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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보바리 (Madame Bovary) -[원작] 귀스타프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Bawoo 2015. 12. 18. 00:09

마담보바리 (Madame Bovary)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빈센트 미넬리
출연 제니퍼 존스 (엠마 보바리 역), 제임스 메이슨 (구스타브 플라우버트 역), 반 헤플린 (찰스 보바리 역), 루이스 조단 (로돌프 불랑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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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 부인(Madame Bovary)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장편 소설이다. 실제로 있었던 개업의(開業醫) 드라마르의 아내인 델피느의 자살사건에서 취재하여 5년간에 걸쳐 완성하였다. 사실소설의 전형적 걸작이다. 주인공 엠마는 북프랑스 루앙 부근의 부유한 농가의 외동딸이며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꿈을 품은 미모(美貌)의 정열적인 여성이다.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을 하지만 곧 환멸을 느낀다. 그것을 안 바람둥이 루돌프는 그녀에게 접근하여 간단하게 정복해 버린다. 그러나 그녀가 열중하자 간단히 그녀와의 관계를 끊는다. 엠마는 절망하였으나 이어 젊은 서기 레옹을 사랑하여 밀회를 거듭한다. 그간 그녀는 가사를 돌보지 않고 남편 몰래 낭비한 빚 때문에 결국 자살해 버린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꿈 많은 여성의 인생과 결혼에 대한 환멸의 이야기이며 '파멸(破滅) 소설'의 전형이다. 종교와 양속을 해치는 것이라고 하여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무죄로 판결을 받았다. 대비평가 생트뵈브는 이것을 과학적 인간분석의 우수한 선구적 작품으로 보았고, 텐은 발자크 이래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 하였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1821년 12월 12일 - 1880년 5월 8일)는 프랑스 출신의 19세기 소설가이다

생애

플로베르는 1821년, 의사의 아들로 루앙에서 출생하였다. 10세쯤 되어서부터 소설·희곡 등을 쓰기 시작했으며, 파리 대학에 다니던 중 간질과 비슷한 증상의 발작을 한 후로 문학에 힘을 쏟았다. 1856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보봐리 부인》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프랑스 최고의 작가라는 칭찬을 받게 하였다. 그 밖에 주요 작품으로 《살람보》, 《감정교육》, 《성 앙투안의 유혹》,《세 가지 이야기》등이 있다. 그의 문학은 자유로운 공간과 자연의 감정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의 기분을 다분히 지니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문학을 세워, 자연주의 문학의 길을 열었다. 의사인 아버지에게서 과학 정신을 이어받아, 사물의 올바른 모습을 묘사하려 하였다. 돌 한 개를 묘사하는 데도 그것에 가장 알맞은 단 하나의 낱말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작품세계

일물일어설

플로베르가 (한국에서) 사실주의자로서 유명해진 것은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때문인데 그가 언급한 원문은 아래와 같다.

누가 나를 설복시키지 않는 한, 나는 근본적인 형태에서 분리된 한 문장이란 의미가 없는 두 단어라고 주장할 것이다 ; 아름다운 형식이 없는 아름다운 생각은 없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술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형태로부터 스며나온다. 우리의 세계에선 그것에서 사랑과 유혹이 나오는 것처럼. 이것은 네가 한 물체에서 그것을 형성하는 질-즉 색깔, 면적, 견고성 등-을 제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텅 빈 추상으로 떨어짐 없이, 한 단어로 그 문장을 훼손시킴 없이, 생각에서 형태를 제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각은 형태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태가 없는 생각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불가능하다 ;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형태도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 A Louise Colet. 1846년 9월 18일

즉 영어로 하면 The idea exists only by virtue of its form. 이라는 부분이 일물일어설에 해당하는 것인데 사실 한국에서는 그의 일물일어설이 유명하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그 점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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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주 저서

Correspondence (in English)

  • Selections:
    • Selected Letters (ed. Francis Steegmuller, 1953, 2001)
    • Selected Letters (ed. Geoffrey Wall, 1997)
  • Flaubert in Egypt: A Sensibility on Tour (1972)
  • Flaubert and Turgenev, a Friendship in Letters: The Complete Correspondence (ed. Barbara Beaumont, 1985)
  • Correspondence with George Sand:
    • The George Sand-Gustave Flaubert Letters, translated by Aimée G. Leffingwel McKenzie (A.L. McKensie), introduced by Stuart Sherman (1921), available at the Gutenberg website as E-text N° 5115
    • Flaubert-Sand: The Correspondence (1993)

