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從道中(함종도중)
金邁淳(김매순)
磴道千回幷磵斜(등도천회병간사) : 돌 비탈길 천 구비, 골짜기 따라 비스듬하고
馬蹄磊落蹋崩沙(마제뇌락답붕사) : 모래 위에는 말발굽 어지럽구나
崖縫紫菊無人嗅(애봉자국무인후) : 절벽엔 향기 맡는 사람 아무도 없는 자주빛 국화
自向寒天盡意花(자향한천진의화) : 스스로 찬 하늘 향해 마음 다해 꽃피우누나
磊落 ① 많다 ② 용모가 준수하다 ③ 복잡하다
[서예 습작]
김매순(金邁淳, 1776년~1840년)은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이다. 자는 덕수(德叟). 호는 대산(臺山). 시호는 문청(文淸). 본관은 (신)안동.
1795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검열·의정부사인 등을 거쳐 초계문신에 선발되었다. 그 뒤 당상관으로 승자하여 예조참판 등을 지내고 외직인 강화부유수로 나아갔다. 학덕이 높아 사후, 고종 때에 판서로 추증되었다.
덕행(德行)으로 저명하였으며, 문장에 뛰어나 김택영의 여한십대가(麗韓十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성리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호론(湖論)과 낙론의 대립(호락논쟁) 때 그는 한원진(韓元震)의 호론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대산문집》, 《전여일록》(篆餘日錄), 《대산공이점록》(臺山公移占錄), 《주자대전차문표보》(朱子大全箚問標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이 있다.[위키백과]
[咸從]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고려초에 아선성(牙善城)이라 하였고 그 뒤 함종이라 하고 현령을 두었다. 원종 때 원나라가 이곳을 점령하여 황주(黃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가 충렬왕 때 고려에 되돌려주었다.
조선 초기평양부에 예속되었고 경종 때 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895년 군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강서군에 편입되어 함종면이 되었다. 아선의 명칭은 함종면의 진산(鎭山)인 아선산에서 나왔다.
이곳에는 옛 성이 있었고 부근 굴령산(窟嶺山)에 봉수가 있어 해안지방의 오곶(吾串)ㆍ조사지(漕士池) 봉수와 연결되었다. 지리적으로 해안지방에 위치하여 고려시대에는 몽고병ㆍ홍건적ㆍ왜구 등의 침입을 받았다. 그래서 해안지방에 있던 치소를 아선산 기슭으로 옮겼는데 그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삼화(三和)ㆍ용강(龍岡)ㆍ증산(甑山)과 함께 평양의 서부 외곽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들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으며, 해안에 해창(海倉)이 있었고 남쪽의 황룡산성(黃龍山城)에 성창(城倉)이 있어 비상시에 대비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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