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게 된 동기: 모 일간지에 두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기사를 보고서 우리 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두 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과연 어떻게 풀어나갔을까가 궁금해서.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제목은 알고 있었으나 자전적 소설인지는 몰랐고, 김주영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정보였다.
* 읽은 소감: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두 분의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주제넘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단순히 읽고 감동을 받는 차원이 아닌 사소설 형식의 자전적 글을 쓰는 입장에서 유명 작가는 과연 어떻게 썼을까가 궁금해서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읽은 것이라서 그리 생각이 들었다. 두 작품의 우열을 굳이 따진다면 박완서 작가의 작품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유는 김주영 작가의 작품은 문학적 수사(기교)가 너무 많이 들어가 쓰는 이는 힘이 들었겠으나 읽는 입장에서는 건너 뛰어도 될만한 내용이 많았고 나는 절대로 그리 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반면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쉬임없이 잘 읽혔으나 큰 감동을 받은 정도는 아니었고. 각품이 생애의 일부분만으로 끝난 것도 아쉬웠다. 최근 가장 많이 접한 작품이 박완서 작가의 단편들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등단하는 계기가 된 "나목"이란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었다. 공모에 응모하여 당선작이 되려면 보통 수준의 담금질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막연하게 화가 박수근 선생과 관련이 있는 작품이라는 정도만 아는 것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것도 큰 소득인 것인가?^^
[아래는 두 작품을 소개한 글들 중 발췌한 내용 ]
우리 시대의 작가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박완서는 여전히 입심과 수다, 재미를 갖춘 작품으로 대중작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의 대표작『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가 150만 부 돌파 기념, 출간 13년만에 양장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책은 작가가 전적으로 기억에 의지해 쓴 자전적 소설로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맑고 진실되게 그려낸 소설이다.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와 어우러져 가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30년대 개풍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을 유려한 필치로 그렸으며 1950년대 전쟁으로 무참히 깨져버린 가족의 단란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 시절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최고의 성장 소설
박완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심정으로, 묵은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의 꿈 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를, 한폭의 수채화와 한편의 활동사진이 교차되듯 맑고도 진실되게 그려낸 소설이다.
그런만큼 이미 발표된 박완서의 여러 소설 속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나거나 소설적으로 변용되어 나타난 자전적 요소들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까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기존 박완서 소설의 모태 혹은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박완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엄마의 말뚝>을 비롯해서 여러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소설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 온 작가의 가족관계, 즉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와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30년대 개풍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 노닐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자만이, 그것도 풍부한 감성으로 순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박완서라야만 가능한 문체의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으며,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이 어떤 자료보다도 자상하고 정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또한 1950년대 전쟁으로 무참하게 깨져버린 가족의 단란함, 그렇게 되기까지 엎치고 덮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로서 주인공이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매듭짓는 소설의 말미는 박완서가 왜 소설가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속으로
소꿉장난을 하다가 한 아이가 술래잡기를 할래? 하면 우르르 따라 하듯이 누군가가 뒷간에 가자 하면 똥이 안 마려워도 다들 따라가서 일제히 동그란 엉덩이를 까고 앉아 힘을 주곤 했다. 계집애들도 치마 밑에 엉덩이를 쉽게 깔 수 있는 풍차바지를 입을 때였다. 대낮에도 뒷간 속은 어둑시근해서 계집애들의 흰 궁둥이가 뒷간 지붕의 덜 여문 박을 으스름 달밤에 보는 것처럼 보얗고도 몽롱했다.
