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생(康生, 1898년~1975년)은 중국 첩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공산당 스파이 두목이다. 중국 山東의 부유한 지주집안 출신인 강생의 본명은 장숙평(張叔平)이다.
1925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상해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지하운동에 종사했다. 1931년 중앙당 조직부장으로 임명됐고, 이후 공산당 보안과 정보조직의 수장이 됐다.
강생은 중국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뒤 이 자격으로 스탈린의 초청을 받아 소련에서 KGB 첩보원 훈련을 받았다. 소련 체류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첩보원 출신인 그는 사람에 대한 날카로운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같은 공산주의를 공유했던 소련 사람들이 겉으로 주장하는 것과 달리 중국 공산당의 열렬한 후원자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택동과 각별한 사이였던 강생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모택동에게 알렸다.
국제첩보전 전문가인 어니스트 볼크먼(Ernest Volkman)에 따르면 모택동은 강생의 말을 듣고 이때부터 소련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됐으며, 이것이 훗날 中蘇 분열의 도화선이 됐다고 한다.
강생은 소련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수하의 첩보원들을 풀어 KGB가 모택동과 그 밖에 다른 중국의 지도자들을 염탐하기 위해 중국 내에서 전개하고 있던 활발한 정보원 포섭공작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강생은 소련에서 귀국한 뒤 중국 내 미국 정보기관, 그 중에서도 OSS(CIA의 前身)에 침투하기 위해 활발한 공작을 벌였다. 강생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원 한 명을 부리고 있었고, 그는 OSS의 고위간부로부터 미국 정보기관의 활동 소식을 강생에게 전해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原子폭탄을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였다. 비상한 두뇌를 가졌던 강생은 이 정보를 소련 정보기관에 알리지 않고 독자적인 계획을 준비했다.
그는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계 과학자들, 그 중에서도 핵물리학에 관련되어 있는 인물들을 포섭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는 이들 중국계 과학자들 가운데 두 명의 과학자를 포섭, 중국으로 귀국시켰다.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중국은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했다(1. hong-Pin Lin,《China‘s Nuclear Weapons Strategy: Tradition within Evolution》, Lexington Books Spies 2. Ernest Volkman,《The Secret Agents Who Changed the Course of History》)
강생은 모택동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70년대 초 癌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도 1974년에는 黨부주석에 취임하고, 黨서열 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후 주은래와 등소평을 겨눈 음모적 활동을 준비하던 중 1975년 암으로 사망했다. 참고로 강생은 1938년 조선인 공산주의자 김산(金山)을 비밀리에 처형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자료 출처: 정보-책 30쪽 프롤로그/ 수집-조갑제닷컴
'♣ 역사(歷史) 마당 ♣ > < 중국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나라 현종 때 간신>이임보( Li Linfu , 李林甫 ) (0) | 2015.09.27 |
---|---|
<고사성어>명모호치( 明眸皓齒 , 明眸皓齿 , míng móu hào chǐ ) (0) | 2015.09.27 |
< 대만> 일제 강점기 일본 총독부 구성 (0) | 2015.09.13 |
<월(越)나라 정치인> 계연(計然) (0) | 2015.08.26 |
<명말,청초 사상가>왕부지(王夫之) (0) | 2015.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