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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노비 출신 시인>어무적(魚無迹)

Bawoo 2015. 7. 2. 23:42

조선 중기 시인. 자는 잠부(潛夫), 호는 낭선(浪仙). 본관은 함종(咸從).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변문(變文)이며, 아버지는 사직(司直) 효량(孝良)이다. 어머니가 관비였으므로 그도 관노가 되었다. 따라서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였고, 한때 서얼에게 주어지는 말직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을 지냈다. .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절간을 지나면서 "청산이 손님이 오시매 예절을 차리어/백운의 갓을 머리에 썼도다"(靑山敬客至頭戴白雲冠)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뛰어난 시재詩才가 있었다. 성종·연산군 때에 벼슬이 높았던 세겸(世謙)과 세공(世恭)과는 재종형제(再從兄弟) 사이다.

1501년(연산군 7)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상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관이 매화나무에까지 세금을 부과해 마을 사람이 그 나무를 베어 버린 사건을 보고 관의 횡포를 풍자한 시 <작매부(斫梅賦)>를 지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자 도망가다가 객사하였다. 이외에도 유민의 고통을 그려낸 <유민탄(流民嘆)> <신력탄(新曆嘆)> 등이 유명하다. 그의 시는 《국조시산(國朝詩刪)》 《속동문선》에 전한다.

 

<작매부(斫梅賦)>

 

世之馨香之君子   (세지형향지군자)      세상에는 향기 내는 좋은 지도자 없고
時務蛇虎之苛法   (시무사호지가법)      지금은 뱀과 호랑이 같은 잔인한 법에만 힘쓴다.
慘已到於伏雌      (참이도어복자 )        참혹함은 이미 숨어사는 꿩에게 이르고
政又酷於童羖      (정우혹어동고)         정치는 뿔 없는 양들에게 더욱 참혹하다.
民飽一盂飯         (민포일우반 )           백성이 한 사발밥에 배부르면
官饞涎而齎怒      (관참연이재노)         관리는 군침을 흘리며 분노를 일으킨다.
民暖一裘衣          (민난일구의 )          백성이 한 벌 솜옷으로 따뜻하면
吏攘臂耳剝肉       (리양비이박육)        아전은 팔을 걷어붙이고 살을 벗긴다.
使余香掩野殍之魂 (사여향엄야표지혼)  나의 향기는 들판에 굶어죽은 영혼을 덮고
花點流民之骨       (화점유민지골)         꽃잎은 떠도는 백성의 백골에 뿌려진다.
傷心知此             (상심지차 )              상심함이 이 지경임을 아는데
寧論憔悴             (녕론초췌 )              어찌 초췌함을 논하겠는가.
奈何田夫無知       (내하전부무지)         어찌 하리오, 농부들이
見辱斧斤             (견욕부근)                도끼날에 치욕을 당함을 알지 못함을
風酸月苦             (풍산월고)                바람도 매섭고 달빛도 괴로우니
誰招斷魂             (수초단혼)                누가 단장의 영혼을 불러주나.
黃金子蘩             (황금자번)                황금 같은 열매는
吏肆其饕             (이사기도)                아전의 창고에 흘러넘친다.
增顆倍徵             (증과배징)                낱알의 수를 늘이고 배로 징수하니
動遭鞭埵             (동조편타)                문득 반항하면 채찍으로 얻어맞는다.
妻怨晝護             (처원주호)                 아내는 원망하여 낮에 울부짖고
兒啼夜守             (아제야수)                 아이들은 울며 밤을 지새운다.
玆皆梅祟             (자개매수)                 이는 모두 매실 때문이니
是爲尤物             (시위우물)                 매실이 더욱 좋은 물건이 되었다.
南山有樗             (남산유저)                  남산에 가죽나무가 있고
北山有櫟             (북산유력)                  북산에 상수리나무가 있도다.
官不之管             (관부지관)                  벼슬아치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吏不之虐             (이부지학)                  아전도 그것은 요구하지도 않는다.
梅反不如             (매반불여)                  매화는 도리어 없는 것만도 못하니
豈辭剪伐             (기사전벌)                  어찌 잘라버림을 거부하리오.

 

[流民嘆]

 

蒼生難蒼生難(창생난창생난) 백성의 어려움이여, 백성의 어려움이여!

年貧爾無食(년빈이무식) 흉년들어 너희들은 먹을 것이 없구나.

我有濟爾心(아유제이심) 나는 너희들을 구제할 마음 있어도

而無濟爾力(이무제이력) 너희들을 구제할 힘이 없도다.

蒼生苦蒼生苦(창생고창생고) 백성의 괴로움이여, 백성의 괴로움이여!

天寒爾無衾(천한이무금) 날씨가 추워도 너희들에게는 덮을 이불이 없구나.

彼有濟爾力(피유제이력) 저들은 너희들을 구제할 힘이 있어도

而無濟爾心(이무제이력) 너희들을 구제할 마음이 없구나.

願回小人腹(원회소인복) 원컨대 소인의 마음(복심)을 돌려서

暫爲君子慮(잠위군자려) 잠시 군자를 위하여 염려를 해보노라.

