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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들- 신문 칼럼 및 기사 모음

Bawoo 2015. 9. 30. 11:21

헬조선과 지옥불반도를 어쩔 셈인가

 

사이버 공간에 ‘헬조선’(Hell·지옥+조선)과 ‘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라는 자극적인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는 10대에 입시, 20대에 취업, 30대에는 주거·결혼 전쟁을 겪는다. 발버둥 쳐도 ‘루저’ 신세와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날 수 없다. ‘헬조선’ 신드롬은 경제적 약자의 아픔을 그저 “‘노오력’이 부족해”라고 외면하는 불통의 현실에 대한 야유이자 집단 반란이다.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고 부(富)의 순환에 장애가 발생했다. 전 지구적 현상이다. 부자의 지갑에 들어간 돈은 좀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흘러가지 않는다. 정작 돈을 써야 할 다수는 빈털터리가 되고, 기업은 물건이 안 팔려 만성적 불황이라고 아우성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단단히 고장 나 약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수출 대기업의 직원이나 공무원, 부모를 잘 만난 소수를 제외하고는 늘 불안하다. 빚을 내서 빵가게와 치킨집 사장이 됐지만 절반은 3년을 못 버틴다. 뼈 빠지게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태반이다. 자영업자는 평균 1억2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이 무너지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이 휘청거릴 판이다. 젊은 세대의 좌절이 출발선의 고통이라면 자영업자의 몰락은 종착역의 비명이다.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적고 있다. 무분별한 사적 이익의 추구가 아닌 공적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공화주의(共和主義) 정신이다. 헌법이 명령한 공화의 가치를 국가가 걷어차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 이유가 없다. ‘헬조선’은 지금 공화의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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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만다행인 것은 세계 자본주의의 우등생들이 깨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유력 차기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포용적 자본주의(inclusive capitalism)를 기치로 내걸었다. 함께 잘살자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힐러리 캠프에 참여한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의 작품이다. 그는 “성장의 과실을 공유한 사회가 성공했다는 것은 역사적 교훈”이라며 “중산층이 무너지면 기업도 이익 창출 기회가 줄어들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힐러리는 내친김에 얼마 전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한 이익공유제 확대를 공약했다.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노동자에게 배분하는 제도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조사에 따르면 1948~73년 생산성과 시간당 임금상승률은 각각 97%와 91%로 비슷했다. 하지만 1973~2011년에는 생산성은 94% 증가했는데 시간당 임금은 9%만 올랐다. 중산층의 임금이 38년간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익공유제는 이걸 바로잡겠다는 제도다. 노동자들의 성과에 따라 이익을 나누는 제도여서 생산성 향상을 유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4년 전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안했다.

 세계의 유력 기업인들도 뜻을 함께했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는 ‘포용적 자본주의 회의’라는 특별한 모임이 있었다. 37개국 저명인사와 기업인 등 250명이 참여했다. 폴 폴만 유니레버 최고경영자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위협받고 있다. 세상의 광기를 막고, 자기 이익보다는 대의를 우선해야 한다”며 “기업, 정부와 금융이 새로운 윤리적 성장 틀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관리하는 자산은 전 세계 투자 가능 자산의 3분의 1인 30조 달러 규모였다.

 미국의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을 포함한 많은 부자들은 “내게서 세금을 더 거둬 달라(Tax me more)”고 요청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불평등과 빈곤이 악화되고 있으며 포용적 성장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탐욕을 절제하고 함께 살자는 시민적 합의가 지구촌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사흘 전 유엔 연설에서 ‘포용적 제도’에 대해 언급했다. 새마을운동을 예로 들면서 “도시와 농촌의 상호보완적인 발전을 이끌면서, 급속한 산업화가 가져다준 폐해를 완충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50년대 이래 교육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면서 “양질의 교육이 좋은 일자리와 포용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고 정리했다. 맞는 말이다. 최빈국 처지임에도 초등교육을 의무화해 문맹률을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낮춘 이승만,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 살리기에 나선 박정희의 결단은 함께 잘사는 사회를 지향한 것이었다.

