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기녀 한시에 나타난 ‘한(恨)’의 의미

Bawoo 2016. 3. 22. 22:50

기녀 한시에 나타난 ‘한(恨)’의 의미


임보연 (경희대)



1. 머리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문학사에서 여성 문학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와 관련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한문학 중에서 사대부 남성의 문학 연구가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고, 작품이나 연구 성과들의 양적인 부분에서도 모두 사대부 남성 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여성 문학에 대한 연구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한시는 특정 제재나 특정한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한시는 일상에서 읊는 풍류였으며 향유체계였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토로하는 장치였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시 작품을 통하여 그 당시를 살았던 작가가 느꼈던 감정으로 가깝게 돌아가 작품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한시 작가들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사회적·문화적 배경 등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의 성별이나 계층의 구분 없이 모든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 문학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과 대비되어 소외된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고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남성 작가들의 작품보다 작품의 우수성이 낮다는 인식 때문에 활발한 연구가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한시가 중요하게 대두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과거 시험의 과목이었기 때문이었기에, 한시에서 형식적인 측면이 중요한 것도 과거 시험 과목이었던 것과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시가 일상에서의 향유라면, 형식적인 측면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여성들은 과거 시험을 위해서 작시(作詩) 활동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를 썼던 점을 생각해 본다면, 여성들의 작품들을 남성들의 작품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그들의 작품들을 세밀하게 분석해내는 연구자의 시각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 미시적인 접근에서 바라보고 기녀 한시에 나타난 ‘한(恨)’의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기녀들은 우리 사회에서 최하층에 속한 계급으로, 소외된 존재이면서 자유분방한 존재이기도 하였다. 사대부 여성들이 규방이라는 공간에서만 머물러야 할 때 기녀들은 개방적인 교유활동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전의 기녀문학에 대한 연구는 찾아볼 수는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다.

2000년대 이후에도 기녀 한시에 대한 연구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대부분 연구들이 기녀 한시의 전반에 드러나는 내용적인 측면을 분류하거나 여러 작가들 중에서 일부 작가를 선택하여 그 시인의 작품을 대상으로 내용상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한시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연구의 발판으로 ‘한(恨)’의 양상에 주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한(恨)’의 정서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이며 민족적인 정서이다. 우리 민족을 한 많은 민족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한시에는 ‘한’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제목이나 원문에서 ‘한’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작품의 서정적인 분위기가 ‘한’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들도 많고, 기녀들뿐만 아니라 사대부 남성 또는 사대부 여성, 소실 등 모든 계층의 작품에서 ‘한’의 정서를 찾을 수 있다. ‘한’이라고 하면 대부분 서러움, 억울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떠올리며 한을 푸는 것이 긍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의 감정을 단순하게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볼 수 없고 다양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한’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한’이란 무엇이며, 우리 문학사에서 ‘한’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는 ‘한’의 감정이 복합적인 감정이라 어느 한 쪽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의미의 정(情)과 부정적인 의미의 탄(嘆)의 감정의 측면에서 어떤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하며, 한의 상태를 풀어나가는 방법으로 꿈(夢)과 선(仙)의 세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작품들을 통해 본 결과, 이별이나 한탄, 꿈, 신선의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 것을 통하여 한의 양상과 그 극복양상을 살펴보고, 기녀들의 한시에서 한이 갖는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2. 기녀 한시에 나타난 한(恨)의 양상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는 ‘한(恨)’의 의미는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기본적인 개념 속에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정서는 한 가지의 감정만으로 정의되기 힘들다.

또한 기녀들은 다른 계층의 여성들에 비해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다. 여성의 공간으로 간주되어지는 규방에 얽매이지 있지 않고, 기방(妓房)을 통한 예술적, 문학적 교육을 받고 다른 사람들과의 활발한 사교활동, 작시(作詩) 활동이 기반이 되어 감정을 진솔하게 토로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기녀들의 한시에서는 상대방과의 헤어짐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 기다림 등을 표출하고 있었고, 자신의 신분에 대한 한탄, 자의식에서 비롯된 수심, 세월이 가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나 안타까움 등 다양한 내용의 ‘한(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의 모습은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되어 나타나지만, 대분류로써 자신의 우호적 감정인 정(情)과 비우호적인 감정인 탄(嘆)의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1) 이별과 공간으로부터의 정한(情恨)


연정을 품었던 사람과의 이별은 인간에게 슬픔과 그리움을 가져다준다. 원하는 이별이었든 원하지 않는 이별이었든지 상대방과의 헤어짐 뒤에는 그 동안의 정을 끊어야 하는 일이 따르기 때문에 한(恨)의 감정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원하지 않는 이별의 상황에서는 사무치는 그리움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기녀들은 신분적으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남자들과의 교유 속에서 살았으므로, 이별의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되고 그 속에서 슬픔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많은 작품 속에서 이와 같은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流水和琴冷 흐르는 물소리는 거문고 속에 차갑고

梅花入笛香 피리소리 구성진 속에 매화는 향기롭다.

