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글 모음♣ / 문화, 예술

[스크랩] 때를 기다린 영웅들. 지역감정으로 보는 중국 역사 <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

Bawoo 2015. 12. 15. 08:39

.

 

 

<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

 

‘그날은 오리라’…때를 기다린 영웅들

 

와병 연기로 ‘삼국지 최후의 승자’된 사마의, 섣불리 나서지 않고 몸 낮춰

 

 

 

얼마 전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을 만났다. 얘기 도중 비로소 알게 된 70이 훌쩍 넘은 선배의 개인사는 슬펐다.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 중 하나였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 출신의 모친과 가난했지만 총명했던 부친이 동경 유학 중 얻은 아들이었다. 비극은 광복 정국과 더불어 시작됐다.

“일본에서 좌익 사상에 심취한 부모님이 6·26전쟁이 터지자 나만 남겨두고 월북해 버린거야!”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던 선배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아원에 맡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좌제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도대체 사상이 뭐고 이념이 뭐길래 제 자식도 버리게 만드는가?”

그는 부모님을 만나면 꼭 이 말을 물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유비, 겁쟁이 흉내로 조조를 안심시켜

 

그런데 유학파 인텔리 부모님과 논쟁하려면 그들만큼의 지식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동기들보다 열 살 더 많은 나이에 명문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100세가 넘었을 부모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고 생사도 모른다. 그는 아직도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다. 70평생은 그에게 한 맺힌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따지고 보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인생사가 기다림 아닌 것이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개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갈망하는 기다림의 역사다.

‘그날이 속히 오리라!’는 믿음으로 메시아의 출현을 간구하는 종교인들과 달리 기다리는 ‘새로운 세상’이 내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오기를 열망하며 들고일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혁명과 반란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삼국지’ 시대에 “푸른 하늘이 망했으니 누런 하늘이 일어선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난을 일으킨 황건의 무리. ‘누런 하늘(黃天)’은 그들이 기다리던 새 세상을 상징했다. 기다리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자연히 그들은 도적(황건적)이라고 불리게 됐다. 홍건적의 무리였던 주원장이 명나라 태조가 된 것과 대조적이다.

 

‘삼국지’ 시대를 풍미하던 군웅 중에도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한 이들이 있었다. 유비부터 살펴보자.

황제의 위세가 땅에 떨어졌고 몰락한 황가의 자손인 유비도 무력했다. 반면 헌제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유비는 ‘조조를 죽이고 사직을 구하라!’는 헌제의 밀서를 받은 동승의 조조 암살 작전에 가담했다가 실패했던 터라 더욱 입지가 좁았다.

 

천둥벼락이 칠 때는 바짝 엎드려 이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유비는 진짜로 그랬다. 유비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던 조조가 물었다.

“요즘 유비는 뭘 하고 있는가?”

“유비는 채소를 가꾸며 하루 종일 밭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셔 오너라! 내 유비를 위해 위로연을 베풀겠다.”

 

유비와 함께 대작하던 조조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현덕공은 지금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유비는 한껏 몸을 사리며 원소·손책·유표 등의 이름을 댔다.

 

조바심이 난 조조가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

“아니오! 천하에 영웅은 바로 그대와 나, 둘밖에 없소!”

속내를 들킨 유비가 당혹해 하는 찰나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유비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리며 주안상 밑으로 코를 박고 부들부들 떨었다. 조조는 유비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잠룡인 줄 알았더니 천둥소리에 놀라는 겁쟁이로구나!’

농사나 짓는 척하며 때를 기다리며 몸을 낮추고 있던 유비의 탁월한 연기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황제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던 포악한 리더로만 알려진 동탁도 뜻밖에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자였다. 나관중의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동탁은 무식하고 잔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조가 황제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한 것은 사실 동탁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큰 공을 세워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동탁은 그때마다 고사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영제가 죽고 후임 황제의 외숙부로 실권을 잡았던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동탁은 그제야 행동에 나섰다. 무주공산이 된 황실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혈 입성한 것이다.

 

위나라를 하루아침에 집어삼킨 사마의

 

‘삼국지’ 시대 인물 중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다. 혹자는 사마의를 일러 제갈량과 조조를 합친 것보다 더 지략이 뛰어난 리더라고 평하기도 한다. 사마의는 능청스러운 연기의 달인이기도 했다.

 

조조는 단번에 사마의의 야망을 알아챘다. 사마의도 이를 알고 더욱 신중하게 처신했다. 조조가 벼슬을 내려도 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 집 안의 하인들조차 속을 정도로 사마의의 아픈 연기는 탁월했다.

