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도서관 ♣/- 문학(文學)

[우리 장편소설] 길 저쪽: 정찬

Bawoo 2015. 11. 22. 23:54

길, 저쪽

권력과 폭력, 그 안에서의 인간의 선택과 존엄의 문제를 치열하고 진지하게 탐구해온 작가 정찬의 여덟번째 장편소설 『길, 저쪽』. 1970~80년대를 거치며 국가권력에 의해 청춘이 입은 상처, 여러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보듬어지지 않는 시대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그 상처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사랑을 통해 개인과 우리 사회의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저자 정찬

저서(총 6권)
정찬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정찬동이다. 부산 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였다. 가족관계는 역시 소설가인 부인 양순석씨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1983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중편소설 「말의 탑」으로 등단했다. 이후 몇 차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뒤 88년 문예중앙에 단편 「푸른 눈」을 발표하여 다시금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90년 이후 동인 문학상에만도 『수리부엉이』, 『얼음의 집』 등 4차례나 올랐지만 후보로만 만족해야 했다.데뷔 이래로 줄곧 권력과 인간의 관계, 신과 구원의 문제 등 주로 관념의 세계를 치밀하게 천착해온 그는 「슬픔의 노래」로 1995년 제26회 동인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국어문화운동본부에서 주는 올해의 문장상을 단편소설부분에서 「숨겨진 존재」로 수상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베니스에서 죽다」로 제16회 동서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저자 정찬의 다른 책더보기

정결한 집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2013.02.04유랑자유랑자문학동네2012.03.10아늑한 길아늑한 길문학과지성사2010.12.31로뎀나무 아래서로뎀나무 아래서문학과지성사2010.12.15

목차

1장 편지
2장 폐사지에서
3장 윤하
4장 정릉 옛집
5장 유랑
6장 초대
7장 시인의 죽음
8장 새의 꿈

작가의 말

----------------------------------------------------------------------------

[읽은 소감]

 

정찬 작가는 단편소설 '슬픔의 노래'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기억 속에 남겨 두었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였다. 경탄과 지루함이 공존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경탄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냐는 작가의 놀라운 창작 능력에 대해서이고, 지루함은 정교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길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대한 반감(?) 비슷한 것이었는데 이는 나의 연륜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만약 세상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20대 초반  젊은 시절에 이 작품을 읽었다면 그저 감탄하며 나의 능력이 부족함을 한탄만 할 것인데 한 세상 살아냈다는 오만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지만. 그래도 다른 작가들과 달리 기억 속에 남겨 둔 작가인데 도서관에 비치된 신간 속에서 이 작가의 장편소설을 발견하게 되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썼을까가 궁금해서 빌려왔다. 다른 작가들 신작 장편도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이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앞서 말 한 작품에 대한 인상이 깊어서였다.

 

작품을 읽어 본 느낌은 위 단편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이리 글을 쓸 수 있느냐라는 경탄하는 마음과 지나치게 길어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어 결론을 보기 위하여 일부 내용은 읽지 않고 책장을 그냥 넘기게 하는 양면이 같이 존재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6~70년대가 주 무대다. 그 시절 사건, 인물을 실명 그대로 기록해 놓아 그 시절의 주역이던 인물에 대한 공과 논쟁이 한창인 지금에 와서는 공을 더 인정하는 쪽에 서 있는 입장인데도 그 시절을 되살리는 기록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 시절을 30대 중반 젊은 시절까지 겪은 입장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있는 그대로 나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읽는 자체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어서.

 

작품은 이 시절 운동권 출신이면서 현재는 사진작가가 된 주인공과 그의 연인인 강희우라는 여주인공을 중심축으로 하여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의 절친인 김준일이란 운동권 출신 시인, 그의  아들을 몰래 낳아 기르고 있는 사창가 출신 연인 '서혜림', 주인공을 사랑하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윤하'라는 건축가 그리고 여주인공이 공권력을 남용한 권력기관 한 인물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낳게 된 딸 '영서'라는 학생 등등.