明朝相別後 내일 아침 서로 떠나 이별을 고한 뒤에

情興碧波長 못 잊는 그 정은 푸른 물결처럼 끝없겠지.


-黃眞伊, <送別蘇陽谷> 中-


명기로 잘 알려져 있고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난 작가로도 유명한 황진이의 한시 작품이다. 황진이는 한시를 6수밖에 남기지 않았지만 그녀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기녀들의 만남은 지속적인 만남이 아니라, 일시적인 만남이 대부분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생활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였다.

황진이가 느끼는 이별에 대한 정한은 마지막 구에서 절실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자신의 정이 푸른 물결처럼 끝이 없다는 표현을 통해 임과의 헤어짐 속에서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황진이 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이별 앞에서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는데, 매창의 시에서도 이별 앞에서 슬퍼하는 화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同風一夜雨 동풍 불고 밤새도록 비가 내리더니

柳與梅爭春 버들잎과 매화가 다투어 봄을 알리네.

對此最難堪 이 좋은 날에 견디기 어려운 일은

樽前惜別人 잔을 앞에 두고 떠나는 임을 아쉬워하는 것이라네.


-梅窓,<自恨>-


夢罷秋風雨 꿈을 깨니 가을 바람과 비가 내리고

沈吟行路難 곰곰이 생각하니 살 일이 어렵구나

慇懃樑上燕 다정히 앉아 우는 들보위 제비야

何日喚人還 어느 날에 우리 임 불러 오려나


-梅窓,<自恨>-


위의 두 시는 매창(梅窓)의 <자한(自恨)>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매창의 시 중 <자한>이라는 제목의 시가 두 편이 존재하며, 각각 3수의 시로 되어있다.

그 중 각각 첫 번째 수이다. 각각 마지막 구에서 이별에서 오는 슬픔이나 서러움이 느껴진다.

첫 번째 시에서는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라는 계절과 나의 마음이 대조되고 있다. 동풍이 부는 계절적 배경과 함께 꽃이 피는데, 나는 잔을 앞에 두고 임을 보내야만 하기 때문에 안타깝고 슬프기만 한다.

두 번째 시에서도 그러한 감정은 그대로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계절적 배경과 함께 꿈이라는 상황을 통하여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많은 작품에서 여인들이 헤어진 임을 꿈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기녀 한시에서 꿈(夢)이 등장한 작품에서는 꿈에서 오는 허무함이 주조를 이룬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 임이 곁에 없는 자신의 현실을 느끼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은 자신과 대비되어 더욱 한스럽게 만들고 녹음이 져가는 가을은 한을 더욱 깊게 만든다.


曲?花開憐?? 곡서화 피었으니 그 꼭지 가련하고

芳園樹老愛連枝 정원의 늙은 나무에 새가지 사랑스럽다

春風別後相思恨 봄바람에 이별한 뒤 서로 생각하는 정을

十輻魚箋幾首詩 열 폭의 편지에 몇 수의 시나 적어 보내리.


-姜只在堂, <?望>-


강지재당의 <창망(?望)>에서도 봄의 분위기와 다른 자신의 처지를 읊는다. 봄바람에 이별을 하고 난 후에 상사(相思)의 한(恨)에 사무치는데, 그 감정을 시(詩)로써 풀어낸다.

헤어지는 상황 속에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은 그리움, 기다림, 원망 등인데, 한 가지 감정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든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한다. 하지만 시의 표면에서는 원망이나 한탄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은 채, 떠나간 임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슬픔만이 드러난다. 이별 앞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를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은 감정 표출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신분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조선 시대는 유교 사회였으며 여성에게는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악(七去之惡) 등의 가치관이 퍼져있었다. 유교의 이념으로부터 비롯되는 한은 우리들로 하여금 언제나 시선을 자기 자신으로 향하게 한다. 또한 기녀라는 신분의 영역이 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육을 받고 국가의 행사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이별에 대한 감정이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나 한탄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자신의 가슴 속에 묻힌 이별에 대한 슬픔이 사물이나 공간 등 외부적 대상에 의해 더욱 절실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한시는 표현 방식 자체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방식에 따라서 지어졌기 때문에 외부 대상물에 의해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녀들의 한시 작품에서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이 시적 소재로 많이 쓰였고, 이것은 이별의 한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曾年此夕瑤池會 예전에 이 저녁은 즐겁던 잔치모임
我是樽前歌舞人 잔을 들고 이 몸은 춤도 췄나니.

