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戰後 출생 작가

홍희담- 깃발

Bawoo 2015. 8. 24. 23:31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7: 변혁과 미완의 출발

 

광주 5.18사건을 시민군 입장에서 쓴 작품.

방직공장 여공인 순분과 형자가 중심화자가 되어 5.18이후 도청에 이르기까지 열흘 동안의 일을 다큐 형식으로 보여준다. 시내 각처에서 일어난 공수부대의 시민학살, 항쟁의 과정에서 수습위원회의 강온 대립, 도청에서의 최후의 항쟁 장면등을 각자의 목격한 정면과 체험을 통해서. 시민군에 참여한 계층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 제시를 통해 시민군의 대다수가 소외받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임도 보여준다. 해설을 쓴 작가 황석영님의 글에 따르면 이 작품을 쓴 홍희담이라는 분은 실제 광주항쟁에 참여했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실제 인물이 대다수라고 한다. 작품 내용 중에 나오는 미국에 대한 시각등이 너무 단편적인 느낌은 있으나 작품의 분량상 생략이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과 신군부에 대하여 항쟁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견해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소위 세상을 지배하는 부류들의 속내와 이에 따른 행동은  평범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과정-상상을 초월하는- 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 단순한 사고 방식이 아닌가 싶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행동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그런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힘을 갖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방관한 대다수 사람들보다는 직접 행동에 나선 이들이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고 그런 그들이 있어 조금이나마 역사의 흐름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그런 이들을 생각키우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쟁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어둡기만 한   그들의 삶은 보상 받을 길은 없는 것이 내내 마음이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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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의 풍경] <11> 홍희담의 '깃발'홍희담(61)의 중편소설 '깃발'은 1988년 '창작과 비평' 봄호(복간호)에 발표되었다. '깃발'은 작가가 2003년 창비사에서 낸 소설집의 표제가 되기도 했다. 과작의 늦깎이 작가라는 사정도 겹쳐서, 그 뒤 이 작품은 소설가 홍희담의 브랜드가 되었다. '깃발'이 그리는 것은 1980년 봄에서 가을까지의 광주다. 세 장(章)으로 이뤄진 이 소설의 앞 두 장은 5월18일에서 27일까지의 민중항쟁을 엿보고 있고, 마지막 장은 살아남은 자들의 여름과 가을에 눈길을 건넨다.

'깃발'은 첨예하게 당파적인, 뾰족이 벼려진 계급의식의 언어다. 항쟁의 보고자로서, 작가가 두둔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를 비롯한 하층 계급이고 그가 타박하는 사람들은 지식분자들이다. 지식분자들은, 작가가 보기에, 미덥지 않은 기회주의자이기 십상이다. 지식분자들이 기회주의자가 되기 쉬운 것은 그들에게 가진 것이 있기 때문이다.

"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사람을 잘 기억해 둬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지 알게 될거야"

'88년 시각' 한계 불구 작품으로 움켜쥔 진실… 항쟁의 주체는 바로'프롤레타리아' 라는 것을…


학생 출신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도 그래서 곱지만은 않다. 항쟁 이전의 광주 지역 노동운동을 엿살피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현장에 들어온) 여대생들은 (쫓겨나도) 그들 세계로 갈 곳이 있었지만 쫓겨난 근로자들은 갈 곳도 없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어느 곳에도 취업할 수가 없었다."

소설 속의 긍정적 인물들을 대표하는 이는 제사(製絲)공장 노동자 형자고, 부정적 인물들을 대표하는 이는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강학(야학 교사) 윤강일이다. 진압군이 광주 시내로 다시 진입하기 하루 전인 26일 저녁어스름에 형자가 후배 노동자 순분과 나누는 대화는 이 소설의 세계관을 압축하고 있다.

이 두 여성노동자는 금남로의 전남도청과 분수대 사이에 서 있다. 말 없이 주변 사물들 하나하나에 시선을 건네는 형자에게 순분이 묻는다. "언니, 뭘 생각해?" 형자는 낮은 신음소리를 낸 뒤 "분수대 앞과 와이더블류씨에이, 그리고 도청"이라고 대답한다.

