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에도 식민사관 똬리
역사戰 대비 한국사 시공간 넓혀야
밀리언셀러 작가 김진명의 신작 '글자 전쟁'이 꾸준하게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원전 1세기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이 한자 통일을 위해 또 다른 한자를 쓰던 산둥성의 동이 부족을 몰살하는 것을 두고 빚어지는 갈등과 대립 구조를 액자소설 형태로 현대와 고대를 넘나들며 긴장감 있게 그려 나간다. 사마천이 누구이던가. 한무제에 직언했다가 생식기가 제거당하는 궁형을 당한 후 평생 사관으로서 염제, 요순 임금, 하나라의 신화 전설 시대부터 은·주·춘추전국 시대의 인물 족보와 역사를 기록한 '사기(史記)'를 남긴 불세출의 역사가다. 그로 인해 중국은 한족, 한자의 나라로 불리게 됐고 이후 여타 민족을 아우르는 중화사상의 기틀을 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마천의 대척점에 있는 동이는 기원전 1,600년께 탄생해 600년간 중국을 호령했던 은나라 민족이다. 한민족과 같은 뿌리인 은나라가 지금의 한자 전신인 갑골문을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지금의 중국하면 한족을 떠올리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동이족·몽고족 등 다양한 민족이 뒤섞인 다민족 국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서융족이었고 청을 세운 누르하치는 조선 건국의 이성계와 같은 여진족, 중국 공산당이 근대 중국의 문을 열었다며 칭송하는 쑨원은 창장 이남의 베트계 출신이다.
사마천이 위대한 것은 한족이라는 문화적·추상적 개념을 중심으로 이질적 민족들을 용광로처럼 한데로 녹일 수 있는 역사적 틀을 닦았다는 점이다. 김진명의 글자전쟁은 누가 역사를 기록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다투는 역사전쟁에 다름아니다. 글자전쟁이 실감나는 것은 역사전쟁이 소설 속 상상의 세계에서뿐 아니라 현 시대에도 되풀이되는 현재진행형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분리독립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 티베트의 역사 편입을 위해 서남공정을 마무리한 데 이어 고구려를 중국 지방정부로 규정하는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제 2의 '사기' 프로젝트다. 일본은 독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여전히 일제 시절의 황국사관에 입각해 일본이 고대 한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다.
이 같은 역사 침탈에 맞서 한국의 주체적인 역사와 대응 논리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지난 2006년 세운 것이 동북아역사재단이다. 한 해 예산만 200억원이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재단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우리 역사의 시공간을 늘리고 넓혀 역사전쟁에 임해야 할진대 되레 중화·황국사관에 젖어 이들의 선전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가 2013년 말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 10억원의 국고를 지원해 영문 출판한 '한국 고대사의 한나라 영지'라는 책자다. 한나라가 북한 대동강 일대에 식민지(한사군)를 운영했다는 것으로 일제가 임나일본부설과 함께 한민족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대표적 식민사관이다. 1980년대 요동(중국 지린성) 등 만주 전역에 고조선의 비파형동검이 다량 출토되면서 한반도 한사군설이 힘을 잃고 있는 마당에 전 세계에 우리 돈을 들여 식민사관을 홍보한 꼴이 됐다. 올 초 국회 동북아특위에 밝혀졌듯 재단은 '실수'라고 답했지만 40억원을 들여 만든 역사지도에 '독도'가 빠져 있는 것도 개운치 않다.
이를 두고 광복 70년이 됐지만 우리 주류 사학계에 아직도 식민사관의 잔재가 중심에서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료와 고고학적 결과물을 가지고 실증적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야 상대국, 나아가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마천이 시공간을 넓혀 중화사관의 역사 프레임을 놓았던 것처럼 어떻게 우리의 역사를 바라볼 것이냐는 틀이다. 일제가 주입한 반도사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요동을 포함한 만주를 무대로 삼았던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시공간을 넓혀 역사전쟁의 초석을 놓아야 한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했던 말이 귓전을 울린다. "러시아 역사를 쓰면 러시아사가 돼야 하며 조선의 역사를 쓰면 조선사가 돼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조선에 조선사라 할 만한 조선사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서울경제 이병관 문화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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