宣城舊主今安在 흥성했던 옛 주인은 어디 가시고

一?殘花昔日春 꽃잎만 그 봄인 양 섬돌에 남았네.


-梅窓, <春愁> 2首 中 1首.-


새로운 기운이 발산하는 봄과는 달리 이 시위 분위기는 쓸쓸하고 허무하다.

1,2구에서는 기녀라는 직업의 생활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잔치에 나가서 자신이 기예와 재주를 행했던 모습을 떠올리는데, 지금의 봄날에서는 잔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꽃잎만 처량하게 존재할 뿐이다. 자신이 현재의 봄날에 서서 느끼는 감정은 과거의 봄날과 현재의 봄날의 대비에서 나오는 안타까움이다.


매창의 <규중원(閨中怨)>에서도 봄날에 느껴지는 한(恨)의 정서가 표현되면서, 규방(閨房)이라는 공간이 겹쳐서 화자의 정서를 토로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규방은 여성의 영역으로, 내적 공간이었다. 사대부 남성들이 외적 공간의 영역에서 삶을 향유할 때 여성은 규방이라는 내적 공간에서 삶을 향유했고, 따라서 작품 속에서도 아녀자들이 지켜야할 덕목이나 절개나 지조의 측면에서 규방이 활용되었다.

하지만 기녀 한시에서 나오는 규방은 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 때문에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이 아니라, 이별의 상황에서 자신이 혼자 고독하게 거처함으로써 한(恨)의 정서가 깊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삶의 생기가 돋는 봄의 이미지와 은둔의 공간인 규방의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별한(別恨)의 정서를 더욱 깊게 만든다.


江陽?裡西風起 강양관에는 서풍이 불어 일고

後山欲醉前江淸 뒷산은 취하는 듯 앞 강은 맑디 맑다

紗窓月白百蟲咽 사창에 달은 밝고 벌레들은 흐느낀다

孤枕衾寒夢不成 외로운 베개에 이불 차서 잘 수가 없네.


-勝二喬, <秋夜有感>-


봄과 이별이라는 반대의 이미지가 화자를 더욱 서럽게 한다면, 가을은 화자가 감정이입을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더욱 한스럽게 만든다. 가을 밤에 서풍이 불고 강은 바람결에 물결이 일렁이면서 움직임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밤이 되니 달은 밝게 비추며 벌레가 운다. 이와 같은 가을 밤 화자는 방 안에 혼자이다.

이불이 찬 이유도 임과 함께하지 못하고 나 혼자이기 때문이다. 가을밤의 벌레 소리는 울음소리처럼 느껴지고,

화자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 같아 그 소리가 나의 수심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가을이 짙을수록 산빛은 붉어지지만 혼자 있는 화자의 마음은 가을 빛이 짙어진 만큼 한(恨)이 깊어진다.



2)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로부터의 한탄(恨嘆)


여성들에게 시는 감정표현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이고 진솔한 감정의 호소가 시를 통해 형상화되는 것이다. 서정적 감정인 정(情)뿐만 아니라 갈등에 의해 탄식(嘆息)이 발생하기도 한다. 원망스러움이나 탄식의 감정의 발생은 외부 환경의 요소와의 관련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자발적인 감정이 아니라 외적인 요소의 자극에 의해 발생하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기녀는 개인적인 존재이면서 사회적으로는 최하위 신분 계층에 속한 존재이므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의해 서글픔, 탄식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현실을 인식하면서 생기는 한탄이나 자아를 성찰하면서 생기는 한탄이 있고, 그 둘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한탄을 하기도 한다. 기녀들이 느끼는 한탄은 자아의 존재와 현실에서 요구하는 관념에 의한 충돌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含情還不語 가득한 이내 심사 뉘에게 호소하리

如夢復如癡 꿈 속과도 같으며 얼빠진 몸 같구나.

綠綺江南曲 거문고로 이 신세 강남곡 뜯어 본들

無人問所思 누가 있어 이 심사 물어 보리오.


