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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 春秋戰國時代]

Bawoo 2016. 1. 1. 21:31

 

 

춘추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

[요약 ]

 

BC 770~476년 춘추시대에는 주왕실이 약해지자 100여 개국의 제후들이 반독립적 상태로 활약하면서 균형을 위한 싸움과 회맹을 거듭하였다.

BC 475~221년인 전국시대에는 제·연·진·초·한·위·조 7개 국가가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이중 진이 강성했는데 나머지 나라들이 남북으로 동맹하는 합종책으로 대항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진은 각각과 동맹하는 연횡책을 써서 합종을 방해하면서 우위를 차지하다가 BC 221년 중국을 통일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과 우경의 출현으로 농업생산력을 현저히 증대했으며 상공업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발전이 있었다. 유가 도가 등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천문·역법·수리·토목·건축·공예에서도 전례 없는 발전을 보였다.

개요

춘추전국시대란 동주시대(東周時代)의 다른 이름이다.

BC 770~476년은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 〈춘추 春秋〉의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BC 475~221년은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춘추시대

주 왕실이 동천하고 세력이 약해지자 100여 개국이 넘는 중원(中原) 지방의 제후들이 반독립적인 상태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들은 서주 시대 이래 존재하던 읍제국가(邑制國家)가 발전한 것이었다. 이들은 국도(國都)의 세력권 내에 크고 작은 읍들을 복속시켰는데, 국도의 정치력이 쇠약해지면 곧 제후의 이합집산이 격심하게 되고, 제후세력은 급속히 약해졌다. 그래서 춘추 제후는 국도에서 정권을 확립하고 여러 읍의 맹주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는 데 노력했다. 이렇게 성립된 제후는 다시 회맹(會盟) 외교를 통해 상호간의 세력과 균형을 도모했다.

허약해진 주 왕실을 대신하여 제후국 가운데 강자를 중심으로 여러 국가들이 회맹을 하게 된 데에는 남방의 강국인 초(楚)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BC 658년 초가 정(鄭)을 침입했을 때 제(齊)의 환공(桓公)이 이듬해 제후들을 이끌고 초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제후들과 규구(葵邱:지금의 허난 성 란카오 현[蘭考縣])에서 회맹하여 패업을 성취했다.

 

환공이 죽은 후 제는 내분으로 쇠약해지고 그 뒤를 이어 진(晉)의 문공(文公)이 중원의 맹주가 되었다. 그는 BC 633년 북진해온 초를 성복(城濮 : 지금의 산둥 성 쥐안청[鄄城])에서 대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토(踐土:지금의 허난 성 정저우[鄭州] 동북쪽)에서 제후들을 모아 회맹했다. 문공이 죽은 후 진이 내분으로 세력이 약해지자 초가 다시 진(陳)과 함께 송을 침입했고, 나아가 육혼(陸渾:지금의 간쑤[甘肅], 산시[陝西] 서부에 속함)의 융(戎)을 치고 낙(지금의 허난 성 뤄양)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초의 장왕(莊王)이 주 왕실의 상징인 보정(寶鼎)의 경중(輕重)을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양쯔 강 유역에서 세력을 쌓아 북방의 패자가 된 초를 위협한 것은 춘추 후기에 세력을 키워 급성장한 오(吳)나라였다. 오왕 합려(閤閭)는 BC 506년초의 도읍인 영(지금의 후베이 성 장링 현)을 함락시키고 BC 482년 맹주의 지위에 올랐다. 그후 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으며 월은 다시 초에게 패자의 자리를 빼앗겼다.

 

개요

춘추전국시대란 동주시대(東周時代)의 다른 이름이다.

BC 770~476년은 공자가 편찬한 노(魯)나라의 편년체 사서 〈춘추 春秋〉의 이름을 따서 춘추시대라 하고, BC 475~221년은 대국들이 패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었으므로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한다.

춘추시대

주 왕실이 동천하고 세력이 약해지자 100여 개국이 넘는 중원(中原) 지방의 제후들이 반독립적인 상태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들은 서주 시대 이래 존재하던 읍제국가(邑制國家)가 발전한 것이었다. 이들은 국도(國都)의 세력권 내에 크고 작은 읍들을 복속시켰는데, 국도의 정치력이 쇠약해지면 곧 제후의 이합집산이 격심하게 되고, 제후세력은 급속히 약해졌다. 그래서 춘추 제후는 국도에서 정권을 확립하고 여러 읍의 맹주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는 데 노력했다. 이렇게 성립된 제후는 다시 회맹(會盟) 외교를 통해 상호간의 세력과 균형을 도모했다.

