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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한시에 나타난 새의 이미지와 문학적 의미

Bawoo 2016. 1. 15. 23:31

 

고려후기 한시에 나타난 새의 이미지와 문학적 의미

 

河政承

 

目 次

1. 문제제기

2. 花鳥詩 창작의 史的 전개양상

3. ‘새’의 문학적 형상화와 화조시의 詩的 特質

4. 결어

 

 

국문초록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자연의 동?식물은 예부터 시인들의 주된 吟詠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꽃과 새는 더욱 시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중국이나 한국의 문학사에서는 꽃이나 새를 노래한 시를 일명 ‘花鳥詩’라고 하여 따로 구별할 정도로 한시의 주된 영역이었다. 중국문학사에서 화조시의 창작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시경?에 등장하는 시들에서부터 화조시는 존재해왔다. 『시경』이후로 화조시를 창작한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당나라의 杜甫와 李白, 白居易, 송나라의 蘇東坡와 歐陽脩, 梅堯臣과 林逋를 들 수 있다.

 

고려조 한시사에서 화조시 창작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은 이색과 이규보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시인이 남긴 화조시만 해도 수십 수가 넘는다. 두 시인을 정점으로 하여 그 외 임춘, 이제현, 민사평, 이곡, 안축, 정추, 정몽주, 김구용, 권근 등이 화조시를 많이 남긴 시인들이다.

 

시로 형상화된 새를 그 종류별로 보면 ‘두루미[鶴]’와 ‘제비[燕]’, ‘닭[鷄]’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기러기[雁]’, ‘까마귀[烏]’, ‘참새[雀]’, ‘갈매기[鷗]’, ‘꾀꼬리[鶯]’, ‘까치[鵲]’, ‘거위[鵝]’, ‘오리[鴨]’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각 새들마다 그 새가 갖는 고유의 상징성이 있어서 시인의 감정과 처한 환경에 따라 음영의 대상인 새의 종류도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가령 남북으로 이동하는 철새의 대표인 기러기는 여행 중의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十長生’의 대표적 조류인 학은 고결함, 순결함, 장수 등을 상징한다.

또한 꾀꼬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아름다움이나 사랑의 감정을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닭이나 오리, 거위, 참새 등은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田園詩나 일종의 생활 현장을 다룬 生活詩에서 자주 등장한다.

 

본고에서는 고려후기 화조시의 전반적인 창작 양상과 주요 작가와 작품, 구체적으로 어떤 새가 어떻게 詩化되었는지, 또 각 시에서 새는 무엇을 비유하고 상징하는지, 그리고 화조시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미적 특질과 문학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핵심어 새, 화조시, 금언체, 연아체, 영물시, 제화시, 화조도, 목단시, 탁물우의, 풍유.

 

 

1. 문제제기

 

한시의 소재는 이미 중국 최고의 시집인 『시경』에서부터 매우 다양하였다. 인간의 삶과 관계된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의 동?식물은 예부터 시인들의 주된 吟詠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꽃과 새는 더욱 시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중국이나 한국의 문학사에서는 꽃이나 새를 노래한 시를 일명 ‘花鳥詩’라고 하여 따로 구별할 정도로 한시의 주된 영역이었다.

우리 한문학사에서 새를 소재로 한 시에 대한 명칭은 일반적으로 ‘花鳥詩’, 또는 ‘禽言體詩’라고 칭해 왔다. 가령 18세기의 문인 吳瑗은 ?洛?와 헤어지며?라는 시에서 “花鳥詩成莫憚傳” 1] 라고 하여 본인이 쓴 시를 ‘화조시’라고 말하고 있고, 18-19세기의 문인 尹? 역시 ?저물녘 돌아가며?라는 시에서 “花鳥詩篇逐意成” 2] 이라고 말하고 있다. ‘화조시’의 명칭에 대한 이같은 예는 다른 문인들에게서도 여럿 보인다.

‘禽言體詩’ 또한 여러 군데에서 보이는데, 예컨대 서거정은 ?小卿 祝孟獻의 山禽竹石圖에 題하다?에서 “禽言을 지어서 지극히 포장하고 싶으나/성유만한 재주 없음이 부끄러울 뿐이네” 3] 라 하고 있고, 李裕元은 詩體를 설명하면서 諷諭的 시체로는 “俳諧體, 風人體, 諸言體, 諸語體, 諸意體, 字謎體, 禽言體가 있다.” 4] 고 하고 있다. 또 18세기의 여항문인 張混도 ?騷壇廣樂凡例?에서 “雜曲” 부분에 “廻文體, 首尾吟體, 雜名詩, 禽言體, 演雅體, 問答詩” 5] 등의 시체를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 꽃과 새를 노래한 시를 의미하는 ‘花鳥詩’라고 할 때, 꽃이나 새를 동시에 읊은 시는 많지 않고, 주로 꽃 또는 새를 각각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회화 분야에서는 ‘花鳥圖’라 하여 꽃과 새를 동시에 한 화면에 집어넣고 그린 그림이 많아서 한시의 경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1]吳瑗, 『月谷集』권4, ?別洛??. “亭?落日澹遙天, 客馬徘徊芳草前, 別意悠悠山對酒, 春愁??柳生煙, 江湖興遠那能挽, 花鳥詩成莫憚傳, 憑子寄聲鷗鷺伴, 舊盟寥?又新年.”

2]尹?, 『無名子集詩稿』책3, ?暮歸?. “閒來携杖路縱橫, 花鳥詩篇逐意成, 暮歸還有開心處, 學語稚孫帶笑迎.”

3]徐居正, 『四佳集』권30, ?題祝小卿孟獻山禽竹石圖?. “欲作禽言極張鋪, 只愧才薄非聖兪.”

4]李裕元, 『林下筆記』권2, ??諧詩?. “有俳諧體風人體諸言體諸語體諸意體字謎體禽言體, 雖含諷諭, 實則?諧.”

5]張混, 『而已?集』권14, ?騷壇廣樂凡例?. “雜曲. 三言, 六言, 三五七言, 一字至十字. 廻文體, 顚倒韻體, 首尾吟體, 藏頭詩, 雜數詩, 雜名詩, 禽言體, 演雅體, 字謎體, 兩頭纖纖體, 五雜組, 五仄?, 四聲詩, 疊韻詩, 問答詩, 詞.”

 

 

중국문학사에서 가장 많은 화조시를 창작한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당나라의 杜甫와 李白, 白居易, 송나라의 蘇東坡와 歐陽脩, 梅堯臣과 林逋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화조시의 창작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시경』에 등장하는 시들에서부터 화조시는 존재해왔다.

예컨대 『시경』은 첫 번째 시인 ?關雎?부터 ‘雎鳩’새가 시의 주요 제재로 등장하고 있고, ??風????편 같은 경우는 일명 ‘올빼미의 노래’로서 寓意와 풍자를 담은 새의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새를 시의 주요 테마나 모티브로 삼는 창작 전통은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山水?田園을 읊는 自然詩나 詠物詩의 유행과 발맞추어 성대한 양상을 보인다.

가령 王維, 李白, 杜甫, 白居易, 韋應物, 柳宗元, 劉禹錫, 劉長卿, 李商隱, 杜牧 같은 시인들에 의해 화조시는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그 후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蘇東坡, 歐陽脩, 梅堯臣, 林逋, 黃庭堅 등에 의해 화조시 창작은 꽃을 피우게 된다. 宋代의 화조시 작가들이 唐代와 가장 다른 점은 특정한 시인에게서 특정한 새를 제재로 한 시가 집중적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가령 임포의 경우에는 평생을 ‘매화가 아내이고 학이 자식이다[梅妻鶴子]’라고 할 정도로 학을 사랑한 시인이었다. 반면에 두보의 경우엔 거의 모든 종류의 새를 시로 썼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새를 다양한 시로 표현하였다.

 

한국한문학사에서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화조시의 작가로 목은 이색을 들 수 있다. 사실 목은은 고려조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사 전체를 통해서도 이 분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목은이 남긴 화조시가 모두 몇 수인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본고에서 기준으로 삼은 몇 종류의 새만 두고 보더라도 어림잡아 수십 수가 넘는다. 화

조시 분야에서 목은과 쌍벽을 이루는 시인으로는 이규보를 꼽을 수 있다. 이규보는 목은 다음으로 많은 수의 화조시를 남겼는데, 다루고 있는 새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화조시의 특질을 살펴보는데 있어 목은과 더불어 가장 적합한 작가다. 이색과 이규보는 중국 시인에 비기자면 두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외 林椿, 李齊賢, 閔思平, 李穀, 鄭夢周, 金九容 등에서 화조시가 많이 보인다.

 

시로 형상화된 새를 그 종류별로 보면 ‘두루미[鶴]’와 ‘제비[燕]’, ‘닭[鷄]’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기러기[雁]’, ‘까마귀[烏]’, ‘참새[雀]’, ‘갈매기[鷗]’, ‘꾀꼬리[鶯]’, ‘까치[鵲]’, ‘거위[鵝]’, ‘오리[鴨]’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학, 제비, 기러기, 갈매기, 꾀꼬리 등은 철새이고, 닭, 까마귀, 까치, 참새, 거위, 오리 등은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텃새거나 집에서 키우는 家禽類다.

새의 종류에 따라 시에서 상징하는 바나 시인의 감정이입도 달라지는데, 이를 종류별로 살피는 것도 화조시 연구6] 에 있어서 주요한 테마가 된다. 본고에서는 고려후기 화조시의 전반적인 창작 양상, 주요 작가와 작품, 구체적으로 어떤 새가 어떻게 詩化되었는지, 또 각 시에서 새는 무엇을 비유하고 상징하는지, 그리고 화조시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미적 특질과 문학사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6]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花鳥詩, 또는 禽言體詩 관련 주요 연구물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선형, ?朴昌珪의 烙畵 “花鳥圖”?, 『미술사연구』 3호, 미술사연구회, 1989; 송희준, ?연아체 한시에 대하여?, 『안동한문학논집』 6집, 안동한문학회, 1997; 정도상, ?연아체시 고찰?, 『한문학논집』 16집, 근역한문학회, 1998; 정민, ?금언체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 27집, 한국한문학회, 2001; 하정승, ?연아체 한시 연구-15?16세기를 중심으로?, 『한국의 철학』 31권, 경북대 퇴계연구소, 2002; 정민,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효형출판, 2003; 여순종, 『동아시아 고전한시의 비교문학적 연구-‘花鳥風月’의 미의식과 이미지의 형성』, 國學院大學(일본) 박사학위논문, 2008; 김재욱, 『목은 이색의 영물시』, 다운샘, 2009; 우현식, ?詠物詩 題目의 작품 속 노출 여부에 대한 小考-이규보 한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고대학』 31집, 동아시아고대학회, 2013; 엄교흠, 『“古今和歌集”の特?に?する考察 : 四季部と?部を中心に : 四季部と 部を中心に』, 한국외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3.

 

 

2. 花鳥詩 창작의 史的 전개양상

 

중국에서의 화조시 창작은 전술한 바와 같이 『시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러 시인들에 의해 본격적인 창작이 이뤄진 것은 唐代 이후다. 특히 王維나 柳宗元, 劉禹錫, 劉長卿, 韋應物 같은 盛唐?中唐의 自然詩派들은 산수시?전원시를 즐겨 지었기에 시의 소재로 새가 많이 등장하였다. 唐詩 작가들 중에 화조시 창작의 정점은 단연 杜甫다. 두보는 일단 화조시의 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다루고 있는 새의 종류도 제비, 기러기, 갈매기, 매, 앵무새, 두견새, 까마귀, 거위, 오리등 매우 다양하며, 시의 내용 역시도 시인의 감정을 읊은 순수시에서부터 寓言?寓意로 새를 통해 비유적으로 풍자한 시에 이르기까지 가히 화조시를 통해 시인이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조시는 宋代에 이르러서도 즐겨 지어졌는데, 가장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歐陽脩와 梅堯臣을 들 수 있다.