-梅窓, <自恨 > 2首 中 1首.-


기생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기 때문에 외롭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호소할 곳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품은 정(含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고(不語), 자신의 감정을 거문고 연주에 담아 호소해 보고자 하나, 내가 품은 생각을 물어오는 사람도 없다.

자신의 감정을 토로할 곳이 없으므로 스스로 한스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녀라는 신분으로부터 느끼는 탄식은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


“잘못은 없다 해도 헛소문이 도니, 이러쿵 저러쿵 여러 입이 말 많아(誤被浮虛說, 還爲衆口喧)”

“속세엔 시비 많아 바다만 하고 규수의 괴로운 밤 일년 같구나(塵世是非多苦海, 深閨永夜若如年#).”등의 표현에서도 기녀이기 때문에 현실 속에서 느끼는 한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기녀라는 신분은 사대부들과의 교유가 다른 여성들에 비해 자유분방하고 재주와 기예를 교육받고 재능을 갖춘 여성들이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면모를 속세에 소문이 떠돌다가 시비가 많다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현실에서 기녀라는 신분에 대한 사회적 관념 때문에 받는 서러움이 자의식과 겹쳐서 복합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인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외부적 요인의 압력에 의해 느끼는 한탄은 자신의 내면 감정을 동시에 자극한다.


娼妓與良家 기생과 양가 여자가

其心問幾何 마음가짐이 어떻게 다르던가

可憐栢舟節 가련타 백주의 그 절개여

自誓矢靡他 다른 마음 안 품으려 스스로 맹세했네.


-動人紅, <自敍>-


<自敍>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전적인 내용의 시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표현하고 있는 이 시에서 기생과 양가 여자의 마음이 어찌 다르겠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스스로 절개와 지조를 지키고자 다짐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며 성찰하는 모습에서 탄식하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표현되고 있으며, 기녀라는 신분과 모순되는 다짐을 하고 있다.

자전적인 글은 자발적인 표현과 자기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녀의 내면 의식과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통로로 삼을 수 있다. 기녀들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현실과의 갈등이 빚어지게 되며 그 상반된 가치의 충돌은 기녀들로 하여금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太白家中有小紅 태백 가문에 소홍 아씨 있었다네

元來幽閑古今同 유한정정(幽閑貞靜) 그 가풍 옛날과 같고

孤負三從非女子 삼종(三從)을 저버리면 여자가 아니었네

無難一死是英雄 탈 없이 죽는다면 영웅이라 했다지.


-小紅, <詠懷>-


조선시대의 기녀들은 어머니로부터 세습되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는 유교사회였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정절을 요구하고 정절을 지키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기녀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위의 시에서도 시대적 규범에 맞는 여자로서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자신의 신분은 기녀였기 때문에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지키면 영웅이 된다는 비교적 과장된 표현을 통해서 사회적 관념 속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르침과는 다른 자신의 신분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유교적 가족 질서로부터 원천적으로 소외된 존재이면서 엄격한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한 조선의 가족제도가 순조롭게 유지되도록 하는 모순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기녀들은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관념을 거스를 수 없었고, 그에 따른 탄식이 시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개인적인 자아로서 느끼는 탄식을 호소하기도 한다.


窓燈何耿結 창가의 등불은 어찌 또 잠 못 들게 하는가

窓雪又飄旋 창가에 흰 눈은 또 어쩌자고 휘날리는가

梅作將花候 매화는 꽃필 시절 되었다고 하는데

蛾眉又一年 이 고운 얼굴은 또 일 년 허사이네.


-潭挑, <歲暮嘆>-


자연의 순리는 흐름에 따라 일정하게 움직이지만 인간사의 흐름이란 일정하지 않다. 창을 바라보며 화자는 마음이 심란함을 느낀다. 감정이 오묘하니, 잠은 오지 않고 창 밖 풍경에 자꾸만 시선이 끌리게 된다.

