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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도일-셜록홈즈 시리즈] 살인의 전주곡 (Sherlock Holmes : Dressed to Kill)

Bawoo 2015. 12. 29. 22:46

 

셜록홈즈

살인의 전주곡 (Sherlock Holmes : Dressed to Kill)

 

 장르 액션/어드벤처
등급 12 세 이상
감독 로이 윌리암 네일
출연 바실 라스본, 나이젤 브루스, 패트리시아 모리슨
영상설명
‘살인의 전주곡' 줄거리
엄청난 재물을 둘러싼 범죄 조직의 살인음모, 그리고 이 모든 비밀을 간직한 미스터리의 뮤직박스.
그 첫번째 희생자는 다름아닌 왓슨 박사의 친구로 밝혀지고 셜록 홈즈는 바로 수사에 착수하는데...
바실 래스본이 연기한 마지막 셜록 홈즈이자 가장 뛰어난 작품 중에 하나이다.

Tips!
주연 '바실 래스본'은 셜록홈즈의 원작 삽화를 담당했던 '시드니 파젯'이 그린 캐릭터와 가장 닮았다는 말을 들으며
'셜록홈즈의 화신' 이라고까지 불릴 만큼 역대 셜록홈즈를 연기한 수많은 배우 중 단연 최고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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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Arthur Conan Doyle ]

출생 1859년 05월 22일
사망 1930년 07월 07일
국적 영국
작품/저서 《주홍색 연구》, 《네 사람의 서명》, 《바스커빌 가의 개》, 《잃어버린 세계》 등

 

[요약] 탐정 셜록 홈스가 활약하는 소설을 발표하며 추리소설 발달에 기여했다.

 

세계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탐정은 아마 셜록 홈스일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최초의 탐정소설인 〈모르그 가의 살인〉을 쓴 이래로 채 200여 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추리소설 장르는 엄청나게 발달했다. 하지만 영국의 소설가 코난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스 시리즈만큼 오랫동안 폭넓게 사랑받은 추리소설은 드물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난 도일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진지한 문학가로 인정받고 싶어 했으며, 셜록 홈스의 인기를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1887년 《주홍색 연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셜록 홈스는 130여 년이나 건재하게 살아남아 코난 도일의 이름을 문학사에 길이 남게 했다.

아서 이그나티우스 코난 도일은 1859년 5월 22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찰스 앨터먼터 도일은 잠시 공무원을 지내다가 퇴직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진 터라 유년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다. 할아버지는 'H. B.'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던 인기 풍자만화가 존 도일이며, 숙부들 역시 〈펀치〉의 표지 디자이너이자 동화 그림 작가인 리처드 도일, 《영국 연대기》를 집필한 제임스 도일, 더블린 국립미술관 관장을 지낸 헨리 도일 등 문화계 전반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들이었다.

 

9세 때 랭커셔의 예수회 예비학교인 호더 학교를 거쳐 같은 재단인 스토니허스트 칼리지에서 공부했는데, 이 무렵부터 불가지론자였다고 한다. 17세 때 에든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갔으나, 의학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가족의 생활비와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치료비 때문에 포경선을 타거나 외과 의사 조수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몇몇 편지를 대필하면서 글이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 무렵 에드거 앨런 포, 에밀 가보리오, 브렛 하트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 때문인지 초기 단편들에서는 이들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1879년, 〈체임버스 저널〉에 남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보물찾기 이야기인 〈사삿사 계곡의 수수께끼〉를 발표하면서 대학 재학 중에 수십 편의 단편을 썼는데, 큰 돈벌이가 되지 않아 졸업 후 개인병원을 열었다. 처음에는 금전적인 문제로 동창과 플리머스에서 동업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불화로 끝이 났고, 포츠머스 사우스씨에서 홀로 안과를 개원했다. 그는 환자를 돌보면서 틈틈이 소설을 썼고, 1884년 〈콘힐 매거진〉에 익명으로 투고한 〈J. 하바쿡 제퍼슨의 증언〉이 게재되기도 한다. 이듬해 병원 환자의 누나인 루이즈 호킨스와 연애결혼을 했다.

 

작품 활동을 계속했지만 작가로서 자리 잡지 못하던 도일은 1887년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 《주홍색 연구》를 영국 잡지 〈비튼의 크리스마스 연감〉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그리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셜록 홈스 시리즈가 성공을 거둔 것은 두 번째 작품 《네 사람의 서명》을 미국 잡지 〈리핀코트 매거진〉에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는 작가 생활이 큰 돈벌이를 보장해 주지 못해서 도일은 안과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고자 사우스씨의 병원을 폐업하고 빈으로 몇 달간 유학을 다녀온 뒤 1891년에 런던으로 이사해 안과를 다시 열었다.

