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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장편소설>저지대- 줌파라히리

Bawoo 2016. 1. 14. 19:55

저지대

[낭독_조경란 -- 소설가. 쓴 책으로 『불란서 안경원』『악어이야기』『복어』등이 있음]

 

 * 배달하며: 글쓰기나 영화의 기법들 중에 '슬로우 모션'이라는 게 있습니다. 주인공의, 생의 특별했던 한 순간을 마치 시간을 정지시킨 듯 독자들에게 가깝고 상세히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지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그 순간은 상처나 고통을 받았을 때, 슬픔에 빠졌을 때가 아니라 가장 아름답고 가슴 떨리던, 잊을 수 없는 찰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지금 "자신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우다얀이라는 청년과 처음엔 그의 아내였다 훗날 형의 아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이 첫 데이트를 하는 날, 뒤늦게 온 그녀의 얼굴을 햇볕으로부터 가려주려고 손차양을 만들어 올리는 수줍은 청년. 저에게는 근래 읽은 소설 중 가장 빛나는 마지막 장면이 돼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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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소감>

처음 접해보는 인도 작가의 작품.  장편소설은 국내작가의 작품도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외국작가의

작품일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명, 역사적 사실이나

이름등이 생소한 탓이 가장 클 것이다. 특히 러시아나 일본의 경우 이름이 너무길어서 애를 많이 먹는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접근하기 좋은 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 현대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접근했는데 주인공들의 이름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두, 세음절이어서 머리에 쉽게 들어왔다.

가장 큰 이유는 문장이 읽기 쉬운 단문 형태여서였고.

 

소설의 내용은 인도의 60년, 70년초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인도 중산층에 해당되는 집안의 가족사이다. 주인공들은 인도 사람이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주무대는 미국이고. 4대에 걸친 인물이 등장하지만 실제 주인공은 수바시, 우다얀이란 이름의 두 형제와 가우리란 이름의 두 형제의 아내가 되었던 여인이다. 더 압축하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생의 아이를 임신한 채 과부가 된 동생의 처를 아내로 맞아 조카까지 친자식처럼 돌보는 수바시와 시아주버니인  수바시를 애정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으로 받아들여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쪽지 한 장 남기고 사라져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산 아주 냉정하고 이기적인 가우리란 여인의 이야기이고. 확대하면  두 형제의 부모와 우다얀, 가우리의 사이에 난 벨라라는 이름의 딸- 벨라는 큰아버지인 수바시를 아버지로 알고 자라고 이 사실을 알고 나 뒤에도 아버지로 생각하고 산다- 벨라의 딸인 메그나까지 4대에 걸친 가족들과 주변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고.

 

책은 일단, 초반 도입부만 빼면 쉽게 읽히는 편이고 다음을 궁금하게 한다. 기술 방법은 수바시, 가우리,벨라가 각자의 시각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법과 이 소설을 이루는 큰 줄거리가 되게 한 우다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의 끝부분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특이한 방식을 택했다. 4대에 걸친 이야기이니 연대기 식으로 쓰면 독자들이 읽기가 편했을텐데 이런 전형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세 주인공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중산층 가정의 자녀들이다. 가우리의 경우는 중산층 중의 상류층 집안이라고 할 수 있고,. 소설 도입부에 골프장 이야기가 나오면서 골프장에 출입 못하는 계층 중 빈민계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주인공 형제들이 다 대학을 다닌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가우리의 경우도 하녀를 두고 있는 집안의 자녀라는 점에서 그렇고 . 작품 도입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60년대 말, 70년초는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이던 시절이어서 대학을 갈 수 있는 젊은이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젊은이들이 더 많던 시대였다. 인도나 우리나라나 정치적으로는 암울한 시대였던 것인데 인도가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현 정권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작품에서는 우다얀이 경찰을 살해하는데 가담을 하고 가우리는 이 공작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온다- 살해까지 하고 정권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즉결처분까지 하는 우리나라로 치면 1945년 해방 뒤 혼란기와 6,25전쟁시기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에 대한 서술 비중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소설이 긑날 때쯤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구체적으로 나오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소설이 전개되는 주 이유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형제이면서 서로 다른 기을 가게되는데서 비롯되는데 이는 우리나라 해방 이후에도 흔이 있었던 일로 알고 있다.  지주의 자제로 태어났으면서도 빈부의 격차가 심한 현실을 개혁해보고자 사회주의 운동에 빠져든 지식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를 배경으로 하여 쓰여진  문학작품에서 볼 수 있었다.

