀로코스트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우리에게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표현은 무척 익숙하며, 여기서 우리는 아무런 비인간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이 같은 표현에서 자신과 다른 인간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뿌리 깊은 배타 의식을 읽는다. 1950년대에 동서로 갈라진 서독과 동독이 재무장에 나서자 독일인들은 [독일인이 독일인에게 총을 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걱정했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런 말 속에는 독일인이 프랑스인이나 폴란드인, 혹은 러시아인에게 총을 쏜다면 훨씬 덜 끔찍할 거라는 가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되 같은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화되지 않은 전사의 참모습 ― 방패를 든 동상
이 책은 영웅과 희생자, 괴물의 관점에서 군인을 고찰하지만, 슈나이더가 어디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지는 분명하다. 이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는 전쟁의 야만과 참혹함에 대해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승리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영웅이 아닌 대다수의 군인은 희생자였다. 수백만, 수천만의 군인들이 때로는 종교를 이유로, 때로는 총사령관의 명예욕을 채워 주느라 전장에서 죽어 나갔다. 군인이 겪지 않은 고통은 이 세상에 없을 정도로 그들은 온갖 고통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괴물이 되었다.
군인의 온갖 고통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이 증폭된 상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포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 포로들과 소련군 포로들이 겪은 상황은 그 규모에서 역사상 최악이었다. 독일 국방국은 소련 침공 후 첫 몇 개월 동안 포위 공격으로 소련군 500만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1941∼1942년 사이에 죽었다. 포로들의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히틀러에 의해 [노동력 징발 총책임자]로 임명된 프리츠 자우켈이 붉은 군대의 포로들 속에서 잠재적 노동력을 보기 시작하면서였다. 반대로 독일군 310만 명이 소련군에 포로로 잡혔는데 그중 110만 명이 강제 노역과 굶주림,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투항한 10만 명 중에서 다시 독일 땅을 밟은 군인은 5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군대는 어떻게 쓸 만한 군인을 만드는가? 한편으로는 혹독한 훈련과 규율로 그렇게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전장에 나가 군대를 통솔할 때는 잔인하다는 악평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몽골 족은 전사들의 전투력뿐만 아니라 혹독하기 짝이 없는 규율로 유명했다. 칭기즈칸은 기마대를 십진법에 따라 분대 10명, 중대 100명, 연대 1,000명, 군단 10,000명으로 편성했는데, 한 사람이 도주하면 분대 전체가 처형되었고, 승리하기 전에 약탈하는 자도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훈장이 그렇게 한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군인의 인정에 대한 갈망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훈장은 죽은 적에 대한 약탈과 신체 절단을 금지한 문화적 발전의 결과였다. 슈나이더는 훈장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평가한다. [군인의 미덕이 민간의 미덕이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아무튼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군인의 갈망과 국가가 하찮은 비용으로 만든 다양한 색깔의 작은 쇠붙이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렇다면 슈나이더가 생각하는 미화되지 않은 진정한 전사의 참모습은 무엇일까? 그것은 만하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 ?방패를 든 전사?와 같은 것이다. 이 동상에는 왼팔과 왼다리, 두 눈이 없다.