매화는 곧 꽃을 피울텐데, 내 아름다움은 또 일 년이라는 표현은 매화와 대비되어 탄식을 자아낸다. 자의식으로부터 발생하는 탄식은 자의식을 더욱 강하게 다짐하는 태도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면은

“발 잘려 부끄러워 아직 짝을 못 만나도, 그러나 순진함을 형산에 울부짖네(?足三慙猶未遇, 還將璞玉泣荊山)”라는 절개와 지조를 다짐하거나 “백년정분을 만들고 싶다(白年心)”는 신분에 대한 탄식을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자존감을 획득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뭇 꽃들이 져버려도 곧은 세월 보내면서, 가을난초 한가지로 호올로 붉었어라(直須荏苒群芳歇, 獨與秋蘭一樣紅)”를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확실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녀들이 느꼈던 한의 감정은 임에 대한 기다림이나 그리움에서 나오는 정한과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대립에서 나오는 한탄의 감정으로 형상화되면서, 자신들이 느끼는 한의 감정 속에서 주저앉거나 체염하는 모습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기녀들에게서 비롯된 한탄의 감정은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유교에서 비롯된 계층의식은 노비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함으로써 그들에게 뿌리 깊은 한과 원(怨)을 남겼으며, 다음으로 남존여비의 사상으로 남성에 의해 가해진 여성에 대한 횡포는 여한(女恨)의 원인이 되었다. 기녀들의 한탄은 외적 세계의 요소가 내면 세계와 충돌하면서 형성되었다.



3. ‘한(恨)’의 좌절과 승화


기녀들은 시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였고 작품 속에 형상화된 한의 모습을 통해 볼 때, 한의 감정에 대해 부정하거나 저항하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한’을 부정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한은 풀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을 분출하거나 삭이는 등의 극복하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한을 스스로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체념적인 수동의식이, 그리고 상상 속에서 그것을 해결하려는 도피의식이 짙게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꿈(夢)이나 선(仙)의 세계가 작품 속의 소재를 활용되는 경우를 엿볼 수 있는데, 한의 감정이 꿈이나 선의 세계에 투영되어 있었다. 자신의 시름이나 서러움, 탄식 등을 달래고 싶어서 기대는 공간이지만 완전한 해소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아니었다.


1) 꿈을 통한 좌절


앞 장에서 임과 헤어진 상황에서 오는 한(恨)의 양상을 살펴보면서 시 속의 꿈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언급을 했었다. 많은 작품들에서는 꿈을 통한 임과의 재회를 형상화하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임을 꿈 속에서는 만나고 싶다는 소망과 꿈 속에서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이미지를 형상화기도 한다.

하지만 기녀들의 시에 등장한 꿈의 소재들을 살펴보니, 임을 만나기 위해서 꿈을 꾸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기 보다는 꿈에서 깨어난 후의 허무함이나 꿈에서 깨어났을 때, 꿈과 다른 현실에서 오는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南國芳菲天際夢 아름다운 남쪽나라 저 하늘가 꿈에 보고

東明律呂月中聞 동명고도 음악소리 달 속에 들으리라.

閒鷗從似無情緖 한가로운 갈매기는 무정한 듯 하다만은

猶自曉曉嗚索群 소리소리 슬피 울어 벗 찾는 듯 헤매이네.


-金雲楚, <送別> 2首 中 1首.-


임을 떠나보내는 감정을 호소한 작품에서 등장한 꿈의 모습이다. 임과 나와의 구체적 추억이 아닌 배경 및 분위기만을 묘사함으로써 이별한 상황에 처한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꿈에서 본 남쪽 나라는 아름답고 달 빛 속에 음악소리가 들려오며 갈매기 또한 한가롭게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지막 구에서 앞의 3구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다.

오히려 임과 이별하여 슬픈 화자의 모습처럼 갈매기도 벗을 찾고자 슬프게 울고 있었던 모습으로 시상이 마무리 되면서, 한적하고 고요하게 보였던 경치는 실제의 모습과 상반된 모습이었던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꿈에서 본 남쪽나라는 아름다웠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음에 나오는 2수의 시는 제목에서 ‘꿈(夢)’이라는 글자를 써서 표현하고 있다.


水晶簾外日將? 수정발 밖에는 날이 저무는데

垂柳深?覆碧欄 늘어진 수양버들이 푸른 난간을 덮었구나

枝上黃?啼不妨 가지 위의 꾀꼬리 울음소리를 방해마오

尋君夢已到長安 그대 찾아 꿈 속에서 나는 서울에 이르렀소.


-姜只在堂, <春夢>-


<봄날에 꿈을 꾸다(春夢)>라는 제목의 시에서 꿈 속에서 내가 처했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대비되어 보여지고 있다. 1~3구에서 보여지는 배경 묘사는 날이 저물어가는 상황과 수양버들이 길게 늘어져서 난간을 뒤 덮고 꾀꼬리 울음 소리를 방해하는 하강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마지막 구에서 그대를 찾아서 나는 꿈 속에서 서울에 도착하였다는 언급은 내가 임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꿈 속에서 임을 찾아갔지만 현실에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임은 없고 그렇기에 화자는 쓸쓸한 감정만을 느낄 뿐이다. 강지재당의 <꿈에서 깨어(夢斷)>라는 제목의 시에서도 꿈에서 깨어나서 마주한 풍경은 “달빛이 애잔하게

남아 있고(柳梢斜月耿殘明), 슬프고 기쁜 정을 역력히 비춰준다(照盡悲歡歷歷情).”고 하여 꿈이라는 소재가 이별의 정한의 수심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표현한다.