Biographical and other related publications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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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평범한 한 여성의 생활과 환경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수법으로 그려 낸 현실주의 소설의 대표작으로, 꿈과 현실의 차이가 빚어내는 환멸 속에서 출구를 찾아 애쓰는 인간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로맨틱한 영혼에 대한 동경과 무의미한 일상의 파멸

    평범한 의학생 샤를 보바리는 준(準)의사 시험에 간신히 합격한 뒤 노르망디 지방의 루앙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 토스테에 자리를 잡고 연상의 늙은 미망인과 결혼하고 개업을 한다. 그런데 부유한 농장주인 루오를 왕진하러 갔을 때 그의 딸 에마를 보고 사랑에 빠진 그는 아내가 죽은 뒤 에마와 결혼한다.

    수녀원에서 살고 있을 때부터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며 매혹적인 결혼 생활을 상상했던 낭만적인 여성 에마는 결혼 생활의 단조로움과 남편의 평범함에 불만을 품는다. 그녀는 가끔씩 초대받아 가는 귀족들의 화려한 파티를 통해 자신이 꿈꾸고 있던 호사스러운 생활을 접하게 된 뒤부터 자신의 생활에 대한 권태감이 날이 갈수록 쌓여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아내의 그런 상태를 본 샤를은 요양을 위해 집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은 용빌 라베로 이사한다.

    용빌 역시 속물적인 약제사 오메처럼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마을이었지만, 에마는 그곳에서 공증인의 서기로 일하는 레옹을 만나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둘 다 서로에게 느낀 사랑을 표현하기도 전에 레옹이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나 버린다. 다시 고독하게 된 에마 앞에 바람둥이 로돌프가 나타나 그녀를 교묘한 말솜씨로 사로잡아 육체 관계를 맺는다. 차츰 적극적이 된 에마는 로돌프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런 에마가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 이미 싫증까지 느끼고 있던 로돌프는 그녀를 버린다.

    절망한 에마는 병에 걸린다. 간신히 회복이 되었을 무렵에 루앙의 극장에서 파리에서 돌아온 레옹과 재회하고, 두 사람 사이에 그동안 잊고 있던 사랑이 다시금 불타오른다. 그러나 항상 채워지지 않는 감정 때문에 목이 마른 에마는 타락한 쾌락 속으로 빠져든다.

    이윽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파국이 찾아온다. 빗나간 정사와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빚을 지고 있던 에마는 파산 선고를 받는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자 그녀는 절망한 나머지 비소를 마신다. 남겨진 샤를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돈 속을 헤매다 죽고, 오메 혼자만 ‘명예 훈장’을 받게 된다.

    에마 - 획일적인 틀에 지배되는 우매한 인간

    에마 보바리의 모델은 루앙 근교의 작은 마을에 살던 의사 외젠 들라마르(플로베르의 아버지의 제자)의 아내로, 불륜의 사랑 때문에 빚을 많이 졌다가 끝내 음독 자살한 델핀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의 불쌍한 보바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프랑스의 스무 곳이나 되는 마을에서 괴로워하며 울고 있다”고 작가가 써 놓은 것처럼 에마는 들라마르 부인이라는 개별적인 존재를 소설화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 시골에 사는 평균적인 여성을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에마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 곧 조금도 변함이 없는 따분한 시골과 우매한 프티 부르주아, 단조로운 일상생활, 그리고 특히 ‘철길을 깔아 놓은 것처럼 평범’한 생각밖에 갖지 못한 우직한 남편이라는 협소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혐오한다. 나아가 ‘어떤 땅 이외에서는 자라나지 않는 식물이 있듯이 이 지상 어딘가에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고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며 끝없이 몽상에 잠기는 여성이다. 에마의 이런 성격을 쥘 드 고티에는 ‘보바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일반화했다.

