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저자 한수산 | 창비 | 2016.5.25.
[소감] 내게는 떠돌이 곡마단원을 소재로 한 "부초"라는 작품으로 낯익은 작가. 군함도라는 장편 역사소설이 신작으로 나왔다는 신문광고를 봤으나 도서관에서 빌리는 횡재(?)를 하기 전까지는 읽을 생각까지는 못했다. 기회가 되면 읽어볼까 생각한 정도. 군함도에 대해서는 신문에 워낙 많이 나온 탓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혹사당한 악명 높은 섬인데 일본은 이 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싣는다고 해서였다. 그런데 작가는 역사상으로 존재하는 이 섬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갔을까가 궁금했다. 책 말미에 수록된 작가 말에 따르면 무려 30년을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2번의 연재, 출판 과정을 거쳐 이번에 완결작을 낸 것이라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춘천 출신-작가가 춘천 출신인 것과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친일파 아버지를 두고 있고 임신한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한지상이란 인물이 장자인 형을 대신해서 군함도로 징용을 가게되고 -일본놈들은 친일파 자식도 안 봐주는 것인지, 이 설정은 개인적으로는 반일주의자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를 탈출하여 원폭 공격을 당한 나가사끼에서 고국인 조선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을 맺는 과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지만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일본놈들 만행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작품의 전개보다는 작가의 글쓰는 역량에 감탄하면서 읽은 쪽이다. 이리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어떻게 만들어내는 것인지 새삼 대작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작품 내용 중에 한지상의 아내 서형이 겨우 걸음마하는 아들을 데리고 군함도까지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춘천에서 일본까지 가는 과정에 아무런 불상사가 없이 잘 다녀오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핍박 내용이 전개되게 하는 것인지, 만약에 그렇다면 책장을 덮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징용으로 끌려간 남정네들 보는 것만도 가슴 아픈데 갓난아기 업은 여인까지 수난을 당하는 전개라면 너무나 가슴 아플 것 같아서.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아래 출판사 글 참조]
한번 들어오면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섬, 군함도!
일제강점기, 일본 내에서도 죽음 같은 노동으로 악명 높았던 하시마(瑞島)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피폭의 문제를 다룬 한수산의 장편소설 『군함도』 제1권. 징용으로 끌려가 가혹한 강제노동에 쳐해졌다가 끝내 피폭자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조선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27년에 걸친 자료조사, 집필과 개작으로 밝혀낸 군함도 과거사의 진실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전작을 대폭 수정하고 원고를 새로 추가해 3500매 분량으로 완성된 결정판이다.
결혼한 지 두해 만에 고대하던 아기를 가진 서형은 남편 지상에게 소식을 알리러 시댁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서형은 지상이 장손인 형을 대신해 징용을 자원했다는 소식에 무너지고 만다. 온 춘천에 친일파로 이름난 집안에서 자란 지상은 뛰라면 뛰고 구르라면 구르며 욕설과 매질 속에서 일본을 마주하게 되고 무력감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곳에서 같은 춘천고등보통학교 출신인 우석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나란히 ‘미쯔비시광업소 타까시마탄광 하시마분원’에서 감옥 같은 징용생활을 시작한다.
아침 6시에 시작되는 15시간 노동, 쉴 틈을 주지 않는 채탄 할당량,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사고는 끝이 없고 죽어나가는 사람이 태반이다. 드물게 오는 고향 소식조차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 형편 속에서 지상은 어렵사리 춘천에서 날아온 득남 소식을 듣는다. 지상은 아들이 태어났다는데도 막막하기만 한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삶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 한방을 쓰고 있는 명국과 탈주를 모의하지만 예기치 않은 낙반사고로 명국이 다리를 잃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고 만다.
지상은 우석과 다시 탈출을 도모하고, 필수까지 가세해 이제까지 생각지 않았던 방법으로 탈출 계획을 세운다. 목발을 짚은 채 명국은 걱정과 희망이 엇갈리는 심경으로 그들을 응원하지만 방파제를 넘던 우석은 다리를 다치고, 지상과 필수는 일촉즉발의 순간에 우석과 헤어져 바다를 건넌다. 바다를 건넌 안도도 잠시, 지상과 필수는 우연한 일로 헤어지고 지상은 나가사끼 해안에 쓰러졌다가 고기잡이 노부부에게 발견되어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데…….