특히 매요신은 孔雀, 익더귀[?-새매의 일종], 提壺鳥 등 남들이 관심을 별로 두지 않는 특이한 새들을 즐겨 詩化하였다. 또한 한시사에서 매요신은 소위 ‘禽言體’ 시를 처음으로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금언체란 본래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형용하여 지은 시를 말하는데, 詩體의 하나로서 시작된 것은 매요신의 ?禽言詩 四首?에서 비롯되었다. 宋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소식의 다음 글을 보자.

 

 

"매성유(매요신의 자-필자 주)가 일찍이 금언시 네 수를 지었다.

내가 황주에 유배되어 정혜원에 우거하는데, 집 주위가 모두 무성한 숲에 키 큰 대나무와 황폐한 못가의 갈대 부들로 둘러싸여 봄과 여름 사이에는 울어 대는 새들이 종류가 하도 많아서,

그 지방 사람들이 흔히 그 새 소리와 비슷한 말로 그 새를 이름하고 있으므로, 마침내 매성유의 詩體를 사용하여 금언시 다섯 수를 짓는 바이다." 7]

7] 蘇軾, 『東坡全集』 권12, ?五禽言五首 幷敍?.

“梅聖兪嘗作四禽言.

余謫黃州寓居定惠院, ?舍皆茂林脩竹, 荒池蒲葦, 春夏之交, 鳴鳥百族,

土人多以其聲之似者名之, 遂用聖兪體作五禽言.”

 

 

위의 인용문을 통해서 새가 부르는 울음소리를 통해 새의 이름이 지어지고, 이를 처음으로 매요신이 詩化하여 ‘금언시’라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요약해보면 금언체시는 새의 울음소리를 音借, 또는 訓借하여 의미와 함께 읽는 일종의 雜體詩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금언체시는 본고에서 다루는 화조시와는 새를 제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시적 구성과 진술방식, 그리고 시의 형식 등에서는 많은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8] 금언체와 더불어 동?식물의 다양한 이름을 詩化한 ‘演雅體’라는 詩體도 있는데, 금언체와 연아체 모두 송나라 때 시인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宋代 시인들의 습성과 송시의 전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9]

 

우리나라에서 화조시를 본격적으로 지은 최초의 시인은 崔致遠이다. 최치원은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그곳 시단의 흐름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특히 晩唐의 시풍에 정통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의 문집에 화조시가 보이는 것은 당나라의 역대 시인들이 화조시를 즐겨 지었던 중국한시사의 흐름과 작시법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치원이 한국한시사의 鼻祖임을 생각할 때, 그의 시집에 화조시가 보인다는 점은 이후 전개될 한국 화조시의 전개 양상에 직?간접적으로 최치원의 영향이 상당히 작용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최치원 이후 고려조에 들어와서는 12?13세기의 임춘과 이규보를 대표적인 화조시의 작가로 꼽을 수 있다. 임춘은 닭, 제비, 거위, 까치 등 주로 일상의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새를 소재로 화조시를 쓴 것이 특징이다. 이규보는 목은 이색과 더불어 고려조 시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의 화조시를 남겼는데, 특히 학, 제비, 닭, 까마귀, 백로, 기러기에 대한 시가 많다. 까마귀와 백로, 학은 인간의 성품과 인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와 관련된 시가 많다는 사실은 이규보의 화조시가 우의와 풍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제비와 닭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 등장하는 소재들이므로 그의 시가 일종의 생활시적인 면모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8]일반적으로 ‘화조시’라고 할 때에는 특정한 어떤 새를 소재로 하여 시인의 뜻과 감정을 읊는 것이고, ‘금언체시’는 새의 울음소리를 빌려서 풍자와 우의를 전달하는 이중적 의미의 노래로, 표면 진술과 이면 진술 사이에 긴장과 함축을 머금게 하는 독특한 형식의 詩體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화조시와는 구별된다고 하겠다. 이상의 금언체 시의 의미, 유래와 전개양상 등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는 정민, ?금언체시 연구?, 『한국한문학연구』 27집, 한국한문학회, 2001, 66쪽을 참조할 것.

9]演雅體 시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은 하정승, ?연아체 한시 연구-15?16세기를 중심으로?(『한국의 철학』 31권, 경북대 퇴계연구소, 2002.)를 참조할 것.

 

 

임춘이나 이규보보다 한 세기 정도 후배인 목은 이색은 고려조는 물론이고 한국한시사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활발한 시작 활동을 보여준 다작의 시인이다. 목은의 창작 범위는 한시의 거의 모든 형식과 장르를 아우르고 있기에 화조시 분야에서도 역시 많은 양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다루고 있는 새의 종류도 唐代의 杜甫만큼이나 다양하고 다채롭다. 단순히 분량만이 아니라 그 내용적인 면이나 표현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목은은 탁월하다. 아마도 조선시대 시인을 포함하더라도 한국 화조시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이 아닐까 싶다.

 

목은의 선배 문인들 중에서는 화조시의 주요 작가로 이제현, 민사평, 이곡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세 명은 모두 이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곡은 주지하디시피 이색의 부친이고, 이제현은 이색의 스승이며, 급암 민사평은 이제현과 문학적으로 교유를 가장 많이 나눈 인물이고, 또한 척약재 김구용의 외조부였다. 척약재는 목은이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을 때 學官으로 채용되었고, 그 후 깊은 교유를 나누었으며 문학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생각한다면, 목은이 민사평과 직접적인 교유는 나누지 못했지만 우호적 영향관계 하에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급암은 특히 화조시를 비롯한 영물시의 창작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10]

목은이 화조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의 창작에 열을 올린 것도 이 세 명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라 짐작된다. 특히 가정 이곡은 목은의 부친이면서도 동시에 선배 문인으로 元나라로 유학을 떠나 원의 과거에 합격하고 원의 문인들과 교유를 나누면서 當代 宋?元의 시단에서 유행하던 시풍들을 배웠던 것이 화조시 창작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11]

 

목은 이후의 세대에서 새를 시의 중요한 제재로 삼아 창작한 시인으로는 정몽주와 김구용이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김구용은 목은이나 이규보보다는 적지만, 기타 다른 시인들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화조시를 남기고 있어 주목된다. 12] 이는 전술한 바처럼 김구용이 민사평의 외손이었기에 민사평의 詠物的 시풍을 배웠던 것 13] 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시에서 다루고 있는 새의 종류는 주로 기러기, 갈매기 등 먼 거리를 오가는 철새가 많은데, 이는 중국으로 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明의 황제에 의해 오지로 멀리 유배를 떠나야 했던 그의 고단했던 삶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14] 이들 외에도 고려조의 대표적인 화조시 창작 시인들로는 洪侃, 安軸, 李集, 李崇仁, 元天錫, 成石璘, 權近 등을 꼽을 수 있다. 15]

 

10] 급암 민사평은 화조시 중 새에 관련한 시도 많이 썼지만, 꽃에 관한 화조시가 더욱 돋보인다. 특히 모란을 소재로 한 소위 ‘목단시’는 고려후기 영물시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에 대한 사항은 하정승, ?급암 민사평의 목단시 연구?(『?수선논집? 24집, 성균관대대학원, 2000.)를 참조할 것.

11]가정이 원에 유학을 했던 14세기 전반기는 陸游, 楊萬里, 范成大 등 南宋을 대표하는 화조시 작가들의 유풍이 남아 있었고, 또 이것이 元의 시단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12] 김구용의 시에는 기러기, 갈매기와 같은 새가 많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다른 시인들의 경우처럼 새 자체를 주목하여 새를 시의 중심 제재로 삼은 경우는 드물고, 일반적인 시 속에 새를 등장시켜 詩意를 전개해가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독립된 화조시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다. 본고의 본론 부분에서는 총 9명의 작가와 9종의 새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각각의 새의 종류와 그것을 다룬 화조시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는 본고의 의도상 김구용의 시는 논의에서 제외시켰음을 밝혀둔다.

13]실제로 목은 이색은 김구용의 시풍을 이야기 하면서, “급암 민선생의 시는 조어가 平淡하고 用意가 精深하다. …… 외손 김경지씨는 급암 선생의 집에서 생장하였다. …… 지금 『學吟』을 보니 그 詩法이 급암과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李穡, 『?若齋學吟集』 권수, ?題?若齋學吟後?.) 이로 보면 김구용의 시풍은 일단 민사평의 詩法을 배운 것으로 볼 수 있다.

14] 김구용은 고려후기의 명문인 안동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지만, 명나라 황제에 의해 雲南의 大理로 유배를 가는 도중에 객사했는데, 중국에서의 유배뿐 아니라 고려에서도 이미 한 차례의 유배를 겪는 등 그의 정치인생은 파란만장 하였다. 김구용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는 성범중의 『척약재 김구용의 문학세계』(울산대출판부, 1997.)가 참조가 된다.

15]이는 필자가 한국고전번역원의 검색 시스템(http://db.itkc.or.kr)을 활용하여 검색해낸 결과에 의한 것으로, 현재 문집이 전하는 고려조의 시인들 가운데에서는 위에서 거론한 인물들이 화조시 창작의 대표적인 시인들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다. 이하 본문에서 서술할 조선조의 화조시와 시인들도 같은 방법을 적용했음을 밝혀둔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화조시를 많이 남긴 시인으로 조선전기에는 徐居正, 金時習이 있고, 중기에는 金安老, 申光漢, 盧守愼, 蘇世讓, 權好文, 車天輅, 金誠一, 李?光, 金尙憲, 李安訥, 17세기 이후인 조선후기로 가면 柳夢寅, 金昌翕, 申翼相, 丁若鏞, 金正喜, 趙秀三, 趙熙龍, 金允植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영물시 또는 잡체시의 일종인 금언체시의 주요 작가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전술했던 금언체시의 주요 작가는 서거정, 김시습, 김안로, 유몽인, 김윤식 등을 들 수 있는데,16] 이들은 일반적인 화조시의 주요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위의 명단을 보면 화조시의 큰 범주인 영물시의 주요 작가와도 다수 겹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서거정, 김시습, 차천로, 이수광, 정약용, 김정희, 조수삼등은 한국한시사에서 대표적인 영물시의 작가이기도 하다.17]

이들은 새가 아닌 다른 동?식물들, 예컨대 곤충, 동물, 꽃, 나무 등은 물론이고 무생물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사물에 관한 시도 많이 썼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주변의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시로 형상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시인들이 일반적으로 화조시도 많이 썼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것은 조선조의 시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고려조의 시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컨대 전술한 이규보, 이색, 이제현, 민사평, 이곡 등은 모두 영물시도 많이 남긴 시인들이다.

 

16]금언체 시의 주요 작가에 대한 것은 정민, 앞의 논문, 71∼73쪽을 참조할 것.

17]한국한시사를 대표하는 영물시의 주요 작가에 대한 것은 여러 가지 근거를 통해 밝혀볼 수 있겠으나, 그 중의 하나로 조선후기의 여항시인 劉在建이 엮은 『古今詠物近體詩』에 수록된 대표적인 영물시와 시인의 명단이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다채로운 여러가지 형식의 글을 남긴 시인들이 화조시도 많이 썼다는 점이다. 박학다식하고 百科的인 지식인이 많다는 말이다. 가령 차천로, 이수광, 유몽인, 정약용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들은 雜錄類나 雜記類, 筆記類 등의 글도 많이 남겼는데, 이러한 취향의 글을 쓴 작가들이 화조시의 주요 시인이라는 사실은 재미있는 공통점이라 하겠다. 사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화조시를 살펴보면 일상에서 쉽게 접해보지 못하는 새를 포함하여 매우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등장한다. 18]이것은 화조시의 작가가 ‘鳥蟲花卉草木’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자연물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방대하고 깊은 지식까지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18]예를들어 중국의 역대 대표적인 화조시를 모아놓은 『花鳥詩歌鑑賞辭典』(中國 旅游出版社 간행, 1992.)을 보면 무려 73 종류의 새가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 새들 중에는 ‘鴨’이나 ‘野鴨’처럼 그 종류가 비슷하여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일상에서 쉽게 접해보지 못한 새들도 다수 등장한다. 이는 화조시의 시인들이 새에 대한 박학하고 방대한 지식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비슷하여 『한국문집총간』을 가지고 조사해 보면 아주 다양한 종류의 새가 등장함을 알 수 있다.