 이젠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지에 대해서 듣고 싶다.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헬조선’과 ‘노오력’에 지친 약자를 보듬고 공화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도대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중앙일보 - 이하경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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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저주의 어두운 그늘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는 국가별 삶의 질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권위 있는 국제통계다. 1인당 국민소득, 기대수명, 교육기간 같은 경제 및 사회 지표를 종합해 각국의 선진화 정도를 평가한다. 한국의 작년 HDI 순위는 세계 187개국 중 15위로 47개국이 포함되는 ‘최상위권’에 속한다. 일본은 17위, 중국은 91위였다.

얼마 전부터 신문, 방송, 인터넷에서 ‘헬조선’이란 얄궂은 단어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지옥을 뜻하는 영어 헬(hell)과 조선을 합성해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동의어 격인 지옥불 반도, 개한민국, 망한민국 같은 말 역시 음습하고 저질이다.


바깥 세상에 대한 無知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을 유난히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일반적인 현상이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젊은이들이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진 현실도 안타깝다. 하지만 아무리 답답하더라도 ‘지옥’ 운운하면서 한국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식(式) 인식이다. 헬조선이라는 저주가 현실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넘어 특정 세력의 악의적 낙인찍기나 선동과 무관한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헬조선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섬뜩한 문구(文句)가 눈에 띈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는 이달 초 동아일보 칼럼에서 내전과 빈곤의 고통을 피해 유럽을 향해 필사적 탈출을 하는 중동과 아프리카인들의 고통을 다뤘다. 박 교수는 “헬이란 이런 데에 쓰는 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한국을 비하하며 즐겨 쓴다는 헬조선은 결국 바깥 세상에 대한 무지(無知)의 소산이나 다름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굳이 한반도에서 헬조선에 어울리는 곳을 찾으라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표방하면서도 민주주의도, 인민도, 공화국도 없는 ‘빈곤, 공포, 죽음의 땅’ 북한일 것이다.

취업난에 힘들어하긴 하지만 정치적 민주화 이후 일자리 찾기가 더 어려워진 현실의 본질적 원인을 물으면서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청춘도 많다. 구미 선진국은 물론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의 깃발을 내리지 않은 중국보다 시장과 기업, 경쟁과 개방에 더 적대적인 한국의 전반적인 풍토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당신은 행복한 삶을 당연히 누려야 하는데 사회나 국가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는 일부 지식인의 사이비 힐링론(論)에 넘어가는 것은 금물이다. 일본의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남겼다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다’는 말이 인생의 본질에 더 가깝다.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기업 직원, 공무원과 교사 같은 일자리를 무한정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점도 냉엄한 현실이다.


사이비 힐링 주장을 경계하라

지구상에는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저소득층이 전 세계 인구의 70%인 40억 명에 이른다. 자신을 우리 사회의 비주류였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남정욱 숭실대 겸임교수는 ‘차라리 죽지 그래’라는 도발적 제목의 책에서 “현재의 당신이 아무리 최악이라도 그들보다는 최소한 70배는 낫다”면서 “절대 핑계대지 말고 절대 좌절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물론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절망하는 백수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할 책무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제3세계 국민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코웃음을 칠 황당무계한 헬조선 선동에 휘둘릴 일은 아니다.

*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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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일해도 제자리" 해외로 떠나는 '코리아 난민'-[한국에 미래 없다? 코리아 난민①]노동강도 높지만 '삶의 질' 나빠…무너진 계층사다리·사회관계망도 원인

 

 #A씨(37)는 10여년전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까지 했으나,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에 시달렸고 월급은 2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불안한 미래는 A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열심히 일해도, 비싼 집값을 고려하면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행복한 삶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A씨는 미련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A씨는 한인이 운영하는 중소 규모의 회사를 거쳐 현재 뉴욕의 한 IT 회사에 취직했다. 오후 5시면 직원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 밤 늦게 이어지는 회식은 없었다.