평화를 외치면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순진한 생각이다. 슈나이더에 따르면, 선한 동기에서 선한 현실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세상에는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935년 자유주의적 좌파인 쿠르트 투홀스키에 따르면, 평화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여드름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 고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는 인간의 자연 상태도 아니고, 인간은 원래 평화를 사랑하는 족속도 아니다. 게다가 코란뿐 아니라 성경도, 유엔도 평화를 결코 최상위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오늘날 분쟁의 재료들은 널려 있다. 우선 모두가 살 공간이 부족하다. 지구는 한정된 행성인데 인구는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농경지 또한 급격히 줄고 있다. 무분별한 공업화로 공기와 물은 오염되고 있고, 자원과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에너지는 부족해지고 있다. 마지막 서식 공간과 자원을 둘러싼 살인적인 투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전쟁을 해보려는 유혹도 과거보다 더 커졌다. 드론 같은 무인 전투기로 군인 없이 전쟁을 벌이고, 블랙 워터 같은 민간 군사 기업을 이용해 전시 동원력 없이 곧장 공격에 나서고, 한 방울의 피도 요구하지 않고 무기 수준이나 병력 규모에 구애받지 않는 사이버전을 벌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슈나이더는 전쟁을 예방할 대응책들이 얼마나 실효성이 없는 것들인지를 논파하고 난 후 독자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마라! 쉰 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맹수에게 찢겨 죽거나, 이웃의 사나운 부족에게 맞아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석기 시대에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석기 시대 선조들보다 극히 적은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해외 서평
슈나이더는 이 책으로 자신이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최고의 저술가임을 또다시 증명해 냈다. 3천 년에 걸친 군인과 군대의 역사로 강행군하면서 독자를 사로잡고, 동시에 많은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이 책은 전쟁이 인간에게 야기하는 잔인성, 야만성, 비인간화에 대한 슈나이더의 가슴에서 우러난 항의서이다. - 『쥐트도이체 차이퉁』
전쟁의 문화사라고 할 수 있을 이 책은 날카로운 분석과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돋보이는 최고의 계몽서이다. - 『도이칠란트푼크 라디오 방송』
책속으로
[군인 현상]을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은 양극단으로부터 불신의 시선을 견뎌야 한다. 가슴에 자랑스럽게 훈장을 단 사람들과 열정적인 평화주의자들이 그 양극단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인은 그 신분 특유의 큰 고충과 위험 때문에 명예로운 직위가 보장된다.] 1847년판 브록하우스 대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이니까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2012년 독일 공무원 연맹의 직업별 명성에 관한 설문 조사에서 군인은 15위를 차지했다. 지붕 수리공과 우편배달원 다음이었다. _1. 추도사. 12쪽.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쟁 전이나 전쟁 중의 모든 열광을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쟁 중인 조국에 대한 열광은 대부분 다른 나라를 공격하거나 정복하는 조국에 대한 열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단순히 [조국에 대한 열광]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고, 오히려 [정복에 대한 열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노획물과 복수, 승리에 대한 열광 말이다. _19. 조국을 위해, 227쪽.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성공적인 총사령관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마지막 특성이 있다. [남의 고통에 대한 둔감함]이다. 아군이건 적군이건 군사들이 피를 흘리든, 비명을 지르든, 고통스럽게 죽든 그것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승리할 수 없다. 그래서 클라우제비츠는 군 지휘관들에게 [피 흘리는 희생자에게서 느끼는 가슴 찢기는 고통을 마음속으로 이겨 낼 것]을 요구했다. 니체는 비슷한 생각을 좀 극단적인 경구로 표현했다. [타인에게 크나큰 고통을 가하고자 하는 힘과 의지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겠는가? 고통을 느끼는 건 하찮다. 그건 나약한 여자와 노에도 대가의 경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큰 고통을 가하고 그 고통의 비명을 들으면서도 마음의 동요나 괴로움으로 파멸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위대함이다.] _20. 개선장군을 위해, 234쪽.
[그들은 서로 죽이기 위해 만나 수만 명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든 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올렸다.] 톨스토이가 한탄한 말이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할 원자폭탄을 비행기에 싣는 현장에 있었던 한 목격자는 이렇게 진술한다. [폭탄 적재 의식에는 학자와 장교로 이루어진 정선된 소수의 인원만 참여했다. ……분명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지적인 산물 가운데 하나일 그 자그마한 《대상》을 둘러싸고 엄숙함에 가까운 분위기가 흘렀다. ……명령서의 집행 의식은 무척 감동적인 성직자의 기도로 마무리되었다.] 그로부터 12시간 뒤 나가사키는 지옥의 도가니로 변했고 3만 6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_22. 종교를 위해, 248∼249쪽.