暫借君子耳(잠차군자이) 잠시 군자의 귀를 빌려

試聽小民語(시청소민어) 백성의 말을 시험 삼아 들어보라.

小民有語君不知(소민유어군부지) 백성이 말을 해도 그대들은 모르고

今歲蒼生皆失所(금세창생개실소) 오늘날 백성들이 모두 살 곳을 잃었구나.

北關雖下憂民詔(북관수하우민조) 대궐에서 임금이 비록 근심하는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도

州縣傳看一虛紙(주현전간일허지) 지방 관청에서 받아보는 것은 헛된 종이 한 조각

特遣京官問民瘼(특견경관문민막) 특별히 서울 관리 보내어 백성의 고통 물으려

馹騎日馳三百里(일기일치삼백이) 역마로 날마다 삼백 리를 달려도

吾民無力出門限(오민무력출문한) 우리 백성들은 기운이 없어 문을 나서는데도 한계가 있다.

何暇面陳心內事(하가면진심내사) 어느 겨를에 면전에서 마음 속 일을 펼쳐내겠소?

縱使一郡一京官(종사일군일경관) 한 고을에 서울 관리 한 사람씩 보내온(둔)다고 해도

京官無耳民無口(경관무이민무구) 서울 관리는 귀가 없고 백성은 입이 없네.

不如喚起汲淮陽(불여환기급회양) 급회양을 불러일으킴만 같지 못하니

未死孑遺猶可求(미사혈유유가구) 죽지 못해 외롭게 남은 백성 오히려 구해봄이 좋겠구나.

 

蒼生-모든 사람, 濟-구제하다, 彼-저들(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 失所-있을(살) 곳을 잃어버렸다. 北關-궁중, 憂民詔-백성을 걱정하는 임금의 조서, 民瘼-백성의 고통, 馹騎-역마(驛馬), 面陳-얼굴 맞대고 펼침(말함), 汲淮陽-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회양태수를 지낸 급암(汲黯).

 

     

- 어무적(魚無迹, ?~?)
「유민탄(流民嘆)」
『속동문선(續東文選)』

 



  이 시를 쓴 어무적은 연산군 때 시인으로, 사직(司直)을 지낸 어효량(魚孝良)과 천비(賤婢)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자로 태어나 국법에 구애되어 과거를 보지 못하였지만, 재주가 뛰어나다는 이름이 있어 후에 면천(免賤)되어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이라는 말직을 지냈습니다.

  이 시에서는 먼저 곤란에 처한 백성이 굶주려 곤궁하고, 헐벗어 고통받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데 대한 무력감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무언가 하고 싶어도 할 만한 힘이 없는데,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할 마음이 없다고 개탄합니다. 중앙에서 백성을 생각한다며 만든 온갖 지시 사항들도 지방에 오는 사이 한낱 쓸모없는 종잇장이 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임금이 백성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이 백성들은 모두 터전을 잃고 뿔뿔이 흩어집니다. 가슴속 가득한 말을 펼 기력조차 없는데, 서울서 내려온 관리는 들을 귀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漢) 나라의 급암은 동해 태수(東海太守)와 회양 태수(淮陽太守)를 거치는 동안 선정(善政)을 베풀었다는데, 이런 지도자를 만나야 아직 죽지 않고 붙어 있는 목숨 구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7년(1501) 7월 28일 기사에는 어무적이 율려습독관으로 있으면서 올린 장문의 상소가 실려 있습니다. 이 상소의 첫머리에, 재앙의 징조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미진한 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며,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새는 줄 아는 자는 밑에 있다.[屋漏在上 知之者在下]’라는 말로 자신이 상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말은 위에서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고스란히 아래에 있는 사람들 몫임을 비유한 것입니다.

  어무적은 상소에서 몇 가지 조목들을 나열해 폐단을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첫째는 큰 근본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주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해야 천리(天理)가 이기고 인욕(人欲)이 사라져 군자가 가까이 오고 소인(小人)이 멀어지며, 아첨하는 사람이 간사(奸邪)함을 부릴 수가 없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선비들의 기개(氣槪)를 기르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선비들의 기개를 진작시키는 길은 언로(言路)를 크게 틔워서 어진 이를 끌어올리고 부정(不正)한 사람을 물리치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무적은 이밖에도 사대부들의 잔치 때에 노래하고 춤추는 여악(女樂)의 사치하는 폐단을 없애 공검(恭儉)한 교화(敎化)를 펼칠 것, 곡식을 축내는 술[酒]을 금지할 것, 이단을 금하는 법을 세울 것, 성(城)을 쌓는 것 같은 큰 역사(役事)를 일으키지 말 것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조선 중기 어무적이 지적한 병폐들이 오늘날의 병폐와 겹치면서 시대가 달라도 문제의 원인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민의 생명과 윤리는 뒷전이 되고 권력과 이윤만이 판을 치는 사회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믿으면 속는 것이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떠돌이 백성마냥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구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구할 힘이 없는데, 구할 힘이 있는 사람들은 구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할 뿐입니다.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출처: 정보-"책"조선노비열전조선노비열전/ 수집-검색자료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