一片彩雲夢 한 번 만나 아름답던 꿈이었는데

覺來萬念差 깨고 나니 허망한 수심뿐일세.

陽臺何處是 즐겁던 양대는 어디에 있는가

日暮暗愁多 날 저무니 어둠 속에 시름만 깊네.


-梅窓, <自傷>-


매창의 시에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작품 제목에서 ‘자(自)’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꿈을 꿀 때는 아름답지만 깨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수심 뿐이다. 신분적 한계에 부딪치면서 생긴 한스러움은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꿈에서 깨어난 화자는 현실을 느끼며 더욱 깊은 근심에 빠져들게 된다. 이별을 통한 고독과 상사의 감정은 더욱 깊어지며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해 원망도 체념도 하지 않는 대신에,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꿈이라는 공간이 설정되었다.



2) 선(仙)을 통한 소원풀이


인간은 어떠한 감정이든 가슴 속에 계속 품고만 살 수는 없다. 감정이 계속 쌓이기만 한다면, 그것은 병이 되고 만다. 많은 시 작품들의 제목 중에 병(病中, 病中有感 等)이 생겨서 그런 상황 속에서 지은 시들도 적지 않다. 병이 생기지 않으려면 쌓인 감정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꿈 속에서라도 이루고 싶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재회는 물론, 꿈 속에서의 재회의 기도마저도 헛된 것이 되고 만 이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기녀들이 모색해 낸 길이 바로 선계에서의 재회다.

한의 정서가 차별, 부당함, 업신여김 등과 같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억울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맞서기보다는 내면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계로의 지향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을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一鎖樊籠歸路隔 조롱 속에 한번 갇혀 돌아갈 길 끊겼으니
崑崙何處?風高 학의 고향 낭풍은 곤륜산 어느 곳에

靑田日暮蒼空斷 푸른 들에 해가 지고 창공은 끊겼는데

?嶺月明魂夢勞 구령 밝은 달은 꿈속에서 괴롭구나.

瘦影無?愁獨立 야윈 모습 외짝으로 수심겨워 서 있는데

昏鴉自得滿林? 황혼의 갈가마귀 수풀 가득 지저귄다.

長毛病翼?零盡 털은 길고 병든 나래 다할 때를 재촉하며

哀?年年憶九皐 슬피 울며 해마다 깊은 못을 생각하네


-梅窓, <籠鶴>-


위의 시의 제목은 <새장 속에 갇힌 학>인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의식이 매우 강했던 매창은 고고하고 자유롭게 살 수 없었던 자신을 ‘외로운 학’이라 말했다.

위의 시에서도 여전히 꿈이 등장하고 있지만, 꿈의 이미지는 부정적인 이미지이다. 자신이 느끼는 한이 해결되지 못한 양상으로 남아있으며, 수심 가득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선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여성한시에서 ‘학(鶴)’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의 이미지는 신선세계를 지향하는 내용에서 많이 쓰이기도 하고,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사용될 때에는 비극적인 자화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학이 새장 속에 갇힌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제한되어 있는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학은 신선의 이미지를 지닌 소재이므로, 그 속에는 신선세계로의 지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학이 사는 곳은 신선의 세계이나 지금은 갇혀서 갈 수가 없는 선의 세계인, 곤륜산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시의 정조는 여전히 수심이 가득하나, 선계로의 지향을 통해 자신의 한을 극복하고자 한다.


樽酒相逢處 술잔을 서로 권해 정담이 무르익고

東風物色華 동풍이 건 듯 부니 물색이 환하구나.

綠垂池畔柳 실버들 하느적 못가에 드리웠고

紅綻檻前花 누각앞 꽃들은 붉게 터뜨렸네.

孤鶴歸長浦 외로운 학은 물가로 돌아가고

殘霞落晩沙 저녁 녘 모래밭에 남은 안개 내리네.