엉덩이는 깠지만 똥이 안 마려워도 손해날 것은 없었다. 줄느런히 앉아서 똥을 누면서 하는 얘기는 왜 그렇게 재미가 있었는지, 가히 환상적이었다. 옥수수 먹고 옥수수같이 생긴 똥을 누면서 갑순네 누렁이가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았는데 누렁이는 한 마리도 없고 검둥이하고 흰둥이하고 흰 바탕에 검정 점이 박힌 것밖에 없으니 참 이상하다는 따위 하찮은 얘기가 그 어둑시근하고 격리된 고장에선 호들갑스러운 탄성을 지르게도 하고, 옥시글옥시글 재미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도 했다. ― 본문 중에서
엄마... 이제야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등단 41년을 맞은 이야기꾼 김주영이 그려낸 엄마 이야기 『잘 가요 엄마』. 노년에 접어든 작가가 등단 이후 처음 선보이는 사모곡으로,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엄마’라는 이름을 소리내어 부른다. 어느 새벽에 걸려온,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배다른 아우의 전화. 고향을 떠나 살면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한 ‘나’는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태도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나’는 잘 때를 제외하곤 평생 누운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어머니의 시신과 마주한다. 아우와 함께 한줌의 먼지가 된 어머니를 뿌린 곳은 유년의 슬픈 추억이 담긴 장소.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나’는 마음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을 느끼는데….
김주영 등단 만 41년, 마침내 써내려간 그 이름, ‘엄마’
‘엄마’만큼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부르게 되는, 항상 부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 것만 같은 그 이름, 엄마. 『잘 가요 엄마』는, 일흔셋, 노년에 접어든 작가 김주영이 등단 41년 만에 처음 부르는 사모곡이자, 그 내밀한 고백이다.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 외에 내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였다. 이 소설은 그처럼 진부했었던 어머니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몰라, 난. 누나보다 엄마가 싫어.”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라리 난장』 『멸치』, 그리고 2010년 발표한 『빈집』까지, 등단 41년, 일흔셋의 나이, 천부적인 이야기꾼 김주영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작가생활 동안 그 걸음을 게을리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긴 시간, 한 번도 그 이름을 올린 적은 없다. ‘엄마’.
작가는,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 수밖에 없는 그 이름을, 비로소 소리내어 부른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들이 살아낸 모성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길고긴 산고를 겪고, 제 젖을 물리고, 제 살을 떼어주며 우리를 키워낸 어머니. 그 촌스럽고 어리석고 못난 이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다. 미련하고 바보 같은 엄마의 이야기는, 그래서, 대가 김주영의 단련된 손끝에서 더욱 미련하고 촌스럽게, 그래서 더욱 아프게 그려진다.
“잘 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새벽, 불길한 예감의 전화벨소리.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아우의 전화다. ‘나’는 시큰둥하게 전화를 끊고 평소와 다르지 않게 회사로 향한다. 이튿날 새벽에야 고향에 도착한 나는 짐짓 성의 없는 태도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다. 아흔네 살의 노구는 바싹 말라 있었다. 잘 때를 제외하곤 평생 누운 모습을 보인 적 없던 어머니였다.
그들은 (……) 어머니 시신을 염습대로 옮겼다. 나는 난생처음 누워 있는 어머니와 만났다. 그때까지 잠자리가 아닌 이상 누워 있는 어머니와 대면한 적은 없었다. 나에게 어머니는 그처럼 언제 어디서나 서 있는 사람이었다._본문에서
그 안쓰러움 몸뚱이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염해지고 이내 불태워진다. 아우와 함께 “한줌의 먼지”가 된 어머니를 뿌린 곳은 내 유년의 슬픈 추억이 담긴 장소.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면서, 줄곧 뻣뻣하게 어머니를 대해온 ‘나’도 자꾸만 마음이 무너져온다.
