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 문태준(1970∼ )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노란감국화가한무더기헤죽,헤죽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 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돈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노란감국화가한무더기헤죽,헤죽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 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돈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10월이 되면 이 시가 꼭 첫머리로 떠오른다. 10월과 문태준 시인의 조합은 지극히 옳은 만남이라고 생각된다. 시인은 비어 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어 있으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인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말이 좀 어렵지만 진짜 그렇다. 비어 있음 안에는 비어 있음의 쓸쓸함과 풍경과 느낌들이 들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비어 있음과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좋은 만큼 지극히 쓸쓸한 것은 그의 시를 읽을 때 함께 담아야 하는 덤이다.
10월은 텅 비어가는 시절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우리는 덜어내고, 비워내고, 털어내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풍성함은 더욱 감사하고, 사그라드는 것은 더욱 애잔하다. 그것을 이 시인은 어쩜 이렇게 딱 그려냈을까. 시인은 시든 오이나 꽃빛처럼, 10월의 운명에 처한 상실의 대상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뭔가 다 사라지고 있구나, 이런 상실을 너무나 잘 깨닫는 이유는 이미 상실을 너무나 잘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에 와서 혼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고 썼다. 반찬 없는 것도 속상한데 온기도, 식구도, 사랑도 없다. 아무리 ‘혼밥’ ‘혼술’이 대세라지만 시월은 원래가 쓸쓸한 계절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혼자는 더 쓸쓸하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10월은 역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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