우리가 기다려온 정통 역사소설의 귀환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집념의 작가혼으로 완성한 장엄한 증언과 기록의 서사
27년에 걸친 자료조사, 집필과 개작으로 밝혀낸 군함도 과거사의 진실
일제강점기 하시마(瑞島)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피폭의 문제를 다룬 한수산 장편소설 『군함도』가 곧 출간된다. 한수산은 1988년 일본에 체류하던 중 토오꾜오의 한 서점에서 오까 마사하루 목사가 쓴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접한 뒤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피폭에 대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의 무대가 되는 군함도와 나가사끼에만 십여차례 방문하고 일본 전역을 비롯해 원폭 실험장소인 미국 캘리포니아 네바다주까지 다녀왔으며, 수많은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등 치밀한 현장취재를 거쳤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대하소설 『까마귀』를 펴내고, 작품을 보완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작가는 일본어판 『군함도(軍艦島)』(作品社 2009)를 출간할 무렵 한일 동시 출간으로 기획했던 전폭적인 수정작업을 2016년 초 마침내 완료했다.
2016년 5월 창비에서 출간되는 『군함도』는 전작을 대폭 수정하고 원고를 새로 추가해 3500매 분량으로 완성된 결정판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출신과 배경 등이 새롭게 설정되었고 원폭 투하의 배경과 실상을 전면 개고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묘사를 추구했다.(40, 41장) 등장인물들의 고난은 자아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으로 서사적 흐름이 자리잡으며 소설적 구성미와 완성도를 높였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재미와 가독성을 끌어올렸다. 또한 눈물로 기다리는 조선여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편을 찾아나서고 탄광사무소의 부당한 처우에 맞서는 서형, 불의에 맞선 죽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는 금화 등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상을 창조했다.
한수산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을 전하고 알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당시 고난을 겪은 조선인 한사람 한사람의 숨결을 되살리는 데에도 큰 공력을 들이며 지옥의 섬 군함도에서 다만 ‘사람’이고 싶었던 징용공들의 일상과 인간적인 면모, 역경 속에서도 그들이 꿈꾼 안타까운 사랑과 희망을 가슴 아프면서도 핍진하게 복원한다. 작가는 경상 전라 충청도의 생생한 사투리 구사에 힘을 기울여 인물에 생동감과 실감을 더하면서 힘든 환경 속에서 구수하고 걸쭉한 농담으로 고됨을 잊는 조선 징용공과 농부들의 활기를 전하고, 각 지방의 아리랑과 의병가를 적절히 활용해 작업현장에서의 고달픔과 서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조선인의 힘을 부각한다.
지옥의 섬 군함도에서 우리는 다만 사람이고 싶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원폭 비극
불굴의 저항과 처절한 탈출의 숨 막히는 서사
작가 한수산은 2016년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을 제기하며 독자들에게 과거사를 넘어 우리의 미래를 질문한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원폭문제를 파헤치고 골몰해온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온 한국인 피폭자들이 살아야 했던 비참한 실상과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대두하고 있는 피폭 2세, 3세의 문제까지”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며 독자들에게 간곡한 바람을 전한다. “젊은 독자들이 이 ‘과거의 진실’에 눈뜨고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일의 삶과 역사’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뎌주신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후에 이전의 삶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각성과 성찰을 시작하신다면, 이 작품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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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줄거리│
