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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티 콜

Bawoo 2015. 10. 1. 12:37

“가문 자랑도 이 정도면…” 싶은 곳이 있었다. 잉글랜드 북부의 요크셔 지방에 있는 하워드가였다. 방 한가득 ‘듀티 콜’(duty call)이란 제목의 전시물이 있었다. ‘부름에 답했다’로 해석될 게다. 일종의 참전 기록이었다.

 그런데 그게 1485년 보즈워스 전투부터 시작했다. 100년여에 걸친 왕권 투쟁인 장미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전투다. 리처드 3세가 헨리 튜더에게 패하면서 튜더 왕조 시대가 열렸다. 리처드 3세는 우리로 치면 세조나 광해군 사이 인물이다. 셰익스피어의 동명(同名) 희곡에선 꼽추에 절름발이며 조카 둘을 죽일 정도로 권력욕에 사로잡힌 폭군으로 그려졌지만 영지인 요크셔에선 명망 있는 인물이긴 했다. 사후 520여 년 만에 유골이 발견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가문의 노포크 공작이 리처드 3세를 위해 싸웠고 이 전투에서 눈에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고 한다. ‘내전 참전도 듀티 콜인가’ 기연미연했다.

 그래도 전시물을 훑어 내려갔다. 일종의 영국 전쟁 약사(略史)였다. 1530년 헨리 8세에 의한 수도원 해산 작전에도 노포크란 이름이 보였다. 1588년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전투에서도, 1650년 전후한 청교도 혁명, 1770년대 미국 독립전쟁에도 마찬가지였다.

 제1·2차 세계대전 대목에선 오래 머물게 됐다. 자유당 의원이었던 조프리 하워드의 세 아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 두 아들이 숨졌다고 했다. 사촌들도 여럿 전사했다고 했다. 어릴 적 한쪽 눈을 실명한 조프리 자신도 37세의 나이로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 했었다.

 에릭 홉스봄이 쓴 『극단의 시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상층 계급에서 한 세대(50만 명의 30세 이하 남성)를 잃었다. 문벌 좋은 남자들이었다. 25세 이하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생의 4분의 1이기도 했다.”

 영국은 무인(武人) 전통이 강하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국력을 키웠다. 탁월한 군인들이 귀족이 되곤 했다. 윈스턴 처칠 총리도 그런 경우다. 선조가 위대한 장군인 덕분에 귀족(말버러 공작)이 된 인물이다. 처칠 총리 자신도 군인 출신이다. 어쩌면 참전은 그들에겐 선택이 아닌 숙명일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볼 일만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자꾸 상념에 젖게 만드는 건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 다수가 군대에 안 가려고 국적을 포기했다는 기사를 다시 읽은 탓인지 모르겠다.

* 중앙일보 -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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