당연히, 순분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자 형자가 다시 말을 잇는다. "순분아 생각해봐.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의 선택을. 분수대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야. 와이더블류씨에이는 언제든지 선택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그리고 도청은…" 순분이 다급히 묻는다.

"도청은?" 형자는 도청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한다. "도청은 죽음을 결단하는 사람들의 것이야.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것이지." 형자는 제 죽음을 당위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날 밤 도청에 남는다. 그녀에게 자유는 "무한히 열려 있는 가능성 앞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분명한 당위"를 뜻했다. 하나의 상황 앞엔 하나의 결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윤강일은 운동권 지도부에 속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은 혁명, 비지(부르주아), 피티(프롤레타리아), 전사(戰士), 빨치산, 무장투쟁, 계급투쟁, 시가전, 유격전, 죽창, 게릴라, 봉기, 제국주의, 자본주의, 주변부자본주의, 종속이론, 해방신학, 제3세계, 민중, 프랑스혁명, 빠리꼼뮨, 러시아혁명, 레닌, 볼셰비키, 베트남, 통일 따위의 '매력적인' 언어다. 그는 항쟁 초기, 시위대를 선동해 MBC 건물을 불태운다.

그러나 진압군이 발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어차피 지는 싸움"이라며 광주를 떠난다. 형자는 분노에 차 항의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선생님들이 말하던 시가전, 봉기 등등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게 지식분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가진 것 없는 자들이 채웠다. 진압 전날 밤 떠밀려 도청을 빠져나온 순분의 회상 속에서, 그 밤 도청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말없이 눈만 번쩍이던 사람, 턱에 칼자국이 있던 사람, 거친 욕을 끊임없이 해대던 사람, 몸집은 작은데 손이 유난히 컸던 사람, 밥을 먹으면서도 총만은 거머쥐고 있던 사람, 해맑은 어린 사람, 사람들"이다.

소설 도입부에서 순분을 도청까지 자전거로 태워준 중국집 배달원 김두칠이나, 순분에게 유언처럼 계급의식을 불어넣은 형자를 포함해, 그들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다.

모두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순분은 형자의 유언을 잊지 않는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을 잘 기억해둬.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가는가를… 그것은 곧 너희들의 힘이 될 거야."

작가는 소설 뒷부분에서, 서울로 피신했던 윤강일이 광주에 돌아와 순분과 그 동료들에게 제 몸을 의탁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지식분자의 기생적 성격과 민중의 너른 품을 다시 한 번 맞세운다. 戮岾?겪은 순분과 그 동료들은 이제 윤강일에게 예전의 고분고분한 '제자'가 아니다.

윤강일이 제 동료 상원(아마 항쟁 마지막 밤 도청에서 산화한 실존인물 윤상원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의 죽음을 내세우자, 순분은 "죽음조차도 윤선생님 쪽의 사람만 부상하는군요"라며 타박한다. 윤강일이 아무래도 자기는 이 도시를 떠나야 할 것 같다며 "커다란 획이 확 그려지고 지나갔어"라고 하자, 순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라고 되받는다.

순분의 한 동료도 "난 노동자라는 게 자랑스러워"라고 고백한다. 윤강일이 잠든 뒤, 순분이 동료들에게 말한다. "시작이야. 없는 사람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투쟁을 했어. 그렇다면 5월은 진짜 투쟁의 시작이야. 그 연장 위에서 우리의 투쟁목표는 분명해졌어."

순분의 말대로 5월은 진짜 투쟁의 시작이었다. 소설 바깥에서 진행된 실제 역사에서, 80년대의 모든 운동은 그 해 5월에서 자양분을 얻었다. 그러나, 아니 차라리 그렇기 때문에, '깃발'의 리얼리즘은 허약해 보인다. 이 소설은 80년 5월에 대한 사실적 묘사라기보다 (소설이 발표된) 88년의 시각(한국 민주주의가 새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고,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는 아직 건재하던 때의 시각)이 짙게 투사된 낭만적 전망에 가깝다.

