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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山居] - 김구용金九容(고려高麗1338∼1384)

Bawoo 2016. 11. 26. 21:22

산거[山居 ]산에 사노라

                                                             김구용[金九容]


[습작]



浩然天地一狂生 [호연천지일광생]드넓은 천지에 미친놈 하나

獨臥靑山弄明月 [독와청산농명월]홀로 청산에 누워 밝은 달 희롱한다

自笑邇來無世味 [자소이래무세미]근래에 세상맛 없어 절로 웃나니

竹根流水洗心聲 [죽근유수세심성] 대나무 뿌리에 흐르는 물 마음 씻는 소리


     

김구용[金九容] 1338(충숙왕 복위 7)∼1384(우왕 10).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지, 호는 척약재(惕若齋). 첨의중찬 방경의 현손이며, 상락군 묘(昴)의 아들이다.

16세에 진사가 되고, 18세에 등제하여 덕령부주부를 지냈다.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이 중건되고 나서 민부의랑(民部議郞) 겸 성균직강이 되어,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성리학을 일으키고 척불숭유(斥佛崇儒)에 앞장섰다.


1375년(우왕 1) 삼사좌윤(三司左尹)으로 있을 때, 정도전 등과 함께 북원에서 온 사신의 영접을 반대하여 죽주(竹州)로 귀양갔다. 1381년 풀려나와 좌사의대부, 이듬해 대사성·판전교시사가 되었다. 우왕대에 북원과 수교를 재개함에 따라 대명관계는 악화되었다. 이후 명은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고 요동을 차단하여 고려 사신을 구금하는 사건이 여러 번 있었다.


1384년 행례사(行禮使)로 요동 통과를 시도하다 체포되어 난징[南京]으로 압송되었다. 명 태조의 명으로 대리위에 유배되던 도중 영녕현에서 병으로 죽었다. 시가와 문장에 뛰어났다. 이색(李穡)은 그의 시를 가리켜 "붓을 대면 구름이나 연기처럼 뭉게뭉게 시가 피어나온다"고 했다. 〈동문선〉에 그의 시 8편이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특히 무창시(武昌詩)가 유명하다. 저서에 〈척약재집〉이 있다.[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