동생인 우다얀은 이런 길을 택한 인물이다. 형인 수바시는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택한 인물이고.

 

공이라고 할 수 읽고 난 뒤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작가가 주로 미국에서 생활한 탓이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튼 출발은 인도에서 시작된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혼란기를 겪었고 전후 인도와 비슷한 시기에  군사독재를 경험하게 되지만 인도의 경우 무질서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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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의 세월에 걸쳐 기억된 사랑과 상처!

오헨리 문학상, 펜/헤밍웨이상,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선택으로 판이한 삶을 살아가는 두 형제와 가족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친밀한 두 형제와 이들의 아내가 된 한 여자를 주인공으로 4대에 걸친 개인사를 들여다본다. 6, 70년대 인도와 미국을 배경으로 시대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 캘커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15개월 터울의 형제, 수바시와 우다얀. 일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하던 수바시는 미국 유학을 떠나고, 우다얀은 사회운동에 몰두하며 친구의 여동생 가우리를 만나 결혼한다. 어느 날 수바시는 동생이 혁명 세력을 제거하려는 경찰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음을 알게 되고 제수인 가우리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부모님이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떼어놓으려 한다는 걸 알게 된 수바시는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관습대로 가우리를 자신의 아내로 삼아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우다얀에 관한 기억은 아내 가우리와 딸 벨라, 나아가 벨라의 딸인 메그나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저자 줌파 라히리

저서(총 15권)
줌파 라히리1967년 영국 런던 출생.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해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구겐하임재단 장학금을 받았다.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꼽혔고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08년 출간한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은 그해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소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최우수 도서 10’에 들었다. 2012년 미국문예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를 발표해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침착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또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2013년 맨부커상 결선작
2013년 내셔널북어워드 결선작
2014년 베일리스여성문학상 롱리스트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시카고트리뷴》 ‘최고의 책’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최고의 소설’
《Goodreads》 ‘최고의 책’
미국공영라디오(NPR) “엄청난 독서”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2013년 최고의 책’
반스앤노블 ‘최고의 신간’
애플 ‘탑 10 북’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연휴에 고른 책

퓰리처상, 펜/헤밍웨이상 수상 작가 줌파 라히리의 최신작
인도와 미국을 오가며 그리는, 떠난 이와 남은 이의 섬세한 일대기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의 2013년 최신작 『저지대』가 출간됐다. 『축복받은 집』『이름 뒤에 숨은 사랑』『그저 좋은 사람』으로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선 줌파 라히리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통산 네 번째 책이다. 단편집인 전작 『그저 좋은 사람』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정식 출간되기 전부터 사전 검토용 원고만으로 이미 미국 출판계의 권위 소식지인 《버즈북》을 통해 “2013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검증을 받았고, 퓰리처상에 버금가는 미국 최고 문학상인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과 영미권 최고의 공신력을 자랑하는 맨부커상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출간 당시 초판 35만 부를 발행하는 기염을 토했고, 《뉴욕타임스》 《오프라매거진, O》 《뉴스위크》 《뉴욕리뷰오브북스》 등 유수 언론과 대중의 극찬을 받았다.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2013년 최고의 책’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지대』는 서로 다른 성격, 서로 다른 선택으로 판이한 삶을 살아가는 두 형제와 가족의 70여 년간의 일대기다. 부조리와 사상과 혁명으로 어지러운 인도와 제3국 미국이 배경인 이 작품은,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이자 남편인 한 사람의 죽음 때문에 남은 가족이 어떤 상실감을 겪어나가는지, 거기서 어떤 선택이 비롯하며 어떤 인생행로가 뒤따르는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직선적으로 그려나간다. 지난 작품들에서 개인의 문화적 배경과 인간관계를 인종과 국적을 넘어 보편적 문법으로 파고든 작가답게, 줌파 라히리는 인도의 현대사를 작품에 끌어오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기억과 상처 그 인간적 정서를 정교하고 섬세하게 더듬는다. 이 작품이 특정 문화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그리고 수미일관 진중한 자세를 유지하는데도 막힘없이 읽히는 건 쉬운 언어로 물처럼 편안하게 틈입하는 줌파 라히리만의 문체와 스토리텔링 덕분이다.