臨盃還脈脈 술잔 들어 얼굴은 불그레하니
明日各天涯 내일은 손들이 하늘가로 가리라


앞의 시에 이어 외로운 학의 이미지는 또 다시 등장한다. 외로운 학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화자의 현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지금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에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내고 있지만, 매창은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을 ‘내일은 하늘가로 가겠다’는 표현을 통해서 토로한다.


한이 승화되거나 극복되는 모습을 선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을 극복하는 양상으로, 분출하거나 쌓아두는 이원대립적인 행동으로 보기보다는 한을 삭이는 것으로 해결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삭이다는 말에는 미학적?예술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성이 포함되어 있다. 한이 삭으면서 극복되어가는 과정을, 선의 세계로의 지향을 통하여 기녀들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이것은 한의 특징이 공격적이거나 부정적인 속성이 아니라 우호적이고 진취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 진취적인 감정으로서의 한(恨)


본고에서는 기녀들의 작품을 통해 한의 양상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사전적 정의와 그동안의 연구자들의 견해를 통해 살펴 본 한의 개념은 부정적인 감정인 원망이나 억울함, 안타까움 등의 감정이 가슴에 응어리진 채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의 감정은 이와 같은 감정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한’을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규정하고, ‘한’의 특성이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리 전개의 과정은 고대와 현대에 이르는 대표적 문학작품, 시가 속에 ‘한’적 에토스나 주제가 많다는 것을 찾아내거나 동시에 굿, 전통놀이, 민속신앙과 역사적 사건 속에서 ‘한’풀이나 ‘한’적 상징들을 찾아내고 여기서 ‘한’심리와 ‘한’문화의 특성을 추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번 연구도 문학 작품을 대상으로 ‘한’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논의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논의들에서 한의 성격을 단일하게 규정지었던 것과는 달리, 작품에서 형상화하고 있는 한의 정서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함을 분석하고 그것이 우리의 ‘한’문화의 특성임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기녀들의 작품은 임과의 이별의 감정 때문에 지어진 것들이 많다. 별리(別離)를 통한 자신들의 감정을 진솔하게 읊어낼 수 있던 있었던 장치가 시였던 것이다. 기녀들의 시는 개인적으로 절실한 소회의 표현이라는 측면과 함께, 한편으로는 기방(妓房)이라는 영업공간을 중심으로 남성들과의 사이에서 수작을 위해 지어졌고 호사가적 문맥과 함께 전승된 경우가 대단히 많이 존재한다. 따라서 작품에서 보여지는 ‘한’의 모습은 이별의 정한이 가장 두드러졌지만, 대상을 임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사를 바라보며 세월이 흘러가는 무상감에 대한 ‘한’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또한 밖으로 향했던 기녀들의 시선은 내면으로 향하면서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충돌로 인해 생긴 ‘한’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기녀들이 느끼는 ‘한’의 감정은 타인에 대한 원망이나 억울함이라기보다는 내면에서부터 발생하는 감정인 경우가 많으며, 이별의 상황에서도 임을 원망하거나 탓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슬픔이나 근심, 수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재회의 소망을 표출하거나 기다림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상대방에게 돌아올 것을 강요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자신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이다.

재회의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체념하지 않는 데서 기녀들의 기다림의 특징이 있으며, 돌아오지 않을 임을 끝까지 체념하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녀들이 발견한 것이 꿈이다.

하지만 그 꿈에서도 ‘한’의 감정은 해결될 수 없고, 오히려 허무함과 허탈감이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스스로 느끼는 ‘한’이라는 감정 자체에서 발생하는 좌절보다는 ‘한’을 해결하고 극복하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허탈감이 더 심할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꿈을 통해서 ‘한’의 감정을 삭이고자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또 다른 해결 통로로 선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꿈이나 선계로의 지향은 한의 완전한 해결 또는 극복의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서 기녀들의 ‘한’의 감정이 진취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이라는 것은 이렇게 삭으면서 극복되어 나가는 것이며 지극히 퇴영적이면서도 진취적이기 때문에, 한국적 한의 내재적 기능은 원(怨)과 탄(嘆)의 감정을 ‘삭임’의 과정을 통해 정(情)과 원(願)의 감정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 있다. 기녀들이 스스로 가슴에 품은 원망과 아픔, 슬픔, 서러움,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거나 분풀이, 혹은 체념하거나 고통을 쌓아두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해 나아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의식의 전환을 보게 된다.