1월 8일 붉은 군대는 독일군에 항복을 종용했고, 1월 10일 두 번째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 그와 함께 짐승 같은 죽음의 마지막 3주가 시작되었다. 부상병과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빵이 제공되지 않았다. 아직 싸울 수 있는 군인들만 먹기도 너무 빠듯한 상황이었다. 결국 1월 14일 독일 국방군 보고서에 [영웅적인] 싸움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고, 이어 1월 16일에는 [용맹무쌍한], 23일에는 [장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이런 비장한 고전적 어휘를 사용한 의도는 분명했다. 이들의 죽음을 장렬한 전사로 몰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온 독일이 그렇게 이해했다. _38.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위해, 436쪽.
영웅들의 시대는 끝났다. 무인 전투기와 다가올 사이버전의 시대에는 군인이 필요 없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아직 군인이 싸우는 지역에서도 영웅이 설 자리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작전의 대부분은 적을 안전한 곳에서 언제든 죽일 수 있는 곳으로 유도해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전에서도 여전히 명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파렴치한 짓이다. 전쟁의 목표는 승리다. 다시 말해 비할 바 없이 좋은 조건 속에서 적을 죽이는 것이다. _39. 그중에 영웅도 있었을까?, 449쪽.
“지난 3000년 동안 군인은 세계사의 큰 동력이자 공포와 경탄, 경악의 대상이었다. 수많은 나라를 짓밟고 문화를 파괴하고 민족을 말살했다. (…) 군인은 누구보다 많은 고통을 가했지만, 누구보다 스스로 더 큰 고통을 받을 때도 많았다.”
이 책은 ‘우리가 아는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추도사로 시작한다.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징집돼 무너져가는 나치 정권을 위해 싸워야 했던 사람이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신분이었던 ‘군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긴장과 공포에 시달리는 군인의 삶을 그린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동아일보DB
이 책은 그의 오랜 고민의 산물이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 귀한 것인지 누구도 그 가치를 답할 수 없는 이념이나 종교의 차이로 군인들은 전장에 나가서 싸워야 했다. 저자는 군인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군인들이 어떤 무기를 들고 싸웠는지, 어떤 고통을 겪고 무엇을 위해 죽었는지를 살핀다. 슈나이더는 ‘평화란 인간의 자연 상태이며 인간은 원래 선한데 소유와 거주, 진보 때문에 타락한 것’이라는 장 자크 루소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싸움과 살인, 전쟁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슈나이더가 보기에 전사의 참모습은 만하임박물관에 소장된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 ‘방패를 든 전사’다. 이것은 전쟁 영웅으로 미화된 모습이 아닌, 왼팔과 왼다리, 두 눈이 없는 동상이다. 슈나이더는 평화를 외치면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기대에 대해 ‘순진하다’고 일갈하면서 세상엔 전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군인은 점차 사라지고 무인전투기, 핵폭탄, 해커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듯하나 전쟁은 계속된다는 것이 그 근거다.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책의 4부 26장의 첫 문장이다. 끔찍한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글은 "우리 선조들은 떼 지어 공개 처형장으로 몰려갔고, 독일 시청자들은 매일 저녁 평균 30편의 범죄물에서 30건의 살인을 즐긴다"고 이어진다. 피에 대한 갈구는 인간의 사악한 속성인 셈이다. 26장의 제목은 '피의 도취'. 군인들이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를 설명하는 내용 중 하나다.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피에 취한 군인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류의 역사와 심리를 추적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그(아킬레우스)는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두 손을 피로 물들이며 명성을 얻기 위해 광란의 칼춤을 추었다"고 전한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점령 당시 "(우리 측 병사들은) 분노로 가득 차 여자와 노인, 아이들에게까지 무참히 칼을 휘둘렀다"고 고백한다. 목숨에 대한 경의가 부족했던 고대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하사관은 기관총의 성능을 찬양하며 이렇게 적었다. "적군이 무기력하게 천천히 쓰러지는 모습에서 받은 첫 충격이 지나고 나자 우리는 이 전술에서 놀라운 힘과 기쁨을 느꼈다." 저자는 노벨상 수상자인 엘리아스 카네티의 입을 빌려 "전쟁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은 자들에 대한 이런 야릇한 우월감을 맛본다"고 주장한다.