 

인물들은 하나같이 천사같은 마음을 가진 느낌을 갖게 한다. 두 주인공은 물론 사창가 출신 혜림이란 인물까지 포함하여 다른 인물 모두. 성폭력을 당하는 바람에 사랑하는 남주인공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주인공. 그 여주인공을 잊지 못하고 가정을 가지지 않고 중년이 되어 있는 현재까지 독신으로 사는 남주인공. 그 남주인공을 사랑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하는,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여인. 

이 모두 현실에서 한세상을 살아낸 사람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현실에서 과연 이런 인물들이 있을 것인가라는 점에서. 당연히 온갖 정보를 어린 시절부터 접하면서 자라는 요즘 세대들에게 감동으로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이다. 정보를 얻으려 해도 얻을 방법이 없었던 시절을 살아 온 나 같은 50년대 초반 출생들도 아주 순진한 성격의 소유자라야 혹 있을 수 있는 그런 인물들 같아 보이니 말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안 살아 본 세대들은 역사 공부서로서의 가치는 있을 듯하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아낸 나 같은 세대는 그 시대를 활자로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외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위 소감은 작품을 써내는 작가의 역량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인 일개 독자인 나만의 생각이다. 한 세상을 살아낸 60 중반의 그저 평범한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

 

아래는 이 작품에 대한 언론사 서평

 

 

[한겨레]잠깐독서

길, 저쪽
정찬 지음/창비·1만2000원


정찬은 역사와 폭력, 양심과 슬픔의 문제를 천착해 온 작가다. 그의 새 장편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다. 2012년 말 대통령선거 결과에 대한 우울한 논평으로 문을 연 소설은 주인공들이 "눈부시게 푸른 청춘이었"던 1970년대 초로 독자를 데려간다. 화자인 윤성민과 그의 학교 선배이자 운동권 동료였던 김준일, 성민의 연인 강희우, 김준일을 흠모한 술집 여성 차혜림 등이 그들이다.

가시 철조망과 진흙 웅덩이로 이루어진 한국 현대사를 통과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준일은 9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명을 달리했고 희우는 그보다 더 전에 성민의 곁을 떠났음을 독자는 소설 도입부에서 알게 된다.

성민이 준일과 함께 수배와 구속을 불사하며 운동에 매진하던 80년대 후반 어느 날 까닭 없이 사라졌던 희우가 27년 만에 편지를 보내 성민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고백한다. 말기 암에 걸린 희우와 재회하면서 성민은 자신과 희우의 청춘과 인생을 잡아먹은 역사의 악의적 농담을 확인하지만, 죽음을 앞둔 희우는 분노가 아닌 슬픔과 화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분노를 껴안으면서,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이 슬픔이에요. 슬픔은 분노가 또다른 폭력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고귀한 감정이지요." 이것을 작가 정찬의 말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최재봉 기자bong@hani.co.kr

------------------------------------------------------------------------

군화의 시대가 남긴 상처..그 안에서도 꽃핀 사랑

연합뉴스 | 2015.05.22 10:45

 
정찬 새 장편 '길, 저쪽'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 = 소설가 정찬이 사랑에 관한 소설을 내놨다. 시대의 폭력이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다. 군화에 짓밟힌 비극적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슬픔과 그 가운데서도 피어나는 사랑을 그의 새 장편 '길, 저쪽'에서 표현해냈다.

윤성민은 1980년대를 수배와 도피 생활, 수감 생활로 보냈다. 그가 감옥에 있던 1986년, 연인 강희우는 편지 한 장만 남겨 놓고 프랑스로 떠난다.

희우를 떠나 보낸 지 27년 만에 성민은 희우의 초대 편지를 받는다. 추억이 서려 있는 '정릉 옛집'에 찾아간 성민은 그때야 희우가 홀연히 떠나야 한 이유를 듣는다.

성민이 도피 생활을 하던 시절, 희우는 사복형사에 강제 연행돼 성민의 거처를 추궁당하며 온갖 고문을 겪었다. 누군가에 성폭행당해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하게 됐다. 희우는 딸 영서를 낳고 프랑스로 떠나 의사로서 새 삶을 시작한 것이다.