“뛰어나다. 라히리는 지문을 전혀 남기지 않고 등장인물을 다룬다.”
- 《뉴욕타임스 북리뷰》

“『저지대』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운명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개인의 행복에 관한 것이다. 누구보다도 투르게네프가 그녀가 규정하는 문제를 잘 인식할 것이다. 라히리의 산문은 현재진행형처럼, 점묘파 그림처럼 전개된다.”
-《뉴욕리뷰오브북스》

줌파 라히리와 『저지대』는 영국의 명망 있는 상으로 영어로 작품을 쓴 여성 작가에게 수여하는 베일리스여성문학상에 현재 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2013년 맨부커상 수상자인 엘리너 캐튼, 거장 마거릿 애트우드 등과 예심을 다투게 되며, 수상자는 2014년 6월 4일 발표된다. 한편 줌파 라히리는 2010년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예술인문대통령위원회 위원으로 지명되었다.

두 형제와 그들의 아내였던 여자가 이끌어가는
상실과 수용, 기다림의 현재진행형 삶

수바시와 우다얀은 인도 캘커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15개월 터울의 형제다. 쌍둥이처럼 친밀한 사이지만 성격은 달라, 수바시는 순종적이고 차분하며 우다얀은 자주적이고 열정적이다. 이들의 삶은 서로 다른 대학을 다니고부터 뚜렷하게 갈림길을 걷는다. 수바시는 형으로서 일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미국 유학을 떠나고, 우다얀은 농민이 탄압당하는 인도의 현실을 목격하고 마오쩌둥주의를 받아들여 사회운동에 몰두한다.
형제는 편지로 소식을 전하며 인도와 미국, 서로 다른 대륙에서 젊은 시기를 보낸다. 그러는 사이 동생 우다얀이 친구의 여동생인 가우리를 만나 결혼하는데, 미국에서 사랑의 실패를 겪은 수바시는 이런 동생의 소식을 듣고 무언가 뒤처진 느낌을 받으며 이젠 서로가 정말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실감해간다. 그러나 이런 이질감도 잠시, 시간이 흐르며 소식이 뜸해지던 어느 날 수바시는 우다얀이 죽었다는 짤막한 전보를 받는다.
캘커타의 고향 집을 방문한 수다시는 동생이 혁명 세력을 제거하려는 경찰들에게 목숨을 잃었음을 알게 된다. 아울러 제수인 가우리가 배 속에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도 듣는다. 가우리가 탐탁지 않은 수바시의 부모님은 출산 후 아이와 엄마를 떼어놓을 낌새다. 수바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마음먹고서, 관습대로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아 함께 미국행을 택한다……

친밀한 두 형제와 이들의 아내가 된 한 여자가 주축인 『저지대』는 인도와 미국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개인사를 농밀하게 들여다본다.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으로서 기반을 마련해가던 6, 70년대 인도와 미국이 주 배경으로, 시대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침착한 눈길로 묵묵히 따른다.
영국인이 드나들던 골프장과 인도인 촌락 사이에 자리한 저지대. 그곳은 식민지였던 인도와 독립국 인도를 가르는 상징적 경계이자 형제의 어릴 적 추억이 각인된 곳이며, 동생 우다얀이 끝내 목숨을 잃은 장소다. 우기가 끝나면 저지대에 고이는 물처럼, 형 수바시와 아내 가우리 그리고 부모님의 머릿속에는 동생 우다얀이 혁명 운동을 하다가 총살당한 기억이 깊게 고였다. 이들은 우다얀과의 추억이 아로새겨진 캘커타의 집에서, 또는 우다얀이 남긴 상처를 피해 멀리 미국 로드아일랜드에서 나름의 삶을 살아간다. 집안일을 하고, 장을 보고, 일을 다니고, 사랑을 하는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한번 각인된 상처는 지우기 어렵고, 산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다. 우다얀에 관한 기억은 아내 가우리와 딸 벨라, 나아가 벨라의 딸인 메그나의 삶에까지 대를 이어 영향을 끼친다.

톨리클럽의 동쪽, 데샤프란 사시말 로드가 둘로 갈라지고 나면 조그만 회교성원이 보인다. 회교성원을 돌아가면 조용한 주거지가 나온다. 좁은 길과 주로 중산층이 사는 집들이 빽빽이 들어선 곳이다.
한때 이 주거지 안에 길쭉한 연못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연못 뒤로는 그리 넓지 않은 저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우기가 끝나면 연못의 수위가 높아져서 두 연못 사이에 쌓은 제방이 보이지 않았다. 저지대에도 1미터 안팎의 깊이로 빗물이 들어찼으며, 물은 오랫동안 그대로 고여 있었다.
-13쪽