'깃발'이 80년 5월의 언어가 아니라 88년의 언어라는 것은 작품 군데군데서 드러나는 '시대착오'에서도 확인된다. 소설은 도청 주변 담벽에 울긋불긋 붙어 있는 플래카드를 나열하며 "광주 꼼뮨 만세"라는 구호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또 형자가 5월 광주를 "해방구(解放區)이지만 고립된 해방구"라고 규정하는 장면도 보인다.

그러나 '꼼뮨'이라거나 '해방구'라는 말은, 비록 사회정치 운동의 역사에서 유래가 오랜 말이긴 하나, 남한 운동권에선 80년 5월 이후에야 쓰이기 시작한 것 아닌가 싶다. 자신의 문자 행위로 민중의 희망을 조직하겠다는 작가의 조바심이 이런 착오를 용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트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깃발'은 화장기 없는 언어로 80년 5월의 한복판을 거칠게 질주하며 이 역사적 사건의 한 진실을 움켜쥐었다. 그 진실이란, 비록 5월 항쟁이 내건 목표가 소박한 시민민주주의의 확보였다 하더라도, 그 항쟁의 주체는 (지식인을 포함한 시민 일반이었다기보다) 프롤레타리아였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투쟁했고 역사를 만들어갔다." 작가는 자전거로 출근하는 한 노동자의 형상에서 이들이 만들어갈 역사의 '깃발'을 본다. 그것을 묘사한 소설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뒤쪽에 도시락 가방이 꽁꽁 묶여 있었다. 그가 힘껏 페달을 밟았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려갔다. 증기기관차의 김처럼 입김을 씩씩 뿜어내며 힘차게 달려갔다.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작업복 자락이 펄럭였다. 점점 멀어지면서 새벽 여명 속에 옷자락의 펄럭임만이 보였다. 수없는 펄럭임이었다. 그것은 깃발이었다."

▲ '코뮌'에 대하여

1980년 5월항쟁 이후, 항쟁 당시 광주의 의사(擬似) 자치체계를 '광주 코뮌'('광주 꼼뮨')이라고 부르는 일이 더러 있었다. 1871년 3월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수립돼 그 해 5월27일 무너진 파리 코뮌에 빗댄 것이다.

어원적으로 그저 '공동체'의 뜻을 지닌 프랑스어 코뮌(commune)은 중세엔 도시 공동체나 자유도시를 가리켰고 오늘날엔 우리의 시(市)나 군(郡)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행정 단위지만,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서 '민중 봉기로 제한적 지역에 수립된 혁명 정권'이라는 특별한 뜻을 덤으로 얻었다. 18세기 말 대혁명 당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 용법은 1871년의 파리 코뮌을 거치며 깊이 뿌리내렸다.

1871년의 파리 코뮌은 역사상 첫 프롤레타리아 정권으로 꼽힌다.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져 나폴레옹3세의 제2제정이 무너지자 파리 노동자들은 일제히 봉기해 이 혁명 정권을 수립했다. 베르사유의 정부군이 파리로 진입해 노동자들과 시가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 그 해 5월21일이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노동자 정권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계절의 상상력을 자극해, 광주의 5월을 파리 코뮌과 포개고 싶은 유혹을 더 키웠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 5월에 시민들이 무장한 것은 군부의 발포에 따른 반사적-수동적 대응이었고 항쟁 주체들에게 정권 수립 의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광주 항쟁을 코뮌이라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역사적으로 '광주 코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27년 중국공산당 광둥성(廣東省) 위원회의 지도로 봉기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그 성도(省都) 광저우(廣州: 1980년 항쟁의 무대였던 광주시와는 한자가 다르고, 경기도 광주시와 한자가 같다)에 수립한 인민정권이 그것이다.