    에마의 생애는 자신이 지금 현재 있는 장소에서 시간적 ·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몽상의 세계를 자기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로 바꾸기 위해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도, 가령 로돌프처럼 천박한 남자를 훌륭한 남성으로 믿어 버리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몽상의 대상은 진부하고 웃기며, 또 정사 자체도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에마는 오메로 대표되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획일적’인 틀에 지배되는 우매한 존재로 작가의 단죄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고 한 플로베르의 말에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왜소하고 비속한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깊은 절망과 상처받기 쉬운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에마는 플로베르의 분신으로 프랑스 문학 속에서 독자적인 개성을 발휘하고 있다.

    약제사 오메를 필두로 신부와 공증인, 고리대금업자 등의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혐오하고 있던 그 무렵 부르주아 사회의 우매한 구성 인물들을 축소한 모습이며, 그에 대해 주인공 에마의 치열한 삶은 플로베르가 애독한 『돈 키호테』처럼 슬프고 우습지만 강렬한 안티 테제를 제시하고 있다.

    작품 속의 명문장

    “공리(公理)-영예는 체면을 깎는다. 작위는 품위를 떨어뜨린다. 지위는 이성을 잃게 한다. 벽에 이렇게 써 두게.” - 모파상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마고우의 아들인 모파상에게 플로베르는 깊은 애정을 느껴 인생과 문학에 대한 지도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중에서도 이 글에는 모든 권위와 가치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그의 비관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이 하잘것없는 세상에서 웃음만큼 진지한 것은 없다.” -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염세주의는 쇠약해진 정신이 아니라 철저한 절망의 깊이에 대응하는 강인한 해학 정신이었으며, 그는 이를 방패로 삼아 우울증에 저항했다.
    “모든 정부는 문학을 증오한다. 권력이라는 것은 다른 권력을 좋아하지 않게 마련이니까.” -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염세주의도 해학도 그것 자체만으로는 부정적인 의미밖에 갖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 거점으로 문학을 믿었고, 이를 실천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는 1821년 아버지가 외과 부장으로 일하고 있던 루앙시립병원에서 태어났다. 이 병원은 어린 플로베르각주[1] 에게 생활의 장소가 되었고, 계단식 교실에 늘어선 시체를 여동생 카롤린과 함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면서 자랐다. 이런 성장 배경에서 자란 그는 나중에 “여성을 보면 그 안에 있는 해골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말을 할 정도로 염세주의자가 되었다. 그에 반해 여동생이나 친구들과 당구대를 무대로 삼아 상연한 연극은 고등중학교 시절에 열중한 ‘가르송’각주[2] 놀이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해학 정신이 있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런 염세주의와 해학 정신은 마지막까지 그가 가진 인식의 밑바탕에 수레의 두 바퀴처럼 쌍을 이루며 존재했다.

    1832년 루앙의 고등중학교에 입학한 뒤, 그 무렵 유행하던 우울한 낭만주의(바이런, 뮈세 등)의 열기에 빠지게 된 그는 ‘광기와 자살 사이를 떠도는’ 소년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많은 모작과 습작을 썼다. 그중에는 『열정과 미덕』과 같이 『보바리 부인』(1857)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1836년 여름 투르빌의 해안에서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한 여성인 엘리자 술레젱제 부인을 만났다. 그녀의 이미지는 먼저 『한 광인의 회고록』에 묘사되었고, 20세 때의 작품 『11월』을 거쳐 결정적으로 『감정교육』의 아르누 부인으로 이어졌다.

    1842년 그는 파리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했으나 그의 성격에 법률 공부가 맞지 않아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이듬해 파리의 학생 생활을 소재로 초고 『감정교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집필 도중에 뇌전증 발작으로 쓰러지게 되자, 그는 문학에 평생을 바칠 결심을 다지고 루앙 근교의 크루아세로 이사해 나머지 생애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글을 쓰며 지냈다.

    1856년에 탈고한 『보바리 부인』의 성공각주[3] 으로 현실주의의 거장으로서 지위를 확립했고, 그 이후 『살랑보』, 『감정교육』, 그리고 미완성의 유작이 된 『부바르와 페퀴셰』 등을 썼다. 1880년에 사망했다.

    [출처:세계문학 , 문학 | 도서 절대지식 세계문학 -보바리 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 Madame Bova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