군인들이 죽어간 이유는 '피의 도취' 말고도 많다. 나폴레옹은 "이제 그대들의 머리 위에 앉아 그대들의 실추된 명예를 세워주기 위해 황제가 왔다"고 역설하며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참전한 군인들은 '개선장군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착각 혹은 거짓말이 군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2003년 3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무장해제해서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세계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으로부터 구하려고 한다는 건 아마 거짓말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모험과 종교, 조국, 복수심, 심지어 게으름과 만족도 군인들 죽음의 이유가 되었다.
1918년 슬픈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한 독일 군인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 속 병사가 전쟁에서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백만명의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간 것은 사실이다. 열린책들 제공
책은 군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힌다. 죽어간 이유는 물론 어떤 무기로 싸웠고, 죽음의 공포에 맞서 전장으로 나아가게 한 힘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군인이 지난 3000년간 인류의 역사에서 영웅이자 희생자였으며 괴물이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추적 끝에 한때 세계사의 주역이던 군인이 이제는 존재감이 희미해진 상태로 전락했다는 저자 시각이다. 군인의 존재 이유였던 전쟁에서 군인이 필요없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인전투기'다. 목표 지점의 9∼15㎞ 상공에서 웅웅거리가 비디오카메라로 적을 포착해 타격하는 이 무기는 군인 없는 전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실 전쟁의 승패가 군인없이 결정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에 결정적 마침표를 찍는 데 필요했던 군인은 단지 3명이었다. 미국은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항복을 받아냈는데, 원폭 투하에 동원된 군인은 3명이었다.
군인과 그들이 수행한 전쟁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이 책이 강조하는 것은 결국 전쟁의 야만과 참혹함이다. 저자는 책 머리에 "전쟁은 순진한 젊은이들에게 인간의 몸 속에 대검을 쑤셔넣는 법을 가르치고, … 우리 속의 개돼지들에게 군침 도는 먹잇감을 던져 준다"고 강조한다. 전쟁에 대규모 병력 동원이 필요없어진 것이 좋은 일이라면서도 "군인이 사라진다고 해서 미래의 전쟁이 없어지거나 덜 끔찍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SF <스타십 트루퍼스> 속 세상 사람들은 시민과 민간인으로 나뉜다. 시민은 참정권을 갖고, 민간인은 갖지 못한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다. 이곳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적이 있는 사람, 즉 군인만이 나라를 움직일 권리를 갖는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군인은 하나의 직업이며, 그다지 인기 있는 직종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3000년간 군인은 의사, 변호사, 경영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 쓴 <군인>은 군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를 살핀다. 아울러 앞으로도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군인이 존재할 것인지 묻는다. 방대한 사례를 통해 “세계사의 큰 동력이자 공포와 경탄, 경악의 대상”인 군인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탐구한다.루소는 인간이 원래 평화로운 존재였다고 봤지만, 저자는 인간이 싸움, 살인, 전쟁을 즐기는 잔인한 존재라고 전제한다. 동족을 사냥하는 생물은 인간과 쥐뿐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1945년까지 인간은 다른 민족, 인종, 종족을 자신과 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타 문화를 경멸하고, 타 종족을 학살하고, 심지어 먹는 행위는 오랜 시간 자연스러웠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저격수 훈련을 받은 한 독일 군인은 “목표 인물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는 순간 그것은 내게 사람이 아니라 임무의 대상일 뿐”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인간 사냥’은 수천년 전부터 존재했기에, ‘전쟁’이란 근대에 들어 이를 국제법적으로 규정한 어휘에 불과하다. 