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개(秦開)는 전국시대 연나라 소왕(昭王) 때 장군이다. 형가의 부장 진무양의 조부이다.
개요
진개는 연나라의 장군으로 기원전 3세기 초에 동호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이때 동호의 신임을 얻은 진개는 동호의 허실을 모두 정탐하였으며, 돌아온 뒤 동호를 공격하여 1천여 리의 영토를 정복하였다. 또한 고조선도 공격하여 2천여 리의 영토를 정복하고 만반한(滿潘汗)을 경계로 삼았다. 연나라는 이렇게 정복한 지역에 상곡(上谷), 어양(漁陽), 우북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의 5개 군을 설치하였으며, 요동에까지 이르는 장성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의 삶은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문물국이 2000년 발굴한 다링허(대릉하) 길목의 랴오닝성 젠창셴(建昌縣) 둥다장쯔(東大杖子)촌의 적석목곽분에서 청동단검과 연나라 토기들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진개와 관련된 유물로 추정하였다.
진개의 손자는 진무양(秦舞陽)으로, 진시황제 암살을 꾀하였던 자객 형가를 도왔던 사람이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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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연나라 소왕(재위: B.C. 313~279) 때의 명장. 후일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형가의 수행원 진무양의 조부이다.
사기 흉노열전과 한서에 따르면 진개는 동호에 볼모로 갔다가 동호로부터 신임을 받았지만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동호를 기습했는데, 동호를 공격해 영토 1천여리를 정복한 후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의 5개 군을 두었으며, 위략과 자치통감에 따르면 고조선의 영토 2천 여 리를 정복하고 영토를 만번한까지 넓혔다.[1] 연나라와의 싸움에서 영토를 빼앗긴 고조선은 그 세력이 약화되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고조선의 강역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진개가 점령했다고 하는 만번한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반도 북부 박천 일대, 압록강 서쪽 등으로 의견으로 나뉘는 등 그 위치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만과 변한이 한서지리지의 요동군의 지명인 문현(文縣)과 번한현(番汗縣)이라는 설도 있다.
자치통감에서는 진개가 고조선을 공격해 영토를 확장한 일을 기원전 244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대사기, 주계편략 등에서는 이 일을 기원전 300년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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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양(중국어: 秦舞陽, 병음: Qin Wuyang, ? ~ 기원전 227년)은 연나라 출신의 군인이다. 고조선을 침략한 진개(秦開)의 손자이다. 형가의 부사(副使)로써 진 시황제 암살을 수행했던 인물이다. 진무양은 13세 때 사람을 죽이고도 당당했던 인물로 장사로 유명했다.
형가는 본래 노구천이라는 사람을 부사로 대동할 생각이었으나 노구천은 주거가 일정치 않은 인물로 찾기가 어려워 연나라 태자 단(丹)은 진무양을 부사로 천거 하였다. 그러나 형가는 진무양이 쓸데 없이 혈기만 앞세우는 사람임을 내세워 처음에는 거부하였으나, 조속한 업무 처리를 원하던 태자 단(丹)의 독촉으로 진무양을 부사로 하여 진나라로 간다.
그러나 의외로 진무양은 진시황을 보고 겁을 집어먹고 떨기 시작하여 형가가 살해에 실패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진무양은 형가와 함께 그 자리에서 죽었다.<위키백과>
*출처: 정보-책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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