소설의 시작이 암시하듯 등장인물들의 삶은 얼핏 운명대로 정해진 길을 걷는 듯하다. 하지만 줌파 라히리의 이야기는 결론만을 향해 맹렬히 치닫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물들 각각의 삶을 장마다 번갈아 배치하여 특정인 중심의 서사에 제동을 걸고, 인생에는 다양한 관점과 기억, 다양한 기로의 순간이 있음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삶이란 시간과 기억이 쌓여 사후적으로 의미를 띠는 것이듯, 여러 인물의 관점을 모아 삶의 총체를 빚어내는 『저지대』 역시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는 저마다의 선택과 행동을 섣부르게 가치판단하기 어렵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각자의 삶이 옳았는지 말하기는 힘든데, “현재진행형처럼, 점묘파 그림처럼”(《뉴욕리뷰오브북스》) 지나온 장면들이, 기억의 속성이 그렇듯,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릿한 감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저지대』는 인물의 행동과 사건 모두를 인과관계의 도식에 무리하게 담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하는 미덕을 보인다.

수바시와 우다얀은 셀 수 없이 많이 저지대를 가로질러 걸었다. 축구를 하려면 놀이터로 가야 했는데, 이 길이 동네 변두리에 있는 놀이터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물웅덩이를 피하고, 제자리에 남아 땅에 엉겨 붙은 부레옥잠 이파리를 건너뛰며 걸었다. 숨을 쉴 때마다 습한 공기가 코로 밀려들었다.
어떤 생물은 건기를 견뎌낼 수 있는 알을 낳았다. 또 어떤 생물은 진흙땅에 몸을 묻고 죽은 체 지내면서 우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4쪽

인도계 미국인 경계자의 소설
그래서 더욱 보편적인 작품

1999년 첫 단편집 『축복받은 집』을 내기까지 줌파 라히리는 수년간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간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데뷔 후에는 첫 단편집으로 오헨리 문학상, 펜/헤밍웨이상,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지금껏 『저지대』를 포함해 장편 2권과 단편집 2권, 단 네 권의 책으로 미국의 대표 작가군에 합류했다.(2012년 줌파 라히리는 필립 로스, 폴 오스터 등이 등재된 미국문예아카데미에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불과 15년 만에 큰 성과를 이룬 줌파 라히리 저력의 동력은 작가 자신이 인도와 미국의 경계인이라는 점, 다문화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저지대』를 발표한 뒤인 2014년 1월, 《타임스오브인디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미국 출판계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시장에 번역물이 적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 미국 밖에서 살아보면 관점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인이라는 혼란스러운 경험을 트인 관점으로 승화했다. 그러기에 지역과 인종에 갇히지 않는 작품들을 쓸 수 있었다. 『저지대』 역시 그 결과물이다. 『저지대』를 한창 집필할 때 그녀는 가족과 로마에서 생활했다. 고국이 되어버린 미국에서 벗어나 또 한 번 이방인이 된 일이 『저지대』를 쓰는 데 힘을 불어넣었고, 편견에서 벗어난 눈으로 인도의 거친 현대사와 개인들의 삶을 침착하게 스케치할 수 있었다. 그 성취는 유수 언론의 다음과 같은 찬사에서 드러난다.

“비범하다.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명료하고 투명한 산문.”
- 《뉴스위크》

“우아하고 한결같다. 참으로 정치하다. 라히리의 문장은 무자비할 정도로 명료하다. 그녀는 위대한 미국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 《시카고트리뷴》

“대단히 잘 쓴 이 소설의 주제는 사랑, 혁명, 버림일 듯싶다. 그러나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 핍진한 이야기다.”
-《퍼레이드》

추천사

이것은 쌍둥이처럼 붙어 지내던 한 형제의 판이한 삶과 죽음의 궤적이자, 그들 형제의 아내였던 한 여자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자, 신생독립국 인도의 고난에 찬 역사다.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줌파 라히리는 자신만의 언어의 실로써 광활하고 다채로운 서사의 차원을 열어젖혔다. 담백하고 사려 깊은 문장들, 제 운명을 뒤흔들고 파괴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청춘의 신념과 고뇌가 낳은 사랑과 증오의 비극들은, 인도만이 아닌, 독립과 전쟁과 분단을 거친 이 땅의 비극과도 닮았다. 과거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여 있다 어느 순간 마법의 반지처럼 우리의 현재 속에 고요히 맞물려 들어온다.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우다얀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을, 그가 죽어가면서 자기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여름날의 손차양을 떠올리는 결말을 잊을 수 없다. 오랜만에 마음 놓고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맑고 넓은 소설을 만났다.
-권여선(소설가)