군인도 마찬가지다. 용병, 해적, 유격대원과 군인을 구분하는 선은 모호하다.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나포 허가증’이란 이름의 종이 한 장을 받는 순간, ‘군인’이 됐다. 스페인 선박을 노략질하는 행위는 똑같았는데도 말이다.군인들이 전쟁에 나간 이유는 가지가지다. 성경은 40년간 황야를 방랑한 끝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이르러 신의 이름으로 그곳 사람들을 처단하고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술한다. 1차 대전을 앞두고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조국의 거룩한 땅’을 위해 ‘성스러운 전쟁’을 치르자는 외침이 횡행했다. 때론 특정 인물이 군인의 참전 의지를 북돋웠다. 대표적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폐위된 나폴레옹은 엘바섬에 유배됐다가 탈출해 프랑스 본토에 상륙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온 군인들에게 “병사들이여, 내가 너희 황제다”라고 소리쳤고, 군인들은 마법에 걸린 듯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때론 순전히 ‘진기하고 자극적인 체험’을 위해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참전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밤들…금박으로 찍어 낸 것 같은 커다란 별들이 총총하고, 초승달은 그 밤 한가운데에 등을 대고 누워 황홀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 안전이 보장된 삶에서는 어떤 것도 이렇게 아름답지 않다.”그러나 전쟁에 나간다 해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운 사람은 극소수였다. 근대 들어 징병제가 도입됨에 따라,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나가야 했다. 지휘부는 적에 맞서는 전략을 짜기 이전에, 아군을 싸움터에 나서도록 다그치는 방법을 강구했다. 어수룩한 신병들은 혹독한 훈련, 인격 모독, 구타를 통해 지옥 같은 실전을 미리 체험했다. “군인은 항상 적보다 아군의 대원수를 더 무서워해야 한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내려온 군사 교훈이다. 군인들은 후퇴하면 받을 처벌이 두려워 전진해 싸웠다.그렇게 나가 싸운 군인들은 상상을 초월한 다양한 모습으로 죽어나갔다. 사실 대부분의 전쟁에서 군인들은 적이 아니라 전염병, 벌레, 설사, 오물과 싸우다 죽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2012년 뉴욕타임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군인이 한 명이라면 고향에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25명이었다”고 보도했다. 저자는 말한다. “전몰장병 기념비? 이것들은 모두 가짜다. (…) 모든 전쟁의 군인들은 비참하고 쓸쓸하게, 울부짖고 헛소리를 지르며 죽어 갔다.”이제 전통적인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폭격기 조종사는 무인전투기로, 육군은 전투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지금도 용병, 게릴라, 자살 테러범이 군인을 대신하고 있으며, 한편에선 피 한 방울 없는 사이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군인 시대의 종말’이 ‘전쟁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저자는 전쟁과 군인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인류사를 관통하며 다양한 사례를 항목에 맞게 제시할 뿐이다. 그러나 이 박식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인류는 어리석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냉소와 우울을 느낄 수 있다.<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요원. CIA의 쿠바 침공 작전 실패 후인 1962년 존 F 케네디가 창설한 이 부대는 2011년 5월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며 다시 유명해졌다. 열린책들 제공
'평화란 인간의 자연 상태이고, 인간은 원래 선한데 소유와 거주, 진보 때문에 타락했을 뿐이라는 루소의 비장한 주장은 가소로울 정도로 잘못된 말이다.'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인 볼프 슈나이더가 50년에 걸쳐 군인과 군대에 관한 3,000년 인류역사를 통찰한 결론이다. 쥐와 함께 동족을 사냥하는 유일한 생물인 인간에게, 군인은 인류의 영웅이자 희생자였으며 괴물이었다고 말이다.