어느 날 뒤뜰에 책을 늘어놓고 말리던 중 소나기가 내리자 책을 무척 아끼던 사마의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책을 거둬 왔다. 이때 하녀 하나가 이를 목격했다. 사마의 부부는 그 자리에서 하녀를 죽여 보안을 유지했다. 그의 치밀하고 잔혹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대권을 잡자 사마의는 조비의 신임을 바탕으로 날개를 달았다. 조예를 거쳐 조방이 황권을 넘겨받았을 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당시 실권자 조상이 어린 황제를 모시고 성을 나가 조예의 능묘인 고평릉에 제를 올리고 사냥도 하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낙양 성문을 굳게 닫았다. 이를 ‘고평릉의 변’이라고 한다. 조조가 그렇게 공들여 세운 위나라를 사마의는 하루아침에 집어삼킨 것이다.

 

사족 :

유비·동탁·사마의처럼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참고 기다리는 작전을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한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남몰래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미소 양국이 냉전 체제를 구축해 막강한 힘을 자랑할 때 등소평이 구사한 국가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양강 체제로 들어선 지금 시진핑이 구사하는 대국굴기 전략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Godot)’와 같은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선배.

그를 보며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떠올렸다. 노선배의 애달픈 처지가 눈물겨웠고 가슴 아팠다. 박학다식과 상당한 필력은 그의 이마에 깊이 새겨진 주름과 듬성듬성한 흰머리와 함께 그의 기다림의 깊이와 넓이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손권의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관우

 

“호랑이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준다고?”…지역감정으로 보는 중국 역사

 

 

1996년 처음 개봉됐다가 근 20년이 지난 2015년 중국에서 재개봉된 영화가 있다. 첸커신 감독의 영화 ‘첨밀밀’이다. 주인공 여소군(리밍 분)은 장쑤성의 수도 난징에서 180km 정도 떨어진 우시 출신이다. 여주인공 이교(장만위 분)의 고향은 광둥성의 수도 광저우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출신 지역과 캐릭터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인 홍콩은 아직 영국에 의해 중국 정부에 반환되기 직전이다.

이들에게 홍콩은 꿈의 도시다.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하는 것이 대륙 사람들이 꾸는 ‘홍콩드림’이다. 반면 개혁·개방의 초기 단계에 있는 중국 대륙에 대한 이미지는 후진적인 시골 ‘깡촌’에 불과하다.

 

영화 초반부에 이교가 여소군에게 자신은 홍콩 사람이라고 거짓말하고 여소군이 대륙 촌놈이라며 은근히 깔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여소군을 장쑤성 촌놈이라고 무시한 이교

 

사실 중국은 한국의 수십 배가 넘는 면적을 자랑한다. 공식 인구만 13억 명이 넘는다. 주류인 한족(漢族) 이외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이렇게 넓은 나라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국에도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 그것도 옛날부터 있었다. 이교가 여소군을 장쑤성 촌놈이라고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 이런 것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일종의 지역감정이다.

 

‘삼국지’ 초반부에 동탁이 황제를 옆에 끼고 호가호위하던 시절 이야기다. ‘삼국지연의’의 저자 나관중은 실권자 동탁에 맞서 싸운 조조나 원소·원술 형제 등 반(反)동탁연합군을 ‘십팔로제후군(十八路諸侯軍)’이라고 칭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닌 픽션일 뿐이다.

 

동탁 진영과 반동탁 진영을 구성하는 중심 세력은 지역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당시 동탁을 따르는 세력은 관서(關西)의 무인 연합 세력이었고 반동탁 세력은 관동(關東)의 문인 출신 관료 연합 세력이었다. 여기서 관동과 관서를 가르는 중요한 포인트는 함곡관(函谷關)이다. 함곡관은 낙양과 장안의 중간이다.

‘삼국지의 세계’를 쓴 일본 학자 김문경에 따르면 함곡관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은 기후와 풍토, 주민의 기질이 확연히 다르다. 여기에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까지 가세하면서 함곡관을 중심으로 동서 지역감정이 생겨났고 그것이 동탁 대 반동탁의 대립이라는 형식으로 표출됐다.

 

한편 중국의 고대 문명은 주로 북방에서 비롯됐다. 춘추전국시대와 이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나라, 항우와 유방의 대립과 한나라의 건국 등 중국 고대 문명은 북방의 중원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러한 북방 사람들의 자부심은 자연스레 남방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업신여기는 남북 간 지역감정으로 발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손권의 관우에 대한 청혼이 달리 보일 수도 있다.

