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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장편소설] 해질 무렵

Bawoo 2015. 11. 23. 23:24

해질 무렵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관한 쓸쓸하고도 먹먹한 이중주!

《여울물 소리》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거장 황석영의 신작 『해질 무렵』. 60대의 건축가 박민우의 목소리와 젊은 연극연출가 정우희의 목소리를 교차 서술하며 우리의 지난날과 오늘날을 세밀하게 그려낸 짧은 경장편이다. 언제나 시대를 직시해왔던 저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두루 아우르며 어느 장편소설보다 지평이 넓고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는 강연장에 찾아온 낯선 여자가 건넨 쪽지 속에서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이름을 발견한다. 어느덧 옛사랑이 되어버린 이름, ‘차순아’. 그녀는 첫 통화 이후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고, 그저 메일로만 소식을 전해온다. 그리고 그 메일 안에는 어린 시절 그녀와 함께 보낸 산동네의 풍경,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던 마음의 풍경이 비쳐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견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음식점 알바와 편의점 알바를 뛰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연극무대에 매달리는 정우희는 한때 연인처럼, 오누이처럼 지내던 남자 김민우의 어머니 차순아와 가까워진다. 김민우가 스스로 생을 놓아버린 이후 불과 몇 달 뒤에 차순아 또한 서둘러 아들을 뒤쫓아 가듯 홀로 죽음을 맞고, 정우희는 그녀가 남기고 떠난 수기들을 챙긴다.

잘 살아냈다고, 잘 견뎌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을 수기 속에는 젊은 시절 차순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수기 속에는 그녀의 마음이 한결같이 가리키던 이름 하나가 있다. ‘박민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정우희는 박민우의 강연장으로 찾아가 이제는 옛사랑이 되어버린, 한때는 마음 떨게 만들었던 첫사랑을 일깨우는 쪽지를 건네는데…….

 

저자 황석영

저서(총 116권)
황석영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동국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돈다.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등에서 일하며 떠돌다가 승려가 되기 위해 입산,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다.이후 해병대에 입대,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단편소설 「탑塔」이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89년 방북하여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예술원 초청 작가로 독일에 체류했고, 1993년 귀국 후 방북 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사면 석방되었다. 1989년 베트남전쟁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다룬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2000년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변혁을 꿈꾸며 투쟁했던 이들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2001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주요 작품으로 『객지』 『가객』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무기의 그늘』 『장길산』 『오래된 정원』 『손님』 『모랫말 아이들』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등이 있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등 세계 각지에서 『오래된 정원』 『객지』 『손님』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삼포 가는 길』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읽은 소감]

이제는 문단의 원로급 작가인 황석영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신춘문예 당선작인 "탑"이라는 작품이었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 딱 한 작품을 선정하여 당선시키는 것이 신춘문예 제도이니 당선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작품인 것을 알 수 있으나 이 작품에서 내가 느끼는 의미는 각별했었다. 단편이지만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거대함 뭐 그런 것이었다. 지금은 통일이 되었지만 남과 북으로 갈려 싸우면서 여기에 초강대국 미국이 남측 편에서 개입되어 벌어진 베트남 전쟁이 배경인 작품이었었다.  이 작품을 최근에 다시 읽어보면서 20대 시절에 읽었던 때 느꼈던 감동만큼은 못 느꼈지만 이는 내가 살아온 세월 탓일께다. 20대때 읽은 다른 작품에서도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어쨌던 20대 시절에 읽은 작품 중에 유독 깊은 인상을 받은 작가여서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는 신문에 난 신간 정보를 보고 오랜만에 서점에 가서 이 책을 사들었고 집에 돌아와 곧바로 읽었다. 단숨에.

 

작품은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분량으로 봐서는 200쪽이 채 안 되는 미니급이다.   분량이 이리 된 것이 요즘 독자들의 성향이 분량이 작은 작품을 선호하는 것에 맞춘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가 많은 분량의 글을 쓰기에는 벅찬 것이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역량으로 봐서는 이런 소재라면 아마 대작도 가능하리란 생각이 드니 후자 쪽이 아닐까 하는 내멋대로의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읽었다.