군인은 전쟁을 무대로 나타난 존재이기에 군인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와 대부분 겹친다. 저자는 우선, 전쟁은 루소의 저 가소로운 주장과 달리 인간 본연의 야만성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뉴기니 섬의 왈라루아족은 인간과 동물, 이런 식으로 구분한 것이 아니라 왈라루아 족과 비(非)왈라루아 족으로 구분하면서 비왈라주라 족을 동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도 이런 의식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표현이, 기실 자신과 다른 인간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는 뿌리 깊은 배타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1950년대에 동서로 갈라진 서독과 동독이 재무장에 나서자 독일인들이 '독일인이 독일인에게 총을 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은가!'라며 걱정했는데, 그런 말 속에는 독일인이 프랑스인이나 폴란드인, 혹은 러시아인에게 총을 쏜다면 훨씬 덜 끔찍할 거라는 가정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면 동물처럼 사냥할 수 있다. 저자는 구석기 시대부터 최소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까지 무수한 민족이 자신들의 우월의식으로 전쟁을 벌인 증거자료가 '지천에 흘러넘친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인간을 대량살상하는 '인간 사냥'은 7,000년 전 인간의 정착 문화와 함께 시작됐다. 또 다른 전쟁의 한 양상인 일대일 결투는 기원전 1,000년 경 장군 골리앗이 수백만 군인 대신 소년 다윗과 벌인 결투가 기원이다. 이 두 가지 양상은 각각 현대의 총력전과 제한전으로 연결된다.
'군인'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발행·548쪽·2만5,000원
자발적으로건 강제적으로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서는 거짓과 환상이 필요했다. 통치자들은 때론 조국과 종교의 이름을 빌렸고, 군대는 혹독한 훈련과 규율로 이 젊은이들을 쓸만한 군인으로 만들었다. 칭기즈칸은 기마대를 십진법에 따라 분대 10명, 중대 100명, 연대 1,000명, 군단 1만명으로 편성했는데, 한 사람이 도주하면 분대 전체를 처형했고, 승리하기 전에 약탈하는 자도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규율이 채찍이라면, 훈장은 당근 역할을 했다. 군인의 인정에 대한 갈망과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훈장은 죽은 적에 대한 약탈과 신체 절단을 금지한 인류 문화 발전의 산물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알았던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단언한다. 대표적인 근거는 무인 전투기(드론)다. 드론을 운용하는 데는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자로도 충분하다. 적을 찾는 것은 위성항법장치(GPS)와 고성능 레이더이며, 파일럿은 위성 신호를 이용해 드론에 사격 신호를 전달한 뒤 폭탄이 터지는 것을 영상으로 지켜보면 그만이다. 일본에서 20만명을 죽인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데는 군인 세 명만 필요했다. 지구 곳곳에서 터지는 테러를 막는 데 대규모 전투부대는 더 이상 소용 없다.
저자는 그러나 '군인 시대가 끝나도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에도 인간은 갈등을 힘으로 해결하려 들 것이고, 지금보다 더 파괴적이고 복구 불가능한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저자가 내놓은 해법은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말라'는 것. '독일어의 교황'으로 꼽히는 저자의 유려한 문장이 다소 힘 빠지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이다.
각 잡힌 제복을 입고 절도 있게 걷는 군인들은 명예와 용기의 상징이다. 빛나는 훈장과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을 보고 있노라면 존경심이 우러나오고 '영웅'이란 단어도 뇌리에 스친다.
하지만 전장 속 군인의 실체를 보게 되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적군을 호기롭게 죽이고 적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은 군인들은 실제 현장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받는 희생자에 가깝다. 예를 들어 기원전 344년,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넌 군사원정을 보자. 역사상 가장 긴 행군으로 기록되는 이 전쟁은 고통의 대기록이다. 마케도니아 병력 3만5000명은 설산을 넘고 황야지대를 걷다가 돌연 피를 쏟고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군인들은 적병과 싸우는 게 아니라 전염병과 벌레, 설사, 오물과 싸우다가 죽었다.