허약해진 주 왕실을 대신하여 제후국 가운데 강자를 중심으로 여러 국가들이 회맹을 하게 된 데에는 남방의 강국인 초(楚)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다. BC 658년 초가 정(鄭)을 침입했을 때 제(齊)의 환공(桓公)이 이듬해 제후들을 이끌고 초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제후들과 규구(葵邱:지금의 허난 성 란카오 현[蘭考縣])에서 회맹하여 패업을 성취했다.

환공이 죽은 후 제는 내분으로 쇠약해지고 그 뒤를 이어 진(晉)의 문공(文公)이 중원의 맹주가 되었다. 그는 BC 633년 북진해온 초를 성복(城濮 : 지금의 산둥 성 쥐안청[鄄城])에서 대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천토(踐土:지금의 허난 성 정저우[鄭州] 동북쪽)에서 제후들을 모아 회맹했다. 문공이 죽은 후 진이 내분으로 세력이 약해지자 초가 다시 진(陳)과 함께 송을 침입했고, 나아가 육혼(陸渾:지금의 간쑤[甘肅], 산시[陝西] 서부에 속함)의 융(戎)을 치고 낙(지금의 허난 성 뤄양)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초의 장왕(莊王)이 주 왕실의 상징인 보정(寶鼎)의 경중(輕重)을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양쯔 강 유역에서 세력을 쌓아 북방의 패자가 된 초를 위협한 것은 춘추 후기에 세력을 키워 급성장한 오(吳)나라였다. 오왕 합려(閤閭)는 BC 506년초의 도읍인 영(지금의 후베이 성 장링 현)을 함락시키고 BC 482년 맹주의 지위에 올랐다. 그후 오는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으며 월은 다시 초에게 패자의 자리를 빼앗겼다.

전국시대

춘추시대 초기에 200여 개가 되던 제후국은 말기에 이르러 10여 개국으로 감소했다.

각 제후국 내에서는 실력을 키운 일부 세경(世卿)이 독자적인 가계(家系)를 형성했다. BC 5세기말경 제에서는 진항(陳恒)이 간공(簡公)을 살해하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진(晉)에서는 한(韓)·위(魏)·조(趙)의 3씨(氏)가 구요(苟瑤)를 멸망시키고 국가를 3분했다. 이때 중국에는 제(齊)·연(燕)·진(秦)·초(楚)·한(韓)·위(魏)·조(趙)의 7개 국가가 큰 세력을 형성하고 서로 패권을 다투었다. 이 전국 7웅(七雄) 가운데 가장 먼저 발전한 나라는 위였다.

위의 문후(文侯)는 이회(李悝)와 서문표(西文豹)를 등용하여 농업생산력을 증진시키는 한편, 오기(吳起)·악양(樂羊) 등의 장군을 기용하여 영토를 확대했다. 그러나 상앙(商鞅)의 변법을 통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고 급속히 강국으로 부상한 진(秦)의 공격을 받아 BC 340년 수도를 안읍(安邑: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샤 현[夏縣])에서 대량(大梁:지금의 허난 성 카이펑 시[開封市])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진이 강성해지자 BC 318년초의 회왕(懷王)은 진 동쪽의 위·조·한·연·제와 함께 남북으로 동맹하는 합종책(合從策)으로 진에 대항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진은 6국 각각과 동맹하는 연횡책[連橫策]을 써서 합종을 방해하고 계속적인 침략으로 여러 중원 국가들 가운데 우위를 차지했다. 진은 BC 260년 장평(長平) 싸움에서 조를 이겨 조의 세력을 약화시킨 뒤 연합한 초·조·한·위의 마지막 저항도 물리치고, BC 221년 중국 전역을 통일했다.

농업과 상공업의 발전

춘추시대 이래 중국에서는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다른 문명과 달리 단철보다는 주철이 먼저 일반화되었는데 무기로 적당하지 않은 주철은 주로 농기구로 사용되었다. 철제 농기구의 사용과 전국시대 이후 우경(牛耕)의 출현은 농업생산력을 현저히 증대시켰다. 또한 수리관개 시설의 발달로 경지가 확대되었다. 이것은 농민의 이주를 촉진시켜 세수(稅收)를 증진시키려는 목적 외에도, 전통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농민을 포함한 전토지와 백성을 국가가 장악하려는 새로운 경제정책이기도 했다.

농업의 발전과 함께 상공업 분야에서도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 이 시기에 제철업·제염업·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대상인들의 이야기도 전해지며, 민간수공업자나 중소 상인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상공업의 발달로 도시발전이 촉진되어 각 제후국의 수도가 상업도시로도 크게 번영했다.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

춘추전국시대에는 열국이 분립하는 정치적 혼란 가운데 사상과 문화가 꽃을 피웠다.