군함도: 어디에도 조선은 없다, 그건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 군수기업 미쯔비시가 운영하던 하시마탄광에서 중국인 포로, 일본인 광부와 함께 절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조선인 징용공들이었다. 명국과 태복은 많은 조선인처럼 돈을 벌러 일본에 건너왔다가 광부 모집책에 속아 하시마로 끌려왔으나, 징용과 관(官)을 동원한 조직적인 강제 차출로 들어오는 조선인 광부들의 수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새벽어둠 속에 시작되어 한밤의 어둠 속에서야 끝나는 노동, 형편없는 식사와 거친 잠자리, 미비한 안전시설… 바깥세상과 완전히 절연된 채 그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한번 들어오면 죽어야만 나갈 수 있는 섬, 잔혹한 폭력이 횡행하는 인권의 사각지대. 광부들은 해저 갱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옥문’이라고 부르게 된다. 섬 모양이 군함을 닮았대서 일명 ‘군함도’라 불린 하시마(瑞島)는 당시 일본 내에서도 죽음 같은 노동으로 악명 높았다. 미쯔비시는 이 가혹한 노동 착취를 통해 캐낸 탄으로 철강을 생산했고 일제는 그것으로 포탄과 어뢰를 만들었다. 하시마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나가사끼는 도시 전체가 미쯔비시의 군수산업단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착취, 죽음, 사랑: 그 목소리에 눈물이 밴다
아침 6시에 시작되는 15시간 노동, 쉴 틈을 주지 않는 채탄 할당량, 열악한 작업환경… 사고는 끝이 없고 죽어나가는 사람 태반은 일본어 주의사항을 못 알아듣는 조선인 광부들이다. 땀과 탄가루가 범벅이 된 채 그들은 가스폭발로, 무너지는 갱목의 낙반사고로, 감시와 매질을 못 견딘 발작으로 끊임없이 죽고 다치는 동료들을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드물게 오는 고향 소식조차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 형편 속에 지상은 어렵사리 춘천에서 날아온 득남 소식을 듣는다. 방값, 식대, 보험금, 갖은 명목으로 제하고 주는 월급이라곤 그나마 돈도 아닌 전표. 섬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전표를 푼푼이 모아 동료들은 지상의 득남을 다 함께 축하한다. 밀가루빵, 마른오징어에 부족한 술 한잔을 나누고 강원도 장타령 한 자락으로 흥을 돋우며 서럽고 쓰린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희망을 말하면서.
지상은 아들이 태어났다는데도 막막하기만 한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벌레 같은 삶을 계속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굳히고 우석과 다시 탈출을 도모할 것을 꿈꾼다. 한편, 바닷가에서 바람을 쐬던 우석은 섬의 유곽에 있는 조선여자 금화를 마주친다. 모두 다 끌려온 처지. 천대받고 멸시당하며 갖은 고생을 다해온 금화는 우석의 굳은 심지를 알아보고, 자신을 온전히 사람으로서 존중하는 그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강제노동과 착취에 지지 않으려 마음을 다지던 우석은 금화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속내를 나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건 혼자서는 안 되는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무릎 꿇고 살아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서는 살 수도 없고. 그러니 싸워야 해. 싸워도 함께 싸워야 해.”(1권, 192면)
폭격, 폭격, 폭격: 조선인들은 주검에서까지 차별받았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땅 위의 건물과 사람이 남김없이 파괴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폭심지 2킬로미터 상공의 새들이 죽어서 떨어지고 물속의 물고기들도 죽어 떠올랐다. 폭심지 반경 1킬로미터 이내의 화강암은 석영이 끓어올라 표면에 기포가 생겼다. 상상하기 어려운 참상이 끝없이 이어졌다.
조선소에서 폭격을 맞은 지상도 충격에 날아올랐다 떨어졌지만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시내로 나간 그가 목격한 광경은 말로 다할 수 없이 끔찍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엄청난 먼지 사이로 여기저기가 불타고 부러진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다녔다. 눈앞이 바로 지옥이었다. 그늘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의 상처는 8월의 폭염 아래서 금세 곪아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파리떼가 상처에 들러붙었다. 쫓을 힘도 없는 사람들은 그대로 죽어갔다. 지상이 조선인인 걸 알아본 일본인 부상자들은 그를 위협해 쫓으려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순간에, 죽는 그 순간까지도 조선인은 차별받는다. “다친 몸으로 일본인들의 차별과 멸시 속에 버려진 조선인들은 거리에서, 부서진 건물더미 밑에서, 누군가의 집 처마 아래서, 다리 밑에서, 강가에서 죽어갔다. 마지막까지 시체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던 것도 조선인들이었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다친 사람들을 들것에 싣고 병원으로 가다가도 ‘아이고!’ ‘어머니!’ ‘물 좀 주세요, 물!’ 하는 조선말 신음소리를 들으면 그들을 거리에 내버렸다.”(2권, 4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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