1945년 독일군 하사관으로 전쟁을 경험한 저자도 참혹한 군인의 실정을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영웅으로 대변된 군인의 이면에는 괴물 혹은 피해자가 공존했고, 이 모순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3000년 역사를 훑으며 군인의 존재를 연구한 그는 빛나는 훈장에 가려진,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고통받은 존재를 발견한다. 이 책은 '군인'이란 존재의 양면성을 객관적으로 통찰한 대기록이다.군인은 인간성까지 '희생'해야 했다. 역사적으로 총사령관의 특성 중 하나는 '남의 고통에 대한 둔감함'이다. 죽음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군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혹독한 훈련과 규율은 인간성 말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칭기즈칸 군대는 한 사람이 도주하면 분대 전체를 처형시키는 규율이 있었다. "군주가 전장에 나갔을 때는 잔인하다는 악평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군인의 신념으로 세뇌받고 자란 군인들은 끝내는 패자를 살해하고 여자를 욕보이는 도살자로 타락하게 됐다. 영웅이 되겠다는 기대와 달리 종국에는 끔찍한 괴물만 남게 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인간이 비극적인 희생을 수반하는 전쟁을 이어가야 하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몬 그 신념과 목적은 거짓과 위선의 언어이지 않았냐는 반문이다. 저자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미국의 이라크 침공,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예로 들면서 전쟁의 정당성을 캐묻는다. 전쟁의 명분마저 거짓이기에 전쟁의 주체인 군인은 최대의 피해자이자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시대에 저자의 문제의식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이제 세상은 무인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군인의 시대는 끝났다. 먼 상공에서 조이스틱을 이용해 15초 뒤 목표물을 파괴하는 무인전투기 '드론'이 군인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군인 없는 사이버 전쟁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군인의 시대가 끝났다고 평화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자원, 환경오염…. 분쟁의 원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저자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이 책은 맹목적인 잔인성에 희생된 군인에 대한 헌사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군인의 존재감을 재조명하며 객관적 탐구를 통해 진정한 영웅비를 세우고자 한다.날카로운 분석과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많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도 첨예한 군사적 대립 속에서 살고 있다. 저자가 포착한 전쟁의 세계는 휴전 중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메시지를 준다.[이선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웅 위주의 전쟁사 지양하고 병사 입장에서 지난 3000년 서술 핵무기·드론·컴퓨터로 싸우는 현대 군인 역할도 예전과 크게 달라져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무렵 전장에 서 있는 무명의 독일 병사.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이 병사가 죽었는지 또 적을 얼마나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런 군인들이 수백만 명 이상 아무 의미 없이 비참하게 죽어간 사실만큼은 분명히 안다”고 적었다. [사진 열린책들]
군인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584쪽, 2만5000원
2001년 여름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무역센터(WTC)를 방문했다. 색색의 대형 펼침막이 커다란 로비에 가득했다. 펼침막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단어 하나가 적혀 있었다. ‘평화’ ‘Peace’ ‘平和’…. 짐작대로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전시회였다.
그런데 석 달 뒤 테러범이 납치한 민간 여객기들이 이 건물에 날아들었다. 주저앉은 건물을 TV로 보며 희생된 숱한 사람을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찢기고 묻혔을 숱한 ‘평화’도 함께 떠올렸다.
인간은 항상 평화를 소망한다.(적어도 그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쟁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있어왔다. 문자가 아예 없던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은 땅과 식량, 물 같은 자원을 둘러싸고 낯선 이들과 싸웠다. 국가가 출현한 청동기시대부터 조국, 장군의 명성, 종교가 전쟁의 명분으로 추가됐다. 시간이 갈수록 전쟁은 더 커지고 잔인해졌다. 그리고 숱한 이들이 군인이란 이름으로 참전했다. 이들 중 극소수는 알렉산더처럼 영웅으로 기억되고, 일부는 히틀러처럼 괴물로 낙인 찍혔다.
이 책이 다루는 건 이런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이름 없이 전장에 나서 대부분은 희생자로 남았던 수많은 군인을 다룬다. 적어도 3000년간 세계사를 얼룩지게 한 전쟁의 역사를 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여기엔 저자인 볼프 슈나이더의 개인사가 큰 역할을 했다. 독일 슈테른 편집장, 디 벨트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위대한 패배자』 『만들어진 승리자들』 같은 책으로 한국 독자에게 제법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고교 시절을 보내고 졸업하자마자 징집돼 무너져가는 ‘제3제국’을 위해 싸워야 했다. 종전 뒤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군인이라는 존재의 혼란스러움이었다. 군인이란 무엇인가, 누가 어떻게 군인이 되는가, 왜 군인은 싸우고 피 흘리고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가. 저자는 이때부터 군인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천착해왔다고 말한다.