 

 

셋째,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소위 실학파 시인이 많다는 점이다. 정약용, 김정희는 대표적인 실학파 시인이고, 조수삼과 조희룡, 그리고 김윤식 역시 그 영향 하에 있는 시인이다.

 

이상으로 한국과 중국의 한시사에서 화조시가 창작된 양상을 주요 작가들을 중심으로 史的으로 고찰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새나 꽃을 다루는 화조시는 ‘花鳥圖’ 등과 더불어 題畵詩로 많이 창작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화조시가 다 제화시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쟝르의 시들에 비해서는 제화시가 많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이미 중국 唐?宋代로부터 내려온 전통이기도 하다. 唐?宋 이후로 明?淸代에 이르러서도 화조시는 화조도와 더불어 많은 경우 제화시로 창작이 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제화시가 본격적으로 지어진 조선조의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9]

 

또한 화조시는 기본적으로는 어떤 시대의 특정한 시인이나 시풍 등에 크게 관계됨이 없이 시인의 개인적인 기질이나 취향, 기호에 의해 창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령 금언체시나 연아체시 같은 경우에는 중국에서는 黃庭堅, 陳師道, 楊萬里 같은 송시풍 시인들에게서 주로 보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특정한 부류의 시인들20] 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만 금언체나 연아체처럼 뚜렷한 현상은 아니더라도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영물시를 즐겨 짓는 시인들, 또는 박학하고 百科的인 시인들에게서 화조시가 많이 보이는 것은 화조시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연아체처럼 뚜렷한 집단의 특정 시인들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마도 화조시가 다루고 있는 범위가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금언체나 연아체는 시의 형식만 놓고 보더라도 잡체시의 일종으로 작시법 또한 일정 부분 그 틀이 정해져 있는 것에 비하여, 화조시는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칠언고시 등 그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고 작시법 역시 매우 자유롭기 때문이다. 요컨대 화조시라는 용어 자체가 시의 소재와 제재를 두고 이름 붙여진 개념이기에 특별히 정해져 있는 형식이 없고, 그만큼 다양한 작가와 作風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19]가령 현재 비교적 각종 그림이 많이 남아있는 조선후기의 화조도 중에서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시인들 가운데 김정희, 조수삼, 조희룡 등의 화조시에는 제화시가 많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화조시는 그 성격상 화조도 등의 그림과 함께 제화시로 창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화조시와 화조도의 관계 및 역대 대표적인 화조시, 화조도에 대한 소개는 정민,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효형출판, 2003.)가 좋은 참조가 된다.

20]예컨대 연아체 한시의 경우에는 容齋 李荇을 중심으로 하는 해동강서시파와 그들의 후배격인 崔演, 嚴昕, 蘇世讓, 林亨秀 등을 중심으로 창작이 이뤄졌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후기에도 그대로 이어져 17-18세기의 대표적인 연아체 작가는 崔錫鼎, 趙顯命, 蔡彭胤 등인데, 이들 역시 서로 문학적 교유를 통해 연아체를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연아체시와 특정 시인 집단의 창작 현상에 대해서는 하정승의 앞의 논문을 참조할 것.

 

 

3. ‘새’의 문학적 형상화와 화조시의 詩的 特質

 

화조시는 큰 범주에서 보면 詠物詩의 일종이다. 영물시 중에서도 동물을, 동물 중에서도 새를 읊은 것이 화조시가 된다. 따라서 화조시의 창작 기법 역시 일반적인 영물시의 기법과 큰 맥락에서 동일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령 일반적인 영물시에서는 비유나 상징, 의인화와 같은 수사법이 많이 쓰이고, 또 영물시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비유나 상징들을 풀어내야 하는 것처럼 화조시 역시 동일하다.

吟詠하는 사물의 외형을 빌어 시인 자신의 감정과 이상을 담기도 하고, 寓意를 함축하기도 하는 영물시의 표현기법은 화조시의 특질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하다.21]

이른바 사물에 기탁해 시인의 뜻을 말하는 ‘托物寓意’와 사물로 인하여 감흥을 일으키는 ‘因物起興’은 고전시가의 중요한 수법으로, 특히 조선조 성리학자들의 문학적 형상사유로 널리 알려졌는데,22] 이는 화조시의 창작기법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다.

사실 ‘탁물우의’와 ‘인물기흥’의 수법은 그 근원을 따져보면 멀리 『시경』의 ‘六義’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의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風’?‘雅’?‘頌’은 시의 내용에 따른 분류이고, ‘興’?‘比’?‘賦’는 시의 표현기법으로 분류한 것이라는 게 가장 일반적인 견해다. 23]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탁물우의’는 ‘흥’과 ‘비’의 수법을 보다 발전시킨 일종의 ‘흥’과 ‘비’의 변용이라는 측면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물기흥’은 사실 ‘흥’, ‘비’, ‘부’같은 시의 구체적인 표현기법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시인이 사물에 즉하여 흥을 일으킨다는 시인의 감정과 시적발흥에 대한 다분히 원론적인 이야기로 보인다.24] 이는 단순히 사림파들의 문학, 또는 江湖歌道에만 적용될 문제가 아니라 한시, 특히 영물시나 화조시의 분석에 있어서 ‘탁물’과 ‘우의’, 그리고 ‘흥’, ‘비’, ‘부’의 수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본고에서도 화조시를 분석함에 있어 이것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해 나가려고 한다.

 

본고에서 주로 다루게 될 고려조 시인들이 남긴 화조시는 작가별로 보면 李穡, 李奎報, 林椿, 李齊賢, 李穀, 鄭樞, 安軸, 鄭夢周, 權近등 9명이고, 새의 종류를 따라 구분한 소재별로 보면 두루미[鶴,] 제비[燕], 기러기[雁], 갈매기[鷗], 꾀꼬리[鶯], 닭[鷄], 까마귀[烏], 참새[雀], 까치[鵲]등 9종류이다. 25]

물론 고려후기에 화조시를 1수라도 남긴 시인은 이보다 훨씬 더 많고, 다뤄지는 새의 종류도 위의 9종외에 ‘오리[鴨]’, ‘거위[鵝]’, ‘꿩[雉]’, ‘해오라기[鷺]’, ‘앵무새[鸚]’등 상당히 많지만,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화조시를 여러 수 남긴 시인들과 많이 등장하는 새를 기준으로 검색한 결과 위의 9명의 시인들과 9종류의 새를 확정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새의 종류에 따라 화조시를 소재별로 구분하여 각 시의 특징과 형상화 기법, 새가 상징하는 의미 혹은 시인이 그 새를 통해 어떠한 詩意와 詩情을 드러내려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21]이상 詠物詩의 개념 및 특징에 대한 사항은 『문학비평용어사전』 (한국평론가협회 편저, 국학자료원 간행, 2006.)을 참조할 것.

22]고전시가에 보이는 ‘托物寓意’와 ‘因物起興’의 기법, 그리고 양자 간의 차이와 공통점 및 사림파 문인들의 문학 형상 사유에 대해서는 이민홍, 『조선조 시가의 이념과 미의식』, 성균관대출판부, 2000, 117∼132쪽에서 자세히 다뤄져 있다.

23]『시경』의 朱子集註에 의하면 주지하다시피 ‘興’은 아무 관계가 없는 물건을 빌어다가 자기의 뜻을 나타내는 표현법으로, 수사의 가장 세련된 기교로서 일종의 연상법이라 할 수가 있다. ‘賦’는 어떤 일을 직접 서술하여 바로 말하는 것이다. 즉 어떤 일이나 사건을 수사 없이 직접 서술함으로써 사실의 전달에 요긴한 표현법이라 할 수 있다. ‘比’는 저 사물에 의탁하여 이 사물을 비유하는 방법으로 비유법?은유법 등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같은 기본적 개념에서 조금 더 나아가 살펴보면 風은 풍속의 노래, 즉 ‘風俗歌’이고, 雅는 연회의 노래 즉 ‘賀宴歌’이며, 頌은 제의의 노래 즉 ‘祭儀歌’로서 이것은 주로 용도에 따른 양식별 구분이고, 부와 흥은 고대에 특유한 시의 표현 방법상의 구분으로 보기도 한다. 즉 부는 신의 말씀을 전하거나 신을 찬양할 때 직접적으로 이를 서술하는 것으로 일종의 서사시리고 할 수 있으며, 흥은 신과 사람을 매개하는 사물을 빌려 기원?축계?불운을 말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그 서술이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통용되기에 서정시가 이것으로부터 전개되며, 비는 흥에서 발전한 修辭的 기교의 비유라는 설명이다. 이상 ‘육의’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수사법으로서의 설명은 임종욱, 『동양문학비평용어사전』(국학자료원, 1997.)과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서울대출판부, 2004.)을 참조할 것.

24]이에 대해서 이민홍 교수는 ‘因物起興’에서 興은 興趣를 뜻하며, 『시경』 ‘육의’의 ‘흥’과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16세기 중엽에 朱子의 시 ?武夷櫂歌?를 두고 이 작품이 ‘탁물우의’인지 ‘인물기흥’인지에 대해 벌어진 논쟁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탁물우의’는 풍유와 교훈, 감계를 목적으로 하는 시가 되고, ‘인물기흥’은 이보다는 훨씬 더 서정시에 가깝게 된다. 이민홍 교수는 더 나아가 조선조의 시가는 ‘托物寓意’에서 ‘因物起興’으로, 또 ‘因物起興’에서 ‘觸物遣懷’로 진행됐다고 하여, ‘인물기흥’을 시인들이 사용했던 고도의 수사법의 일종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의견이 상당 부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인물기흥’과 ‘촉물견회’에 대한 해석이 좀 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탁물우의’는 이민홍교수의 의견처럼 고도의 수사법이라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감하나, ‘인물기흥’과 ‘촉물견회’는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고 감흥을 일으켜 시를 쓰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성립될 수밖에 없는 다분히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문제로 보인다. 어쨌든 ‘탁물우의’, ‘인물기흥’, ‘촉물견회’는 조선조 시가, 특히 ‘江湖歌道’를 이해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문제임은 틀림없다. 여기 이민홍 교수의 의견은 이민홍, 앞의 책, 131∼132쪽을 참조할 것.

25]여기에서 다뤄지는 9명의 시인과 9종류의 새는 고려후기라는 시기를 제한한 것에 비춰보면 매우 많은 작가와 많은 종류의 새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시 속에 담겨진 새와 화조시를 엮은 대표적 저서인 정민 교수의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에는 수십 명의 시인과 도합 36종의 새들이 등장하지만, 이는 한국한시사 전체를 기준으로 삼은 것임을 감안하면 9명의 시인들과 9종류의 새는 작은 범위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1) 두루미[鶴]

 

중국이나 한국의 화조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새는 단연 ‘두루미[鶴]’다. 두루미는 예부터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로 알려져 있고, 또 십장생에 들만큼 천년을 장수하는 영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두루미를 부르는 한자어도 ‘仙鶴’?‘仙禽’?‘露禽’?‘丹頂鶴’등 도교와 관련된 말들로 이뤄져 있다. 도교문학에 두루미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중국문학사에서 학으로 가장 유명한 시인은 송나라의 임포다. 그는 ‘梅妻鶴子’로 불릴만큼 학을 사랑했던 시인이었다. 한국문학사에도 학을 사랑한 시인들은 많다. 그 포문을 연 시인은 고려의 이규보와 이색이다. 이색의 다음 시를 보자.