 

“관공! 그대의 딸과 네 아들을 결혼시키고 싶소!”

관우는 강남의 실력자 손권의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호랑이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준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소?”

 

지금까지는 촉나라 유비와 도원결의한 관우가 오나라에 딸을 시집보내기 싫었을 것이라거나 당시 관우의 직급이 손권보다 높았던 것을 거론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북방인인 관우의 남방인 손권에 대한 지역감정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관우 내면의 심리는 이러했을 것이다.

 

“감히 남방인 강동의 촌뜨기 손권이 북방의 영웅호걸인 나 관우와 같은 반열에 서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함곡관을 중심으로 동서 지역감정 생겨나

 

중국의 산동성 곡부는 공자의 고향이다. 제갈량도 산동성 낭야 출신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는 북방 산동성의 고고한 선비였던 제갈량이 오나라 손권의 참모 육적을 업신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도발은 육적이 먼저 했다.

 

“조조는 상국 조참의 후손인데, 돗자리나 짜고 짚신이나 삼던 유비가 무슨 수로 대적한단 말이요?”

 

“강남 사람들은 뭘 잘 모르는 것 같소이다. 고조황제(한고조 유방)께서도 일개 동네 정장으로 대업을 시작하셨는데 우리 주공께서는 황제폐하의 숙부뻘이시오.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그대는 더불어 천하대사를 논할 위인이 아닌 것 같소이다. 허허허.”

 

이런 마음은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오나라 손권은 자신의 여동생 손상향을 유비와 정략결혼시킨다. 나중에 상황이 틀어지자 손상향이 유비와의 사이에 난 아들을 데리고 오나라로 귀국하려고 한다. 뜻밖에 유비는 단호하다. 어차피 정략결혼인데다 남방 여자인 손권의 여동생 손상향에게 속정도 없었던 모양이다.

 

“손씨 부인이 굳이 돌아오려 하지 않거든 보내 드려라. 다만 내 아들은 반드시 구해오라!”

 

어떤 심리학자가 실험에 응한 사람들을 임의로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쪽은 빨간 모자를, 다른 한쪽은 파란 모자를 나눠 줬다. 그리고 서로의 발표 내용에 대해 평가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모자를 쓴 그룹에 대해 더 좋은 점수를 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인데 다만 자기와 같은 색깔의 모자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은 너무나 흔해 본능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자신과 같은 고향, 같은 인종, 같은 민족에게 더 호감을 느끼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반대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물며 북쪽의 위나라, 남쪽의 오나라, 서쪽의 촉나라가 사생결단하고 싸웠는데 이들 간에 지역감정이 없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히틀러처럼 다른 인종을 악마처럼 만들어 학살한다든지, 종교가 다르다고 마녀사냥 식으로 죽인다든지, 이방 민족을 박해한다든지 하는 일이 고대나 중세도 아니고 21세기 우리 당대에도 스스럼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족 : 유교적 예법과 신분 질서가 강력하던 조선시대에 노론 집안에 태어난 아들이 과연 아버지나 가문을 배신하고 소론의 입장에 설 수 있었을까. 그것까지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당파의 이름으로 다른 당파의 사람을 핍박하고 죽음으로까지 몰아간다면 그게 문제인 것이다.

자신과 동일한 집단(내집단)과의 순수한 동일시는 언제나 환영이지만 다른 집단(외집단)에 대한 혐오나 박해는 엄중하게 다스려야 할 반인륜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 한경매거진

 

 

 

 

========================

 

 

 

 

 

중국의 지역감정과 민족차별은 지금도 심하다.

크게 한족(漢族)과 만족(滿族)이다.

지금 지배세력인 한족에게 중국의 역사상 청나라는 치욕적이다. 청나라의 창시자가 만족아닌가.

당, 송의 멸망에 요,금, 원나라가 세워졌고 명 이후 또 청나라가 들어섰다.

다른 왕조가 생겨난 이면에는 항상 만족(滿族)이 있었다.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중국이 왕조가 자주 바뀌는 이면에는 문민을 주로 숭상하고 무인을 천대하며 '나라의 국방을 입으로 때우는 외교' 와 '오랑캐라 부르며 천대하는 타 세력에게 돈으로 평화를 사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했던 이유다. 또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와 병역기피다.

지금의 중국은 과연 이 역사적 고리를 끊어 버릴까?

 

북한놈들이 왜 '선군정치' 라고 주장하나 새겨들어보자. 

깡패가 집앞에 서서 '네집 내가 지켜줄게 돈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돈을 대주면 결국 안방 차지한다. 그게 역사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