 

작품의 주요 인물은 네명이고 시대적 배경은 전후 가난하고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아우른다. 이  암울했던 시절을 달동네 출신으로 개천에 용이 난 인물들을 상징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 주인공과 그 가난한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 온 여주인공 그리고 그녀의 아들과 아들의 연인이 주축이 된 이야기이다. 남주인공은 나라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발전하는 것과 함께하며 성공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의 첫사랑이기도 한 여주인공은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서 벗어 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 차순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주인공은 주인공이 실제로 만난 것은 아니고  회상 속에 존재한다.  그녀의 아들과 아들의 연인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인물들이고. 여주인공의 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설정을 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암울한 면을  부각하고 있다.   남주인공과 자살한 젊은이와 그의 연인격인 아가씨(우희라는 이름이다)와는 일면식도 없다. 우희는 연인격인 여주인공의 아들이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  여주인공의 노트북을 통하여 주인공과 얽혀있는 사연을 알게 된 뒤 남주인공에게 여주인공이 살아있는 것처럼 가장을 하여 만나자는 연락을 하면서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남 주인공은 여주인공과 과거에 인연이 있는 것일 뿐 그녀의 아들과 이 아들의 연인격인 아가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그러면서 이 아가씨와 남주인공이 각자의 시각에서 작품을 이끌어 가는 독특한 설정이다. 작품 전체의 흐름은 주인공과 같은 시대를 살아낸 60이 넘은 나같은 세대는  살아오며 직접 겪은 사건들 중 부정적인 내용들이고 현재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은 매스컴을 통하여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아무튼 작품 전체를  흐르는 분위기는 어둡다. 작가가 좌성향의 편에 서 있었던 과거 행적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작품을  읽어 내려 갈수록  마음이 몹시 무겁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주인공은 노년이 되어 자기가 서 있을  곳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고 여주인공과 그녀의 아들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 작품의 전개에 큰 역할을 하는  정우희라는 이름을 가진 뚜렷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못해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아가씨는 앞날을 알 수가 없는 요즘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인물인 것 같고.

 

<사족>

박민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주인공의 마지막 갈 곳 몰라하는 모습은 지금의 우리나라 실정을 대변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나라의 발전과 함께 자신의 발전도 함께 해 온 주인공이었으나 자신은 노년에 접어들어 있어 삶을 정리하는 단계에 와 있고 매스컴을 통하여 접하는 느낌 속의 우리나라 현실은 지금이 최고점이 아닌가 싶게 어두운 면만 잔뜩 나타나고  있으니.

 

 

[언론사 서평]

아들아, '희망'이라는 유산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세계일보 | 2015.11.05 19:59

“좀 사랑해주지 그랬어.”

자살한 아들과 애매한 관계였던 여자에게 죽은 아들의 엄마가 던진 말이다. 원망보다는 안타까움이다. 여자는 애써 참고 있다가 물주머니가 터진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 황석영(72)이 ‘여울물소리’ 이후 3년 만에 펴낸 경장편 ‘해질 무렵’(문학동네·사진) 한 대목이다.

30대 초반 김민우는 비정규직마저 잘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또래들과 동반 자살했다. 그 아들과 동지애를 나누었던 정우희라는 여자. 자신이 하고 싶은 연극 연출을 하지만 생계를 꾸리기에는 벅차 편의점 등을 전전하는 아르바이트 인생이기는 김민우와 마찬가지였다. 정우희는 검은 셔츠만 입고 다니는 민우와 피자집 종업원으로 가까워져 민우 엄마와도 잘 알게된 사이였다.