 

책속으로

영국인들은 물에 잠긴 숲을 없애고 도로를 깔았다. 1770년에 그들은 캘커타의 남쪽 경계 너머에 교외 주택 지역을 건설했는데, 초기에는 인도인보다 유럽인이 더 많이 살았다. 점무늬 사슴이 노닐고 물총새가 지평선을 가로지르며 휙휙 날아다니는 곳이었다.
윌리엄 톨리 소령은 아디강가 강의 일부를 파고 준설했는데, 그래서 이 지역의 명칭이 톨리 소령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으며, 아디강가 강은 톨리 수로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톨리 소령은 캘커타와 동벵골 간의 해운업이 가능하게 했다.
-29쪽

1967년에 신문과 전全인도라디오에서 낙살바리에 관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다르질링 지역에 있는 여러 촌락 중 하나로 서벵골 북단에 있는 좁고 긴 마을이었다. 히말라야 산기슭의 언덕에 파묻혀 있는 이 마을은 캘커타에서 650킬로미터쯤 떨어졌는데, 톨리건지보다 티베트가 더 가까웠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차 플랜테이션 농장이나 대규모 토지에서 일하는 소작농이었다. 그들은 대를 이어 실질적으로 바뀐 게 없는 봉건제도 아래서 살았다.
부유한 지주에게 교묘히 이용당했다. 자신들이 경작해온 땅에서 쫓겨났으며, 자신들이 재배한 작물에서 나오는 소득을 받지 못했다. 돈놀이꾼의 먹잇감이 되었다.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착취당했고, 먹을 것이 부족하여 죽는 사람도 생겼다.
그해 봄, 낙살바리에 사는 한 소작인이 불법적으로 쫓겨난 땅을 갈아 일구려 했을 때 그 땅의 지주가 폭력배들을 보내서 폭행했다. 그들은 소작인의 쟁기와 소를 빼앗았다. 경찰은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소작인들이 집단적으로 보복을 했다. 자신들을 속이고 부당하게 작성한 문서와 기록물들을 불태웠다. 강제로 토지를 차지했다.
-39~40쪽

네가 구호를 쓰니? 수바시가 물었다.
지배계급은 전국 각지에서 선전을 해대고 있어. 그들이 인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허락되고 그 밖의 사람은 허락되지 않을 이유가 어딨어?
경찰이 널 체포하면 어떡할 거야?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우다얀은 라디오를 켰다. 형, 문제가 있는데도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그건 그 문제에 기여하는 게 돼.
-53쪽

왜 철학을 전공해?
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해?
플라톤은 철학의 목적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가 살아 있지 않다면 배울 것도 없어. 죽음 앞에서 우린 평등해. 그 점에선 죽음이 삶보다 나은 것 같아.
-93쪽

그는 그녀의 환심을 사려 했다. 가우리는 그가 거기 서서 그녀를 보며 말을 하면서도 마음을 정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마음속에 이미 그녀의 일부를 담아버렸다. 허락도 없이 그녀에게서 뽑아간 것이었다. 어떤 남자도 시도하지 않았던 행위인데 그녀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였기 때문이다.
-98쪽

지구 상에서 시간을 특징짓는 것은 태양과 달이다. 태양과 달의 회전이 낮과 밤을 구분하며, 이는 시계와 달력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계속해서 명멸하는 점이었다. 반짝이다 약해지는,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것이었다. 현재의 지속 시간은 얼마일까? 1초? 그 이하? 현재는 항상 변했다. 현재를 생각하는 동안 현재는 사라졌다.
-241~242쪽

고립은 자체적인 형태의 교제를 제공했다. 자신의 방의 믿음직한 고요, 저녁의 변함없는 정적,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게 될 것이며, 어떤 방해도, 어떤 뜻밖의 일도 없을 것이라는 약속 등이 친구가 되었다.
-376쪽

수바시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텔레비전을 껐다. 거실의 창을 통해 보이는 움직임에 시야가 산만해졌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이며 자꾸 날아다니는 새들이었다.
그는 좀 더 잘 보려고 창으로 걸어갔다. 마당에 심어진 나무의 꼭대기에 작고 시끄러운 검은 빛깔의 새 떼가 정신없이 날아오고 날아갔다. 이 겨울에 나무에 아직 남아 있는 자양분을 기를 쓰고 섭취하면서. 새들의 움직임에 화가 치밀었다. 살아남고자 하는 행동이 갑자기 몹시 불쾌하게 여겨졌다.
-391~392쪽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
-4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