나는 어느새 생각하기 자체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혼자였다.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다. 그는 ‘나’와 엄마를 버려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늘 어려운 형편이었던 우리 집은 엄마가 막일을 하며 품삯을 받아 근근이 생활했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외삼촌 내외도 커다란 짐이었다. 그나마 외삼촌의 딸 애숙이 누나가 말동무를 해주며 어린 ‘나’를 돌봐주었다. 엄마가 일을 다니던 권씨 댁의 모자란 아들 정태와도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엄마가 재혼을 했다. 새아버지가 두렵고 싫었던 ‘나’는 자꾸만 밖으로 돌았다. 의지하던 애숙이 누나마저도 정태와의 정략결혼을 피하기 위해 엄마와 짜고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나’에게는 이제 아무도 없다. 어린 ‘나’의 눈에, 나를 잘 키워내기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습은 오히려 구차해 보일 뿐이다. 결국, ‘나’는 애숙이 누나처럼 엄마를 떠나기 위해 멀리 가출을 감행한다……
아무렇게나 떠나셨지만 아무렇게나 떠나보낼 수 없는 어머니
소설은 엄마의 죽음을 배다른 아우에게서 전해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결국 제 발로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살게 만든 엄마에 대한 원망을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장례에 관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엄마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흔들리게 만든다. 비록 육신은 한줌 뼛가루가 되어 흩어졌지만 당신의 마음까지 흩어져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 오히려 시나브로 다가와 아련히 스민 당신. 아무렇게나 떠난 엄마지만, 결국 ‘나’는 엄마를 아무렇게나 떠나보내지 못한다. 장례를 치르고 아우와 함께 돌아온 ‘나’는 엄마가 쓰던 싸구려 비닐가방 속에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립스틱을 발견한다.
아우의 손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 하나를 집어올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립스틱이었다. 아우가 뚜껑을 열고 립스틱을 위로 밀어올렸다. 빨간색 립스틱이 흡사 어머니의 영혼인 것처럼 앙증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아우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어머니 립스틱 바른 모습 본 적 있어?”
“본 적 없어요.”
(……)
어머니가 그걸 써봤든 못 써봤든 몇십 년 동안 핸드백에 립스틱을 넣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여자였구나, 싶은 연민이 뒤통수를 쳤다._본문에서
어려운 살림을 챙기며 자식을 돌보느라 엄마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그 무엇, 그러나 가방 깊숙한 곳에 숨겨두고 소중히 간직해왔던 그 무엇, 엄마가 엄마임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자식들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바로 그 무엇. 엄마도 결국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아픈 이야기는 이렇게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무언가 어렴풋이 내 시선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지였다. 내 심장을 덮고 있던 미세한 먼지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안치실 냉동 캐비닛에 갇혀 있었으므로 성에가 하얗게 끼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주잔을 들이켜며 눈물을 훔치던 아우의 얼굴이 어둠 속 멀리로 흩어지는 먼지 사이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둠이 깔리는 차창 밖으로 산기슭에 기대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 지나갔다. 완만한 언덕을 기어오르는 사래 긴 보리밭이, 동구 앞 들머리를 푸른 잎으로 가득 채운 느티나무가, 바람에 떨고 있는 상수리나무가, 허리 굽은 소나무와 쥐똥나무 울타리가, 냇가의 논둑에 홀로 서 있는 백양나무가,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스쳐갔다._본문에서
책속으로
아우의 손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 하나를 집어올렸다. 그것은 놀랍게도 립스틱이었다. 아우가 뚜껑을 열고 립스틱을 위로 밀어올렸다. 빨간색 립스틱이 흡사 어머니의 영혼인 것처럼 앙증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아우와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어머니 립스틱 바른 모습 본 적 있어?”
“본 적 없어요.”
(……)
어머니가 그걸 써봤든 못 써봤든 몇십 년 동안 핸드백에 립스틱을 넣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여자였구나, 싶은 연민이 뒤통수를 쳤다._본문에서
나는 고개를 떨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는데도 무언가 어렴풋이 내 시선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먼지였다. 내 심장을 덮고 있던 미세한 먼지들이 어둠 속으로 흩어져 날아가고 있었다. 안치실 냉동 캐비닛에 갇혀 있었으므로 성에가 하얗게 끼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주잔을 들이켜며 눈물을 훔치던 아우의 얼굴이 어둠 속 멀리로 흩어지는 먼지 사이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둠이 깔리는 차창 밖으로 산기슭에 기대 있는 작은 산골 마을이 지나갔다. 완만한 언덕을 기어오르는 사래 긴 보리밭이, 동구 앞 들머리를 푸른 잎으로 가득 채운 느티나무가, 바람에 떨고 있는 상수리나무가, 허리 굽은 소나무와 쥐똥나무 울타리가, 냇가의 논둑에 홀로 서 있는 백양나무가,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이 풍경처럼 스쳐갔다.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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