 

 

鶴을 읊다

검은 치마 흰 저고리를 보기가 드물구나    裳玄衣縞見來稀

신선이 있지 않으니 누구에게 돌아갈까     不有神仙誰與歸

행동거지는 헌칠하고 모양은 고아하며      擧止?藏形貌古

정신은 빼어나고 깃털은 아주 섬세하네     精神秀發羽毛微

천년 만에 화표주 꼭대기에서 말을 하고    千年華表柱頭語

만 리의 흰 구름 하늘 밖으로 날아갔네      萬里白雲天外飛

나도 그것을 타고 팔방 끝을 노닐고 싶지만 我欲駕渠游八極

인간은 세월을 붙잡을 방법이 없다네     人間無術駐斜暉 26]

26] 이색, 『牧隱詩藁』 권22, ?詠鶴?.

 

위의 시는 학의 외양은 물론이고 학의 기질, 행동거지, 정신, 학이 일반적으로 상징하는 바까지도 묘사하고 있다. 1구의 “검은 치마 흰 저고리”는 날개의 깃과 꼬리는 검고 몸통은 흰 학의 모습을 가리킨다.

2구의 “신선”은 신선이 학을 타고 다닌다는 전설을 말한 것인데, 문제는 지금 신선이 없다는 것이다. 신선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더 이상 학은 의미없는 존재다. 그래서 학은 돌아갈 데가 없다.

3-4구는 학의 외양묘사다. “행동거지는 헌칠하고 모양은 고아하며 정신은 빼어나고 깃털은 섬세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은 큰 키의 대형조류로서 머리는 붉고, 목과 날개, 꼬리는 검정색에 몸통은 흰 빛이어서 아름답고 멋진 자태를 가지고 있다.

5-6구는 漢나라 때 遼東人 丁令威의 고사이다. 그는 신선술을 배워 학이 되었는데, 오랜 후에 고향땅으로 돌아와 華表柱 위에 앉았다가 한 소년이 그를 쏘려하자 “성곽은 예전과 같은데 사람은 간 곳이 없구나.”라고 말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길재의 유명한 회고가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와 같은 의미이다.

마지막 7-8구는 시인의 소망이자 안타까움이다. 정령위처럼 학이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학을 타고 자유롭게 하늘끝까지 날아가고 싶지만, 새롭게 道家의 술법을 배우기엔 세월은 이미 흘러가 버렸고 나이는 너무 늙어버렸다. 이처럼 학은 한시에서 도가, 혹은 도사와 연관되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권근이 지은 인용시에서는 학이 또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병든 鶴

가을 하늘에 청아한 학 소리               鶴聲?亮九秋天

그물에 걸려 날갯죽지 상했구나          毛羽?傷??邊

하지만 너 다시 구름 뚫고 올라가서는  知汝更穿雲漢去

바람 맑고 달 밝은 선경에서 놀리라     風淸月白?靑田 27]

27]권근, 『陽村先生文集』 권10, ?病鶴?.

 

위의 시는 병든 학을 읊은 것이다. 가을하늘에 청아한 학의 울음이 울려 퍼진다. 예부터 두루미라는 이름이 ‘뚜루루’라는 울음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할 정도로 두루미의 울음은 맑고 큰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지금 인용시의 학은 기분이 좋아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다쳤다. 그가 다친 이유는 2구에 잘 나타나있다.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 날갯죽지가 상한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 학의 회복과 소생을 믿는다. 지금 당장은 비록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늘의 구름을 뚫고 비상할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 있다. 사실 이 시에서 학은 시인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인용시가 정확히 언제 쓰여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권근이 환로에 오른 뒤 정치인생에서 최대의 시련을 맞은 것은 고려말엽인 1389년(창왕1) 副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올 때 가져온 禮部의 咨文이 화근이 되어 寧海?興海?金海 등지로 유배된 때거나, 혹은 1390년(공양왕2) 彛初의 獄事에 연루되어 淸州에 유배된 때였음을 생각할 때, 인용시도 그 무렵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병든 학은 정치적 시련을 맞은 자신의 모습이기는 하지만, 결국 그 병든 학이 하늘 높이 다시 날아오를 것이라 표현한 것은, 본인이 암울한 정치적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화려하게 재기할 것이란 소망과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시인은 많은 새들 중에 왜 하필 병든 학에다가 자신을 빗대어 표현했는냐는 것이다. 이것도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시인이 학을 깨끗한 선비의 표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은 淸淨의 仙境에서 노니는 신선의 새로 널리 인식되어 왔다. 이는 물론 이 시를 쓴 권근만이 아니라 다른 사대부 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 학이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비록 다치고 병들었지만 끝내는 이 병을 극복하고 장수할 것이란 기대를 십장생의 대표적 새인 학을 통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다. 다음 시는 학의 그림을 보고 쓴 것이다.

 

 

養淵師를 방문하였다가 그가 가지고 있는 白鶴圖를 보고 짓다

학은 세속 밖의 물건으로                鶴是塵外物

그 종족은 본래 仙境에서 나왔다네   族本出神仙

옥같은 새장에서 편안히 깃들다가    無心玉籠裏

아름다운 나무에서 날개를 펼친다네 拂翼瓊樹邊

이 때문에 지도림이                       所以支道林

천 리 밖 창공에 놓아주었네            放之千里天

지금 대사는 얼마나 사랑하기에       師今何酷愛

그림까지 묘사해 두었을까              摸寫?眼前

실물도 기르기 어렵거든                 眞猶不可蓄

그림까지 어떻게 간직하려나           況奈丹靑傳

그 까닭 차분히 물었더니                徐徐涉其理

대사는 그렇지 않다며                    師意乃不然

놔주면 신같은 자태를 잃을까 염려되고 放恐失神態

기르면 外物에 끌려갈까 염려되지        養恐爲物牽

놔주지도 기르지도 않으려면              不放亦不養

그림보다 나은 것이 없기에                莫如?手賢

仙境에서 노니는 진상을 묘사했으니    故寫靑田眞

가벼운 날개로 붉은 연기 박차는 모습이라네 逸?凌紫煙

여윈 모습으로는 道貌를 관찰하고               瘦以觀道貌

맑은 모습으로는 天眞을 기른다하네            靑以養天全

나는 지금 학의 그림만 볼 뿐                      吾觀寫生圖

감히 글로는 지을 수가 없구나                    未作寫生篇 28]

28]李奎報, 『東國李相國集』 권5, ?訪養淵師賦所蓄白鶴圖?.

 

이규보가 養淵師라는 스님을 방문하여 그가 소장하고 있는 ‘白鶴圖’를 보고 지은 시인데, 그림에 적힌 시가 아니라 그림을 보고 쓴 시지만, 학의 그림을 논하고 또 후대에 학의 그림과 함께 전해졌다는 의미에서 광의의 제화시라고 볼 수 있다. 29]

1구에서 4구까지는 일반적인 학의 기질에 대해 읊고 있다. 전설에서 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이기에 세속과는 거리가 멀다. 그 종족이 仙境에서 나왔다는 의미는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의 새임을 지칭한다.

5-6구의 “지도림이 천리 밖 창공에 놓아주었다.”는 말은 晉나라의 고승 支遁[道林은 그의 자]이 일찍이 누군가가 鶴을 보내주자 “하늘 높이 나는 새를 어찌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느냐.”며 놓아주었다는 고사를 말한다.

7구 이하로는 양연사가 학을 놓아준 지도림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학을 사랑함을 말하고 있다. 양연사는 학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학을 놓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학의 그림을 그려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학을 놔주면 영영 신과 같은 학의 자태를 보지 못하게 되고, 그렇다고 학을 기르면 그 자체가 학이라는 외물에 이끌려 종속되는 것이니, 가장 좋은 방법은 그림으로 남겨 학을 감상하는 것이라는 양연사의 설명이다.

17-20구는 ‘白鶴圖’에 그려진 학의 모습이다. 가벼운 날개로 붉은 연기를 박차고 오른다든지 여윈 모습이나 때로는 맑은 모습을 하고 있는 학의 다양한 외양을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21-22구는 ‘백학도’에 대한 시인의 감탄이다. 학의 그림이 너무나 완벽하여 그 그림을 감상할 뿐, 감히 학에 대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백학도’의 높은 수준을 기리기 위한 시인의 과장이자 겸손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를 쓰고 있는 것 자체가 학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통해서 학은 儒家의 선비들만이 아니라 도를 닦는 道家나 佛家의 도사와 승려들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새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학에 대한 시와 그림이 이미 고려중기 이후에 널리 회자되고 유통되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29]일반적으로 제화시는 그림에 적힌 시를 의미하지만, 그림에 대해 읊은 시 역시도 그 그림과 함께 전해질 가치가 있다면 넓은 의미의 제화시로 포함시키는 것이 通說이다. 이상 제화시의 개념 및 詩와 畵의 관계, 중국과 한국의 대표적 제화시에 대한 사항은 안현정?박상환,『제화시-인문정신의 문화적 가치』(오스코월드, 2008.)를 참조할 것.

 

 

(2) 제비[燕]

 

제비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매우 친숙한 여름철새다. 따뜻한 봄이 되면 찾아와서 우리와 더불어 동고동락하다가 서늘한 가을이 되면 떠나가는 모습을 누구나 쉽게 상상할 정도로 제비는 우리 삶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제비가 다른 철새들에 비해 더욱 우리에게 친숙한 것은 제비의 삶의 방식에 있다.

일반적인 다른 철새들은 산이나, 강, 논밭에서 생활하지만, 제비는 우리가 살고있는 집의 처마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기른다. 또한 여름철새다보니 한 해의 농사가 시작되는 봄철에 맞춰서 우리나라를 찾고 그 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가을에 떠난다는 것도 농부들에게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말하자면 농부에게 있어서 제비는 한 해의 농사를 함께 지은 친구이자 동료처럼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옛 민담이나 민요에 제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제비의 친숙성에 있다. 다음 시를 보자.

 

 

제비

처마 앞에서 마주보고 얘기 나누며           ?前相對語

객지생활 친구처럼 서로 의지했다네         客裏故相依

염량세태에 쫓기는 나의 신세                  身世炎凉迫

세상 천지에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구나    乾坤羽翼微

둥지를 만들고도 버리고 떠나다니            巢成還棄去

새끼들은 성장하여 각자 날아가 버렸구나  雛長却分飛

너를 보니 슬픔은 북받쳐 오르고              見爾增悲慨

금년에도 또 고향땅엔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今年又未歸 30]

30]이곡, 『稼亭先生文集』 권17, ?燕?.

 

인용시는 이곡의 ?제비?다. 시인은 제비를 그저 단순한 새가 아니라 친구로 인식하고 있다. 처마 앞에 둥지를 튼 제비와 항상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제비는 객지생활에서 시인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같은 존재다.