책의 절반 이상은 전쟁사 개론이다. 전쟁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떤 무기로 싸웠는지, 이를 촉발한 명분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서술한다. 최초로 전황과 결과가 상세히 기록된 기원전 1274년 카데시 전투부터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동서고금의 다양한 전쟁이 조각보처럼 엮여 있다. 개별 전쟁이 상세히 설명되진 않지만, 전쟁사 교양서로 읽어볼 만하다.
본론은 그 다음이다. 전쟁을 다룬 기존 책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다. 군인을 전장으로 내몰고 싸우게 하는 시스템을 설명한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만드는 혹독한 훈련과 규율, 인간의 허영을 부추기는 훈장과 화려한 제복, 전의를 북돋우는 군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활용됐는지를 말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그는 훈장에 대해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군인의 갈망과 국가가 하찮은 비용으로 만든 다양한 색깔의 작은 쇠붙이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썼다.
군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설명하는 다음 장도 마찬가지다. 군인의 죽음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전세계 참전 기념비의 동상은 허상에 가깝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죽고, 팔다리를 자르고 겨우 살아남은 병사들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 숫자는 나날이 늘어났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따라 나섰던 40만 명 중에서 출발점으로 살아 돌아온 군인은 5000명뿐이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초기에 붙잡힌 소련군 포로 500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죽었다. 소련군에 붙잡힌 독일군 포로 31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강제노역을 하며 굶주림과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군인은 이런 존재였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야만스럽고 참혹한 전쟁에서 영웅보다 희생자로 남는 존재라고 말이다. 더구나 현대전쟁에선 그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핵무기와 무인기(드론), 컴퓨터, 테러리스트, 특수부대가 전통적인 군인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쟁이 덜 비인간적이고 덜 잔인해지는 것도 아니다. 전쟁 자체가 사라질 것도 아니다. 지구는 좁고, 자원은 유한하다.
우울한 결론이다. 전쟁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평화에 감사하는 현충일에 받아들이기에는 더욱 그렇다. 슈나이더의 조언은 이렇다.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마라! 쉰 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맹수에게 찢겨 죽거나, 이웃의 사나운 부족에게 맞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석기시대에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석기시대 선조들보다 극히 적은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그의 조언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독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든다. 순국선열이 늘어나지 않게끔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 그것이 비록 영원한 평화는 아닐지 몰라도 말이다.
* 중앙일보 -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S BOX] 찔리는 게 많은 미국 … “전쟁 범죄 재판소 인정 못해”
전쟁 범죄(war crime)란 제네바 협약이나 국제법에 위배되는 범죄, 특히 군인에 의한 포로나 민간인의 살해와 학대 행위를 의미한다.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는 2003년부터 전쟁 범죄의 규정과 처벌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중국·러시아·이스라엘은 이 재판소를 인정하지 않는다. 『군인』의 저자 슈나이더는 미국이 반대하는 것은 “찔리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꼬집는다.
1945~46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전쟁 범죄 외에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 ‘평화에 반하는 범죄’, 즉 침략전쟁이 함께 기소됐다. 하지만 논란이 많았다. 전쟁이 일어나려면 침략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도 아직 형벌로 규정되지 않은 시절에 저질러진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는 점에서 ‘죄형 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슈나이더는 ‘전쟁 범죄’라는 말 자체에 이미 위험하고 잘못된 전제가 내포돼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 범죄’라고 하면 ‘범죄가 아닌 전쟁’도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전쟁 치고 제네바 협약과 국제법을 완벽하게 지켜가며 진행된 전쟁이 있을까? 혹시 그런 전쟁이 있다면 그 전쟁은 받아들여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