광저우 코뮌(또는 광둥 코뮌) 역시 파리 코뮌을 본떠 붙인 이름인데, 혁명 정권을 수립하겠다는 의지가 개입된 민중봉기였다는 점에서 합당?명칭이라 할 수 있다. 그 해 12월11일 수립된 광저우코뮌은 군벌과 외세의 개입으로 7,000여 구의 주검을 남긴 채 사흘 만에 무너졌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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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깃발을 읽고 -이경임 발췌 <cafe.daum.net/nsbook/C5gi/113   내서마을도서관>


핵심정리

* 갈래: 중편소설

*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 배경: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 주제: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민주화 운동의 참모습

 

  등장인물

* 순분: 방직 공장 여직공. 들불 야학에 다님.

* 형자: 여성 노동자. 노동자의 힘이 혁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철저한 계급 의식의 소유자.

* 윤강일: 야학당의 강사. 광주 지역 운동권의 핵심 인물. 지하로 숨는 나약한 관념의 소유자.

 

  책소개

신군부의 수장이었던 전두환씨가 "돈이 없다"며 국가의 추징금 환수를 정면에서 거부하는 오늘날, 아직도 80년 광주는 '현재진행형'임을 본다. 이때 홍희담씨의 첫 소설집을 읽는 것은 역사의 무상함 혹은 비정함을 일깨워준다. 작가는 1988년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 화제작 「깃발」을 발표하여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깃발」에서 그려지는 지식인의 모습은 "무기 반납"을 하자거나, "대게 학생놈들"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있는 이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못 배운 이들'이었다. 그들은 말한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을 잘 기억해둬. 어떤 사람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쓰는지."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원죄에 가까운 죄의식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사람다운 사람은 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수배되어 사라진 도시에서 남은 사람들은 조금씩 숨을 내쉬며 살아나갔다. 이 도시에선 어떠한 투쟁도 만족의 끝이 없었고 망월묘역과 연관되지 않은 어떠한 삶의 양식도 모두 빛바랜 활동사진과 같았다"고. 그때 광주의 모습과 그 이후의 삶을 '무산계급'과 '여성'의 입장에서 풀어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1988년 발표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 첫 작품으로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화제작 「깃발」의 작가 홍희담의 첫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홍희담은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깃발」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송백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하여 개인 속에 각인된 역사적 기억과 5·18의 원체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헤치는 작품을 써왔다. 한편 이번 소설집의 표지 그림과 사진은 작가와 광주에서 함께 활동했던 화가 홍성담이 맡아주었다.

 

주지하듯이「깃발」은 계급적 관점과 반제국주의적 시각에 기반하여 5·18광주항쟁을 그려내어 동시대를 뜨겁게 달구었고 한 시대의 문학적 상징으로 자리잡았다.「깃발」은 엄청난 규모의 폭력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던 사람들이 죽어간 '오월 광주'의 진실과 1980년대라는 시대적 형상을 작품 속에 날카롭게 새겨놓았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형상화로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항쟁의 최후결전기를 본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데 있다. 작품 속에는 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던 사람들 대부분이 지식인계층이 아니라 형자처럼 못 배운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학평론가 임규찬이 지적하였듯이 "학생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 주도의 초기국면에서 민중 주도로 넘어가는 항쟁의 실제적 변화과정을 노동자의 눈으로 침통하게 묘파"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재해석"해낸 것이다.

 

  줄거리

광주 항쟁이 한창이던 5월 24일, 딸기 행상을 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어머니는, 도시를 빠져나간 사람들이 부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빠져나가더라고 순분에게 말해 주었다. 순분은 도청으로 갔다. 도청으로 가던 도중, 순분은 우연히 어떤 청년의 자전거를 얻어 타게 되었는데, 그 청년은 자기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고 하면서 무기를 자진 반납하고 사태를 정리하려는 학생들의 주장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싸움에서 자신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순분에게 신이 나서 들려준다.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순분은 자신이 목격한 학살 장면을 떠올렸다. 그것은 5월 18일, 공용 버스 터미널에서 갑자기 나타난 얼룩무늬 군복의 군인들이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던 장면이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개머리판과 진압봉을 휘둘렀다. 대검에 난자당한 사람들을 트럭에 싣고 어디론지 사라져 갔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넋을 잃고 있었다. 이를 목격한 순분도 이틀 동안 분노와 공포 속에서 앓아 누워야 했다.