3-4구에서 “염량세태에 쫓기는 나의 신세/세상 천지에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구나.”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시는 아마도 이곡이 원나라에 머물며 과거 준비를 하다가 會試에 응시하여 낙방했던 1327년, 그의 나이 30세 무렵의 작품으로 보인다.31]

부귀권세가 많을 때엔 친구가 붙고, 신세가 어렵고 초라하게 되었을 때엔 모두 떠나는 게 세상의 인심이다. 지금 시인의 신세도 마찬가지다. 곁에는 따뜻하게 위로해 주거나 작은 일이라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같은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시인은 제비를 떠올린다. 애쓰고 수고하여 둥지를 정성껏 만들고 새끼들을 낳고 길렀더니 새끼들은 성장하여 모두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비는 4월 하순에서 7월 하순 사이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8일 동안 품고, 새끼들은 부화한 지 20∼24일이면 둥지를 모두 떠난다고 한다.32]

 

5-6구는 제비 새끼들이 어미의 품을 떠나는 것이 친구 한 명 없이 홀로 있는 시인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침내 마지막 7-8구에서 제비를 바라보며 슬픔에 북받쳐 홀로 울며 탄식한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제비를 보자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지고 고향 땅을 떠나 멀리 타국에 와있는 신세가 더욱 한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8구의 “금년에도 또 고향땅엔 돌아가지 못하겠구나.”라는 말은 봄이면 오고 가을이면 떠나가는 제비보다도 못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말이다. 지금 시인에겐 고향과 가족은 있지만,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일 뿐이다. 이 시는 제비를 통하여 시인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또 비슷한 처지의 어미 제비를 통하여 그를 친구삼고 위로받는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제비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벗이었다.

 

31]시에서 “객지생활”이라던가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한다.”라는 말로 보아 인용시는 분명히 타향이나 혹은 타국에서 생활하며 지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곡의 인생에서 서울이나 고향을 장기간 떠나있던 경우는 원나라에 가서 과거를 준비할 때와 그 후 원에서 관직생활을 할 때였기 때문에 인용시는 在元 시절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원에 있으면서 가장 큰 시련을 겪던 때는 30세 무렵 과거에 실패했을 때였기 때문에 이 시 역시 그 무렵 지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32]이상 제비의 생태학적 특징에 대한 사항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간행)을 참조할 것.

 

 

(3) 기러기[雁]

 

기러기는 가을에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나고 봄에 떠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다. 한문학에서 기러기는 ‘雁書’라고 하여 먼 곳에서 전해져온 편지나 소식을 뜻하는 말로 쓰였는데, 이는 漢書??蘇武傳?에 흉노에 잡혀있던 소무의 편지를 기러기 발에 묶어서 한나라 조정에 알려왔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기러기는 암수간에 의리있고 정다운 새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 전통 혼례에 신랑이 나무로 깎은 기러기[木雁]를 신부집에 전하는 풍습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신조어로 ‘기러기아빠’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가다 일 년에 겨우 한 두차례 만나는 아빠들을 철새인 기러기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기러기는 옛부터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한 새로 인식되어왔다. 이규보의 다음 시를 보자.

 

 

기러기를 읊다

천리 밖 친구의 소식이 드물어                      故人千里訊音疏

가을 하늘에 기러기 오기만을 기다리네          只待霜天雁到初

새 또한 때에 따라서 인정이 박한가 봐           鳥亦隨時情意薄

날기가 무거울까봐 편지조차 가져오지 않았네 唯嫌翅重不將書 33]

33]이규보, 『東國李相國集』 권11, ?詠??.

 

인용시는 기러기를 읊으면서 기러기의 상징과 같은 편지와 소식에 대한 심회를 말하고 있다.

1-2구는 기러기가 오기 전의 상황이고, 3-4구는 기러기가 도착한 후의 상황이다. 멀리 떠나있는 친구로부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기러기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간절한 기다림에 답하기라도 하듯 가을철에 맞춰 기러기가 날아왔다. 하지만 시인은 기다리던 그 기러기를 두고 “인정이 박하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토록 기다리던 친구의 편지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러기가 친구의 편지를 가지고 오지 않은 이유를 시인은 해학적으로 설명한다. 기러기가 편지를 발에 매고 오면 날기가 무거워서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사실이라기보다는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며, 소식이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슬픔을 滑稽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3구의 “새 또한 때에 따라서[隨時]”라는 말도 시인이 의미를 두고 한 것이다. 우선 “또한”이라고 했으니 인간이나 새들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고, 그 마찬가지의 내용은 때에 따라 인정이 박하다는 것이다. 즉 수시로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데, 새들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정말로 새들이 수시로 변심한다거나 인정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고, 인간세계를 기러기에 빗대어 풍자한 것이다. 이같은 諷刺나 諷諭는 화조시의 중요한 기능이자 화조시가 영물시의 하위 범주임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기러기 소리를 듣고

나그네가 문득 기러기 소리를 듣고         行旅忽聞?

우러러 보니 하늘은 맑네                      仰看天宇淸

몇 차례 우는 소리가 지는 달과 어울리고 數聲和月落

비낀 구름 속으로 한 점처럼 들어가네     一點入雲橫

멀리 변방에서 회신이 오니                   遠信回燕塞

새로운 수심이 서울에 가득하네             新愁滿洛城

등불 깜박이는 외로운 여관에서 묵는 밤  ?燈孤館夜

고향을 그리는 생각이 어찌 끝이 있으랴  何限故園情 34]

34]정몽주,『圃隱集』권2, ?聞??.

 

위의 시는 정몽주의 작품인데, 그는 평생에 여러 차례의 종군과 사행 등으로 객지 생활을 하였다.35] 인용시 역시 집을 떠나 명나라로 사행을 갔을 때의 작품으로 보인다.

1구의 “나그네”는 물론 시인 자신이다. 정확한 계절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기러기가 가을에 날아오고 또 “하늘은 맑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가을철일 가능성이 높다. 가을밤에 떼를 지어 날아온 기러기들이 수차례 울어댄다.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밝은 달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기러기들은 비낀 구름 속으로 마치 하나의 점처럼 사라져간다. 시인은 사라지는 기러기들을 바라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시인이 잠 못 드는 이유는 5-6구에 나타나 있다. “멀리 변방에서 회신이 오니/새로운 수심이 서울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변방에서 들려온 소식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 소식으로 인해 시인을 포함한 서울에 있던 여러 사람이 근심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언급된 “서울”은 정몽주가 明나라에 사행중이라고 본다면, 명의 서울인 南京을 의미한다.

더구나 6구에서 “새로운 수심”이라고 했으니, 시인이 수심에 빠진 것은 변방으로부터 소식이 들려오기 전부터 이미 진행중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근심에 근심을 거듭하고 있었기에 시인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3구에서 “지는 달과 어울리고”라는 말로 보아 잠 못 이루는 시인의 수심은 동이 트는 새벽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 7-8구는 등불도 꺼져가는 외로운 먼 이역의 여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시인의 작은 소망이다. 이 시의 전체적인 주제는 나그네가 느끼는 객창감과 수심이며, 이같은 주제를 드러내는 데 긴밀하게 사용된 시적 모티브는 기러기와 그 울음소리다. 이역의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기러기의 울음이 시인의 근심과 수심을 자극하고 作詩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한시에서 특별히 기러기는 나그네, 수심, 객창감등과 어울리는 제재로 사용되어 왔다.

 

35]정몽주의 일생과 그의 시에 대한 사항은 하정승, ?정몽주 시에 나타난 표현양식과 미적특질?(『포은학연구』 2집, 포은학회, 2008.)을 참조할 것.

 

 

(4) 갈매기[鷗]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갈매기는 겨울철새와 한반도를 통과하여 지나가는 나그네새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갈매기는 옛날 문학이나 미술작품에서 주로 한가로움을 상징하는 새로 알려져 있다. 사립 쓰고 낚싯대를 든 漁翁이 낚시질하는 바다나 강의 그림에서는 항상 갈매기가 등장하며, 옛 시에서는 주로 흰갈매기[白鷗]가 많이 등장한다.36] 다음 살펴볼 시 역시 흰갈매기가 주인공이다.

36]『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991, ‘갈매기’ 참조.

 

 

갈매기

나는 흰 갈매기를 사랑하니                 我愛白鷗鳥

만리 밖의 물결을 흔들며 끌고가네       搖曳萬里波

울며 날아가는 모습 평화롭고 즐겁구나 飛鳴和且樂

평생에 그물에 걸릴 근심 없구나          生不憂網羅 37]

37]정추,『圓齋先生文稿』 권상, ?白鷗?.

 

인용시는 정추의 작품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갈매기[白鷗]는 세상의 근심이나 삶의 고통과는 거리가 먼 평화롭고 한가로움을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시인은 갈매기가 울면서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3구에서 “평화롭고 즐겁구나.”라고 말한다. 갈매기가 평화롭고 즐거운 이유는 4구를 보면 알 수 있다.

평생에 그물에 걸릴 근심이 없기 때문이다. 갈매기라고해서 어찌 그물에 잡히지 않겠는가마는, 시인이 그물에 걸릴 근심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은 갈매기가 욕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갈매기가 물고기를 잡을 욕심에 지나치게 강가에 출입을 자주 하면 곧 그물에 걸려 잡히게 될 것이다.

인용시에 등장하는 갈매기는 만리 밖의 물결을 흔들며 차고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모습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놓은 그물에 걸릴 염려가 없는 것이다. 이는 물론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와 다짐, 소망을 갈매기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갈매기는 한시에서 어디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롭고 한가로움을 즐기는 새로 상징되어 그려져 있다. 그러나 다음 시에서는 자유롭고 한가로움의 상징인 갈매기에게 위기의 순간이 닥치게 된다.

 

 

갈매기

주살은 원래 너 때문에 만든 것 아닌데          ??元非爲汝施

만 리의 푸른 물결에 오히려 놀라고 의심하네 滄波萬里尙驚疑

고개 돌려 지금 세상의 공명을 바라보니        回看今世功名路

편안히 서있을 곳 조금도 없구나                  無地安然可立錐 38]

38] 안축, 『謹齋先生集』 권1, ?白鷗?.

 

1구에 등장하는 주살은 새사냥을 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화살 도구다. 이 주살로 사냥을 하려고 했던 새는 원래 갈매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만 리의 푸른 강물 위를 날던 갈매기는 주살로 인해 다른 새들이 잡히자 자기를 잡는 도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놀라고 또 의심까지 하게 된다. 이는 갈매기의 오해였지만 결과적으로 갈매기는 더 이상 마음 놓고 자유롭게 날지 못한다. 곳곳에 위험이 있다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갈매기에게 이제 세상은 더 이상 한가롭지도 않고, 평화롭지도 않은 곳이 되었다.

시인은 갈매기의 불행을 목격하며 고개를 돌려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시인이 바라본 세상은 갈매기가 위험을 겪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혹하다. 이 땅은 송곳 하나도 편안하게 서 있을 곳이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불안한 곳이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百尺竿頭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경험했던 조정과 宦路를 갈매기의 눈을 빌려 이와같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인용시에서는 자유와 평화, 한가로움의 상징인 갈매기가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으로 그려져 시적효과를 높이고 있다. 안축의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발휘된 것이라 하겠다.

 

 

(5) 꾀꼬리[鶯]

 

꾀꼬리는 제비, 두견새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인 여름철새이다. 농촌의 산야에서 도심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새인데, 노란 빛깔의 아름다운 자태에 그 울음소리마저 맑고 청아하여 예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왔다. 민간에서 목소리가 예쁜 사람을 가리켜 “꾀꼬리 같다.”라고 하는 것도 이 새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특히 우리 문학사에서는 고전시가로 유명한 유리왕의 ?황조가?에 꾀꼬리가 등장한 이후로 많은 시가와 한시 작품에서 주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먼저 널리 알려진 임춘의 다음 시를 보자.