3년 만에 장편소설을 펴낸 소설가 황석영. 그는 “출세한 한국 중산층의 회한을 다루고 싶었다”면서 “이념이나 이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지만 사람살이의 우여곡절은 늘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이들이 이번 소설의 전면적인 주인공은 아니다. 방점은 그들 부모 세대에 찍혀 있다. 좋아했던 남자를 아들 이름으로 지은 김민우의 엄마 차순아, 그네와 더불어 산동네 ‘달골’에서 살았던 박민우가 그들이다. 박민우는 경상도 영산에서 서울 산동네로 이사와 청소년기를 보내다 공부로 계층 상승을 이루어 밑바닥을 탈출한 경우다. 그는 달골에서 국숫집 딸 순아와 애틋한 시절을 보냈지만, 중산층으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고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은 좌절과 체념의 포즈로 위무하면서 무난하게 살아왔다. 건축설계사인 그는 생각한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사람과 세상은 믿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시간이 지난 뒤에 사람들의 욕망은 그런 가치들 가운데 남길 것만 조금 걸러내고 대부분을 자기 위주로 변형시키거나 폐기처분해버린다. 조금 남겨두었던 것들마저 마치 오래전에 소비했던 낡은 물건처럼 또다른 기억의 다락방에 처박힌다. 건물을 무엇으로 짓느냐고? 결국은 돈과 권력이 결정한다. 그런 것들이 결정한 기억만 형상화되어 오래 남는다.”

박민우의 냉철한 현실 인식에 비하면 “건축이란 기억을 부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밑그림으로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재조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선배의 생각은 몽상가의 이상에 가깝다. 그가 지나온 세월의 ‘좌절과 체념’은 ‘작은 상처에 박인 굳은살’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어쩌다가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지는 양말 속 자각일 뿐이었다. 그가 뒤늦게 차순아의 편지를 받고 옛날을 회상하며 버리고 온 것, 실수한 것, 진정으로 놓치지 말아야 했을 것들을 떠올리는 내용이 이 소설의 중심 얼개다. 황석영이 성찰하는 작금 기성세대 회한의 핵심은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는 박민우의 이 반성에 있다.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된 군사독재의 시기에 우리는 저 교회들에서, 혹은 백화점의 사치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에서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온갖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낸 ‘힘에 의한 정의’에 기대어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너의 선택이 옳았다고 끊임없이 위무해주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러 장치와 인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것들 속에서 가까스로 안도하고 있던 하나의 작은 부속품이었다.”

이즈음 젊은 세대가 ‘헬조선’을 부르짖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원색적인 건 사실이지만, 소설 속 민우의 자살은 당혹스럽다. 늘 치열하게 살아왔고 “언제나 뛰어나갈 자세로 총기 청소도 실탄 장전도 모두 끝낸 병사처럼 멀리 사선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 묘사한 그 젊은이는 그리 쉽게 죽어야만 했을까. 전후 척박한 환경에서도 베이비들은 붐을 이루어 태어났고 산동네 판잣집에서도 삶에 대한 애착은 강렬했다. 아들 세대에게 ‘희망’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지 못한 작금의 현실이야말로 박민우 세대의 최대 과오일지 모른다.

황석영은 “1980년대 생성된 서구적 의미의 중산층은 신군부가 남긴 떡고물에 기대어 시대의 억압에 눈감고 소비 대중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면서 “한국사회 현대사에서 출세한 그들, 중산층의 회한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회한을 다루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일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그 회한을 개인적인 이야기로 바꾸어 해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석영은 이번 소설 ‘작가의 말’에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서 “우리는 진작부터 뒤돌아보아야 했었다”고 썼다.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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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장편 '해질 무렵' 출간한 소설가 황석영.."출구 없는 답답한 현실..처음 쓴 청년들 얘기"

경향신문 | 2015.11.03 21:52

“일흔 넘은 제가 보기에도 ‘헬조선’이라는 말에 십분 동의를 하는 형편이니까, 쓸쓸한 거죠. 세상이 별로 달라질 전망이 안 보이니까.” 소설가 황석영씨(72)가 3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해질 무렵>(문학동네)을 펴냈다. ‘해질 무렵’, 인생 말년에 들어선 이의 회고록 같은 이야기로 보이지만, 뜻밖에 이 시대 청년이 있다. 황씨는 “당대 청년 이야기를 내가 소설로 다룬 건 처음인 듯하다”고 말했다.

