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포
물동이 지고
돌담길 돌아가는 아낙의 뒤를
물방울이 따라붙는다
반바지 말아 올린 순백(純白)의 허벅지에
유채꽃잎이 묻어 있다
―아즈방, 허벅지에 꽃 피었소!
눈 흘기는
아즈방 두 볼에
배시시
부끄러운 꽃물이
든다
“장밋빛 뺨과 입술은 시간의 칼날 아래 있지만 시간의 노리개가 아니다.”(셰익스피어) 육체는 시간 앞에 결국 쓰러지지만, 시간의 묘비가 되기 전까지는 삶의 연료(동력)이다. 그래서 물동이, 허벅지, 유채꽃잎이 범벅이 된 “아즈방”(아주머니)의 모습은 그 자체 생명의 경이로운 분출이다. 게다가 푸른 “성산포”라니. 허벅지에 핀 꽃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에 대해 “눈 흘기는” 시선 사이에 세계의 모든 사랑이 존재한다. 그 사랑은 때로 상처를 부르고 때로 희열을 부른다. 그러나 두 시선이 마주치는 최초의 순간만은 모든 혐의에서 자유롭다. 오직 사랑만 존재하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 문학(文學) 마당 ♣ > - 우리 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만원 - 윤중목 (0) | 2015.12.10 |
---|---|
서른 셋 - 김형오 (0) | 2015.12.05 |
[중앙시조백일장] 11월 당선작 (0) | 2015.11.26 |
굴비 ―오탁번(1943∼) (0) | 2015.11.16 |
<동시> 고목나무 - 이문구 (0) | 2015.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