 

 

늦봄 꾀꼬리 소리를 듣고

삼월 농가에선 보리가 처음 익어가고                           田家三月麥初稠

푸른 나무 위에선 꾀꼬리의 울음소리 처음으로 들려오네 綠樹初聞黃栗留

꽃 아래 노니는 서울 손님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似識洛陽花下客

은근하게 여러 소리로 울기를 그치지 않네                    殷勤百?未能休 39]

 

39]임춘,『西河先生集』권3, ?暮春聞鶯?. 이 시는 『동문선』에도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서하선생집』에 수록된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동문선』에는 1구의 ‘三月’이 ‘?熟’으로, ‘初’가 ‘將’으로 되어있고, 2구의 ‘初聞’도 ‘時聞’으로 되어 있다. 나머지는 모두 같다. 약간의 글자상의 출입이 있지만 시의 내용이나 주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본고에서는 일단 임춘의 문집인 『서하선생집』의 내용을 따르기로 한다.

 

위의 시는 어느 늦은 봄날에 꾀꼬리의 울음을 듣고 일어난 詩興을 즉흥적으로 스케치하듯이 그려낸 작품이다. 계절은 음력으로 3월이라 봄의 끝자락이다. 밭에는 보리가 익어가 농가에선 보리추수를 앞두고 있다. 나무에는 푸르른 녹음이 우거졌는데, 자세히 보니 꾀꼬리가 둥지를 틀고 앉아 울고 있다. 전술했다시피 꾀꼬리는 여름철새라 우리나라에 양력 4월말에서 5월초에 오니, 아마도 꾀꼬리가 번식을 위해서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난 직후에 쓴 시로 보인다. 시인 역시 그 해에 꾀꼬리를 지금 처음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2구에서 “처음으로 들려오네.”라고 말한 것이다.

이 시의 핵심은 3-4구에 있다. 시인은 저무는 봄을 아쉬워하면서 마지막 꽃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꾀꼬리가 시인을 보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아는 척을 한다. 이 꾀꼬리가 작년에도 같은 곳으로 왔었던 새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제비와는 달리 꾀꼬리가 같은 곳을 기억하여 해마다 같은 장소를 찾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 위의 꾀꼬리는 분명 시인과는 처음 본 사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아는 척을 하는 것일까? 물론 이것은 꾀꼬리가 정말로 시인에게 아는 척한 것이 아니다. 시인 스스로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시인이 그렇게 느낀 이유는 4구에 나타나 있다.

꾀꼬리가 은근한 소리로 나무 아래 손님을 향해 끊임없이 울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연인을 향해 처절하게 구애하는 사람처럼 꾀꼬리가 자신을 향해 울어대니 시인은 아는 척 한다고 오해할 만하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시인은 지금 누구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 바람이 얼마나 컸으면 꾀꼬리를 향해서까지 이렇게 처절하게 자기를 바라보라고 절규하듯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시의 분위기나 이미지는 봄날처럼 매우 밝고 경쾌한듯한데, 시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매우 쓸쓸하고 처량하며 고독한 意境을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꾀꼬리라는 아름다운 새를 통해 시인의 고독이 매우 역설적으로 그려진 것이라 하겠다.

 

 

"舍弟 遇가 꾀꼬리 시 두 편을 전해 주었는데, 그 뜻이 완곡하여 이 세상 인정을 남김없이 말하였으니 받들어 읽는 동안에 감동되었다. 지극한 후의를 보답할 길이 없거니와, 어찌 보배로이 간직해서 스스로 반성하는 자료로 삼지 않겠는가. 이제 삼가 원운에 의해서 각각 그 뜻을 화답하여 雙梅堂의 좌우에 바치니 더 교정하여 은덕을 끝내 드리우시기 바란다. 쌍매당은 文安公 李詹의 自號이다."

 

새 중에도 귀하게 여길 것 있으니   鳥有可貴者

그 이름을 꾀꼬리라 부른다           其名稱曰鶯

깃과 털이 모두 노란 빛이니          羽毛盡黃色

평화로운 기운이 이룬 바라네        ?和氣所成

능히 좋은 소리 가지고                 能將載好音

산에서 나와 때때로 와서 운다       出谷時來鳴

언덕 모퉁이 숲에서 그칠 줄도 알고 丘隅自知止

종일토록 항상 지저귀네                終日常??

슬프다 내 갈 곳을 나도 모르니       嗟我昧所適

속마음을 어찌 능히 밝히랴            中心?能明

사람으로서 새보다 못하다는          人而不如鳥

성인의 말씀에 새삼 놀란다            聖訓眞堪驚

두견에게도 오히려 두 번 절하는데  杜鵑尙再拜

하물며 아름다운 소리임에랴          況此睍?聲

동산 나무에 네가 감돌며               憐渠繞園樹

고당의 심정을 위로했는데             長慰高堂情

요즈음엔 갑자기 들리지 않으니      邇來忽不聽

무거운 근심을 깨뜨릴 수 없구나     無以破愁城

의탁할 꽃다운 나무가 있으니         芳根旣有托

깃들일 곳 그 누가 다투겠는가        棲宿夫誰爭

원컨대 봄이 가지 말아서               但願春不老

천년토록 길이 살게 했으면            千年以爲生

옛날엔 꾀꼬리 소리 좋더니            舊日喜聞鶯

오늘은 꾀꼬리 소리 슬프다            今日悲聞鶯

옛날 내가 시골에 있을 때엔           昔妾在鄕里

형과 아우가 함께 즐거워했지         ??弟與兄

이젠 아침은 동쪽 집에서 먹고        朝從東家食

저물면 서쪽 이웃 향해서 가네        暮向西隣行

이같은 때에 이 새가 있어서           此時有此鳥

뽕나무에 날아올라 운다네             飛上桑樹鳴

누에가 잠자듯 몸은 한가롭고         蠶眠身多暇

지저귀는 소리는 사랑스럽네          耳愛綿蠻聲

지금 부모를 멀리 떠나 있는데        如今遠父母

가을 잎은 어찌 그리 떨어지는가     秋葉何飄零

산과 물을 몇 번이나 넘고 건너서     跋涉幾山水

천리 길 서울에 내가 왔노라           千里來玉京

서울이 비록 아름답긴 하지만         玉京雖信美

고향을 그리는 마음 어찌 없으랴     豈無懷土情

가고자 하여도 갈 수가 없으니        欲往不可得

밤낮으로 돌아갈 길 생각뿐이네      日夜念歸程

홀연히 꾀꼬리 소리를 들으니         忽聽栗留語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네                涕淚縱橫成

눈에 가득한 고향 생각에               滿眼故園思

긴 한숨을 그만둘 길 없구나           感嘆無由平

들밭엔 보리가 벌써 익었지            原田麥已熟

고향에 가서 나의 생을 마치고 싶네 去去終吾生 40]

 

40]권근,  『陽村先生文集』권8, ?舍弟遇奉傳鶯詩二篇, 詞旨婉曲, 說盡人情, 奉讀之際, 深有所感發, 厚意之重, 無以報謝, 敢不寶藏, 晨昏諷詠, 以自觀省也. 今謹依韻各和其意, 奉呈雙梅堂左右, 伏?更加?拂以終惠焉. 雙梅堂李文安公詹自號也.?. 원시의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발행 『국역 양촌집』의 번역을 참고하여 필자가 수정하였음을 밝힌다.

 

권근이 지은 위의 인용시는 화조시로서는 보기 드문 46구의 오언장편 고시다. 詩題를 보면 작시의 동기가 나와 있다. 아우인 梅軒 權遇(1363-1419)가 꾀꼬리 시 두 편을 지어서 보내주니 그것을 읽고 감동이 되어 原韻에 따라 시를 짓고 이를 親友인 雙梅堂 李詹에게 바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권근이 아우의 시에 감동이 된 이유가 주목된다. 그 뜻이 婉曲하여 이 세상 인정을 남김없이 말하였기에 읽는 동안에 감동되었다는 것이다.

새를 재제로 쓴 시라면 보통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세상의 인정을 곡진하게 말했다는 것은 권우가 쓴 그 시가 새를 가탁하여 쓴 寓言과 諷諭의 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우의 시에 감발되어 쓴 위의 인용시는 권우의 시와는 다르게 우언과 풍유의 성격보다는 꾀꼬리를 통한 감정이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있다. 전술했던 바 전형적인 ‘因物起興’의 수법이라 하겠다.

1구에서 8구까지는 꾀꼬리의 아름다운 외양과 맑은 울음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9구에서 12구에서는 갈 곳을 알지 못하겠다고 마음속의 답답함을 토로한다. 심지어 시인은 “사람으로서 새보다 못하다.”라고까지 말한다. 시인의 답답한 마음과 괴로움이 무엇 때문인지는 시의 중반부 이후로 잘 나타나 있다.

13~14구에서는 여름철새 중에 꾀꼬리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견에게도 오히려 두 번 절하는데”라는 것은 옛날 蜀나라의 望帝가 두견새가 되었는데, 후인들이 망제의 덕을 사모하여 두견새의 울음을 듣고 절을 하였다는 고사를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왕의 후신인 두견보다도 꾀꼬리의 소리가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한다.

15~16구는 평소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고 하면서 꾀꼬리의 공덕을 칭송한 것이다. 그런데 근자에 꾀꼬리의 울음이 들리지 않으니, 시인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위로를 받을 길이 없다.

21~22구는 꾀꼬리에 대한 시인의 무한한 애정을 나타낸 것이다. 봄날이 끝나지 말고 영원토록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꾀꼬리가 여름철새기에 가을이 오면 떠나게 될 것을 걱정하는 말이다.

 

22구 이하부터는 시인이 현재 처한 상황이 잘 설명되어 있다. 옛날 고향에서 형제가 함께 살 때에는 꾀꼬리의 소리를 들으면 사랑스럽고 즐거웠다. 그러나 부모와 가족을 떠나 산과 물을 넘고 건너 천리 길 서울에 와 있지만, 시인은 전혀 즐겁지가 않다. 서울이 비록 아름다운 곳이기는 하지만 시인의 외로움을 달래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23-24구에서 “옛날엔 꾀꼬리 소리 좋더니/오늘은 꾀꼬리 소리 슬프다.”고 고백한다. 꾀꼬리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또 고향이나 서울이나 한결같겠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시인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끝이 없다. 하지만 그 고향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서울에서 환로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밤낮으로 그리워하고 있는데, 그때 꾀꼬리의 울음이 홀연히 들려온다. 시인에게 있어 꾀꼬리는 서울에 홀로 있는 자신과 고향의 가족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개체다. 꾀꼬리의 울음소리가 옛날 고향에서 놀던 추억을 회상시켜 준 것이다. 꾀꼬리의 울음을 듣고 시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길게 한숨을 내쉰다.

마지막 45-46구에서 꾀꼬리의 울음을 들은 시인이 추수가 임박했을 고향의 보리밭을 생각하며 돌아갈 날을 꿈꾸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 짓고 있다. 인용시에서 꾀꼬리는 작시의 모티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상을 전개하는 핵심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른바 ‘因物起興’이나 ‘托物寓意’가 영물시의 주요한 시적기법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이 시는 꾀꼬리라는 ‘物’에 시인의 근심과 슬픔이라는 ‘興’을 일으켜 작시에 성공한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6) 닭[鷄]

 

닭은 기원전 6-7세기부터 가금류로 인간에게 사육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모든 조류 중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새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닭은 金閼智를 비롯한 신라의 시조 설화에 등장하는 등 삼국시대부터 이미 민중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옛 민담, 설화, 속담 등에는 닭과 관련된 이야기가 무수히 등장하고, 고전시가와 한시에서도 닭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 다른 새들에 비해 훨씬 많이 보인다. 이규보의 다음 시는 닭의 덕을 기리고 칭송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닭을 읊다

바다에 해 뜨기가 아직 멀었으니       出海日猶遠

우주가 아직 밝지 않았구나              乾坤尙未明

모든 사람들 단잠에 빠져 있는데       沈?萬眼睡

하나의 울음소리가 놀래 깨우네        驚破一聲鳴

먹이를 찾으면 암컷 불러 함께 먹고   索食呼雌共

수컷임을 과시하며 적과 싸운다네      誇雄遇敵爭

五德 모두 갖춤을 내 어여삐 여기노니 吾憐五德備

기장과 함께 삶지 말라                     莫與黍同烹 41]

41]이규보, 『東國李相國集』권10, ?詠鷄?.

