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염창권
그림자를 앞세우는 날들이 잦아졌다
캄캄한 지층으로 몰려가는 가랑잎들
골목엔 눈자위 검은 등불 하나 켜진다
잎 다 지운 느티나무 그 밑둥에 기대면
쓸쓸히 저물어간 이번 생의 전언이듯
어둔 밤 몸 뒤척이는 강물소리 들린다
몸 아픈 것들이 짚더미에 불 지피며
뚜렷이 드러난 제 갈비뼈 만져볼 때
맨발로 걷는 하늘엔 그믐달이 돋는다
젖 물릴 듯 다가오는 이 무형의 느낌은
흰 손으로 덥석 안아 날 데려갈 그것은
아마도, 오기로 하면 이맘쯤일 것이다.
염창권 씨는 문학의 영역마저도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요즘, 시조의 변신을 꿈꾸는 대표적인 시조시인으로 꼽힌다. 그런 특성은 그의 등단 이력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는 말하자면 4관왕이다. 1990년 시조, 91년 동시, 92년 문학평론, 96년 자유시로 각각 등단했다. 광주교대 교수인 그는 또 자신의 전공인 국어교육을 일종의 ‘응용학문’이라고 표현했다. 국문학의 연구성과를 적용·소통시키는 과목이라는 얘기다.
시조의 경계확장에 관심이 많은 그는 “시조가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은 좋지만 계몽적으로 교훈을 전달하려는 식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시조시인에 비해 이미지가 생생한 작품을 쓴다는 평이 있다고 하자 “시조 특유의 가락을 잘 살리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지가 두드러진 작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읽기 나름이겠지만 수상작 ‘11월’에서도 을씨년스러운 가을날 저녁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염씨는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초입인 11월은 뭇 생명의 순환과정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계절”이라며 “그런 존재의 그림자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모든 존재에는 틈이나 균열이 있다”며 “그런 균열은 결핍이기도 하지만 다른 세계로 이어져 소통할 수 있는 통로도 된다”고 했다. 11월 헐벗은 느티나무를 보며 오만과 경솔을 조금 떨쳐보자는 얘기다.
대화가 조금 어둡다고 여겼는지 그는 “중앙시조대상은 시조계의 노벨상”이라고 싱거운 농담을 했다. 최고의 시조상인데, 다른 나라에는 없어서다. “잘 읽히는 모던하고 열린 시조를 많이 쓰고 싶다”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존재의 그림자, 시조로 그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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