 

그런데 그해 홈스 시리즈가 새로 창간된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연재된 단편들은 1892년 《셜록 홈스의 모험》, 1894년 《셜록 홈스의 회상》 등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가 게재되는 달 〈스트랜드 매거진〉은 10만 부에 이르는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도일은 셜록 홈스, 즉 추리소설로 얻은 명성을 가볍게 치부했으며, 역사소설로 명성을 얻고 싶어 했다. 때문에 그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자 홈스 시리즈를 접기로 하고, 1893년 〈스트랜드 매거진〉 12월호에 셜록 홈스가 숙적 모리어티 교수와의 격투 끝에 폭포로 떨어져 목숨을 잃는 〈마지막 사건〉을 게재한다. 이 단편은 《셜록 홈스의 회상》에 마지막 편으로 실렸으며, 이로써 도일은 확실히 홈스를 끝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독자들은 홈스를 살려 내라고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런던 시내에서 조의를 표하는 검은 완장을 차고 다닐 정도로 거세게 항의했다. 〈마지막 사건〉이 실린 뒤 〈스트랜드 매거진〉은 2만 명의 정기구독자가 구독을 취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난 도일은 꿈쩍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자신이 홈스를 죽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1893년, 아내 루이즈가 결핵 진단을 받자 도일은 요양을 위해 아내와 함께 1895년 카이로에 간다. 그곳에서 그는 〈웨스트민스터 가제트〉 소속 종군기자로 일하면서 모험소설 《로드니 스톤》, 《엉클 버낵》 등을 썼다. 1899년에는 남아프리카에서 보어 전쟁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이때 벌어진 영국의 포로 학대에 대해 세계적으로 비난 여론이 일자 《남아프리카 전쟁-원인과 집행》을 써서 영국군의 처우를 비호했다. 이로써 그는 1902년 영국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으며, 통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까지 한다.

 

도일은 셜록 홈스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돈벌이가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보어 전쟁에서 돌아온 후 다시 셜록 홈스를 살리기로 하고, 1901년 〈스트랜드 매거진〉에 홈스가 등장하는 장편 《바스커빌 가의 개》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홈스와 모리어티의 대결이 일어나기 전 홈스와 왓슨의 활약을 그린 작품으로, 홈스가 회상하는 형식을 띠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코난 도일이 이때까지만 해도 홈스 시리즈를 유지하려고 생각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홈스는 도일에게 엄청난 수입을 안겨 주었다. 이에 그는 1903년 단편 〈빈집의 모험〉에서 홈스가 〈마지막 사건〉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모리어티 일당을 피해 몸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라는 설정을 만들어 냈다. 홈스는 이로써 완전히 부활했다. 도일은 계속 홈스 시리즈를 발표했고, 1905년 단편집 《셜록 홈스의 귀환》, 1908년 단편집 《홈스의 마지막 인사》, 1915년 장편소설 《공포의 계곡》이 출간되었다. 셜록 홈스가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은 1927년에 발표한 단편집 《셜록 홈스의 사건집》이다.

 

1906년에 아내 루이즈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코난 도일은 이듬해 애인 진 래키와 재혼했는데, 그녀와는 카이로에 갔을 무렵 만나 애인 관계를 유지하던 사이였다.

 

홈스 시리즈를 연재하면서도 도일은 당시 제대로 된 소설로 인정받던 역사소설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싶다는 욕망을 계속 품고 있었다. 그는 1912년 남미를 배경으로 선사 시대 동물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모험담 《잃어버린 세계》를 발표했다. 도일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학자 챌린저 교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 지대》, 《안개의 땅》도 집필했으나, 홈스의 인기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코난 도일은 55세의 나이로 군대에 자원했다. 입대를 거절당하자 그는 민간인 자원 부대를 결성해 일반 병사로 종군했다.

 

1916년에는 6권짜리 역사서 《프랑스와 플랑드르에서의 영국의 전투》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1917년에는 심령술에 빠져들어 《새로운 세계시》, 《심령술사의 방황》과 같은 작품을 썼다. 이때 심령술 강의까지 해서 언론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1920년에 《프랑스와 플랑드르에서의 영국의 전투》를 완성했으나 그저 역사적 사실의 조합일 뿐 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대단치 않다는 혹평을 들었다. 1927년에는 SF소설인 《마라코트 심해》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심령술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지지 않아 《피니어스가 말하다》

같은 심령술 책도 계속 썼다. 말년에 벌어진 심령술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코난 도일을 언론의 공개적인 조롱거리로 만들었음에도, 셜록 홈스의 위상은 여전했다.

 

1930년 7월 7일 코난 도일이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는 인파들이 그의 목소리(!)를 듣고자 로열 앨버트 홀에 운집해 영매를 통해 코난 도일의 메시지를 듣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이때 모인 사람들은 약 6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시신은 윈들셤의 로즈 가든에 묻혔다가 후일 햄프셔의 뉴 포레스트로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