 

아직 동이 트기 전 온 세상이 어둡고 모두가 잠에 빠져 있을 때, 하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새벽을 깨운다. 그가 바로 닭이다. 만약 닭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온 우주는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깨우는 것, 그것이 바로 닭의 첫 번째 덕이다.

5-6구는 닭중에서도 수탉의 덕을 노래한 것이다. 먹이를 발견하면 암컷과 새끼를 불러 배부르게 먹이며, 적을 만나면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워서 가족을 지켜낸다. 이것이 두 번째 덕이다.

시인은 닭이야말로 五德을 모두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새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오덕이란 儒者가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덕, 즉 온화[溫]?양순[良]?공손[恭]?검소[儉]?겸양[讓]을 지칭하거나, 또는 武人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덕, 즉 지혜[智]?어짊[仁]?용맹[勇]?믿음[信]?엄위[嚴]이다.

하지만 여기 시에서 말한 닭의 오덕이란 文?武?勇?仁?信을 지칭하는데, 문은 머리의 벼슬, 무는 발톱, 용은 싸움에서의 용맹함, 인은 먹이를 나눠먹는 습성, 신은 어김없이 정확한 시각을 알려주는 것이다.42]

마지막 7-8구는 닭은 오덕을 고루 갖춘 새이므로 귀한 존재이니, 몸 보신을 한다고 삶아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용시는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을 유자나 무인의 오덕과 비교하며 닭을 칭송하고 기리고 있다. 다음에 살펴볼 시는 오덕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2] 『韓詩外傳』에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머리의 벼슬은 文이고, 날카로운 발톱은 武이며, 적과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勇이고, 먹이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은 仁이고, 어김없이 새벽의 시간을 알리는 것은 信이다.” (『韓詩外傳』권2.)

 

평생을 산속에 가지 않고 인가에 있으며   生不山林在里閭

때를 알고 의리 지켜 세월을 보내었네      知時守義送居諸

가장 예쁜 건 비바람 치는 깜깜한 날에도  最憐風雨天沈黑

일각조차 남거나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 一刻何曾有欠餘 43]

43] 이색, 『牧隱詩藁』 권17, ???.

 

닭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새다. 그는 결코 산이나 들로 나가지 않는다. 소나 돼지처럼 평생을 사람과 함께 人家에서 보낸다. 닭은 인간에게 여러 가지로 고마운 존재다. 암탉이 낳은 계란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과 간식이 되고, 삼계탕이니 백숙이니 통닭이니 하여 죽어서도 영양식이 되어 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닭의 업적은 수탉에게 있다. 날씨가 맑거나 비가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상관하지 않고, 일 년 내내 새벽이면 어김없이 정확한 시간을 알려준다. 그가 알려주는 시각은 너무나 정확하여 “일각조차 남거나 모자람"이 없다. 요즈음처럼 시계가 흔하지 않던 시대에 새벽을 깨우는 닭은 그야말로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를 “가장 예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구에서는 이같은 닭의 미더움[信]을 가리켜 “때를 알고 의리 지켜 세월을 보내”었다 라고 칭송하고 있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닭의 ‘信德’을 기리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믿음이 있어 때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것이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이같은 풍유나 가탁은 앞에서 거론했던 시들과 마찬가지로 화조시를 비롯한 영물시가 갖는 주요한 시적인 기법이자 특징이라 할 수 있다.

 

 

(7) 까마귀[烏]

 

까마귀는 그 종에 따라 겨울철새도 있고 텃새도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 항상 보이는 새는 까마귀속에 속하는 텃새들이다. 까마귀는 민간에서 앞일을 예언하거나 해야 할 일을 인도해주는 신령한 새로 자주 등장한다.

『삼국유사』 ?射琴匣?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왕을 인도하여 불륜을 저지른 焚脩僧을 잡아내는데 공을 세운다. 또한 까마귀는 자라서 자기를 돌봐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反哺鳥로 알려져 있다. 동물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孝鳥라는 것이다.

반면 까마귀는 죽음이나 질병을 암시하는 불길한 징조로도 알려져 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속담이나 민요, 巫歌등에 등장하는 까마귀의 울음은 죽음과 불운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다음 시에서 까마귀는 칭찬과 칭송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다.

 

 

烏頭白으로 朴仁幹을 전송하다

까마귀 생김새 칠처럼 검다고                                烏之生兮黑如漆

사람들 볼 때마다 모두 미워하지만                         人之見兮心共嫉

가련한 연나라 丹의 수치를 풀어주려고                   可憐解爲燕丹羞

하룻밤 애쓰고 나니 머리가 희어졌다네                   一昔含?成白頭

나는 네가 태양 속에 있다는 것도 괴이하게 생각되고 我嘗怪汝日中處

또 서왕모가 너를 부렸다는 말도 허망하게 여겼는데  又怪金母常使汝

지금에야 비로소 재잘거리는 많은 새들 중에            今乃知??萬類中

너처럼 일편단심인 새가 없다는 것 깨달았네            一點丹心無汝同

지저귀면서 날아왔다 또 날아가면서                       啞啞飛來復飛去

어미 돌보느라 숲 속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네           反哺林間受辛苦

들어오면 효자요 나가면 충신이니                          入爲孝子出忠臣

아! 너는 새 모양을 한 사람이라네                           嗟哉汝是禽頭人

세상사람 그 누가 너를 좇을 수 있겠느냐                 世人與汝誰能伍

원컨대 사람의 옷으로 갈아 입어라                         願把襟?換毛羽 44]

 

44]이제현, 『益齋亂稿』 권2, ?烏頭白送朴仁幹?.

 

이제현이 쓴 위의 인용시는 까마귀 찬가라고 할 수 있다. 詩題의 “烏頭白”은 “烏頭白馬生角”의 준 말이다.

이 말은『史記』 ?刺客列傳? “燕太子”조에 나오는데, 전국시대 연나라 태자인 丹이 秦나라에 인질로 잡혀있으면서 고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하자, 秦王이 말하기를 “까마귀 머리가 희어지고 말 머리에 뿔이 나면 보내 주겠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서 전하여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또는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어떤 일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 되었다. 이런 의미로 시의 제목을 해석하면 박인간을 떠나보내기 싫은데 어쩔수 없이 보낸다는 의미가 된다.

박인간(미상-1343)은 고려후기의 문신으로 1315년(충숙왕 2) 이제현의 부친인 東菴 李?이 主試한 과거에서 壯元으로 급제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이제현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위 시도 이같은 바탕 위에서 지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1320년 忠宣王이 吐藩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을 때 끝까지 侍從했던 충신이기도 하다.

 

1-2구는 까마귀의 외양묘사이다. 세상 사람들은 까마귀가 까맣게 생겼다고 모두 싫어하지만 이는 외모만을 보고 판단한 실수라는 것이다.

3-6구는 각각 연나라 태자 단과 西王母의 고사를 인용하여 까마귀의 공적을 칭송한 것이다. 즉 태자 단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듯 까마귀의 머리가 희어졌고,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지닌 까마귀인 三足烏는 항상 성실하게 서왕모를 위해 먹을 것을 가져다 바친다는 것이니, 즉 忠과 誠을 의미한다.

7-8구에서 시인은 이같은 고사를 통해 알 수 있다시피 까마귀야말로 수많은 새들 중에서도 가장 정이 많고 일편담심으로 의리를 지키는 새라는 것을 강조한다.

9-12구는 孝鳥로서의 까마귀를 설명한 부분이다. 까마귀 새끼는 다 자란 뒤에, 어미 까마귀에게서 얻어먹은 만큼의 먹이를 다시 늙은 어미 까마귀에게 물어다 먹인다고 한다.45]

까마귀의 별칭이 反哺鳥 또는 孝鳥인 것도 여기에서 온 말이다. 새는 물론이고 모든 짐승 가운데에도 이같이 어미에게 효를 행하는 동물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시인은 12구에서 “너는 새 모양을 한 사람이라네”라고 까마귀의 덕을 기리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13-14구에서는 사람조차도 까마귀만한 효성을 하는 자는 보기 드물다며 차라리 새의 외양을 버리고 사람의 옷을 입으라고 하면서 시를 마무리 짓는다. 또한 이 시는 까마귀가 온 몸이 검정색인 외양과는 달리 그 누구보다 충성스럽고 효성이 지극하며 성실한 새임을 말하면서 겉모습만 가지고 남을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교훈과 풍유도 내포하고 있다. 하나의 새를 등장시켜서 인간 세상의 여러 가지 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화조시의 수작이라 할만하다.

 

45] 『本草綱目』 ?禽部? “慈烏”에 “까마귀가 처음 나면 60일 동안은 어미가 먹이를 물어다 먹이고, 자라나면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60일 동안 물어다 먹인다.”라는 기록이 있다.

 

 

(8) 참새[雀]

 

참새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 텃새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존재다. 크기가 작고 몸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지만, 대개 무리를 지어 생활하기 때문에 눈에 자주 띄게 된다. 그래서인지 옛 민화나 민담, 민요 등에서 참새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음 시를 보자.

 

 

참새들

밤에는 마당의 나무 위에서 잠을 자고           夜宿庭中樹

아침에는 성 밖의 벼 이삭을 쪼아 먹네          朝啄城外禾

떼를 이룬 날것들 정녕 자기 뜻대로 살아가며 ?飛政得意

각자 안락한 생활이라 말들 하겠지               各謂安樂窩

하지만 어찌 알겠는가 짓궂은 동네 아이들이  那知豪俠兒

새총을 손에 쥐고 그물을 벌여 놓을 줄을       挾彈張?羅

고니는 사해를 돌아다니겠지만                    黃鵠游四海

희망이 끊어졌으니 장차 어찌하리요             望絶將奈何 46]

46]이색, 『牧隱詩藁』권34, ?群雀?.

 

인용시는 참새가 겪는 고난과 불행을 빗대어 불운한 인간의 삶을 풍자적으로 쓴 것이다.

1-4구는 참새의 일상이다. 아침에는 논밭으로 나아가 벼 이삭을 쪼아 먹고, 저녁이면 마당의 나무 위에서 편안하게 잠을 잔다. 떼를 지어 살아가며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어 자기 뜻대로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참새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을 안락한 삶이라고 말한다.

5-6구는 참새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삶을 살아가던 참새들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짖궂은 동네 꼬마들이 새총을 손에 들고 그물까지 벌이며 참새 사냥을 한 것이다. 이로인해 많은 참새들이 사로잡혀 죽음을 맞게 되었다.

마지막 7-8구는 참새를 고니와 비교하며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참새들의 운명에 대한 시인의 自嘆이다. 고니는 몸집이 커서 쉽게 잡히지만, 대신 사해를 유유히 날며 마음껏 돌아다닌다. 이에 비해 참새는 조그만 덩치로 인해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한 번 일이 잘못되면 한꺼번에 수많은 무리가 일망타진 될 수 있다.

고니와 참새를 비교한 이 구절은 다분히 사람의 삶을 풍자한 것이다. 고니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멋지게 하늘을 날고, 물위를 유영하는 삶은 포수나 천적에게 잡힐 위험이 큰 반면 화려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여기에서 포수나 천적은 물론 인생의 고비와 위험을 가리킨다. 반면 참새처럼 무리를 이루고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며 나름대로 안락한 삶을 사는 인생은 한편으로는 안정되고 편안해 보이기도 하지만, 쳐놓은 그물에 모든 참새들이 한꺼번에 걸려들듯이 한 번 닥치는 위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무너지는 양상을 보인다.

