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은 ‘합의’ 바깥에 앉아 있다
서릿발 외교 3년 만에 위안부 문제가 타결됐다. 1991년 외교 쟁점으로 떠오른 뒤 24년 만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고, 일본도 국제무대로 나가는 산맥 하나를 간신히 넘었다. 미국의 종용과 막후 조정이 유효했을 거다. 세계 전략의 거점인 한·일 관계가 몇 년째 싸늘해져 제대로 되는 것이 없던 터에 협상 타결 소식은 펜타곤 사람들에겐 ‘매우 듣기 좋은 음악’이었다. IS 테러전에 신경이 한층 날카로워진 세계 전략가들에게 협상 타결은 작지만 중대한 희소식임에 분명하다.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주도했던 마이클 혼다 의원조차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짝 나간 역사적 이정표’라 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역사가 높게 평가할 올바른 용단’이었다고 박근혜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바윗돌처럼 꿈쩍 않던 아베 정부를 움직였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보수 원류인 메이지유신 존왕파의 정통 후예를 자처하는 아베 총리의 입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이 나오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서릿발을 내려쳤던가. 투자, 경제 협력, 문화 교류, 관광산업이 결빙될 것을 감수하고라도 그렇게 했던 이유는 일본 정부의 ‘자인(自認)’이라는 디딤돌을 놓기 위함이었다. 경제대국에 10억 엔이 무슨 돈이랴만, 일본 정부가 자책의 징표로 내놓은 돈으로 만든 재단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독일처럼 손수 건립한 통한의 홀로코스트기념관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의 예산이 투하된 범법의 상징물을 확보했다는 사실의 미래 가치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나가사키 평화기념관에는 원폭 투하의 이유를 말해주는 증거물이 없다.
시작이라는 말이다. 많은 일본인의 심상에는 군국주의와 식민 통치가 ‘성스러운 과거’로 각인돼 있다. 서양 제국주의의 침탈 앞에 동양을 황조황종의 품에 끌어안고 천황적 가족 국가의 신칙(神勅)을 구현한다는 것이 태평양전쟁의 최대 명분이었다. 성전(聖戰)으로 불렀던 그 ‘세계사적 필연’ 속에서 어떤 반인륜적 행위도 정당화됐다. 천황제는 군국주의자들의 윤리적 감각을 마비시킨 허구적 발명품으로서 학살과 만행의 기준을 절대자인 천황에게 위임하는 한 책임의 소재는 사라진다. 황은(皇恩)이 비치는 곳에 죄의식은 없다. 여기에 원폭은 주체성이 결핍된 그들의 정신세계에 피해의식을 덧씌웠다. 잔학무도한 패륜적 행위의 방대한 퇴적물 속에 끼어 있는 위안부 문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까닭이다. 사죄의 무릎을 스스로 꿇은 독일과는 달리 승전국들은 전후 일본에 전범의식이나 집단적 광기가 빚은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따져 묻는 데에 실패했다.
합의문에 등장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란 불쾌하고 생뚱맞은 표현이 바로 그런 일본의 기이한 병증을 집약한다. 일본에 식민 통치는 결코 죄과가 아니다. 그래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이 준 돈은 독립축하금이었고, 이번의 10억 엔도 생존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치장됐다. 그런 일본이 ‘이번이 마지막이며, 되돌릴 수 없다’는 각서를 내밀었고, 한국이 도장을 찍었다. 박 대통령이 여전히 불편한 심기로 말했듯, ‘시간적 시급성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결재였을 것이지만, 전쟁과 식민 통치에 대한 자기 예찬적 자의식에 매몰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당장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베 총리가 돌아서서 말한 국내용 발언은 그 뒤틀림의 의식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충분히 사죄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잊으라는 뜻인가? 역사는 이 지점에서 합의문만으로 단절되는가? 전범국 지도자가 한 말치고는 옹졸하기 짝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세계 인권과 인륜 실현에 관한 보편적 가치의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다.
아동학대, 인신매매, 전쟁 범죄와 인종 학살 등 현대판 인권 유린 사태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인식한다면, 일본의 후손들은 보편적 인권과 평화 실현의 숙명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옳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VANK) 박기태 단장이 한 말이 더 성숙하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정치·외교적 갈등을 넘어선 범세계적 인권 문제”다. 나아가 반인도적 전쟁 범죄, 반평화 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상징이다. 따라서 “70억 세계인의 가슴속에 소녀상을 세우자”는 그의 제안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소녀상 이전을 공공연히 언급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면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으면 될 일이다. 합의문은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의제에서 거뒀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세계인의 윤리의식과 관심이 더불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소녀상은 애초부터 속죄의식이 면역된 나라와의 합의 바깥에 앉아 있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출처: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소녀상은 ‘합의’ 바깥에 앉아 있다
바윗돌처럼 꿈쩍 않던 아베 정부를 움직였으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 보수 원류인 메이지유신 존왕파의 정통 후예를 자처하는 아베 총리의 입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이 나오게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서릿발을 내려쳤던가. 투자, 경제 협력, 문화 교류, 관광산업이 결빙될 것을 감수하고라도 그렇게 했던 이유는 일본 정부의 ‘자인(自認)’이라는 디딤돌을 놓기 위함이었다. 경제대국에 10억 엔이 무슨 돈이랴만, 일본 정부가 자책의 징표로 내놓은 돈으로 만든 재단의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독일처럼 손수 건립한 통한의 홀로코스트기념관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의 예산이 투하된 범법의 상징물을 확보했다는 사실의 미래 가치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나가사키 평화기념관에는 원폭 투하의 이유를 말해주는 증거물이 없다.
합의문에 등장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란 불쾌하고 생뚱맞은 표현이 바로 그런 일본의 기이한 병증을 집약한다. 일본에 식민 통치는 결코 죄과가 아니다. 그래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당시 일본이 준 돈은 독립축하금이었고, 이번의 10억 엔도 생존 위안부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명분으로 치장됐다. 그런 일본이 ‘이번이 마지막이며, 되돌릴 수 없다’는 각서를 내밀었고, 한국이 도장을 찍었다. 박 대통령이 여전히 불편한 심기로 말했듯, ‘시간적 시급성과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결재였을 것이지만, 전쟁과 식민 통치에 대한 자기 예찬적 자의식에 매몰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당장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베 총리가 돌아서서 말한 국내용 발언은 그 뒤틀림의 의식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충분히 사죄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잊으라는 뜻인가? 역사는 이 지점에서 합의문만으로 단절되는가? 전범국 지도자가 한 말치고는 옹졸하기 짝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세계 인권과 인륜 실현에 관한 보편적 가치의 가장 윗자리에 위치한다.
아동학대, 인신매매, 전쟁 범죄와 인종 학살 등 현대판 인권 유린 사태가 위안부 강제 동원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인식한다면, 일본의 후손들은 보편적 인권과 평화 실현의 숙명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게 옳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VANK) 박기태 단장이 한 말이 더 성숙하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정치·외교적 갈등을 넘어선 범세계적 인권 문제”다. 나아가 반인도적 전쟁 범죄, 반평화 범죄에 경종을 울리는 역사적 상징이다. 따라서 “70억 세계인의 가슴속에 소녀상을 세우자”는 그의 제안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소녀상 이전을 공공연히 언급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면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으면 될 일이다. 합의문은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의제에서 거뒀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세계인의 윤리의식과 관심이 더불어 내려진 것은 아니다. 소녀상은 애초부터 속죄의식이 면역된 나라와의 합의 바깥에 앉아 있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출처: 중앙일보] [송호근 칼럼] 소녀상은 ‘합의’ 바깥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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