또한 천문·역법·수리·토목·건축·공예에서도 전례 없는 발전을 보였다. 특히 예(禮)를 중심으로 한 유가사상의 성립은 주목할 만하다. 공자는 부자와 형제를 축으로 하는 가족도덕을 기본으로 하고 사회적 규율로 예를 중시했다. 또한 덕치주의에 의한 정치론을 전개했고 군신(君臣)의 의(義)를 강조했다. 그는 인(仁)의 사상을 확립하여 유교의 기본원리로 삼았다. 전국시대에 위의 문후, 제의 위왕(威王)·선왕(宣王) 때에는 유가를 비롯해 여러 사상가들도 자신의 교단을 이끌고 제후왕과 공(公)의 정치에 접근하여 세력을 확대하려 했다.

이들 교단과 그들의 저작을 총칭하여 제자백가라고 한다. 이 가운데 묵가(墨家)는 공리주의(功利主義)의 입장에서 겸애(兼愛)·비공(非攻)·상동(尙同)·상현(尙賢)·천지(天志) 등의 이념을 강조하고 군권(君權) 강화를 주장했다. 유가(儒家), 특히 맹자는 천명의 지배하에 도의적 정치, 즉 왕도(王道)를 행할 것을 주장하고 인성이 본래 선함을 믿어 수양을 중시했다.

법가(法家)는 군권을 절대화하고 법(法)과 술(術)에 의해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엄격히 할 것을 주장했다. 도가(道家)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주장했다. 이들 제자백가는 각각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고 서로 비판하면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다.[출처:다음백과-춘추전국시대 [春秋戰國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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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중국 고대의 시기를 이른다.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약해져 천자로서의 위세가 꺾이자 강력한 제후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되었다. 10여 개국의 제후국들 중 패권을 잡은 제후는 제의 환공, 진(晉)의 문공, 초의 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으로 이들을 춘추5패라 한다.

 

제의 환공은 관중과 포숙아의 도움으로 패자가 되어 기원전 651년 규구에서 제후들을 모아 회맹했다. 진(晉)의 문공은 성복의 대전에서 초나라 성왕을 물리치고 패자가 되어 천토에서 회맹했다. 초의 장왕은 진(晉)을 물리치고 패자로 인정받는다. 이후 천하의 형세는 진(晉)과 초가 남북으로 대치하고 동서로 제와 진晉이 견제하는 4강 시대로 접어든다. 기원전 546년, 송의 수도에서 열린 '미병회담'에서 일종의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중원은 소강 상태에 돌입한다.

 

기원전 453년 진晉나라가 한, 위, 조의 세 나라로 분리되면서 전국시대가 펼쳐졌다. 전국 7웅이라 함은 한, 위, 조, 진(秦), 초, 연, 제를 일컫는다. 이 중 초기에 위, 제, 진(秦) 세 나라가 패권을 다투면서 진(秦)의 효공이 법가인 공손앙을 등용하여 일대 정치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고 천하통일의 기반을 다진다. 결국 진(秦)은 나머지 6국을 차례로 멸망시키고 기원전 221년 제나라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시황제가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우게 된다.

[출처:세계사를 움직인 100인-춘추전국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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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구시대의 구분]

 

 주왕조는 900 여년간 존속됩니다. 이가운데 춘추전국시대는 550 여년간의 기간입니다.

이를 나눠 보았습니다. 

 

서주 동주   춘추 전국

 

 

 

주조 周朝, 나온곳 : 위키 

 

주조는 목야에서 상조을 격파하는 기원전 1059 년부터 진나라 서울인 낙읍에 침입하는 기원전 255 년까지로 900 여년간으로 보기도 합니다. 

 

 

주의 서울 

주의 서울은 풍호였는데, 견융의 침입으로 함락되고 낙읍으로 서울을 옮기게 되는데, 앞서를 서울이 서쪽에 있어 서주시대 뒤를 서울이 동쪽에 있어 동주시대라 부릅니다.

 

 

 춘추 전국, 나온곳 : 위키

 

 

동주시기는 다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눕니다. 주의 권위가 무너지고, 제후국이던 진 晉 이 조, 위, 한 셋으로 나눠지는데,이를 기점으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르 나눕니다. 좀더 정확히는 기원전 476 년 진 晉 의 실권을 잡고 있던 지 知 씨를 조, 위, 한 씨가 무너뜨린 때를 기점으로 보기도 하고, 이 세나라가 주왕실의 승인을 받은 기원전 403 년을 춘추와 전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보기도 합니다. 