강지재당(姜只在堂)의 <마음에 느낀 바가 있어서(感懷)>라는 제목의 시에서도 전반부에서부터 지속되는 화자의 감정은 한탄의 감정이었지만 마지막 구에서는 한탄과 체념의 목소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임이 와서 내 눈물을 닦아주길 바라는 원(願)의 감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녀들의 문학을 통해서 소외된 존재로 살았지만,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았던 ‘한’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것을 통해서 기녀들이 품었던 ‘한’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5. 맺음말


본고는 한시 작품을 거시적인 관점이 아닌 미시적인 관점에서 바라고자하는 시도에서 진행되었다. 그 중 기녀들의 한시를 대상으로 ‘한’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한’은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이며, 여성들의 작품에는 ‘한’이 많다는 관념적인 인식 아래 그것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사전적 정의와 기존의 여러 논의들에서 ‘한’의 기본적 개념에는 원망이나 서러움, 슬픔, 탄식 등의 감정이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여, 그 기저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정의하고 있다. ‘한’의 개념이 기본적으로 부정적일지라 하더라도 한의 발생하는 요인이나 발생된 양상, 또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부정적이라는 단일한 감정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작품을 통해 이를 살펴보았다.


기녀들의 ‘한’은 이별에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이별에 의한 정한을 담고 있었다. 임과의 헤어짐에서 발생하는 슬픔, 그리움, 기다림, 안타까움 등을 표출하고, 자신의 정한을 더욱 깊게 만드는 공간적 요소로 봄과 가을, 규방이 등장하면서 정한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였다.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정한이라는 감정과 대비되어, 기녀들은 한탄과 탄식을 토로하였다. 기녀라는 사회적 존재와 자아라는 개인적 존재의 대립에서 한탄의 감정이 발생하였다.


또한 스스로 느낀 한이 감정에 대해 절망하거나 체념, 또는 고통으로 인한 좌절을 하기보다는 한을 극복하고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꿈과 선의 세계를 통해 ‘한’을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꿈을 통해 시도를 했으나 실패를 했고 또 다른 극복의 방법으로 선계로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완전한 해결이나 극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녀들의 ‘한’의 모습이 퇴영적이지 않고 진취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두산동아 사서편집국, 『표준국어대사전』, 두산동아, 1999.

김지용 역저, 『한국역대 여류한시문선』, 명문당, 2005.

김진 외,『한의 학제적 연구』, 철학과 현실사, 2004.

허미자 편저, 『조선조여류시문전집』, 태학사, 1988.


김명희,「조선시대 여성 한시 문학사」,『동방학』제9집,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2003.

김용숙,「閨怨과 別恨考」,『아세아여성연구』제21집, 숙명여자대학교 아세아여성문제연구소, 1982.

박무영,「여성 한시의 시세계」,『한국고전여성문학의세계(1)』,이화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 1998.

_____,「기녀한시의 "비틀림"과 "비틀기"」,『한국한시연구』제10집, 한국한시학회, 2002.

박미현,「기녀 시에 나타난 내면 의식과 개인의 발견」,『인간연구』,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2005.

박애경,「‘소수자 문학’으로서의 기녀문학」,『고전문학연구』제29집, 한국고전문학회, 2006.

______,「기생을 바라보는 근대의 시선」,『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제24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2.

박영민,「기생의 한시, 사회적 정체성과 섹슈얼리티의 서사」,『동방한문학』제33집, 동방한문학회, 2007.

서지영,「조선시대 기녀 섹슈얼리티와 사랑의 담론」,『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제5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2.

이성혜,「지재당 강담운의 시세계- 그리움으로 머뭇거리는 서성임의 美學」, 『동양한문학연구』제18집, 동양한문학회, 2003.

이신복,「한국 기류문학 연구」,『논문집』제11집, 단국대학교, 1977.

이화형,「기생 매창 시의 존재적 갈등」,『우리어문연구』제19집, 우리어문학회, 2004.

정우봉,「조선 후기 협기(俠妓)의 유형과 그 의미」,『고전문학연구』제38집, 한국고전문학회, 2010.

______,「조선시대 기생(妓生) 시첩(詩帖)의 존재양상과 문화사적 의미」,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제 18집,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9.

천이두,「한(恨)의 구조에 대하여」,『현대문학이론연구』제3집, 현대문학이론학회, 1993.

최길성,「한국 전통적 여성상과 한(恨)」,『선청어문』제16집,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1988.

최상진,「‘한’의 사회심리학적 개념화 시도」,『연차학술발표대회 논문집』, 한국심리학회, 1991.

황수연,「'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본 18세기 기녀 대상 한시」,『열상고전연구』제13집, 열상고전연구회, 2000.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