희우의 고백은 성민에게 충격이었다. 성민은 암 말기 환자로 돌아온 희우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며 상처를 쓰다듬는다. 지독한 고통을 안은 희우를 마주하고 세상에 좌절해 생을 포기한 이들을 그리워하면서도, 조금씩 새로운 사랑과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간다.

"비록 지금은 '길, 이쪽'에 있지만 언젠가는 '길, 저쪽'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희생의 대열 속에서 그토록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194쪽)

정찬은 작품을 통해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과 상처받은 영혼이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유신 정권의 부조리, 군사 독재 시대의 폭력을 넘어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 등을 조명하며 희망 없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그 상처 안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을 통해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을 그려낸다.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여기서 그가 묻는 것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이기보다 '사랑이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라는 난해한 문제이다. 그는 그 문제를 유신 이후 그가 살아오면서 아프게 괴로워해야 했던 수배당한 시대 속에서 탐색하며 그 진상과 진의를 추적한다"고 평했다.
---------------------------------------------------------------------------

 

군홧발에 짓밟혀 떠난 사랑, 그래도 다시 사랑하고 싶다

세계일보 | 2015.05.21 19:58

 
하늘 아래 모든 사랑은 새로운 사랑이란다.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사랑이 있을 턱이 없다는 게 소설가 정찬(62·사진)의 논리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사랑 이야기에 질릴 만도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삶의 동력을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다 다르고 유일하다는 작가의 말, 새삼 위로가 된다.

정찬의 새 장편소설 '길, 저쪽'(창비)은 죽음조차 고마운 궁극의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사랑의 주인공은 1970년대 유신시대와 80년대의 폭압적인 정치지형을 청춘기에 통과해나온 오십대의 남녀들이다. 시인이자 치열한 운동가였던 김준일, 그는 실명으로 등장하는 시인 김지하와 더불어 민청학련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고 이후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꿈에서 깨어나 다시 미지의 세계, 죽음 너머로 스스로 사라진 인물이다. 김준일의 친구 윤성민의 회상과 그의 애인 강희우와의 헤어짐과 재회로 이 소설은 꾸려지는데, 곳곳에 포진한 깊은 사색과 도저한 관념의 레토릭이 슬픔이 배음으로 깔린 소설을 장중한 레퀴엠으로 몰고 간다.

윤성민의 투명하고 맑은 애인 희우. 그네는 성민이 감옥에 갇힌 이후 어느 날 편지 한 장 남겨놓고 사라진다. 27년 만에 그네가 다시 나타나 편지로 만날 것을 청하는데, 그네는 이미 난소암 말기 환자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그네에게는 '영서'라는 딸까지 있다. 성민 때문에 잡혀가 성고문을 당한 끝에 잉태한 생명이다. 프랑스로 도망가듯 건너가 한국의 모든 일을 잊고 산부인과 의사로 살던 희우는 왜 다시 옛 애인을 찾는가.

"그리운 당신! 당신을 향한 저의 그리움을 제발 비웃지 마세요. 저도 알고 있어요. 너무나 늦은 그리움임을. 쉰넷의 여자가 쉰여섯의 남자에게 품기에는 너무나 뜨거운 그리움인 것도 알고 있고요. 염치가 없나요?"

그네는 희우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과 절연하고 이 땅을 떠났던 것인데 당도한 죽음이 젊은 '희우'를 다시 살려낸 것이다. 정찬은 희우의 몸속에는 '죽음이라는 낯선 생명체'가 숨쉬고 있었다고 서술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하게 한 죽음에 감사한다고 했다"는 희우에게 이런 대사를 떠맡긴다.

"죽음은 저에게 미지의 손님이에요. 전 그 손님을 잘 맞이하고 싶어요."

이 장편은 가까운 한국 현대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는 유용한 자료 구실도 한다. 유신시대와 광주항쟁을 거쳐 현실사회주의 붕괴로 이어지는 생생한 과거가 구체적인 자료를 동반한 '밤의 강물'로 흘러간다. 그 강물 위로 정찬은 "삶과 죽음 사이, 나비의 날개처럼 얇은 그 사이, 너무나 얇아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허망한 곳"을 투명하게 응시하고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