 

춘추 

 춘추오패, 나온곳 : 위키

 

 

춘추시대는 300 여년간으로 길고, 매우 복잡하지만, 춘추오패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춘추오패는 춘추시대 패자였던 다섯사람입니다. 그런데 기록마다 오패를 뽑는 것이 서로 달라서 이를 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춘추오패

 

앞서 <사기>, <사통>, <사자강덕론>, <백호통, 호편>, <한서주, 제후왕표>, <순자, 왕패> 를 보시면 5 명 X 6 책 = 30 번 언급된 수와 그 등수를 나타내 보았습니다. 제환공과 진문공은 빠지지 않고 6 번 언급되어 1 등이고, 진목공과 초장왕은 5 번 언급되어 2 등이고, 송양공, 오왕합려, 월왕구천이 2 번 언급되어 3 등이고, 정장공과 오왕부차가 1 번 언급되었습니다. 맹자에서도 제환진문 齊桓晉文 이라며 제환공과 진문공을 묻습니다.



춘추오패 재위시작 재위종료 

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와 같습니다. 300 여년은 매우 길지만, 맨뒤에 오왕합려, 월왕구천, 오왕부차 의 시기는 앞시기와 매우 떨어져 있습니다. 또 맨앞의 정장공 시기도 다소 떨어져 있어 가운데 5 명은 100 여년 밖에 안됩니다.

 

 

춘추오패 재위시작 재위종료 

즉 제환진문으로 상징되는 550 여년간의 춘추전국의 꽃은 100 여년 정도입니다. 이때의 다섯명이 사기속 오패입니다. 오행이란 도교적인 생각도 송양지인이란 유교적인 생각도 있었을 수 있지만 비슷한 짧은 시기인 것이 재미있습니다. 

 

 

춘추시대 

주나라가 낙읍으로 옮기고 피로도 거리로도 가까운 정나라가 정장공시기 패자로 떠오며 주와 다투게 됩니다. 그 다음 제환진문으로 요약할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가장 뜨거운 100 여년간이 펼쳐집니다.

마지막으로 공자가 살던 오월의 와신상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전국 



전국칠웅 

춘추오패가 다섯사람이라면, 전국칠웅은 일곱나라입니다. 

 

 

 

삼진분립시기 

진 晉 이 조, 위, 한으로 나눠지며, 전국시대가 시작되고, 점차 서쪽의 진 秦 과 동쪽의 제 齊 가 떠오릅니다. 특히 진 晉 과 진 秦 은 황하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따라서 전국시대의 시작은 진 秦 에게 이익입니다.



전국시대 

250 여년간의 긴 기간이지만 크게 2 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진 晉 이 조, 위, 한으로 나눠지고 주조 周朝 로부터 승인을 받은 위문후의 시기이고, 둘은 진의 통일시기입니다. 왕보다 사람이름이 유명합니다.

 

위문후는 자하 子夏 의 제자입니다. 자하는 논어의 과유불

過猶不及

 에서, "子張也過,子夏也不及" 가운데 불급 不及​ 을 맡고 있는, 공자의 제자입니다. 위문후는 오기를 뽑아 패자가 됩니다.

 

삼진 三晉 이 나눠지자 서쪽의 진 秦 과 동쪽의 제 齊 가 강해집니다. 위 魏 혜왕은 상앙 商鞅 을 거절하여 서쪽의 진 秦 이 법치를 닦게하고, 손빈을 거절하여 동쪽의 제 齊 가 위 魏 의 방연을 무찌르게 합니다. 흔히 상앙의 법치를 진 秦 의 주요한 통일 원인으로 보기도 합니다. 

 

 

합종 연횡 

상앙이 법을 닦자, 소진을 따라 중원의 6 웅이 모두 세로 [종] 로 연합 [합] 하느냐 장의 张仪 를 따라 관중의 진 秦 과 하나씩 가로 [횡] 로 연합 [연] 하느냐를 고민하는, 진 秦 위주의 시대가 열립니다.

 

 

 

 

 

원교 근공 

진 秦 과 제 齊 가 제 帝 를 칭할정도로 강해질쯤, 제가 맹자의 말을 듣지 않고 연을 괴롭히다 악의가 이끄는 연, 조, 위, 한, 초 5 웅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범저 范雎 의 진 秦 은 멀리 [원] 제 齊 나라와 싸우지 않고 [교] 가까이 [근] 조, 위, 한 을 백기 白起​ 로 공격합니다. [공] 

 

 

전국시대 재위기간 

이상 다섯명의 재위기간을 그리면 이와 같습니다. 마지막은 잘 알려진대로 진시황의 전국통일이 일어납니다. 이는 상앙이 기초를 닦고, 장의가 우위를 점하고, 범저가 이제 二帝 가운데 제 齊 를 확실히 앞지르며, 진시황이 이를 줏어 담은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며 

 

 

춘추전국 시대구분 

즉 춘추시대는 100 여년간의 제환진문 齊桓晉文​ 으로 얽혀 있고, 전국시대의 150 여년간의 진 秦 의 우위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줄요약 : 춘추전국의 많은 이야기는 제환진문 齊桓晉文 100 여년간 특히 몰려있다.]

 

[출처:블로그  |  무르의 공방 -춘추전국 시대구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