소설은 <강남몽> <낯익은 세상>에서처럼 도시와 재개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현 세대 청년 문제가 섞였다. 60대 건축가 박민우는 돈과 권력의 결정에 따라 어릴 적 자란 달동네를 닮은 산동네들을 밀고, ‘온 세상의 고향이 다 사라진 자리’에 건물을 올리면서 성공한 중산층으로 살아 왔다. 박민우와 더불어 곰팡이 핀 반지하방에 살면서 밤새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29살 연극연출가 정우희의 삶이 교차한다. 우연히 옛사랑의 흔적을 마주한 박민우는 자신이 기쓰고 탈출한 1960년대의 비참한 가난의 모습을 술회하고, 정우희는 현재를 사는데도, 두 이야기는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신작 소설 <해질 무렵>을 낸 소설가 황석영씨는 “우리는 문학을 통해 동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간파할 수 있다. 가치관이 천박해지고 돈밖에 남은 게 없는 세태에서, 문학까지 천대받으면 어떤 사회가 될까 두려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3일 만난 작가는 “지난 세대들에게는 과거의 회한인 것이, 현재 젊은 세대에게는 현실의 질곡이고 신고(辛苦)가 돼 있다고 본다. 개인적 회한과 사회적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는 줄 겪을 때는 몰랐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저지른 업보가 현재 판으로 펼쳐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빈민가가 개발돼 중산층 주거지로 바뀌면, 빈민가에서 나간 사람들은 지상에서 사라진 걸까. 아니 사회 안에 그대로 있다”며 “옛날에 동반자살이나 고독사 이야기를 쓰면 ‘비약이 심하다’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느냐’ 했는데 이제는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우희는 최근 홀로 죽은 채 발견된 연극 배우, 몇 해 전 굶어 죽은 최고은 작가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원하는 일을 하지만 가난에 즐거울 여력도 없는 정우희, 성실하지만 만년 비정규직인 박민우. 곁에 있지만 사랑할 여유가 없는 두 연인은 애인도 친구도 아닌 듯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소설이 윗세대 박민우에게 이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다. 근대화를 해치우듯 진행한 세대의 아픔과 불안, 더불어 ‘시시껄렁하고 속물적인’ 태도가 ‘건전한 식견’으로 둔갑하고 체념을 성숙으로 여기는 중산층의 위선도 그리고 있다. 박민우는 회사도 자식도 번듯하게 키웠지만, 가족들은 그를 홀로 남겨두고 다 외국으로 떠났다.

<해질 무렵>은 끝내 출구 없는 절망과 답답함으로 마친다. 황 작가는 “청년 세대에게도, 흘러간 세대에게도 불편한 소설일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들이 위무를 원한다고 요새 자기계발서도 많지만 다 언 발에 오줌누기입니다. 현실이 바뀌나, 기분만 바뀌는 거지.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젊은 세대는 빠른데, 지속성 있게 변화를 추구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물론 전엔 학교에서 잘리고 감옥 살다 나가도 뭘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가도 잘못되도록 결정돼 있으니까 변화도 쉽지 않겠죠. 나 젊을 땐 더 힘들었지만, 이렇게 하면 바뀔 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이 훨씬 암울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놓치지 말아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 10년쯤 더 소설을 쓰겠다는 그는 <해질 무렵>을 쓰면서 ‘만년문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원래 만년문학은 미흡하고 빠졌던 부분을 채워넣는 거라고 여겨서 다음 작품은 ‘철도원 3대’로 한국 근대 산업노동자를 다루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당대와 겨뤄야겠다고, 당대 젊은 세대들 이야기건 무엇이건 요새 벌어지는 일에 대해 써야지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황씨는 내년 자서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황 작가는 이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국정화한다고 우리 역사가 어디로 가버리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는 변할 수 있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부와 상관없이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사실 자료를 엮어 내는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다”고 말했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