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세계 도처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리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에 더하여 민주화에도 성공하였다는 자부심과 흥분에 들떴던 것이 불과 28년 전인데 올해를 보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정치·경제·사회의 여러 문제가 풀려가기보다는 헝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 즉 한국의 민주주의는 갈수록 혼란과 퇴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87년체제 출범으로부터 25년 만인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정치민주화가 아닌 경제민주화가 여야를 넘어 포괄적 국정과제로 부상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국민은 물론 대통령 후보들이나 정당들조차 경제민주화가 정치민주화에 비해 얼마나 더 어려운 과제인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 데서 빈부격차 해소와 복지국가 건설이란 거대한 사업의 순조로운 출범은 기대할 수 없었다.
둘째로 이른바 87년체제의 운영 과정을 되돌아보면 정치민주화의 핵심인 의회민주주의, 즉 대의정치기구인 국회와 정당의 안정적 제도화와 생산성의 제고라는 차원에서 발전보다는 점진적 퇴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여소야대 4당체제였던 13대 국회를 비롯한 20년 전의 국회가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며 생산적이었다는 지적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렇듯 대의민주주의의 점진적 퇴화과정 속에서 정치민주화보다 훨씬 어려운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건설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대의민주주의는 이의 원활한 운영을 어렵게 하는 두 팽팽한 갈등 요소를 원초적으로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그들의 의사를 국정에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참여와 의사 반영의 정도가 국가운영의 효율성과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민의 정치참여와 국가운영은 각기 독립변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활발한 정치참여가 있어도 자동적으로 국가운영의 안정성이나 효율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사실 오늘의 세계에선 적지 않은 수의 국가가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국민참여보다 우선하는 정치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과도한 국민참여가 오히려 국가운영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결국 적극적 국민참여와 효율적 국가운영 사이의 내재적 갈등관계를 조절 및 예방하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국민참여와 국가운영의 생산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인 한국에선 어떻게 그러한 선결 과제를 풀어갈 것인가.
우선은 국민참여의 정통성과 국가운영의 효율성의 연계와 그에 따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개혁을 헌법적 차원에서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표류의 와중에서 점화된 개헌논의는 자칫 정치혼란만을 가중시키고 경제민주화보다 경제파국을 자초할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기약 없는 헌법 논의에 앞서 우리의 전통적 정치문화가 남겨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지침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가와 정치를 운영하는 책임자들의 임면권은 대통령과 국회에 있지만 그 임면권자들을 선택하는 것은 선거에서 투표하는 국민의 몫이다. 민주화에 성공한 국민이면서도 우리는 선거의 중요성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가볍게 보는 위험한 습성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이 그로부터 깨어나 나라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권리와 책임에 충실해야 할 때다.
어렵사리 성취한 국민주권시대의 내실을 기하려면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에서 국민참여와 국가운영의 균형과 효율성을 촉진시킬 인물과 정당을 선택하는 데에 국민적 결의와 지혜를 집중시켜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강원택 교수의 지적대로 선거를 통한 정치적 상벌(賞罰) 메커니즘의 작동이 시급한 과제다. 민주화를 무작정 외치기보다는 선거를 통한 시민의 책무에 힘을 모으는 것이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진전시키는 지름길이다.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전 총리
[출처: 중앙일보] [이홍구 칼럼] 정치표류, 그럴수록 중요한 국민의 선택
혼란과 퇴화 거듭하는 민주주의
국민참여와 국가운영 효율 간의
내재적 갈등 조절·예방하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성패 결정
선거 통해 정치 상벌 분명히 하고
시민의 책무에 힘을 모으는 게
정치와 경제민주화의 지름길
국민참여와 국가운영 효율 간의
내재적 갈등 조절·예방하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성패 결정
선거 통해 정치 상벌 분명히 하고
시민의 책무에 힘을 모으는 게
정치와 경제민주화의 지름길
혼란과 퇴화 거듭하는 민주주의
국민참여와 국가운영 효율 간의
내재적 갈등 조절·예방하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성패 결정
선거 통해 정치 상벌 분명히 하고
시민의 책무에 힘을 모으는 게
정치와 경제민주화의 지름길
첫째는 정치민주화의 일차적 성공이 우리에게 과도한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사반세기에 걸친 군(軍) 중심의 권위주의체제에 평화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1987년의 민주화는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적 쾌거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이 97년과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격랑에 휩쓸리면서 빈부격차와 경제 및 사회적 불평등이 국민적 화합과 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과제로 부상했다.
87년체제 출범으로부터 25년 만인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정치민주화가 아닌 경제민주화가 여야를 넘어 포괄적 국정과제로 부상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국민은 물론 대통령 후보들이나 정당들조차 경제민주화가 정치민주화에 비해 얼마나 더 어려운 과제인가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 데서 빈부격차 해소와 복지국가 건설이란 거대한 사업의 순조로운 출범은 기대할 수 없었다.
둘째로 이른바 87년체제의 운영 과정을 되돌아보면 정치민주화의 핵심인 의회민주주의, 즉 대의정치기구인 국회와 정당의 안정적 제도화와 생산성의 제고라는 차원에서 발전보다는 점진적 퇴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여소야대 4당체제였던 13대 국회를 비롯한 20년 전의 국회가 지금보다 더 민주적이며 생산적이었다는 지적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렇듯 대의민주주의의 점진적 퇴화과정 속에서 정치민주화보다 훨씬 어려운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건설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대의민주주의는 이의 원활한 운영을 어렵게 하는 두 팽팽한 갈등 요소를 원초적으로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그들의 의사를 국정에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참여와 의사 반영의 정도가 국가운영의 효율성과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다. 국민의 정치참여와 국가운영은 각기 독립변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활발한 정치참여가 있어도 자동적으로 국가운영의 안정성이나 효율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사실 오늘의 세계에선 적지 않은 수의 국가가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국민참여보다 우선하는 정치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과도한 국민참여가 오히려 국가운영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결국 적극적 국민참여와 효율적 국가운영 사이의 내재적 갈등관계를 조절 및 예방하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국민참여와 국가운영의 생산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공화국인 한국에선 어떻게 그러한 선결 과제를 풀어갈 것인가.
우선은 국민참여의 정통성과 국가운영의 효율성의 연계와 그에 따른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개혁을 헌법적 차원에서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표류의 와중에서 점화된 개헌논의는 자칫 정치혼란만을 가중시키고 경제민주화보다 경제파국을 자초할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기약 없는 헌법 논의에 앞서 우리의 전통적 정치문화가 남겨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지침의 현대적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국가와 정치를 운영하는 책임자들의 임면권은 대통령과 국회에 있지만 그 임면권자들을 선택하는 것은 선거에서 투표하는 국민의 몫이다. 민주화에 성공한 국민이면서도 우리는 선거의 중요성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가볍게 보는 위험한 습성에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지금이 그로부터 깨어나 나라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권리와 책임에 충실해야 할 때다.
어렵사리 성취한 국민주권시대의 내실을 기하려면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에서 국민참여와 국가운영의 균형과 효율성을 촉진시킬 인물과 정당을 선택하는 데에 국민적 결의와 지혜를 집중시켜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는 강원택 교수의 지적대로 선거를 통한 정치적 상벌(賞罰) 메커니즘의 작동이 시급한 과제다. 민주화를 무작정 외치기보다는 선거를 통한 시민의 책무에 힘을 모으는 것이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동시에 진전시키는 지름길이다.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전 총리
[출처: 중앙일보] [이홍구 칼럼] 정치표류, 그럴수록 중요한 국민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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