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일단장(秋日斷章)
조지훈
1
갑자기
산봉우리가 치솟기에
창을 열고
고개를 든다.
깎아지른 돌벼랑이사
사철 한 모양
구름도 한 오리 없는
낙목한천(落木寒天)을
무어라 한나절
넋을 잃노.
2
마당 가장귀에
얇은 햇살이 내려앉을 때
장독대 위에
마른 바람이 맴돌 때
부엌 바닥에
북어 한 마리
마루 끝에
마시다 둔 술 한잔
뜰에 내려 영영(營營)히
일하는 개미를 보다가
돌아와 먼지 앉은
고서(古書)를 읽다가……
3
장미의 가지를
자르고
파초를 캐어 놓고
젊은 날의 안타까운
사랑과
소낙비처럼
스쳐간
격정의 세월을
잊어버리자.
가지 끝에 매어달린
붉은 감 하나
성숙의 보람에는
눈발이 묻어 온다.
팔짱 끼고
귀기울이는
개울
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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