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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소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 최인석

Bawoo 2016. 4. 3. 21:38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 최인석

 

 이 소설의 서술자이자 주인공은 고등학생 여자아이 진희이다. 진희의 관점에서 소설이 서술되어 있다. 진희와 어머니는 ‘기사식당 안전운행’의 주인아주머니인 순옥 이모의 도움을 받아 식당에서 창고와 화장실 사이의 방에서 산다. 그 방은 어머니와 진희의 생활공간이지만 진희에게는 그 어떠한 휴식도 제공받을 수 없는 공간이다. 그저 살기위해 머무르는 공간이라고나 할까. 사춘기의 여자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제공하는 환경인 것이다. 엄마는 공부하라고 하지만, 실상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도 없는 그런 곳. 손님들의 용변 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는, 주방에서 샤워를 하다가 주방장 아저씨의 무서운 시선을 느껴야 하는 그런 곳.

  진희에게 엄마는 너무 바쁜 사람이라 기댈 수가 없다. 그리고 진희 자신이 생각하기에 엄마에게 기대기엔 엄마 스스로도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필요한 아버지란 존재는 엄마의 거짓말 속에서만 잘 살고 있었고, 5살 이후로 처음 본 아빠는 교도소에서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어린 진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환경들이 결국 진희를 나쁜 길로 인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이 있어도 집이 아닌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진희는 결국 방거지라고 불리는 보도방을 운영하는 양아치에게 찾아간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건 진희 자신이 어떠한 모욕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그저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후에 엄마와 순옥 이모 덕분에 그곳에서 빠져나와서 반성을 했지만, 어린 진희의 발걸음을 향하게 한 곳이 그런 곳이라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주인공인 진희를 제외하고 어머니와 순옥 이모, 진희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에 앞장 선 인물들이다. 그렇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잘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때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엄마가 말하는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서 그럭저럭 잘 사는 모습이었는데, 물론 진희 스스로가 그런 엄마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노동 투쟁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진희가 받은 충격의 크기는 얼마나 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