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의 훈장
- 박완서
[6.25전쟁 때 친자식 대신 집안 종손인 조카를 데리고 월남해 자물쇠 장사를 하며 지극정성으로 키웠으나 정작 자신이 병든 노년에 이르러서는 조카내외한테 홀대 받으며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가 되어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 자신의 아들하고 친구였던 화자가 찾아갔을 때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사람도 못 알아보는
처지이면서도 마지막으로 북에 두고 온 아들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잘못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사족] 친자식들도 부모가 늙어 병들면 요양원으로 보내는게 요즈음 현실인데 박완서 작가는 요즈음 이런 현실을 못 보고 작고하셨으니 작중 인물에 대해 너무나 가슴 아픈 느낌을 가졌을 터이다. 그나저나 기왕 이런 대접을 받은 양이면 친자식을 데리고 올걸 하며 땅을 치며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내가 같은 입장일지라도.
[검색자료-일부 발췌]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 그리고 봉건적 인습 및 속물적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
우리는 소설을 왜 공부할까? 그것은 소설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사람이 겪은 일들을 간접 경험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 읽기를 통해 다른 사람, 다른 세대, 다른 계층, 다른 성별, 다른 성격 심지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경험까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박완서의 ‘아저씨의 훈장’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전쟁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현대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전쟁 때문에 한 가족이 생이별을 해야 하는 아픔을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아가서 그 이별이 잠깐 동안일 줄 알았는데, 10년 20년 가더니 반 세기가 넘어가 버린 비극적인 분단의 역사도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소설을 공부하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은 과연 살 만한 세상인가 하는 비판의식을 길러 준다는 것이다. 이 비판의 대상에는 우리 자신도 물론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살 만한 세상인가를 묻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고, 살 만한 세상, 바람직한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준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해준다. 하나는 봉건적 인습에 대한 것이다. 너우네 아저씨는 봉건적 인습에 얽매어 사는 사람이다. 그는 전쟁이 나자 자기 아들은 놔두고 죽은 형의 아들, 즉 장조카를 지게에 짊어지고 피난길을 떠난다. 자기 아들을 두고 조카를 데리고 피난길에 오를 때는 갈등을 하기도 하련만 그는 그 선택에서 조금의 ‘갈등이나 고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의 ‘자신만만하고 고집스러워 뵈는’ 모습을 보고 그의 아들 영표의 친구인 ‘나’는 맹렬한 적의를 느끼기까지 한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다른 하나는 속물적 물질주의이다. 박완서는 많은 작품을 통해서 중산층의 속물적 물질주의를 비판해 왔다. 그런데 이 소설 역시 그런 점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너우네 아저씨가 아들까지 놓아 두고 대신 데리고 내려온 조카 성표는, 서술자에 따르면 무슨 화제든지 제 자랑, 제 자랑 중에도 재력 자랑으로 몰고가는 버릇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자기가 새로 이사간 아파트가 50평이 넘으며 평당 얼마인데 요새도 매일매일 치솟는다는 묻지도 않는 얘기를 중언부언한다. 나는 3.8선을 업고 넘어온 아저씨를 모시고 살려면 커다란 아파트가 필요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아저씨는 누추한 골목길에 있는 작은 집 문간방에서 거동도 못한 채 간병인과 쓸쓸하게 살고 있었다. 성표는 자식도 아닌 조카가 그 정도 모셨으면 됐다는 것으로 자기 변명을 한다. 그들의 근본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에게 성표는 그렇게 둘러댈 정도로 속물인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는 봉건적 인습을 뛰어 넘는, 혈육을 찾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 준다. 자신의 선택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고 자신만만해 하던 너우네 아저씨가 이제 거동도 못하는 상태에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안간힘을 다해 그의 아들 영표를 그 친구인 ‘나’의 앞에서 부르는 것이다. 이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에 대한 인간의 마지막 저항이고, 분단을 거부하는 외침이며, 봉건적 인습을 깨는 몸부림이다. 또한 자신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성표에 대한, 성표의 속물적 물질주의에 대한 준엄한 비판인 것이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과연 살 만한 세상인지,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이 바로잡아져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완서의 ‘아저씨의 훈장’은 우리에게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통해 전쟁에 대한 거부와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봉건적 인습과 속물적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간적인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완서[ 朴婉緖 ]: 1970년 소설 '나목'으로 문학계에 등장해 '자전거 도둑' '엄마의 말뚝' 등의 대표작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계의 큰 별로 자리 잡았었다.
[출처] 박완서의 ‘아저씨의 훈장’을 읽고|작성자 동그랑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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