그런데 스스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던 순분은 지금 낯선 청년의 자전거에 실려 가고 있는 자신을 보니 이 도시 전체의 사람들이 어떤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도청에서 내린 순분은 야학 친구인 형자와 미숙 등과 함께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중에서 형자가 들려준 윤강일에 대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윤강일은 야학 선생으로 소위 운동권 지도부에 소속된 인물이었다. 줄곧 투쟁의 선봉에 서서 활동하던 그가 발포가 시작된 5월 21일을 기해서 피신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지는 싸움이므로 싸우다 죽는 것보다는 후퇴하여 다시 전략을 세운다고 했다는 것이다. 형자는 정작 앞장서서 싸워야 할 사람이 전투가 벌어지자 달아난 윤강일의 태도에 분개했다. 그리고 끝까지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지식인들의 행위를 비난했다. 특히, 학생 출신 운동권의 관념적인 급진주의와 기회주의에 대하여 심한 반감을 표시했다. 투쟁에 참가하기 위해서 순분은 야학을 나와 도청에 온 것이다. 도청에서는 온건파와 강경파의 의견이 충돌되고 있었다. 무기를 반납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이었다. 회의는 결국 결렬되고 강경파만 남은 자리에서, 우리끼리라도 지도부를 만들자는 한 남자의 제의를 듣고, 조직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인 순분은 '지도부'란 말 자체에 심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분개한다. 5월 26일이 되자 비상령이 떨어지고 순분과 형자는 투쟁 임무를 수행하던 중, 시내에서 미국 항공 모함이 광주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부산에 정박해 있다는 대자보를 보게 된다. 이를 본 대다수의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나이가 많이 든 할아버지 한 분은 큰 나라를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면서 6 25의 체험을 들려준다.

드디어 계엄군이 진격해 온다는 무전이 떨어지고 도청에서는 끝까지 사수할 사람과 나갈 사람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순분과 영순은 끝까지 남겠다고 했으나, 살아서 이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며 설득하는 바람에 도청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한 계엄군에 의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광주 항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항쟁을 오도하는 거짓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순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삶을 재개하면서 분노를 비겁한 동료들을 증오하는데서 삭인다. 또, 항쟁 당시 부상자와 구속자를 분류해 본 결과, 무산자 계급인 노동자 계층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분노한다.

어느 날, 순분은 지하로 대피한 윤강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오랜 도피 생활로 몹시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순분과 친구들은 윤강일의 주머니돈을 털어 머리맡에다 두고 나왔다. 그리고 출근하는 근로자들의 옷깃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 마치 무수한 깃발들이 펄럭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방직공장 여직공인 순분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광주항쟁을 계급투쟁적 성격으로 접근해, 지식인 계급의 비겁성과 노동자 계급의 진실성을 대비시키는 갈등구조로 다룬 점에서 주목받는다. 특히 시간의 경과에 따른 항쟁의 진행모습과 그 중심에 있던 사람들의 양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시킨 점에서 광주항쟁을 다룬 기존의 소설들과 차별성을 지닌 작품으로서 5월문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지식인은 나약하고 관념적이며, 노동자는 의식이 투철한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켜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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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깃발」이 실리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송백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하여 개인 속에 각인된 역사적 기억과 5·18의 원체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헤치는 작품을 써왔다.

성장한 민중세력의 '각성된 눈'을 통해 객관적인 거리를 갖고 쓰인 광주 소재 소설의 진전된 면모는 1988년 발표된 홍희담의[깃발]에서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계급적인 시각에서 광주항쟁을 해석해 보인 이 소설은 건강한 민중과 낙관적 미래를 보여주는 노동소설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여성 노동자의 일상적 삶에 대한 생생한 기록, 노동자 중심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강렬한 지향성, 1980년대 후반에 타올랐던 노동운동의 조직적 전개에 대한 낙관적 진단을 담아낸 이 소설은 노동문학이 이루어낸 뛰어난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