집 걱정도 덜했다. A씨는 월세 100만원의 아파트를 친구와 나눠 쓰고 있다. 월 400만원의 소득을 고려하면, 주택비가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부지런히 일한 만큼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부모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을 권하지만, A씨는 당장 그럴 계획이 없다. A씨는 "예전처럼 박봉에, 쉬는 시간 없이 일할 것 생각하면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며 "똑같이 일해도 한국에선 절대 이렇게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전직 물리치료사 박모씨(31)는 지난해 4월 호주로 떠났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 병원에서 근무했으나 비전이 없다고 판단, 퇴직하고 호주 생활을 시작한 것.

열악한 근무조건은 박씨를 지치게 했다. 박봉에 밤낮 없이 일하는데, 고용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직업에 대한 편견도 박씨의 호주행을 부추겼다. 박씨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현실은 다르다"며 "물리치료사가 단순히 마사지하는 직업으로 여겨지고, 심지어 '의사 보조'라는 얘기도 있었다"고 한숨지었다.

호주에서는 최저임금이 한국의 2.5배에 달해 아르바이트만 해도 대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박씨는 "유학 생활을 통해 물리치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쌓고 싶다"며 "영주권을 취득해 호주에서 생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각국에서 난민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고된 직장생활에 지쳐 한국을 떠나는 '코리아 난민'이 늘어나고 있다.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등 열악한 근무 환경과 열심히 일해도 향후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불안 속에서 이같은 선택을 한다는 분석이다.

29일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7월까지 한국 국적포기자 수는 모두 5만2093명으로 한해 평균 1만9000명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죽어라 일해도 제자리" 해외로 떠나는 '코리아 난민'
/그래픽=최헌정 디자이너
이들 중 72%(3만7682명)가 북미 지역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2만9168명)이 1위를 기록했고, 캐나다(8514명), 중국(6095명), 일본(3238명) 순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은 2만9506명이었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취득한 사람의 2배 가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지표로 보인다.

'탈(脫) 한국'의 원인은 비단 물질적 성취의 한계 뿐만이 아니다. 삶의 '만족도'로 대표되는 각종 비물질적 가치의 빈곤 역시 한국 탈출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 9월호에 게재된 'OECD BLI(Better Life Index) 지표를 통해 본 한국의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소득과 자산, 직업과 소득, 주거 등으로 평가하는 물질적 삶의 측정영역에서는 36개(OECD 34개국+브라질·러시아) 국가 중 20위였다. 반면 건강상태, 일과 삶의 조화, 교육과 기술, 사회적 관계 등 비물질적 가치를 포함한 삶의 질은 이보다 9계단 낮은 29위에 머물렀다.

이는 물질적 삶의 조건에 비해 정신적 삶의 질이 우위를 보이는 복지 선진국과 반대 양상의 결과다. 세부적으로 사적지원관계망 순위는 1년 전의 34위에서 조사 대상 중 최하위인 36위로 떨어졌고, 11점 척도(0∼10점)로 구성된 삶의 만족도 점수도 지난해 6.0점에서 올해 5.8점으로 하락, 25위에서 29위로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삶의 질이 중요한 가치로 꼽히면서 청년 세대들을 중심으로 한국을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해도 향후 삶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일명 '계층 사다리'의 붕괴현상은 이같은 현상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OECD 가입국 중 한국은 노동시간이 가장 길지만 고용은 불안하고, 주택비, 사교육비 등을 고려하면 안정적인 소득 확보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에서 이런 노력이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동반돼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묻지마식 이민'은 포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교수는 "해외에 직접 가보거나 온라인상에 공개된 정보들을 통해 해외를 둘러볼 기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이라며 "우리의 현실과 해외 선진국을 비교하면서 타국에서의 삶을 꿈꾸는 일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한국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극단적인 시각이 반영된 현상"이라면서도 "미국과 캐나다 등 희망과 기회가 더 많은 듯이 보이지만 노동자들이 힘든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준비 없이 무작정 떠나면, 예상치 못한 어려운 현실에 부딪힐 수 있다"고 말했다.

 

*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