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민들레
-김영주
떡전 거리 인도 위에 신문지 펼쳐놓고
풋고추
오이 호박
가지런히 누워 있다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고 있는 베트남댁
산 설다
물도 설다
돌아갈 길 더 설다
보도블럭 틈 사이로 뿌리 둘 곳 더듬다가
토종이 되어간단다
흙을 꽉! 움켜쥔다
시조의 정형은 나에게 연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무한히 날아올라라 풀어주었다가도 그러나 헤매지는 말라며 당겨주곤 했다. 그 정형 안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아직도 나는 시인보다는 생활인에 더 가깝다. 치열하기로 하면 생활이 더 그랬으니까. 작품을 통해 남의 아픔을 쓴다고 했지만 실은 그 아픔이 내 아픔이다. 내 아픔이 아니었다면 나는 시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노랑민들레가 토종이 아닌 서양에서 들어온 이국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 어떻게 우리 땅에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우리가 되어 이 땅에서 살아내려고 흙을 찾아 뿌리내리는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을 많이 꾸짖었다.
문학의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사는 나를 안타까워하신 엄마, 보고 싶다. 이나마도 쓸 수 있었던 것은 지켜봐 주시는 어머니의 혼신의 힘 아닌가 생각한다.
부끄러운 글, 세상에 빛을 보게 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의 시조인에게 이런 힐링의 장을 마련해주신 중앙일보사에 경의를 표한다. 이 크나큰 빚, 두고두고 갚는 마음으로 천천히, 남은 시간 뼛속까지 써내려가며 살겠다.
◆김영주=1959년 경기도 수원 출생. 2009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 『미안하다, 달』.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심사평
대상과 신인상 후보는 각각 열두 분이었다. 심사위원은 각자 작품을 숙독한 뒤 두세 분으로 압축하여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선고에 오른 시인들의 작품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완결성·품격·개성 면에서 특출한 한 편을 들어올리기에 아쉬움이 있었다. 중앙시조대상에는 염창권의 ‘11월’, 신인상에는 김영주의 ‘서양민들레’를 선정하였다.
‘11월’은 “몸 아픈 것들”이 “드러난 제 갈비뼈를 만져”보지만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이나 “눈자위 검은 등불”처럼 중년의 경험을 쓸쓸히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긍정과 화해의 사유는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이라는 추상의 구체화와 “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라는 적실한 언명에 닿아 형언할 수 없는 힘을 발산하며 대상 논의를 평정하였다.
‘서양민들레’는 고단하고 서러운 이역에서 “환하게 이 드러내고 웃”으며 견디는 “베트남댁”의 생활에 연민과 긍정의 시선을 얹고 있다. 보도블럭 틈에 견고히 뿌리내리듯 타국에서 토종이 되기 위해 “흙을 꽉! 움켜”쥐는 이 땅의 건강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이 작품 외에도 함께 올라온 김영주 작품은 균질한 미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대상과 신인상 수상자의 창신과 정진을 부탁드린다.
◆심사위원=유성호·이지엽·홍성란(대표집필 홍성란)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조신인상] 틀 안에서 오히려 자유, 뼛속까지 쓰며 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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