시인의 표현대로 하면 이러한 인생은 “희망이 끊어진” 삶이다. 어떤 인생이 더 행복하고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인은 정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9) 까치[鵲]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텃새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등에 까치 관련 설화 47] 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널리 분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나 반가운 사람, 행운이 찾아오는 것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새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민요나 동요, 민담, 속담 등에 까치 관련 이야기와 노래가 퍼져 있을 만큼 우리 민족에게는 친근한 새이다. 특히 앞에서 살펴본 까마귀가 凶鳥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吉鳥로 널리 알려져 있기에, 까마귀와 관련된 시나 이야기 등과 함께 비교해서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다음에 살펴볼 시에도 이같은 吉鳥로서의 까치의 특성이 잘 나타나있다.

 

47]예컨대 신라 건국 신화 중 昔脫解 신화라든가 ‘鵲岬寺’등 수많은 사찰 이름의 유래 이야기 등에 까치 설화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까치집

내 본디 운명이 기구하여                我本賦命奇

벼슬길 늦어짐을 한탄했더니           名宦歎遲暮

너 장차 무슨 기쁜 소식 전하려고     汝將報何喜

정남쪽 나무위에 집을 짓느냐          棲樹正當午

오락가락 가지를 물어오는데           翩翩含枝來

까마귀 털에 백로 깃이 섞여 있구나  鴉?挾鷺羽

나는 듣건대 점잖은 군자는             吾聞君子人

화와 복을 하늘에 맡긴다 했으니      禍福任天賦

황새가 모여 온다고 축하할 것 없고  ?集不足賀

부엉이 앉았다 해서 겁낼 필요 없다네 ?止不爲懼

그런데 내 늙을수록 의혹이 많아져   而我老多惑

영험을 좋아하기가 무당과 같구나    好怪類巫?

하물며 또한 오랜 궁함에 질려서      ?復懲久窮

좋은 일 점쳐 보고 요행을 바랬는데  占端?有遇

이 영험한 새가 집 지음을 보고        見此靈鳥栖

눈가에 기쁜 빛을 띠면서                喜色見眉宇

초조하게 집짓기를 기다리며           汲汲望巢成

눈을 들어 높은 나무 우러러 본다     擡眼仰高樹 48]

48]이규보, 『東國李相國集』권10, ?鵲巢?.

 

위의 인용시는 제목이 “까치집[鵲巢]”이다. 일반적인 다른 화조시들이 새 자체에 주목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 시는 새집에 주목을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시인이 새집에 주목하는 이유는 까치의 집이 빨리 완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까치집이 빨리 완성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까치가 속히 찾아와서 둥지를 틀고 거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까치가 빨리 거주하기를 바라는 것은 시인 자신에게 좋은 소식과 행운이 오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고난에 찬 인생길에서 까치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까치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전령사로 이미 오래 전부터 민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1-2구는 시인이 자신의 불운한 인생을 자탄하는 장면이다. 그가 자신을 불행하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벼슬길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규보가 崔忠獻에게 발탁이 되어 벼슬길에 오른 것은 32세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20대 시절은 좌절과 은둔의 시기였다. 49]

인용시가 지어진 때도 이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독한 시련과 좌절 속에서 이규보가 찾은 유일한 탈출구는 재미있게도 까치다. 그는 까치를 보며 행운이 자신의 인생에 찾아오기를 희망했다. 3-4구에서는 까치가 날아와 남쪽의 나무 위에 집을 짓자 시인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

 

7-10구는 군자라면 화와 복을 모두 하늘에 맡기고 一喜一悲하지 말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9구의 “황새가 모여 온다.”는 것은 벼슬길에 오를 吉兆를 의미하는데, 옛날 한나라 때 楊震이라는 사람의 집에 황새가 ?魚 세 마리를 물고 오자 都講이라는 자가 말하기를 “전어는 卿大夫들의 옷의 상징이요 셋은 三台를 의미하니, 선생님은 앞으로 높은 벼슬에 오를 것입니다.” 라고 했다는 고사에 바탕을 둔 것이다. 50]

10구의 “부엉이가 앉았다.”는 것은 壽命이 길지 못함을 알리는 凶兆라는 뜻이다. 한나라 때 賈誼는 부엉이가 자기 옆으로 날아오자 본인의 수명이 얼마가지 못할 것을 예측했다고 한다. 51]

결국 황새가 온다고 축하할 필요 없고, 부엉이가 앉았다 해서 겁낼 필요 없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작은 일 하나에도 집착하는 자신을 보며 시인은 “영험을 좋아하는 것이 무당과 같다.”라고 한탄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너무도 오래 계속되는 궁벽한 생활 때문이라고 변명하기도 한다.

마지막 15-18구는 오랜 궁벽한 생활 끝에 드디어 희망을 발견한 시인의 기쁨을 묘사한 것이다. 까치가 집을 짓자 시인은 기쁜 눈빛으로 계속해서 바라본다. “초조하게 집짓기를 기다리며/눈을 들어 높은 나무 우러러 본다.”는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 세속적인 출세를 희구하는 시인에 대해서 비난이나 책망보다는 오히려 안스럽고 가련한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혹여라도 까치가 나무 위에서 집을 짓다 실수할까봐 너무나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인에 대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시인으로서의 이규보의 시적 솜씨가 유감없이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까치는 희망이냐 절망이냐의 기로에 선 인생을 다시 소생시킬 정도로, 위대한 행운의 전령사 역할을 했음을 인용시는 잘 보여주고 있다.

 

49]이규보의 삶과 문학에 대해서는 김진영, 『이규보 문학 연구』(집문당, 1988.)를 참조할 것.

50]이에 대한 사항은 『後漢書』 권54, ?楊震傳? 참조.

51]이에 대한 사항은 『文選』 권13, ?鵬鳥賦? 참조.

 

 

4. 결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시의 소재가 된다. 특히나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동?식물의 경우에는 예부터 시인들이 더욱 즐겨 찾는 소재였다. 한문학사에서는 그중에서도 새를 읊은 시를 ‘花鳥詩’ 또는 ‘禽言體詩’라고 불러왔다. 본고에서는 화조시 창작의 전개양상을 史的으로 고찰해 보고, 주요작가와 작품을 특히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고려조 한시사에서 화조시 창작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은 이색과 이규보를 꼽을 수 있다. 이 두 시인이 남긴 화조시만 해도 수십 수가 넘는다. 두 시인을 정점으로 하여 그 외 임춘, 이제현, 민사평, 이곡, 정몽주, 김구용 등이 화조시를 많이 남긴 시인들이다.

 

한시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화조시나 금언체시의 창작은 중국의 시인들에서 비롯되어 그것이 고려로 들어오게 되었고 계속해서 조선조의 시인들에게로 계승되었다. 일반적인 화조시는 이미 『시경』에서부터 있어 왔고, 그 후 杜甫를 비롯한 唐나라의 수많은 시인들도 즐겨 지었다. 우리 문학사에서도 唐?宋詩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려조 이후로 화조시가 본격적으로 창작되었지만,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한시가 지어지기 전에 이미 우리의 옛 노래들에서부터 화조시의 창작 전통은 있어왔다. 가령 고대가요 ‘黃鳥歌’라든지 고려속요 중 ‘鄭瓜亭’이나 ‘靑山別曲’에도 새는 주요 제재로 등장하므로 화조시의 창작전통은 뿌리가 깊다고 하겠다.

 

화조시의 제재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 주변의 모든 새는 다 시적인 형상화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두루미[鶴]’와 ‘제비[燕]’, ‘닭[鷄]’이 일반적으로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새들이다. 그 외 ‘기러기[雁]’, ‘까마귀[烏]’, ‘참새[雀]’, ‘갈매기[鷗]’, ‘꾀꼬리[鶯]’, ‘까치[鵲]’, ‘거위[鵝]’, ‘오리[鴨]’ 등이 화조시의 제재로 많이 등장한다. 주목할 점은 각 새들마다 그 새가 갖는 고유의 상징성이 있어서 시인의 감정과 처한 환경에 따라 음영의 대상인 새의 종류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남북으로 이동하는 철새의 대표인 기러기는 여행 중의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十長生’의 대표적 조류인 학은 고결함, 순결함, 장수 등을 상징한다. 또한 꾀꼬리는 사랑하는 연인의 아름다움이나 혹은 사랑의 감정을 빗대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닭이나 오리, 거위, 참새 등은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田園詩나 일종의 생활 현장을 다룬 生活詩에서 자주 등장한다.

 

화조시 역시 큰 범주에서 보면 詠物詩의 일종이다. 영물시 중에서도 동물을, 동물 중에서도 새를 읊은 것이 화조시가 된다. 따라서 화조시의 창작 기법 역시 일반적인 영물시의 기법과 큰 맥락에서 동일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령 일반적 영물시에서 비유나 상징, 의인과 같은 수사법이 많이 쓰이고, 또 시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비유나 상징들을 풀어내야 하는 것처럼 화조시 역시 동일하다. 우리 한시사에서 고려시대에 시작된 화조시는 이같은 영물시의 한 쟝르로서 조선말기까지 수많은 시인들에 의해 계속해서 창작되었다. 본고에서 고찰한 고려조 화조시의 창작 전통과 시적 특질, 문학적 의의 등이 조선조시인들에게 어떻게 계승되고, 또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 지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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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4.10.29 심사시작일 2014.11.10 심사완료일 2014.11.28

 

 

Abstract

 

 

Images and a literary sense of the bird in sino-korean poetry of the late Goryeo dynasty

 

Ha, Jung-seung

 

Animals and plants closely related to human life was the old time-honored subject of sino-korean poetry. Above all the flower and the bird were more loved by poets. Poems sung about the flower and the bird were called ‘Hwajosi(花鳥詩)’, which was a vital part of sino-korean poetry in the history of both Korean and Chinese literature. In the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Hwajosi is found in 『Sikyong(詩經)』, the oldest existing collection of Chinese poetry. Then it was written by some poets of the the Tang Dynasty - Li Po(李白), Tu Fu(杜甫), Bo Juyi(白居易) and the Saong Dynasty- Su Dong Po(蘇東坡), Ouyang Xiu(歐陽脩), Mei Yaochen(梅堯臣).

The most representative poets who created Hwajosi are Leesak and Leekyubo in the history of sino-korean poetry of the late Goryeo dynasty. There is further poets who created Hwajosi like Kimgukgi, Imchun, Ahnchuk, Leejaehyun, Leegok, Jungmongju, Kimguyong, Leesungin, and so on. Their Hwajosi mostly sang about ‘crane[鶴]’와 ‘swallow[燕]’, ‘chicken[鷄]’. The next most common birds in Hwajosi are ‘wild goose [雁]’, ‘crow [烏]’, ‘sparrow[雀]’, ‘seagull[鷗]’, ‘nightingale[鶯]’, ‘magpie[鵲]’, ‘goose[鵝]’, ‘duck[鴨]’.

Each bird has its own symbolic meaning. That's why poets chose a different bird in each poem round their own emotion and circumstances. Wild goose, a kind of migratory birds that moves from south to north means traveller’s loneliness and solitude. Crane, one of the ten traditional Symbols of Longevity means long life, purity, noble-mindedness. Nightingale means lover's beauty or a feeling of love. Chicken, goose, and sparrow, on the other hand, were showed in a poem of pastoral life.

In this manuscript, I looked at overall creation of Hwajosi ; main poets who wrote Hwajosi and their major works, how to make images by using birds, what each bird stands for in different poems. I also studied Hwajosi focusing on aesthetic characteristics and historical significance in Korean literature.

 

Keyword

bird, Hwajosi, Geumunche, Yeonache, Younmulsi, Jehwasi, Hwajodo, Mokdansi, Takmulueui, all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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